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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인터뷰 ]

고성국(이하 고): 파워인터뷰 저희들이 준비했습니다. ‘2.18안전문화재단’이라고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2.18안전문화재단. 네, 2003년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입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에서 지하철화재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음, 이 대구 지하철화재참사 13년 전에 있었던 이 대구지하철화재참사로 모두 192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151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네, 그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대구시가 또 이 때 희생당하신 분들 그리고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이 지난 13년 동안 논의를 계속해 오다가 이 대구를 안전한 도시로 만들자, 이런 문제의식에 합의하면서 2.18안전문화재단을 출범시킨 겁니다. 이 재단출범까지 우역곡절도 많았고 또 2.18안전문화재단이 출범함으로써 안전에 대한 인식들을 좀 더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걸 기대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희들 2부 에서는요. 음, 대구시 권영진 시장, 그리고 2.18안전문화재단 김태일 이사장, 이렇게 두 분을 동시에 연결해서 안전문제를 좀 말씀을 좀 듣는 시간 준비했습니다. 네, 두 분 지금 동시 연결 되어 있습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권: 네, 안녕하세요.

 

고: 네, 권영진 대구 시장 먼저 인사 하셨네요.

 

권: 네, 안녕하십니까! 권영진입니다.

 

고: 저 지난 번에 인터뷰 하고 또 바로 안전문제로 다시 모시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권: 네, 감사합니다.

 

고: 네, 그리고 2.18안전문화재단에 김태일 이사장 연결되어 있죠?

 

김: 네, 김태일 입니다. 안녕하세요.

 

고: 두 분도 인사하시고요. 하하.

 

김: 네, 시장님 안녕하세요.

 

권: 안녕하세요.

 

고: 두 분 뭐 자주 만나시겠습니다. 이런 저런 문제로 말이죠. 네.

 

권: 네, 그렇습니다.

 

고: 네, 이 13년 전인 2003년 2월 18일 날 있었던 대참사인데요. 저 김태일 교수는 당시에 지하철 화재현장 수습에서부터 이 일에 뛰어 드신 걸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시는지요?

 

김: 아주 참혹한 일이었습니다. 192명이 사망하고요. 151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였고 이것이 세계 지하철 역사 사고에 한 두 번째로 큰 규모라고 이렇게 얘길 하고 있습니다. 아주 참혹한... 말하자면 세월호 같은 사건이 13년 전에 대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상상을 하시면 짐작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 아하, 네. 그 교수님 그 당시에 그 현장에서 사고 수습을 직접 참여를 하셨는데 어떤 일들을 하셨죠?

 

김: 저는 대구 시민사회를 대표해서요. 그 현장 수습에 나선 대구시를 돕고 또 유가족들의 필요한 일들을 지원했는데 특히 제가 맡은 일은 실종자인증사망회라고요. 그 사망하신 분들의 그 신원을 확인하고 그 다음에 사망을 판정하는 그런 위원회 참여를...

 

고: 화재 참사였기 때문에 이 저 시신을 확인하는 과정도 뭐 DNA분석이라든지 여러 가지 과정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 이 좀 공정성, 객관성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이제 시민대표로 참여를 하신 거군요.

 

김: 네, 그 후에 이제 추모사업추진위원회에라고 이제 피해자와 대구시가 합의해서 만들었는데요. 이제 거기에도 참여해서 양측의 의견들을 좀 모아가는 일을 도왔습니다.

 

고: 알겠습니다. 네, 저 권영진 시장님.

 

권: 네.

 

고: 그 이 2003년 지하철참사가 발생했을 때 이 시장님은 정치를 하고 계셨던가요?

 

권: 네, 그 때는 제가 서울에 있을 땝니다.

 

고: 아, 그래요. 그 소식을 들으셨을 때 어떠셨습니까? 그 때 기억이 생생하실 것 같은데...

 

권: 어, 큰 충격이었죠. 우선은 지금 그 192명의 고귀한 생명을 잃었고 또 많은 부상자를 냈기 때문에 그 분들의 아픔도 아픔이었지만 우리 고향 대구 공동체가 이 또 느껴야 했을 아픔과 또 부끄럼과 어떻게 내 고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 그런 그 분들 충격이었고 또 물론 화재는 개인의 방화로 인해서 이뤄난 거지만 그 이후에 우리 사회의 안전에 총체적 부실들이 대구지하철참사를 통해서 드러난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오는 충격 그리고 또 정치하는 지도자로서의 부끄러움과 자괴감 이루 말할 수 없었던 사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고: 아, 네. 그 당시 이게 방화범이 방화를 해서 이게 참사가 발생을 한 건데요. 2963님이 ‘그 방화범은 어찌 됐나요?’ 이렇게 질문하셨는데 저희들이 확인해 보니깐 이 사람은 2004년에 교도소에서 사망했습니다. 뭐 정신질환에 뇌졸중 후유증으로... 네. 아, 참. 그런데 그 중요한 것은요. 그 이후에 이 대구지하철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뭐 유족들과 또 관계자들과 시민단체와 또 지방자치단체가 뭐 이견들을 좀 보여 왔던 것 같고요. 이것이 잘 마무리 되는데 꽤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겁니다. 이 과정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김태일 이사장.

 

김: 음, 당시에 국민들께서요. 그 지하철 사고를 이제 수습하고 또 위로하기 위해서 많은 성금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제 그 성금을 수습비용과 위로에 사용을 하고 남은 잔여분이 있었는데요. 이제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이며 또 운영방법을 어떻게 할 것이냐 뭐 이런 걸 둘러싸고 그 재난 피해자들과 대구시 사이에 의견이 모아지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고요. 그 다음에 또 재난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이제 그런 부분에 대한 이제 의견 합의가 이루어지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깐 13년의 세월이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 간 것입니다.

 

고: 아, 그렇군요. 근데 이번에 이 2.18안전문화재단을 발족함으로써 그 동안의 논란이나 갈등을 뭐 어쨌든 발전적으로 좀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고 제가 생각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권영진 시장이 하여튼 뭐 굉장히 고생도 많이 하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실제로 어떠셨습니까?

 

김: 제가 말씀드릴까요?

 

고: 아니...

 

권: 네, 이사장님이 말씀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고: 네, 그러시죠. 김태일 이사장.

 

김: 그 재난피해자들이 뭐 인내심을 가지고 또 여러 가지 양보를 해온 대목 저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 다음에 하나는 역시 지방자치단체장의 어떤 의기와 리더십이 중요했다고 봅니다. 민선6기가 출범하면서 그 권영진 시장이 이 문제를 어쨌든 해결하겠다고 하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요. 이제 그러한 의지를 그 일관되게 지역사회에 그 일관된 시그널을 보냈습니다. 이제 그렇게 됨으로써 대구시와 재난피해자들 또 지역사회에서 일정한 신뢰가 만들어졌고요.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이제 소통을 하고 여러 가지 중재하는 뭐 중재테이블도 만들어졌고요. 뭐 그런 이제 과정을 통해서 이제 재단이 출범하게 되었는데 저는 이 과정에서 어쨌든 지역 사회 그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제가 확인을 했습니다.

 

고: 알겠습니다. 김태일 이사장이 지금 과정과 또 그 과정에서 권영진 시장이 보여준 리더십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지금 그 말씀 들으니깐 제가 생각이 나네요. 그 권영진 시장님.

 

권: 네.

 

고: 그 시장 당선된 직후에 그 원탁회의를 통해서 대구 시민들의 그 의견을 수렴하신 적 있잖아요?

 

권: 네, 그렇습니다.

 

고: 그 때 제가 첫 번째 원탁회의에 참여 했는데 그 주제가 안전이었어요.

 

권: 네, 맞습니다.

 

고: 그러니깐 시장님 취임하기 전부터 안전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이제 이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

 

권: 네, 안전문제도 중요한 우리 시정의 핵심이었지만 우리 대구 공동체의 갈등과 그리고 또 한편 반목(反目)을 어떻게 하면 치유하고 시민적 에너지를 모을 것인가 그 문제에 있어서 13년 전의 일들로 인해서 서로 반목하고 불신하고 갈등하고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 대구 시민의 마음을 모으는 상징적인 일이 바로 2.18문제를 해결하고 안전문화재단을 출범시키는 것이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또 한편으로 보면 사실은 피해 당사자들의 아픔도 아픔이었지만 우리 대구 공동체의 전체의 아픔이고 또 부끄러움 이었습니다. 이 부분들을 대구시가 그 이후에 사고의 도시라는 오명까지 쓰게 됐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을 치유하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 그리고 또 치유 과정은 철저하게 반성해야 된다. 그리고 또 이해 당사자들과 그리고 또 한편으론 시가 잘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화해해야 된다고 생각했고요.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미래도 나아갈 수 있고 시민을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안전도시 만들 수 있겠다. 이런 생각으로 해서 사실은 뭐 시장으로서 이 문제 풀지 않으면 앞으로 시정을 전반적으로 해 나가는데 어렵게 이렇게 판단을 하게 되었고요. 그 과정에서 고마운 것은 사실은 우리 국민들께서 대구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엄청난 성금을 모아 주셨고 또 김태일 이사장 비롯한 시민단체에 계시는 분들이 중간에서 정말 포기하지 않고 이 화해의 과정과 치유의 과정을 그렇게 노력을 해 주셨고 또 유가족들과 부사장들도 사실은 시장을 믿고 양보하고 또 대화하고 이랬던 결과라고 해서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 네, 알겠습니다. 뭐 현대 행정을 그 정부나 자치단체가 일방적으로 하는 행정이 아니라 거버넌스 민간과 함께 손잡고 하는 협엽, 협치 이런 단어로 우리가 많이 설명하지 않습니까? 이번 2.18안전문화재단 발족 과정이 바로 이런 대구형 협치 모델의 어떤 전형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제가 드네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이제 뭐 사고 도시라는 오명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은 대한민구깅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지가 지금 여러 해째입니다. 그 실제 대구 우리 광역시에 그 안전진단이나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시장님 대구시는 어느 정도입니까?

 

권: 네, 사실 지하철 사고 난 이후에 지하철문제와 관련해서는 지하철 안전에 대한 종합 대책들이 시행되고 그 이후에 모든 지하철들이 내부의 내장제도 불염제로 만들어지고 이런 것이 있었지만 우리 사회가 이 안전의 문제는 지하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 다 있는데 이 총체적으로 안전에 대한 시스템을 만들고 또 한편으로는 시민들의 국민들의 의식과 국민들과 함께 국민들의 안전을 지켜가는 부분들은 아직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깐 13년 후에 또 세월호와 같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사실은 행정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사회 국민과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대구 같은 경우는 지금 재난안전시를 사회적 재난과 관련된 총괄적인 컨트롤 타워로 발족을 하고 그리고 시민들이 일정규모 모이는 행사에는 시가 반드시 안전문제, 교통문제 등을 책임지도록 하는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고: 아, 그래요?

 

권: 만들었고 또 시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안전문화실천협의회를 구성해서 운영하는 이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고: 알겠습니다. 무슨 안전관련 사고만 터지면 이게 뭐 책임 부처가 어디냐 가지고 막 핑퐁 게임 하듯이 막 벌어지고 있잖아요? 그런 고질적인 악순환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실은 국민안전처까지 발촉을 시켰는데 그 국민안전처가 어떻게 역할을 잘 하고 있습니까? 뭐 지방자치단체와 뭐 연계해서... 어떻습니까?

 

권: 우선은 뭐 국민안전처 발족은 정부 차원에서 이제는 국민의 안전과 관련해서 책임지는 총괄컨트롤 타워를 만들고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거라고 보고요. 저는 이 과정에서 공직자들의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저는 대구시장으로서 대구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와 관련해서는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시장인 저한테 책임이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각오를 가지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그런 일을 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요. 국민안전처 같은 경우가 사실은 선발은 지도에 지방자치단체에 있습니다.

 

고: 아, 그렇다고 그러더군요.

 

권: 네, 좀 현장하고 좀 밀착된 중앙에서 맞다고 생각하는 매뉴얼과 또 지식체계를 운영하지 말고...

 

고: 탁상 저 행정하면 안된다는 말씀이죠?

 

권: 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 중심으로 움직여 나가는 그런 협력체를 더 강화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고: 알겠습니다. 뭐 우리가 압축성장과정에서 총체적으로 이게 안전문제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정부, 지방자치단체 못지않게 민간도 경각심을 가지고 이제 주도적으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는데 이제 그런 상황에서 2.18안전문화재단이 출범을 했습니다. 7957님도 ‘이런 문화재단이 있어 다행입니다’ 이렇게 격려 문자 보내셨는데 김태일 이사장님 그 재단이 앞으로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는지요?

 

김: 크게 몇 가지 영역이 있는데요. 그 피해자의 그 장학복지산업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 같고요. 그 다음에 안전과 관련된 정책연구 또 학술 뭐 기술연구지원 이것도 중요한 사업 영역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안전문화에 관한 시민운동이라고 할까요? 안전에 대한 문제의식을 좀 촉구하고 의식을 제고 하는 뭐 이런 운동들이 재단의 중요한 과업이 될 것 같습니다.

 

고: 알겠습니다. 일전에 제가 히로시마 간 적이 있는데 그 원자폭탄을 최초로 맞은 도시 아닙니까? 그런데 그 곳을 바로 평화의 출발점으로 그렇게 일본 사람들이 그걸 만들어 왔더라고요. 사실 대구지하철 참사 얘기를 하지만 이것이 대구가 안전에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이런 사건적 계기도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요. 그런 점에서 이제 대한민국에서 안전하면 대구를 먼저 떠올리는 이런 어떤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저는 개인적으로 바랍니다. 그 시장님 각오 한 말씀 들으면서 오늘 인터뷰 좀 정리 해야 되겠는데요.

 

권: 네, 방금 말씀하셨다시피 이제 대구가 사고의 도시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가장 존중하는 도시, 시민의 안전이 가장 잘 지켜지는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우리 대구가 사실은 이 자연재해는 없습니다. 태풍이나 비의 피해나 바람의 피해. 그런데 이제 그 동안 오래 전에 우리가 참 아픈 사회적 재난의 역사를 몇 번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시민들 마음 속에도 그러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시장으로서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또 시민이 안전이 가장 지켜지는 그런 안전도시, 생명의 도시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 네, 김태일 이사장님께서도 한 말씀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 네, 안전문제는 무엇보다도 민간과의 협력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안전문제는 그 수요의 긴급성이나 다양성 때문에요. 정부가 다 이렇게 대처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지방정부와 또 시민사회 그리고 중앙정부가 함께 협력하는 이런 네트워크 형성에 저희들도 열심히 참여를 하겠습니다.

 

고: 네, 그 많은 분들, 많은 청취자들께서 지금 권영진 대구 시장 또 김태일 이사장 말씀 들으면서 문자 보내주고 계신데요. 7175님 문자 전해드리면서 이 시간 마무리 하겠습니다. ‘저는 수도권 사람이지만 유난히 큰 사고가 많았던 대구, 한 때 대구에 살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이 공직자들 언제나 긴장하셔야 되겠습니다’ 이러셨고요. 네. 하하. 네, 뭐 모든 책임은 대구 시장이 지겠습니다. 아까 권영진 시장 그렇게 말씀하셨죠?

 

권: 네, 그렇습니다.

 

고: 하하, 네, 오늘 이 시간 이렇게 마무리 하겠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권: 네, 감사합니다.

 

김: 네, 고맙습니다.

 

고: 네, 이 대구시에서 2003년 2월 18일 날 있었던 지하철화재참사, 이 사고를 잊지 말고 대구를 안전한 도시로 만들자고 하는 취지로 2.18안전문화재단 출범했고요. 이 2.18안전문화재단 출범과 관련해서 권영진 대구 시장 그리고 2.18안전문화재단 김태일 이사장 이 두 분과 함께 말씀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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