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한 중진 국회의원이 며칠 전 당을 떠났습니다. 20대 총선 공천의 첫 여당 탈락의원으로 기록된 그는 자신이 ‘컷오프’된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분노했습니다. 그는 올해 74세로 지난 12년간 금배지를 달고 다녔습니다. 이 노정객(老政客)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주민들이 심판해줄 것이라며 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딱 한번만 더 하고 깨끗하게 후배에게 자리를 넘겨줄 생각이었는데..”란 말로 마치 연임의 권한을 빼앗겼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당의 야속함을 탓했습니다. 언론도 이른바 찌라시에 나돌던 ‘논개작전’이란 단어를 재생산하며 그가 당내 권력다툼에 희생양이 된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납득이 안되는 것은 바로 그의 공천 탈락이 복잡하게 해석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만약 요즘 상종가인 ‘친박계’ 현역의원이 아니었다면 애시당초 공천에 근접하기도 무리였다는 것은 지나친 폄하일까요? 골프장 경비원 폭행, 경찰간부 폭행 의혹 등으로 구설에 올랐고 뚜렷한 의정활동의 결과를 남기지 못한 TK지역 70대 노정객의 공천 탈락 사실이 여당의 어지러운 계파간 힘겨루기 속에 ‘고차 방정식’이 돼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민들은 바꿔달라고 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바꿔야만 당사자, 그리고 같은 패거리들이 ‘심플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당의 또다른 한 의원은 이 공천 국면에서 취중에 당대표를 겨냥해 욕설을 하면서 잘라버려야 한다는 식의 허세를 부리다가 곤란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사석에서 ‘누나’라고 부른다고 하는 그는 당초 당내 경쟁자 없이 혼자만 공천을 신청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막말’ 파동 때문인지 그에 대한 공천 결정은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수도권 중심으로 총선 현장에서는 이 파동이 불거진 뒤 ‘표 떨어진다’는 아우성도 들린다고 합니다. ‘높은 도덕성’을 강조해온 여당 공천관리위원장의 평소 말들이 허언이 아니라면 서릿발 같은 냉혹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때입니다. 물론 취중에 사적으로 한 발언을 두고 공천에 불이익을 준다는 부분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공천 신청자의 발언 때문에 당의 명예가 실추되고 선거가 불리해질 수 있다면 그가 정권 실세란 이유로 방어막만 쳐서는 분명 안될 일입니다. 물론 먼저는 당사자의 정계 은퇴, 아니면 총선 불출마 선언입니다. 대통령을 ‘누나’라고 거침없이 부른다는 분이라면 정권에 부담을 주는 일은 알아서 정리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지 않을까요? 하지만 문제의 당사자가 그렇게 현명한 판단을 하는 분이라면 그런 충격적인 막말의 상황은 애초부터 만들지도 않았을테지요.

국회의원이 당선되는 순간부터 집착하는 것은 다음 선거에서의 재선이라고 합니다. 두 번 세 번 당선되면 종신 의원을 꿈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지요. 고대 로마 공화국에서는 다양한 공직자를 선출해서 딱 1년만 근무하게 한 뒤에 이후 10년 동안은 재임을 못하도록 했습니다. 또 미국의 36개 주는 주지사 임기를 8년으로 제한하고 캘리포니아, 미시간, 플로리다 등 15개 주는 주 상,하원에 대해서도 8~12년 정도의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처님 경전인 <열반경>에는 ‘집착하는 까닭에 탐심이 생기고, 탐심이 생기는 까닭에 얽매이게 되며, 얽매이는 까닭에 생로병사와 근심, 슬픔, 괴로움 같은 갖가지 번뇌가 뒤따르는 것이다’란 구절이 있습니다. 집착을 버린다면 개인은 오히려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집단도 자리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는 인물이 많다면 유능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자리에 대한 욕심을 벗어던지고 물러날 때 버티기를 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활력을 얻을 것입니다. 19대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랬던 것처럼 정당도 모범을 보여야할 위치의 현역의원이 용퇴를 두려워했던 시절에는 늘상 유권자들에게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이현구 정치외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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