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비교문명학자 이토 슌타로 박사는 문명은 인간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하드웨어’이며, 문화는 그것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라고 하였다. 필자는 정교분리를 논함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정치’는 ‘문명’을, ‘종교’는 ‘문화’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밥만으로 살수 없듯이, 과거 국가라는 집단의 ‘육체’와 ‘정신’은 ‘정치’와 ‘종교’라는 양 날개로 운영됐다.

그러다가, 근대 이후 종교는 정치에서 아니, 사회와 문명에서 분리됐다. 서구에서 기독교문명이 이뤄낸 종교개혁과 이로 인한 정교분리이다. 이는 종교, 정치, 경제, 문화가 혼재 된 ‘문명’이 정치와 제도라는 ‘하드웨어’와 종교와 문화라는 ‘소프트웨어’로 분리된 일대 혁신이었다.

정치가 교회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자 기독교는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어 서구문명의 소프트웨어인 ‘기독교’를 세계로 전파했다. 정교분리 이후 기독교문명은 기독교의 문명을 이전하려 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문화와 종교로서의 ‘기독교’ 즉 소프트웨어를 전했다. 이로써 기독교는 다른 문명과의 마찰을 최소화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선후의 문제이다. 기독교라는 소프트웨어가 전해진 곳에서는, 서구문명이라는 하드웨어까지 함께 사용하게 됐다. 성속불분리의 종교인 이슬람교가 종교와 함께 이슬람의 문명까지 전파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문명충돌이 일어났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근대화와 함께 정교분리가 이뤄졌지만, 원래 한 뿌리에서 출발한 정치와 종교는 동전의 앞뒤처럼 상호 보완적이다. 그 옛날 정치가 부재할 때 종교는 권력자에게 권위를 부여하기도 했고, 정치에 저항하기도 했다. 세계 4대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교, 불교, 유교는 극심한 계급사회 속에서 정치를 대신해서 사회적 해법을 제시했다. 기독교의 사랑, 이슬람교의 평등,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은 시대적 해법인 셈이다.

이는 광복이후 우리나라에서 많은 신흥종교가 탄생한 것과 괘를 같이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사회적 혼란기에 민중들은 미숙했던 정치를 대신해 종교에 의지했다. 억압의 일제강점기와 혼돈의 해방기를 거쳐 한국전쟁까지, 혼란한 시대를 헤쳐 나갈 새로운 사상, 새로운 종교를 ‘시대’가 원했다.

해방을 전후로 한 혼란기에 기독교 계열에서는 통일교 등이, 불교 계열예서는 원불교 등 이 출현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기존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기성 종단과는 차별화 된 새로운 종단도 잇달아 나타났다. 불교의 경우는 이제는 불교계 주요종단으로 성장한 천태종과 진각종 등이 등장했다. 정치 부재 시기에 등장한 신흥종교와 신흥종단은 사회적 혼란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주고, 교육과 복지 등에 많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신흥종교의 탄생기에는 최태민 씨가 만든 영세교 처럼 종교를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사이비종교도 함께 등장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뿌리로 지목되는 영세교 교주 최태민 씨는 정치권과 접촉하고 결탁하는 과정에서, 정치를 위해 종교를 이용했다. 최태민 씨가 기독교와 천도교, 불교계를 넘나들면서 가졌던 16개의 공식 직함은 바로 그 흔적들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사이비종교 논란 기획보도를 준비하면서 다수의 종교학자, 불교학자, 변호사,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등 관련전문가들과 전화로 혹은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고, 의견을 경청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배운 종교학 수업을 떠올리며, 당시 종교학을 배웠던 김용표 동국대 명예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장시간 복습도 했다. 김 명예교수는 미국 템플대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관련 서적을 읽었는데, 책을 통해 정교분리와 관련돼 흥미로운 사례를 발견했다. 아니 잊고 있었던 사건도 되새기게 됐다. 바로 1995년 3월 20일 일본에서 발생해 세계를 경악시킨 사이비종교의 테러, 바로 옴 진리교에 의한 도쿄 지하철 가스 테러사건이다.

일본의 비교종교학자 호사카 슌지 박사는 그의 책 “왜 인도에서 불교는 멸망했는가?”에서 일본의 옴 진리교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책머리에 당시 반사회적 신흥종교로 부상했던 옴 진리교에 대한 기성 종단의 침묵을 비판했다. 그리고 종교가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하면 하나의 문명에서 종교는 흔적조차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하며, 옴 진리교 사건이 인도의 본토에서 왜 불교가 멸망했는가를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옴 진리교 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그해인 1995년 필자는 동국대 인도철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학과사무실에서 옴 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고에 대한 각종 기사와 잡지를 탐독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가 수련자 출신의 교주가 왜 신흥종교의 창시자가 되었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끔찍한 테러를 자행했는지, 인도철학을 공부했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일본 옴 진리교의 목표는 제정일치 국가인 신정국가 ‘진리국’의 건국이었다. 그리고 신정국가는 ‘신성법왕’인 교주 아사하라 쇼고에 의해 다스려 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옴 진리교의 입장에서 일본 정부는 전복되고 천황도 폐위되어야 했다. 옴 진리교가 처음부터 테러를 자행한 것은 아니다. 정부 전복에 앞서 정부와 국회를 장악하기 위해 정계진출까지 도모했으나 실패했고, 공권력을 유린하고 사회질서를 무너트리기 위해 도쿄 지하철 가스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반사회적 신흥종교의 일탈과 범죄가 가까운 과거에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던 일본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독교 문명에 의해 정교분리라는 일대 혁명이 이뤄졌고, 세계는 서구의 민주주의와 과학문명 속에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는 그 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한 몸처럼 붙어서 지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특히 유불선 삼교의 전통이 있는 동북아시아에서는 사회적 혼란기와 정치적 혼란기에 어김없이 신흥종교와 사이비종교가 함께 출현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핵심은 사실, 정치의 부재이다. 그러나 그 뿌리는 역사에 각인 되지 않은 그릇된 믿음 ‘영세교’에 닿아 있다. 앞으로 우리사회에 제2의 영세교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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