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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푸른 바다의 전설과 윤회
홍진호 기자 | 승인 2017.01.26 10:03

국정농단에 정치 불신의 시대, 경제도 팍팍하고 AI로 계란 값조차 걱정해야 하는 요즘, 마음 둘 곳 없고 재미난 것도 없다.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고 지금 필자의 심정이다.

팍팍한 마음 속 그나마 단 하나의 위안을 주었던 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이 막을 내렸다. 퇴근을 하면 아직 어린 연년생 형제가 아빠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마음 편히 드라마를 못 볼 때가 많지만 “전지현 아줌마 보러가자”는 말로 큰 아들의 환심을 사본다. 물론 첫 째의 선택은 언제나 뽀통령이다.

개인적으로 전지현과 같은 대학, 동국대학교 동문이다. 학창시절 우연찮게 전지현과 같은 과목을 수강했다. 동국대는 종립대학의 특성상 ‘명상과 자아’ 등의 교양과목이 개설 돼 있다. 강사로 불교학과 혹은 선학과의 교수 스님이 수업을 맡을 때도 종종 있다. 그 당시 전지현과 내가 들었던 과목도 그러한 교양과목이었다.

100명이 넘는 교양과목의 첫 수업 시간, 강의를 맡은 교수 스님이 출석을 불렀다. 한 참 뒤 교수 스님이 한 학생의 이름을 불렀다.

"왕지현"

대답이 없었다.

"왕지현"

대답이 또 없자 스님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왕지현"

일순 강의실 한쪽이 웅성웅성 거렸고, 그제서야 왕지현, 아니 전지현이 대답했다.

"네"

엄격하기로 소문난 교수 스님이 왕지현 에게 대답이 늦은 이유를 다그치자, 어떤 학생이 유명한 영화배우라고 스님에게 귀 뜸을 해주었다.

잠시 고민하던 교수 스님은 “그렇게 유명해”라며, 마지못해 본명보다 가명에 익숙했던 유명인 제자의 사정을 이해했다.

여하튼 동문 전지현이 출연한 ‘푸른바다의 전설’은 윤회를 하며 이어지는 인어와 사람 간의 사랑이야기다. 전생에서 전지현과 이민호를 괴롭혔던 이들은, 현생에서도 악인으로 나오고, 전생에서 마님으로부터 시달렸던 노비는 현생에서는 마님을 고용하는 사모님으로 나온다. 악인은 악인으로 선인은 선인으로 전생에서의 악연과 인연, 선연이 이어지고, 반복된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윤회가 드라마 속, 주요 모티브인 것이다. 직접 보지 않아 자세히 언급하지 못하지만 최근 브라운관을 뜨겁게 달구며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도깨비’ 또한 윤회를 모티브로 한 러브스토리이다.

그렇다면 왜 윤회인가?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에서는 왜 윤회를 믿었을까?

인도인들은 이세상의 모든 일들이 철저하게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에 의해 일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995년 동국대 인도철학과에 입학하자마자 제일 처음 들었고, 졸업할 때 까지 듣게 되는 용어가 있다. 바로 범아일여 이다. 凡(무릇 범), 我(나 아), 一(하나 일), 如(같을 여)

대학교 1학년 때 ‘범아일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 한자를 한자 한자 음미해 가며 뜻을 이어 봤다. “모든 것이 나와 같다.”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모든 것, 도대체 뭐가 나와 같다는 거지? 뒤이은 교수님의 설명은 더욱 황당했다.

이 세상 모든 것, 곧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존재, 신발에 묻은 흙에서부터 몇 천억 광년 떨어진 우주 은하계 어느 별의 만나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 미지의 생물까지 나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선 이상한 용어를 쓰며, 내 머리 속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우주의 궁극적 원리인 ‘브라만’과 살아 숨 쉬는 개인의 생명적 원리인 ‘아트만’이 같다고 설명을 하는 것이다.

곧 인도철학에서 ‘나’는 우주 생성의 근원적 원리로써 탄생하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도철학의 모든 학파는 곧 하나의 소우주로 나는 대우주와 불가분의 인과관계 속에서 있다는 사실은 증명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어찌 보면 20세기 과학이 주목하고 탐구했던 두 가지 화두, 거시적으로는 ‘우주’와 미시적으로는 ‘원자’를, 그 옛날 인도사람들은 이미 주목했던 것이다.

범아일여와 함께 인도철학의 핵심사상은 3가지로 요약된다.

1) 삼사라-우주는 순환하는 시간에 의해 지배된다.

2) 범아일여-소우주로서의 개인은 대우주와 마찬가지로 인과에 지배된다.

3) 니르바나-인간은 이 끊임없는 순환적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모두 인과에 바탕을 둔 윤회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도철학에서의 핵심사상인 윤회는 때론 비이성적, 미신이라고 치부되기도 한다. 대학졸업 후 읽는 영어가 아니라 말하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1년 넘게 각종 원어민 영어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러다 어느 날 하루 윤회와 관련해서 미국인 강사와 언쟁이 붙었다. 평소 이런 저런 개인적 이야기와 사정들을 이야기 해 왔기에 크리스는 불자인 필자에게 “어떻게 사람이 죽어서 고양이로 태어나느냐?”고 반문을 했다. 

그 당시 크리스에게 속시원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 인도철학을 전공했지만 윤회를 설명하는 것은 힘들다. 성철스님은 살아생전 과학자들에 의해 행해진 전생체험 등을 예로 설명하셨는데, 윤회는 결국 앎보다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때 크리스가 나한테 정말 윤회를 믿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진짜라고, 100%라고 말했다.

물론 여러 논리적 반박은 윤회를 향하는 창과 방패이다. 인과에 의해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우주의 원리로 이 땅위에 탄생한 모든 존재는 평등하고 고귀하다지만, 태어나는 순간 결정되어지는 여러 불평등한 요소를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윤회 옹호론자들은 그저 운에 의해 어떤 이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또 다른 이는 부모조차 없는 고아로 태어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전생의 행위와 업에 의한 과보가 곧 현생으로 이어진다는 이성적인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윤회 부정론자들은 윤회는 인도에서 계급사회 유지를 위해 만들어 낸 종교 이데올로기라고 반박한다.

윤회를 믿고 안 믿고는 개인의 판단이자 믿음이지만, 대학시절 인도철학을 공부하면서 숙명처럼 다가온 윤회라는 화두의 종착역은 윤회가 결코 닫힌 결론이 아니라 인과라는 열린 결과의 시작이라는 확신이다.

곧 전생에 선업을 쌓으면 현생에 좀 더 좋은 조건에서 태어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크리스 말처럼 고양이로도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을 전생, 현생, 내생으로 3등분해 각각의 시간이 치밀하게 인과로 얽혀 상호 영향을 준다. 원인이 있으면 받드시 결과가 뒤따른다는 것을 현생을 넘어선 시간의 확장으로 설명한 것이다.

물론 이건 개인적 의견이다. 필자는 윤회는 그 어떤 철학사상이나 종교교리보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라고 믿는다.

퍽퍽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 되 내여 본다. 나는 온 우주와 함께 호흡하고 움직이며, 필연적인 이유로 바로 여기 지금 이 곳에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에 하나뿐이 우주, 그 안에 오직 하나뿐인 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필연적인 인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생각과 행동, 선택이 미래의 나를 만들 것이다.

전생에서 가슴 아픈 이별과 사랑을 했던 전지현과 이민호의 사랑이 현생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처럼 말이다.

홍진호 기자  jino41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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