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난데없이 만세를 불렀습니다. 14시간 넘는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취재진 앞에서 불끈 쥔 주먹의 두 팔을 번쩍 들었습니다.(사진) 피의자 신분이면서도 마치 무혐의나 무죄를 인정받은 것처럼 환호했습니다. 그런 장면을 좀처럼 보지 못했을 기자들이 다가가서 혐의를 인정하냐고 묻자 그는 엉뚱하게도 한국, 검찰 수사관, 기자를 언급하며 “불쌍하다”는 동문서답을 반복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불쌍한 상태에 빠져있는 것 같아요. 일을 할 때 컨디션을 좋게 해줘야 하는데..” “사람들이 밤 12시 반까지 일을 하고도 끄떡없이 그렇게 하는지. 저보다 조사하는 사람들이 더 불쌍하더라고.." 자신을 쫒아오며 “경찰과 어떤 얘기를 했습니까?”라고 질문한 기자에게는 “젊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해야 하다니 불쌍하다”고 힐난했습니다. 검찰 수사관, 기자들을 아랫사람 대하는 듯한 그의 태도와 말투에는 자신감이 묻어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민 상당수는 이런 정 감독의 모습을 불쌍한 듯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한 네티즌은 트위터에 “재능에 기대어 받는 존경을 불법을 가리는데 사용하면 거만이 된다, 교양 부족이 철철 넘친다”고 올렸습니다.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 화백은 위작 판정이 난 그림 13점에 대해 “전부 진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 장도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호흡이나 리듬이나 채색을 쓰는 방법이나 내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위조범이 잡혔는데도 작가가 진짜라고 맞서는 희한한 광경에 국민들은 석연치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경찰은 가짜 그림의 돈거래 경로까지 분명히 밝혀냈는데, 작가는 말로만 진짜라고 주장할 뿐 작품 제작 당시 정황과 거래 경로를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작의 존재로 그림값이 내려갈 것을 걱정했거나 작품을 전담 관리해온 화랑을 보호하기 위해서란 이유들까지 거론됩니다. 미술계도 황당하다는 반응입니다. 한 미술평론가는 "해외에서는 위작 사건이 발생하면 감정 전문가가 나서고 작가는 한 발짝 떨어져 있다“란 말을 했습니다. 품격을 잃어버린 이 화백의 언행은 지난달 위작의 진위를 확인하러 입국하면서부터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취재진이 경찰 조사에 관한 입장을 묻자 "대한민국이 왜 이러느냐. 내 말은 믿지 않고 이상한 사람들 말만 자꾸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아직 경찰에 가보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느냐. 깡패냐"고 항의했습니다. 오랜 외국 생활의 예술가는 대한민국 땅을 밟으면서 경찰과 기자 집단을 깔아뭉개버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위신이 더 떨어진 쪽은 오히려 그 자신인 듯 해보입니다. 품격없는 언행이 재능과 열정으로 높게 쌓아올린 자신의 예술적 경지마저 흔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세대간 갈등’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시대입니다. 젊은이들은 “우리 사회에 꼰대만 많고, 존경할 만한 진짜 어른을 찾기 어렵다”는 말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영역으로 일가(一家)를 이루며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거장들은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견고하고 품격있는 기둥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들에게서 따뜻하고 인간적인 풍모까지 느끼고 싶은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요? 일각에서는 세계적인 예술가를 품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한계를 이야기합니다.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 사법기관의 수사 자체가 견디기 힘든 일이라고 변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에 사회 지도층인 정명훈 감독, 이우환 화백 모두 다수를 행복하게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와는 동떨어진 모습으로 국민 마음에 자리잡았다는 사실입니다/이현구 정치외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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