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물 지하에는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 있습니다. ‘국회 정각선원’입니다. 사무실 한켠을 개조해 1995년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72.7㎡의 협소한 공간은 법당 개원 20주년을 맞은 지난해 ‘중창 불사’가 이뤄져 115.7㎡ 규모로 제법 넓어졌습니다. 전통 양식에 가미된 현대적 세련미로 남다른 장엄함도 갖췄습니다. 그 안에서 매달 한번은 어김없이 스님의 법문이 울려퍼지고 틈틈이 교리강좌도 진행됩니다. ‘정각선원’은 웅장한 석조 돔 건물 안에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입니다. 세간의 번뇌가 집결된 전장(戰場) 속에서 출세간으로 통하는 유일한 곳일지도 모르겠네요. 지하 정각선원 바로 위쪽에는 늘상 TV 화면에 비치는 기자회견장이 위치해있습니다. 마치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구분해놓은 것처럼요.

이 정각선원을 만들었고 현재 운영하는 곳은 ‘정각회’란 이름의 국회내 불교 모임입니다. 1983년 창립해 3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19대 국회의원은 42명이 회원으로 활동중이고, 국회 사무처 직원 180여명도 가입해있습니다. 개인적 신행이 우선이겠지만 정치권과 불교계를 잇는 가교 역할도 중요한 취지인만큼 이 모임이 지난 30년간 펼친 대외적 활동의 성과는 만만치 않습니다. 그가운데 교계 여론을 반영하고 현안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것은 특별히 두드러져보입니다. 수많은 문화재와 전통사찰을 간직한 불교계를 옥죄던 규제 법령 개선에 정각회가 앞장서면서 ‘불교재산관리법 개정’, ‘전통사찰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이 이뤄졌습니다. ‘경승제도 신설’ ‘군승 증원’도 마찬가지입니다. 19대 국회에서는 '10ㆍ27법난법'의 유효기간을 삭제하는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고, 법난 기념관 건립사업 예산 확보 등이 불자 의원들의 도움 속에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교계의 소중한 자산인 ‘정각회’ 소속의 불자 국회의원들을 ‘정각선원’에서 마주하기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인가 봅니다. 작년 10월까지 만 4년동안 국회를 출입했던 저는 매달 첫째주 수요일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점심식사 약속을 잡지 않았습니다. 낮 11시 40분부터 정각선원에서 열리는 법사스님 초청 월례법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법당 안을 가득 메운 인파 속에서 국회의원을 발견하기는 매번 힘들었습니다. 간간이 몇 명의 의원이 한꺼번에 몰려온 적도 있지만 법사로 초청된 큰스님에게 이른바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거나 개인적 인연 또는 스님이 거주하는 사찰의 지역구 의원인 경우였고요. 대체로 이들 대부분은 법문 초반에 황급히 자리를 뜨곤 했습니다. 현직 국회의원이 바쁘디 바쁜 의정활동 속에서 평일 낮에 한가로이(?) 앉아 법문을 듣기는 힘들었을테지요. 하지만 정각회 회원으로서의 ‘소속감’이나 불자로서의 최소한의 ‘신행 생활’를 지역구 행사 참석이나 개인적 식사 약속보다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원이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했다면 참으로 반가웠을텐데 그런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매우 아쉬운 부분입니다. 물론 불교 관련 일에 열일 제쳐두고 나서는 정갑윤 의원, 주호영 의원, 강창일 의원 등등 대표적 불자 의원들의 평소 불심(佛心)은 감화를 주기에 충분했지만 말입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국회의원에게 ‘개인적 신앙’이 자격 요건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자이거나 불교적 소양을 갖춘 인물이 민의의 전당에 다수 포진해 있어야 하는 것은 불교계의 희망을 넘어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민족문화 유산 가운데 불교 예술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불교 문화재는 예술성과 가치를 공인받은 우리 문화의 정수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간 형평성을 따져도 그렇습니다. 일례로 국회에서 정각회 의원은 42명에 불과하지만 개신교를 믿는 국회 기독신우회 의원은 100명이 넘습니다. 국민의 종교별 분포와 쟁점이 생긴다면 첨예하게 상충될 수 밖에 없는 종교간 입장 차이 등을 감안했을 때 이같은 수적 우열은 썩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론 단순한 ‘국회의원의 종교별 분포’가 실제 우리 사회에 얼마나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지는 단정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일단 불교계가 먼저 스스로 반성해야 할테지요.

개인적으로 국회 정각회 소속 의원이 제 20대 국회에서는 대폭 늘어나기를 고대합니다. 4.13 총선이 이제 두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새롭게 여의도에 입성할 선량들 가운데 불교 신행활동을 열심히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땅에 구현하는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분이 과연 어느정도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더불어 그들을 매달 국회 지하에서 열리는 법회에서 쉽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빈으로 얼굴 알리는 법회 참석이 아니라 1달에 1번이라도 올곧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애쓰는 정치인은 국민을 위하는 ‘세속’의 의정활동도 잘할 것이란 믿음을 주니까요/이현구 정치외교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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