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표 정책금융기관인 KDB산업은행의 선장이 곧 바뀌죠.

임기가 끝나가는 홍기택 회장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으로 자리를 옮기고, 영남대 특임석좌교수를 맡고 있는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이 차기 사령탑에 오르게 됐습니다.

저는 기자가 되고 난 후, 증권 분야를 맡아본 적이 없습니다. 은행으로 금융에 입문했다고는 하지만, 제가 대학생일 때 이미 신한금융투자로 자리를 옮긴 이 내정자와는 일면식이 없을 ‘뻔’ 했지요.

하지만 저는 이 내정자를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2013년 말이었을 겁니다. 신한금융지주 차기 회장을 뽑기 위한 절차가 한창 진행되던 때였는데요. 갑자기 제 휴대전화에 “이동걸 후보가 기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 출입기자들의 관심을 부탁한다”는 메시지가 온 겁니다.

부랴부랴 기자회견장으로 달려가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내용은 길었습니다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랬습니다. 

“이건 아니잖아요!”

새로운 회장을 뽑기 위한 절차가 현직 회장인 한동우 후보에게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의 주장이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열변을 토해가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국 그가 했던 말들은 한 꼭지의 스트레이트 기사로만 남았습니다.

그랬던 이 후보가 차기 산업은행 회장에 내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제 머리에 떠오른 것은 바로 그 “이건 아니잖아요!” 였습니다.

산업은행은 ‘은행법’에 우선해 ‘한국산업은행법’을 적용받는 정책금융기관입니다. 산업은행법 제13조 ①항은 ‘회장은 금융위원회 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면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이 내정자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보은 인사 아니냐’, ‘낙하산 인사다’와 같은 논란이 일고 있는데, 일단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습니다. 금융위원장을 거치긴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니까요.

‘민간 금융회사에서만 일해 온 사람이 정책 금융을 어떻게 알겠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긴 합니다만, 뭐, 그래도 모피아 논란이 일 수 있는 관료 출신, 경험이 아예 없는 정치인 출신보단 낫겠죠.

하지만 그런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내정자가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점도 문젭니다. 당장 현대상선 구조조정 문제도 그렇고요.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할 회사가 한두 곳이 아니니까요.

소통도 강화해야죠. 당장 산업은행 노조에서도 ‘낙하산 인사’, ‘정책금융을 이해할지 우려되는 인물’이라며 반발하고 있거든요. 금융권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제 사견으로는, 이런 문제들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이건 아니잖아요!”입니다.

많은 경제·금융 전문가들이 “기업 구조조정에 정부 입김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채권단이 구조조정만 하려고 하면 당국이 ‘비 올 때 우산 뺏지 마라’며 압력을 넣고 정치권도 떠들어대니, 뭘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특히 정부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입김을 많이 불어넣는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럴 때, 이 내정자가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용기 있게 한마디 하길 바란다면 과욕일까요.

2년 전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조직에 불만을 가져서 이러는 게 아니다. 조직이 잘 되길 바라는 진심이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었지요. 그 때 그 마음을, 국책은행 수장 자리에 오른 후에도 간직하시길 바라봅니다. ‘진심 어린 태클’이야말로 금융권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비책이 아닐까 감히 제언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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