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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윤의 세상살이]시키는대로만 한 사람들의 비극
전경윤 기자 | 승인 2017.01.22 20:38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특검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관련자들이 줄줄이 체포되고 구속 수감되고 있다. 국정농단 주범들에 대한 청문회와 재판도 진행되면서 이른바 잘나갔던 공직자와 학자,정치인들의 민낯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재판정에 선 이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질문에 잘 몰랐다거나 그저 윗선에서 시켜서 했을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안종범 전 수석도,최순실 씨 딸 정유라, 조카 장시호 씨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장시호 씨는 법정에서 "최순실 이모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시키는 대로 했다"고 진술해 혈연 관계인 장 씨와 최 씨가 서로 등을 돌린채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국정농단 사태로 망신창이가 된 문체부의 전 현직 장.차관과 실무를 맡은 공무원들도 특검이든 법정에서든 예외없이 자신은 시켜서 했을뿐이라고 진술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과거 히틀러 시대 나치 전범들이 수많은 유태인들을 학살하고도 그저 위에서 시켜서 했을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정농단 사태에 관련된 이들 모두가 왜 시켜서 했다는 진술만 반복할까 ? 자의가 아니라 누군가가 시켜서 억지로 했다고 하면 자신의 죄가 가벼워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관이나 수석, 기관의 책임자급 정도 되면 그저 시켜서 했다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자신보다 더 윗선의 지시로 어떤 일을 해야할 때, 그 일로 인한 파급 효과와 사회적 파장,문제점 등을 면밀히 따져 보고 자신이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할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990년대와 2천년대 초까지 경제부처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전직 관료는 필자에게 최순실 사건에 연루된 고위급 인사들의 진술을 듣고 상당히 실망스러웠다면서 그래서 영혼없는 공무원, 영혼 없는 수석, 영혼 없는 교수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 관료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판단하기에 부적절한 지시라고 생각되면 어떤 식으로든 그 일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솔직하게 책임을 지는 태도를 보이는게 옳다는 것이다. 설령 시켜서 했더라도 그 일을 추진하기 위해 구체적인 일정을 짜고 집행하는 과정은 전적으로 본인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모두들 알고 있다. 위에서 시키는 일을 거역하고 무시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인사권을 쥔 상사가 지시하는 일이라면 앞뒤 가릴 것 없이 총대를 메고 나서는 경우도 많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엘리트로 불리는 이들은 더 큰 출세를 위해 자신의 양심을 어느 정도 버려야만 하는 상황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정유년 새해도 어느덧 한달 가까이 지났다. 견고한 기득권층의 카르텔로 무장한 내부자들이 좌지우지하는 한국 사회는 정녕 바뀌지 않는 걸까 ? 정말 쉽지 않겠지만 새해에는 아주 맑은 영혼을 가진 엘리트들, 영혼있는 공직자들이 우리 사회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단지 희망사항에 그칠 것 같기는 하지만...[문화부장]

 

 

 

 

전경윤 기자  kycho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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