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와 집 문제로 또 한 번 다투었다. 아내가 아이들 키우기에 현재 집과 주변 환경이 안 좋다며, 집을 팔고 이사를 가자고 하면서 언쟁이 시작됐다. 사실 ‘또’ 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결혼 전부터 집 문제로 참 많이도 다투었다. 한번 시작된 언쟁은 지나버린 묵은 감정까지 토해내며 격렬해 졌다. 결혼 전부터 아내한테 집을 사고 한곳에 정착하면 웬만해서는 이사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수적이고 안정 지향적인 가정환경 속에 자란 탓에 내 기억 속에는 이사라는 단어가 없다. 아버지 고향은 경기도 이천이고, 필자는 사실상 서울이 고향인데, 이사를 다닌 적이 없다. 1978년에 준공된 아파트에서 유년 시절을 고스란히 보내고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고, 부모님은 아직도 너무 낡아 재개발이 예정된 그 아파트에서 살고 계신다. 아버지는 이천 고향집도 부엌과 화장실만 만드는 등 약간만 개조한 채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집을 그대로 쓰고 있다.

집 문제와 관련해 처가의 분위기는 정 반대이다. 주로 살았던 부산에서 이사와 인테리어를 주저하지 않았고 오히려 즐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산에서 고향인 하동에 다시 정착할 때는 아예 황토집을 직접 지었다. 본가의 아버지와 처가의 장인 모두 은퇴 후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농업 스타일 또한 정반대이다. 아버지는 이천에서 수익에 상관없이 할아버지가 하시던 그대로 벼농사를 고집하지만, 장인은 하동에서 논에는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딸기를, 산에는 아로니아 등 특수 작물을 재배한다.

집 문제로 아내와 다툰 후, 주말에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보았는데, 성향이 다른 아내와 처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조절초점 이론'을 개발한 심리학자 히긴스 컬럼비아대 교수의 인터뷰 기사인데, 하긴스 교수는 미국인 65% 성취지향형이고, 한국인 65%는 안정지향형이라고 밝혔다. 그 수치가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아내와 처가는 성취지향형, 나와 본가는 안정지향형인 것 같아 기사를 읽는 내내 고개가 끄덕여 졌다.

기사의 일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현재를 제로(0)의 상태, 즉 중립으로 볼 때 ‘플러스(+)1’의 상황을 희망하는 성취지향형에게 ‘0’은 불만족스럽다. 이들은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더 나은 자신을 꿈꾼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목표인 안정지향의 사람들에겐 ‘0’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다. 이들은 ‘마이너스(- )1’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어적 비관론자’다. 이들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닥칠 때 최대치의 능력이 나온다.”

이기기 위해 게임을 하는 아내는 성취지향형, 즉 낙관론자이고, 지지 않는 게임을 하기 위한 나는 안정지향형 비관론자이다. 낙관론자에게 중요한 것이 현재라면, 비관론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미래이다. 낙관론과 비관론에 치우치지 않고, 현재를 즐기며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이지만 타고난 기질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저성장, 고령화로 대변되는 지금 이 시대는 분명 마이너스 시대이다. 마이너스 시대에 비관론자가 살아남고, 낙관론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고 타인의 장점을 수용해야 한다. 해당 일간지의 기사를 읽고 세상에서 깨달음이란, 선지식이란 지구촌 곳곳 도처에 있음을 새삼 감탄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이사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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