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마케팅 관련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원래의 제 전공과는 전혀 다른 생소한 분야여서 그런지, 지금까지 기억나는 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기억나는 걸 하나 꼽으라면 ‘Next Big Thing’을 꼽겠습니다. 우리말로는 ‘차세대 먹거리’, ‘다음 세대의 대박 상품’ 등으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지금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이라도, 다음 세대를 책임 질 ‘대박 아이템’을 미리 확보해놓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최근에 한국조폐공사 대전 본사와 부여 제지본부를 둘러봤습니다. 돈을 발권하는 곳은 한국은행이지만, 그 돈을 찍어내는 곳은 조폐공사입니다. 부여 제지본부에서 돈을 만들기 위한 화폐용지를 생산하면, 그 용지를 이용해 경산의 조폐창에서 돈을 찍어내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대전의 본사가 책임지고 관리하죠.

조폐공사의 화폐용지 제조 기술과 화폐 인쇄 기술... 한 마디로 ‘돈 찍어내는 기술’은 세계수준급입니다. 화폐용지는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하고 있고요. 최근까지 페루에 화폐를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즉, 페루 국민들이 쓰고 있는 화폐 일부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란 얘깁니다.

이렇게 잘 나가는 조폐공사지만, 항상 탄탄대로만 걸을 수는 없나 봅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화폐용지를 사들이던 중국이 2014년부터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거든요. 중국 수출 규모가 전체 매출의 5%를 차지했다니, 커다란 거래처 하나를 잃은 셈이죠.

치열한 은행권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중국이 독일과 영국 등에서 최첨단 제지 설비를 들여왔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이에 비해 조폐공사가 가장 최근에 교체한 기계는 12년 된 설비입니다. 설비가 오래되면 아무래도 합격품 생산율이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설비를 신형으로 바꾼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사실상 공장 건물 한 동이 곧 기계 한 대 거든요.

거기다가 벌써부터 ‘동전 없는 사회’며 ‘화폐 없는 사회’... 이런 얘기가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동전을 없애고, 장기적으로는 화폐 자체를 없애서 신용카드만으로 모든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주장인데요. 이번 총선에서 이 같은 주장을 공약으로 내세운 정당까지 등장했을 정돕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위기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조폐공사가 이미 ‘Next Big Thing’ 발굴에 나서고 있었다는 겁니다.

조폐공사는 600여 개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400개에 대해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위조와 변조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입니다. 기본적으로 돈을 찍어내는 기업이니, 당연하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폐 제조와 관련 없어 보이는 기술도 꾸준히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주유기 조작 방지 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가끔 일부 주유소 업자들이 주유기를 조작해 실제보다 적은 기름을 넣고 돈은 원래 그대로 받는다는 보도를 접할 수 있지요. 하지만 주유기에 이 칩을 장착하면, 조작이 일어날 경우 경보음이 울리게 되고, 동시에 석유관리원에 조작 행위가 자동으로 신고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술은 주유기 뿐 아니라, 수도·전기·가스계량기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게 조폐공사 측의 설명입니다.

지금 나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내 입지를 위협할 만한 변화가 오고 있진 않은가.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어떤 ‘Next Big Thing’을 준비하고 있는가. 조폐공사의 사례를 보며,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돌아봐야겠습니다.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