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조용하던 은행권이 다시 시끄러워지게 생겼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일부 은행에 대해 “양도성 예금증서(CD)의 금리를 담합한 혐의가 있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담합. 네. 말 그대로 은행들끼리 모여서 “금리를 딱 이만큼만 주자”고 ‘짰다’는 얘기죠.

아직 ‘확정된 결론’이 아니라 ‘잠정 결론’일 뿐이긴 합니다. ‘잠정’이란 단어는 ‘일단’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은행 측 얘기도 들어봐야겠지만, 우리가 조사한 결과로는 일단 담합 맞다”는 이야깁니다.

시중은행들은 벌써부터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고객을 속이는 은행’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게 생겼거든요. 

은행들은 “사실이 아니다”, “공정위에 우리 입장을 강하게 밝히겠다”, “소송전까지 불사하겠다”며 애써 강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습니다만, 공정위도 쉽게 물러날 것 같진 않습니다. 3년 7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조사했으니, 쉽게 물러나겠습니까? 그 정도로 긴 시간동안 조사한 만큼,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나옵니다.

은행들도 할 말은 있답니다. CD금리는 개별 은행이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라, 사실상 금융당국의 지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는 항변이 나오고요. “각 본부나 영업점에서 개별적으로 가산범위 내에서 금리를 올리거나 깎아주는 게 얼마든지 가능한데, 왜 목숨까지 걸어가며 답합하겠느냐”는 반발도 나옵니다.

양 측의 주장이 워낙 팽팽하고, 소송전까지 갈 가능성도 있으니, 결과는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듯합니다.

문제는 어떤 결론이 나든, 금융당국은 물 먹은 셈이 된다는 겁니다.

‘물 먹었다’는 말은 기자들 사이에서 쓰이는 은어인데요. 다른 언론들이 모두 알아내 보도한 내용을 특정 매체 기자만 다루지 못한 경우에 쓰이는 표현입니다. 같은 매체 소속 기자라도, 제 분야의 기사인데 다른 분야 소속 기자에게 아이템을 뺏기거나 간섭 당한 경우에 그런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공정위가 담합이 맞다는 최종 결론을 냈다고 가정해 봅시다. 공정위가 담합을 잡아낼 때까지 금융당국은 도대체 뭐 했느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물 먹은 거죠.

담합이 아니라고 결론 나도 마찬가집니다. "당국이 시키는 대로 금리를 설정했을 뿐"이라는 은행권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셈인데요. 이렇게 되면, 결국 타 부처에게 담합 의심까지 받을 정도로 '관치금융'의 전횡을 휘둘러왔다는 걸 재확인하는 셈이 되는 거죠. 타 부서에 간섭당한 겁니다.

기자가 물을 먹는다는 것은,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다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당연히 일정 부분 책임을 묻습니다. 사안이 경미하다면 데스크한테 꾸중 한마디 듣고 끝나지만, 중대한 사안이라면 경위서 제출을 요구받기도 하고, 견책, 감봉, 인사위원회 회부 등의 징계를 받기도 합니다.

자, 공정위에게 물 먹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수장들과 실무자들도 책임을 져야겠죠. 누가 어떤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한 번 지켜보겠습니다. ‘금융개혁’ 하겠다고 연일 부르짖으면서, 설마 이번 책임에 대해 어물쩡 넘어가진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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