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라. 당신의 오른팔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그 날의 모든 저주는 시작된다. 좋은 사람들과 마냥 거닐고 싶던 그 푸른 초원에서 자꾸 집에 가고 싶어진다. 팔이 아니라 몸으로 치는 것이라는 고릴라 레슨강사의 아우성이 머리에선 쉼 없이 맴돌지만 몸은 이미 광활한 대자연의 기에 눌려 그저 더 세게, 더 멀리 보내고자 하는 욕심에 퉁퉁 불어터질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다. 생방송 스튜디오 안에서도 힘은 철저하게 빼야한다. 어느 대목 나 홀로 중요하다 여겨, 혹은 이것만큼은 지나치게 잘 읽어야지 하는 마음에 너무 강하게 방점을 둬 읽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단이 난다. 발음은 뭉개지고 호흡은 망가지며 기어이 출처불명의 외계의 소리가 내 입에서 춤을 춘다. 그 참담한 소리가 내 귀를 꾸짖는 동안 눈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머리를 들지 마라. 필드 위에서 당신의 머리는 당신의 것이 아니다. 날아가는 공을 보고 싶은 그 삿된 마음을 버리고 또 버려라. 끝없는 ‘뒤땅 치기’와 ‘고구마 캐기’도 대개 이 ‘머리 들기’에서 비롯된다. 드라이버로 쇼를 펼치든, 퍼팅으로 돈을 벌든 여하튼 머리만큼은 항상 고정시켜 잡아먹을 듯이 땅만을 응시해라. 당신의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퍼붓는 캐디의 야유에 관대해지고 지인들의 조롱에도 너그러워져라. 온에어가 들어온 라디오스튜디오 안에서도 고개는 숙여라. 오직 자신의 원고에만 집중해야한다. 스튜디오 유리창 밖 그들만의 소란스러움과 왁자지껄 분위기에 늘 둔감해지고, 매번 일일이 머리를 들어 자기 멘트에 대한 반응을 살피지 마라. 쉼 없이 마이크를 타고 들어가 공명처럼 울리는 당신의 목소리에 오롯이 당신만이 귀 기울여야한다. 깊이 머리를 파묻고, 무정한 빨간 불이 꺼질 때까지.

지나간 것에 연연하지 마라. 골프는 홀마다 표정이 다르다. 물론 전체적으로 다 잘 맞거나 못 맞는 날도 있겠지만, 엄격하게 마인드컨트롤만 잘되면 지금 홀의 성적은 지난 홀의 성적과 무관하다. 그러니 어느 홀에서 좀 잘 맞았다고 괴성을 지르며 날뛰지 말고, 어느 홀에서 좀 안 맞았다고 주변 사람들 신경 거슬리게 풀이 죽어있을 필요도 없다. 구력이나 체격, 비거리을 제법 갖췄는데도 여전히 100돌이인 것은 이 때문이다. 절대 한 타에 일희일비하지마라. 매번 백지상태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스튜디오 안에서 더 중요하다. 대개 첫 문장, 첫 멘트에서 속된 말로 ‘씹으면’ 그 날은 계속 씹힌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빨리 잊는 수밖에 없다. 순식간에 없던 일로 만들고 마음 속으로 새롭게 다음 문장과 멘트를 준비해야한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아, 왜 씹었지?” 하는 절절한 후회와 원망이 그 날 방송이 끝날 때까지 당신의 영혼을 조근 조근하게 괴롭히기 때문이다. 하여, 골프와 생방송 진행은 처절한 멘탈 게임이다.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감과 집중력이고,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조급함이다.

끊임없이 연습하고 공부해라. 단, 혼자해서는 안 된다. 가끔 독학으로 아마추어 최고수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도 봤지만, 나쁜 결과를 전제로 논의할 수 없듯이 예외 몇 명을 염두에 두고 주장을 펼 수는 없다. 홀로 연습하면 손바닥이 사포가 되도록 노력해도 이른바 연습장 프로인 ‘닭장 프로’가 될 뿐이라는 게 이 바닥 통설이다. 누군가 봐주는 사람이 반드시 옆에 있어야한다. ‘뉴스의 닻을 내리는 사람’이 ‘앵커’라면 앵커는 반드시 알고 떠들어야 하고, 아는 만큼 떠들어야 한다. 그렇게 매일 매일 쏟아지는 뉴스에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를 담아 세상을 비추는 창이 될 때 자기 아성이 구축되고 아우라가 형성된다. 자기 손으로는 자기 이름 석 자 밖에 못쓰면서 작가 등 남이 써주는 원고를 잘 포장해 우쭐거리며 그럴싸하게 떠들고, ‘광대의 쇼맨십’만 강조하는 ‘얼치기 앵커’들이 어느덧 이 나라에 차고 넘친다. 그들만 모르고 있을 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겉치례용 발음, 리딩 연습도 물론 필요하지만 자발적인 신문 정독이나 방송뉴스 공부가 더 중요하다. 역시 노련한 선배들의 첨삭지도를 받으면 실력은 배가 될 것이다. 챔피언은 바뀌고 정해진 왕좌의 길도 없으니, 결국 어줍지 않게 두서없이 나열한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자꾸 필드에 나가보고, 생방송 스튜디오에 앉아보는 수밖에 없다.

누가 보면 기자가 ‘싱글’을 치고 엄청난 베테랑 앵커인 줄 알겠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도 필드의 하늘만 보면 눈물이 나고 스튜디오에 들어오면 물부터 찾는다. 무거운 주제만 다룬다는 원성이 자자해 모처럼 웃고 넘길 주제를 골라봤는데, 또 다시 옥고(玉稿)로 넘쳐나는 세상의 글밭에 소란스러움만 보탠 기분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사회부장] [2016년 6월 27일]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