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수사요? 아직 한참 멀었어요. 2~30% 진행됐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전담팀장'을 맡은 이철희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의 첫 마디다. 수사가 쉽지 않다. 사건 발행 이후 시간이 많이 흘러 증거인멸이 됐고, 화학 물질로 인해 사람이 사망에 이른 유사 사례가 국내에선 없었다. 선진국에서조차 한 두 건 정도에 불과하다. 의학, 과학 용어가 즐비해 공부할 것도 방대하다. 검찰은 몇 차례의 압수수색과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하고 있다. "아직 수사 초기단계라 결론을 말하기에는 이른 단계"라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답답함이 묻어났다.

이철희 부장은 바로 직전까지 서울서부지검에서 식품의약조사부장으로 이름을 날린 식품의약수사 전문가다. 게다가 형사 2부는 '특수부에서 탐 낼 만큼 수사 잘 하는 검사'들이 포진해있다. 이 가운데 5명의 검사와 6명의 수사관이 오직 이 사건에만 '올인' 중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조차 '쉽지 않은 사건'이라고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사건이 발생한 지 4년이 넘었다. 증거가 남아있는 것이 되려 이상한 일이 아니냐고, 법조계 인사들은 반문한다. 고소 당한 업체들은 대형 로펌의 도움을 받아 수사에 만반의 대비를 해왔을 터이다.

늦게나마 가습기 살균제 수사가 재개되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환경시민단체는 제조ㆍ유통업체 관계자들에 대한 고소, 고발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고소ㆍ고발장에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ㆍ유통 책임자들에게 '과실치사'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검찰이 업무상 과실치사를 적용할 경우 공소시효 7년이 만료된다. 이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제조ㆍ유통업체에 죄를 묻지 못하는 사망 피해자는 지난달 말 기준 24명이다. 특히 단순 과실치사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뒤 매달 숫자가 늘어 올 연말이면 사망자 91명의 공소시효 만료가 도래한다.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지난해 폐지됐다.

법조계에서는 살인죄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피해자들 주장대로 '살인죄'를 적용하려면 '이 물질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가습기 살균제 제조ㆍ유통 관련자들이 미리 인지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팀도 해당 업체들이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알고도 제품을 제조하고, 유통을 했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게 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 자식과 아내를 잃은 가장, 자식 둘을 떠나보낸 엄마, 폐손상으로 40%의 폐기능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여성 등 하나같이 구구절절한 사연이다. 늦었지만 책임자를 밝혀내고, 책임을 지워야 한다. 개인의 억울함을 푸는 것에서 나아가 한 단계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다. 수사의 '골든타임'을 놓친 검찰이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낼지, 지켜보는 눈이 많다.

임지은 기자(leadbina79@gmail.com)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