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열 경인한의원 원장의 20년 암투병 극복기

●  BBS 부산 ‘찾아가는 라디오(6월18일)’
   (부산FM 89.9Mh 창원FM 89.5Mh/진주 FM 88.1 Mh 16:05~16:40)
● 코너명 : 특별기획 ‘암 그렇고 말고’
● 진  행 : 박찬민 기자
● 출  연 : 박태열 경인한의원 원장(부산시한의사회 한방의료관광연맹 회장)

(앵커멘트)찾아가는 라디오, 다음은, 특별기획 ‘암 그렇고 말고’ 시간입니다. 오늘도 부산 사하구 다대동에서 경인한의원을 운영하고 계신 박태열 원장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박태열 원장님은 30대 초반에 방광암 선고를 받은 뒤, 20여 년 동안 14번의 수술과 한방치료를 병행하면서, 힘겨운 투병 끝에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신 분입니다.

박태열 원장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박태열원장입니다.)

 

질문1) 원장님께서 부부여행을 가던 비행기 안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했다구요?

-지난주에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2006년 12월 말에 친구들과 함께 마닐라로 부부 동반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동안 내 병 수발을 하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계획한 여행이었습니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김해 공항을 출발한지 한 시간가량 지났을 무렵이었는데요. 야간 비행인 탓에 승객들은 대부분 기내식을 먹고 나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꾸벅꾸벅 졸다가 승무원의 안내 방송에 잠이 깼습니다. 기내에 의사 선생님이 계시면 승무원에게 알려 달라는 방송이 두어 번 반복됐습니다.

뭔가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응급 상황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방송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는데, 막상 승무원을 부르려니 갈등이 생겼습니다. 방송에서는 분명히 <한의사>가 아닌 <의사 선생님>을 찾고 있었고, 실제 기내에 <의사 선생님>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출산과 같이 한의사가 아니라 의사 선생님이 필요한 상황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리에 도로 앉았습니다.

그래도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기내 앞뒤를 조심스레 둘러봤습니다. 마침 제가 앉은 자리가 통로 쪽이라서 앞뒤를 살피기엔 유리한 위치였습니다. 언뜻 비행기 맨 뒤쪽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였고 승무원이 그를 돌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응급상황이 발생했고 이 비행기에는 의사 선생님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의사니 한의사니 하는 생각으로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나는 얼른 일어나 비행기 뒤쪽으로 갔습니다.

질문2) 환자 상태는 어땠습니까?

-가까이 다가가서 한의사인 저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그 때까지 쓰러진 환자에게 심폐소생술과 산소공급을 하고 있던 승무원의 당황한 표정으로 봐서 심상찮은 상황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쓰러진 사람은 50대 후반 쯤 돼 보이는 여자였습니다. 얼굴은 종이짝처럼 창백해져있었고 손발은 이미 싸늘했습니다. 의식도 없었습니다. 위급하고 위험한 상황이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기내에 구비된 장비를 이용해서 바이탈 사인(체온, 호흡, 맥박, 혈압)을 체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맥박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혈압이나 호흡도 청진기로 잴 수 없는 아주 위급한 상태였습니다. 입술과 손끝이 퍼렇게 변하는 청색증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말초조직은 혈액순환이 잘 안 되고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때는 환자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평소 정신질환이나 협심증, 뇌경색 같은 혈관질환을 앓고 있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단지, 조금 전에 기내식을 먹고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다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옆 좌석에 앉아있던 사람의 증언이 있을 뿐 환자의 병을 진단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단서라고는 별로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습니다.

청색증이 있기 때문에 일단 산소마스크를 씌워서 산소를 공급하는 동안 다시 진맥을 하려고 시도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맥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목에도, 목 동맥에도 맥박이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순간 이미 심장이 멎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면서 머리가 쭈뼛 섰습니다.

질문3) 응급처치로 침을 놓으셨다면서요?

-이 응급환자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심장박동을 회복시키는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게 할 방법을 찾고 있을 때, 뒤에서 승무원이 <지금 한의사 선생님께서 환자를 진찰하고 있다>며 보고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마 조종실에서 환자의 상태를 묻는 연락이 온 것 같았습니다. 환자에게는 내가 도착하기 전부터 한참동안 심폐소생술과 산소마스크를 하고 있었는데도 손과 입술에서 생긴 청색증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심장이나 호흡이 빠른 시간 안에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뇌를 비롯한 다른 장기들이 산소 결핍으로 인해 매우 심각한 위험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구급조치를 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환자의 체온이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일말의 희망은 있었습니다. 그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를 갖고 심폐 소생술과 함께 한방 응급조치를 시도하기로 결정하고 혹시 기내에 준비된 침이 있는지 승무원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여행을 다닐 때는 항상 침을 휴대합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탈 때만큼은 보안상의 문제로 침을 갖고 비행기 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늘 화물로 부쳤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승무원에게 기내에 준비되어있을지도 모르는 침을 찾은 것인데, 승무원은 갑작스런 저의 질문에 당황하더니 침과 같은 한방물품은 필수 구급품이 아니라서 비행기 안에 준비되어있지 않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급한 대로 바늘은 있는지 물었더니 승무원이 사적인 용도로 갖고 있던 바늘을 갖다 줬습니다.

그런데 바늘은 침과 달리 손잡이가 없어서 골무 없이는 찌를 때 환자의 피부뿐만 아니라 저의 손까지 찌를 수 있습니다. 소독을 한 다음에 저는 손끝이 찔리는 통증을 감수하면서 바늘로 입술 부근과 그 외 두어 개의 구급혈을 찔렀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다시 다른 구급혈을 찌르는 순간, 환자의 손가락이 움찔움찔하며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것은 환자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였습니다. 희망을 갖고 다시 몇 군데 경혈에 바늘을 더 찌르자 환자가 미약하나마 아프다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몸을 가눌 정도는 아니었지만 위급한 상황이 해결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잠시 후에는 몸 전체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뒤에는 감고 있던 눈도 떴습니다. 손목과 목에서도 맥박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운항중인 비행기 안이라는 특수 상황이라서 다른 승객이나 안전운항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환자를 구하기위한 모든 일은 매우 신속하면서도 차분하고 침착하게 진행됐습니다. 그때 조종실에서 다시 연락이 왔는지 승무원이 내게 와서 환자의 상태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비상 착륙을 해야 하는 상황인가 아닌가 물었습니다.

 

박태열 경인한의원장

질문4) 매우 위급한 상황으로 보이는데 비상착륙은 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가 김해공항을 이륙한 지 두 시간쯤 지날 무렵이었는데요, 항로 지도에는 우리 비행기가 타이완 상공을 막 지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만약 환자를 위해서 정상 운항을 포기하고 가까운 공항에 비상 착륙하게 된다면, 그것은 다른 승객들에게도 또 항공사에도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위험한 환자를 태운 채 예정대로 운항하다가 최악의 상황이라도 생긴다면 어쩌겠습니까? 기장도 운항 중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환자를 진찰한 저의 판단을 물어본 것인데, 이제 나의 말 한마디에 비상착륙을 해야 할지 말지 기장의 판단이 좌우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비상 착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환자의 안전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다른 승객의 스케줄은 다 망가질 것이고, 항공사도 막대한 부담을 떠안게 될 것입니다. 만약 큰 문제가 없다고 대답해서 운항을 계속하다가 만의 하나 환자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모든 책임을 내가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무엇보다 환자의 생명을 위한 조치가 가장 우선순위에 있긴 하지만, 그런 판단을 위해서는 다른 승객이나 항공사의 사정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합니다. 현재의 상황만으로는 비상 착륙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의식을 잃은 환자 때문에 곤란을 겪다가 이젠 운항문제에까지 얽혀져서 더욱 난감하게 됐습니다.

그런 긴박하고 중요한 일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그때는 환자가 의식이 어느 정도 돌아왔고 입술과 손에 생겼던 청색증도 사라지며 조금씩 호전 반응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비상착륙문제는 조금만 더 경과를 지켜보고 판단하자고 대답했습니다. 내 손에 엄청난 일이 달려있다는 심적 압박을 느끼면서 다시 구급혈에 침을 더 시술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는 더 회복되고 있었고 나중에는 대화도 나눌 정도가 됐습니다.

질문5) 다행히 의식이 회복되었는데, 환자에게 평소 지병이 있었습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환자는 평소 저혈압증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비행기 안의 산소 부족과 맞물려 <저혈압성 쇼크>가 일어났던 것이었습니다. 이 질환은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는 상태에서는 산소를 공급하면서 적절한 구급 조치를 하면 의식이 곧 돌아오는데, 이 환자는 평소 심폐기능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지 심각한 증세를 보인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환자가 앉을 수 있을 정도가 돼서 내가 준비해 간 구급 한약을 복용시켰습니다. 그 후 비교적 빠르게 회복되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보이지 않던 환자보호자도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 나타났습니다. 다시 조종실로부터 비상 착륙 여부를 묻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승무원도 저도, 더 이상 비상 착륙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비상착륙 없이 정상운항을 해서 필리핀에 도착했습니다. 뒤쪽에 좌석을 연결해서 환자를 눕히고 계속해서 환자 곁에서 쪼그려 앉아서 상태를 살피던 나도 그제야 다리를 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착륙과 동시에 환자는 내 손을 떠나 구급차에 실려 공항의무실로 갔습니다. 구급차에 실려 갈 당시에 그 환자는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어 있었습니다.

질문6) 나중에 항공사에서 감사패를 전달했다면서요?

-짧은 일정의 여행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온 후에 저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그 일을 잊어버리고 진료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몇 주 뒤 그 항공사 직원이 저의 진료실로 찾아왔습니다. 기내에서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정상 운항에 도움을 준 보답으로 항공사 대표의 이름이 새겨진 감사패를 전달해줬습니다. 그 감사패는 지금도 저의 진료실에 놓여있습니다.

(앵커멘트) 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 듣겠습니다. 원장님,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부산 사하구 다대동에서 경인한의원을 운영하고 계신 박태열 원장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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