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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현각스님과 아메리카노
홍진호 기자 | 승인 2016.08.04 17:12

약 2년 전 비가 많이 내리던 주말 밤,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하버드대 출신의 푸른 눈의 수행자 현각스님과 만났다. 그때가 스님과의 개인적인 마지막 만남이었다. 당시 난 결혼을 하고 이직을 한 지 얼마 안 되었다. 스님에게 새 명함을 건네고 잠깐 안부를 묻고 헤어졌다. 당시 식장에는 현각스님 외에도 너무 많은 스님들이 왔기에, 스님과 필자는 서로 이곳저곳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꼭 2년이 지난 지금 현각스님의 SNS 발언 파문으로 교계 안팎이 시끄럽다.

현각스님이 왜 그런 발언을 했고, 무슨 연유로 파문이 이렇게 까지 확대 되었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 과거 스님과 했던 인터뷰와 인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전 직장에서 필자는 현각스님과 관련된 40분짜리 TV 특집을 제작했다. 국내에서는 스님과 얼굴을 맞대고, 스님이 독일로 떠나서는 인터넷 화상 채팅을 통해 인터뷰를 했다. 담당 PD는 따로 있었지만 작가이자 진행자로, 또 기자로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기에 그 때 스님과의 인터뷰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를 떠올리면 사실 스님이 밝힌 한국불교에 대한 비판이 그리 낯설지 않다.

2013년 3월, 강남의 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스님과 약 2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다. 출가와 관련된 인터뷰 자리에서 스님은 한국불교 비판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님은 당시 비구니 스님들도 총무원장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여성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한민국에서 왜 아직도 비구니 스님들의 참종권은 제자리인지 답답하다고도 했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비구니 스님들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고, 변화는 필요하나 당장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없는 구조적 상황을 이야기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 때, 그 주제만큼은, 필자는 어쩔수 없는 한국인 불자, 스님은 외국인 스님이라고 여겨졌다.

현각 스님과의 또 다른 일화를 소개하자면 지난 2004년 숭산스님의 다비식을 앞둔 덕숭총림 수덕사에서였다. 당시 필자는 숭산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곧바로 수덕사로 달려갔다. 너무 일찍 간 탓에 숭산스님의 법구가 도착하기 전이었다. 사찰 측의 배려로 방 하나를 배정 받아 쉬다가 얼핏 선잠이 들었다. 그러다 웅성거림 속에 점점 높아지는 외침에 잠이 깼다.

현각스님을 비롯한 숭산스님의 외국인 제자들이 스승의 법구를 옮기면서 걸음걸이가 흐트러지자 똑바로 가자며 큰 소리로 영어로 발을 맞추고 있었다. 숭산스님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아서 한국불교의 스님이 됐지만, 다급한 순간 의사소통은 어쩔 수 없이 영어로 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목격하고 필자는 성장과정에서 서로 달랐던 언어와 문화의 차이는 어쩔 수 없구나하며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현각스님 발언 파문이 확대 되는 과정에서는 한국불교와 결별을 선언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파문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추후 본인이 관련 글을 삭제하고 오역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불씨는 이미 인터넷을 타고 날아가 이곳저곳에 혼란과 상처를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현각스님의 이번 SNS발언은 그 방식과 시기에 있어서 적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제대로 검토 못한 글을 SNS에 올렸고, 파문이 확대 되는 상황에서 막상 스님은 국내에 없었고, 해명과 대처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취재과정에서 여러 스님들과 대화를 했는데 하나같이 현각스님에 대해 서운해 했다. 아마 현각스님이 비록 외국인 스님이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배려를 했다고 여겼고, 무엇보다 인종을 떠나 조계종으로 출가한 한국스님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의 속성상 현각스님의 발언과 달아올랐던 외부의 관심은 사그라지겠지만, 불교계 내부는 오랜 기억 속에 상처로 남을 것 같다.

문화적 차이에다 개인적 성향, 거기에다 인터넷이라는 시대상이 복잡하게 얽힌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고 수용되는 과정은 문화 충격의 연속이었다. 부모에 대한 효를 으뜸으로 여기고, 의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의 나라 중국에서 삭발을 하고, 천 조각을 하나 두르고, 결혼을 하지 않아 대를 잇지 않고, 출세 대신 세간을 떠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는 너무나 낯선 종교였다.

인터넷으로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지금도 외국인 스님들과의 좁혀지지 않는 문화적 차이와 이질감을 느끼는데, 그 옛날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가 건너 왔을 때는 어떠했겠는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양무제와 만난 후 달마대사는 소림사 인근의 동굴로 들어가 9년 동안 면벽 수행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깨달음을 이을 현지인 제자를 만난 법을 전했다.

어찌 보면 변화와 혁신은 내부에서보다 외부에서 시작될 때가 더욱 많은 듯이 보이지만, 열매가 맺어 지기 까지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인내해야 한다. 그리고 혁신의 계승과 발전은 내, 외부의 상호작용이 필연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국내에 들어 올 현각스님이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할지, 스님의 발언에 상처를 입은 한국불교는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어찌 보면 이번 파문은 현재 진행형이다.

홍진호 기자  jino41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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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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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ㅅ들ㆍㅉㄹ 2016-09-11 21:47:57

    웃겨서 말도안나온다ㆍㆍ현각 안돌아오면 씨발 새끼이다ㆍㆍ그런줄알아라ㆍㆍ니들이 우리에게하는 모욕은 개좃이냐??   삭제

    • 부처나라 2016-08-18 01:48:19

      기자라는 사람의 안목이 심히 천박하고 오만하고 가소롭다. 다시 공부해서 글 올려라!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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