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채용 절차를 거쳤고 청탁은 결코 없었습니다” 몇년 전 대구를 뒤흔든 ‘국립대구과학관 직원 채용비리 사건’이 불거졌을 때 대구시는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검찰이 밝힌 수사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면접에 합격한 24명 가운데 20명이 심사위원 등에게 청탁이나 부탁 전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대구과학관은 9명의 합격을 취소했습니다. 당시 부정 의혹을 받은 합격자는 대구시 고위공무원 자녀 3명, 언론인 배우자 1명,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 2명, 특허청 공무원 1명 등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미래 과학자의 꿈을 길러주기 위해 1100억원이란 막대한 예산을 들인 국립대구과학관은 이런 홍역 속에서 2013년 12월 문을 열었습니다. 그 후유증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인사청탁 파워게임’,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제주개발공사 신규 직원 채용에 청탁 60여명, 모두 탈락..”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2일 이런 제목의 언론사 칼럼을 링크해서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클릭을 해보니 제주개발공사의 최근 직원 공개채용에서 인사청탁이 들어온 60여명을 모두 떨어뜨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청탁과 관계없이 몰래 원서를 냈던 ‘원 지사의 조카’가 탈락했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제주개발공사의 이번 직원 공채에는 171명 모집에 2200명이 넘는 응시자가 몰렸다고 합니다. 청년들의 일자리 갈증이 큰 만큼 외부 청탁의 입김도 컸을테죠. ‘특혜’, ‘뇌물’, ‘낙하산’ 같은 단어가 오버랩되는 공기업 채용의 통상적인 실상과 선을 긋겠다는 과감한 시도에 일단 박수를 보냅니다. 최종 선발자 84명이 학연,지연 등에 얽매이지 않는 오직 실력으로만 뽑혔을 것으로 믿어봅니다.

한 조직이 인사 문제에 있어 외부 입김을 배제하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갖추려면 무엇보다 수장의 단호한 의지와 강단이 필요합니다. 조직의 수장들은 늘상 직원들에게 “인사 청탁자는 반드시 불이익을 주겠다”며 엄중 경고를 하곤 하지요. 하지만 ‘정실 인사’, ‘편중 인사’는 온갖 곳에서 비일비재하고 청탁을 넣거나 받다가 불이익을 받았다는 사람은 주변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조직 수장들의 그런 경고를 “인사 청탁자가 (나한테) 뇌물을 주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란 뜻으로 알아들어야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탁하다 걸리면 패가망신(敗家亡身)하도록 하겠다“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형 노건평씨가 고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으로부터 금품과 함께 인사청탁을 받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방지법’입니다. 반대와 보완의 의견이 만만찮게 나오지만 당장 다음달 28일 법이 시행되면 인사청탁을 넣거나 받는 일이 줄어들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물론 김영란법으로도 부족하다며 당사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등의 더 강력한 수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기는 하지만요. 어쨋거나 ‘김영란법’이나 정치권 일각에서 요구하는 가칭 ‘낙하산 인사청탁 금지법’ 등은 모두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정작 인사청탁을 없앨 수 있는 것은 바로 청탁을 거부하는 조직내 수장의 ‘마인드’일테죠. 인사청탁과 연관된 제주개발공사 채용시험 지원자 60여명이 모두 탈락했다는 사실이 아직은 ‘뉴스꺼리’가 되는 세상입니다/이현구 정치외교부장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