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터졌을 때, 기자의 부친은 아홉 형제의 막둥이로 세 살 배기 아기였다. 조부모는 당시 함경북도 성진에서 소 돼지를 키우는 부농이었고 그 이유로 지주 숙청의 대상이 됐다. 죽임으로부터 남편과 아홉 자식을 살리기 위해 조모는 기르던 돼지를 모두 잡아 선주들을 몇날며칠 배불리 먹여 남쪽으로 향하는 배를 간신히 얻어 타고 피난을 내려올 수 있었다. 그래도 난리 통에 첫째와 둘째 자식은 이북에 놓고 와야 했다. 심장 같은 자식들과 생이별해야 했던 조모는 훗날 줄곧 ‘불심(佛心)’에 의지했다.

기자는 다섯 살 무렵부터 조모 손에 이끌려 절에 다녔다. 불공을 드리고 집에서 고사도 지냈다. 고사를 지낸 후 남은 술은 조모의 가슴 가운데에 맺힌 한(恨)을 풀어주는 ‘묘약’과도 같은 것 이었다. 전쟁 속에서 남편과 자식들을 살려내고 억척같이 공부시켜 다시 윤택한 삶의 터전을 이뤄냈던 그런 강인한 할머니가 북에 두고 온 자식을 그리워하며 통곡하는 모습은 그 날 한번 이었다.

전쟁은 많은 이들에게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남긴다. 하지만 ‘이 간나야’라고 부르던 할머니의 이북식 말투와 갈치가 들어있던 이북식 김치가 그리운 기자에게 조차도 분단된 조국의 현실은 크게 와 닿지 않았었다. 외교/통일부 출입기자로 발령을 받기 전 까지는.

지난봄부터 기자는 매일 아침 전날 발생한 북한의 동향을 북한의 관영매체인 조선중앙 TV나 통신, 대북소식통이나 외신을 통해 취재 보도하고 있다. 외교/통일부에 와서 느낀 것은 우리의 관념보다 북한이 훨씬 핵무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10개 이상의 핵무기를 개발해 놓고 있다. 지난 6월 22일에는 무수단 미사일을 1400km 이상의 고고도로 발사해 400km 거리의 표적을 타격하는데 성공했다. 이 실험에서 성공했다는 것은 이미 핵을 경량화 하는데 성공한 북한이 핵을 미사일 탄두에 장착해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렸다가 다시 대기권 안으로 재진입 시키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핵심 기술을 보유하게 된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가 북한의 핵미사일 사정권 안에 들게 된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패트리어트(PAC-3)로는 요격할 수 없고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THAAD)로만 방어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에서 사드 배치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 당연한 일을 하러 경북 성주에 협조를 구하러 간 국무총리에게 계란과 물 세례가 날아들었다.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이 탄 버스를 군중이 에워싸고 6시간 이상 오도가도 못하게 막아섰다. 무엇이 성주 군민들을 폭도로 돌변하게 만든 것일까. 바로 ‘진실 왜곡’.

루머로 정리된 ‘광우병 괴담’이 한 때 온 나라를 휩쓸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진실 왜곡 때문이었다. 성주 군민들이 반발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전자파 괴담’으로 떠돌고 있는 진실 왜곡 때문이다. 전자파의 유해성 여부는 과학적인 수치를 통해 정확히 알 수 있다. 국방부는 사드 레이더 전자파의 경우 100m만 떨어지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힌바 있다. 오늘 국방부 출입 기자들이 괌(Guam)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를 확인하여 국방부의 말이 사실인지를 객관적 자료를 통해 보고할 것이다.

우려스런 것은 이 같은 진실 왜곡을 야당과 일부 언론이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야당은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이 성주를 찾아간 것이 잘못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사드 배치 결정의 재검토 및 공론화를 요구하면서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놨다. 아예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내 건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가 사드 배치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발상까지 내놓았다. 확인되지 않은 전자파 의혹만을 제기하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이 탄 버스가 6시간 동안 오도가도 못한 상황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며 ‘국정공백’을 자초했다고 비판한 언론도 있다.

이 날 성주 군민들의 사드배치 반대 시위에 외부세력이 개입을 시도한 것도 충격적이다. ‘성주 사드 배치 저지 투쟁위원회’ 이재복 공동위원장은 “시위꾼들이 붙어 순수한 농민의 군중심리를 이용한 점이 있다”며 “외부인인 시위꾼이 마이크를 잡고 선동했지만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즉 군중 속에 민중연합당 조직원 등이 끼어있었다는 것인데, 민중연합당에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그들이 펴는 주장의 행간에는 어떻게 하면 날로 증강되는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그저 대안 조차 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유엔의 대북제재 목적은 북한의 핵 무력화이다. 대한민국 국민 안전이 우선이 아니다. 즉, 대북제재로 인해 궁지에 몰린 북한이 언제든 보복성 본보기로 남측을 향해 고고도로 미사일을 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중국이나 미국이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한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불안하다는 것은 중국에겐 남의 나라 일 일 뿐이고, 그나마 미국이 사드 배치를 추진한 것도 주한미군의 생존성(survivability)을 위한 것일 뿐이다.

세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미국에 의지하며, 중국의 눈치를 보며, 일본 핑계를 대며, 대안없는 정쟁에 몰두하는 사이 왜곡된 진실에 현혹된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으로 나서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광화문 광장에는 신기전과 거북선으로 중국과 일본에 대항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다.

북핵 위협에 대한 대한민국의 무심함을 ‘미끼’로, 전자파를 빌미삼아 군중을 ‘현혹’하려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하늘에서 미사일 천발이 비처럼 쏟아져봐야 사드배치에 반대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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