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전국 곳곳에는 금배지를 향해 뛰는 주자들이 넘쳐납니다. 본인 이름이 커다랗게 새겨진 원색 점퍼, 튀는 모자, 어깨띠 등으로 무장한 인물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의 숫자가 얼마나 될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봤습니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전국에 1228명이 등록한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이들을 직업별로 분류한 집계도 있는데, ‘정치인’이 459명으로 가장 많고요, 판·검사 출신을 포함한 ‘변호사’가 118명으로 두 번째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공무원’은 단 1명에 불과했습니다. 총선에 뛰어든다던 그 많은 관료들은 다 어디갔나 했더니 이들의 출신 성분은 숨겨져 있었습니다. 등록 시점의 ‘현직’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죠. 법적으로 공직자는 예비후보 등록 전에 사퇴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통계치 작성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선관위 예비후보 등록현황에서 드러나지 않는 공무원 출신 후보들의 ‘진짜’ 직종을 파악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재미있는 부분이 발견됐습니다. 이번 20대 총선 주자들 가운데는 유달리 ‘경찰’ 출신이 많다는 점입니다. 이미 예비후보로 등록해서 거리를 누비고 있는 인물만 14명인 것으로 나타났고요. 심지어 당 공천을 놓고 ‘경찰vs경찰’의 맞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새누리당 공천장이 사실상 금배지로 인식되고 있는 TK지역에 몰려있는데, 대구 달서을 선거구에는 치암정감을 지낸 현역 윤재옥 의원과 역시 치안정감 출신인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맞대결을 펼치고 있고요. 경북 영천에서는 이만희 전 경기경찰청장이 3선의 현역 중진 정희수 의원에게 도전장을 던진 상황에서 무소속 주자였던 최기문 전 경찰청장까지 복당을 허용받고 새누리당 공천 경쟁에 가세했습니다. 그야말로 ‘전직 경찰관들의 전성시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법률에 의거한 선거 출마는 누구에게나 자유입니다. 직업 자체가 주는 제약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역의 안전을 위해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경찰관의 책무를 생각한다면 신성한 제복을 벗자마자 원색 점퍼에 어깨띠를 두르는 이들의 ‘집단적’인 모습을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집니다. 그들이 출마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 조직내 권력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자리였을 테지요. 하지만 그들의 출마용 명함에 새겨진 ‘전 00지방경찰청장’이란 명칭 위에는 ‘주민의 안녕’이 아니라 더 큰 권력을 쫒는 ‘정치적 야망’이 아른거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여의도 정치권에 줄을 대려고 달려드는 선배들의 모습이 조직 내부를 자극해서 권력기관 가운데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 원칙’마저 위협한다면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근간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제복을 벗고 선출직을 노리는 이들 상당수는 재직 당시 행적이 논란이 되면서 경찰 조직의 신뢰성까지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대표적인 인사가 대구 달서을 선거구에서 뛰고 있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입니다. 2012년 국가정보원의 댓글 여론조작 사건의 수사를 축소, 은폐해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또 경북 경주의 새누리당 예비후보인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을 숨지게 한 2009년 용산 참사때의 지휘관이었습니다. 당시 참사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이후 오사카 총영사와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임명되면서 ‘낙하산 논란’까지 곁들여졌습니다. 판단이야 온전히 유권자들의 몫이겠지만 이들이 과연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한 뒤 국민의 부름을 받으려고 하는 것인지 잘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최근 고위 경찰 간부들의 잇따른 총선 출마를 두고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월호 사태 후 이른바 ‘관피아 방지법’이 강화되면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제복을 벗게되는 경찰 고위직들은 뾰족이 갈데가 없게 됐습니다. 특히 서기관급의 경찰서장부터 오랫동안 기관장 자리에 앉아온 경찰대학, 간부후보생 출신들이 권력 지향적일 수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선거 출마는 남은 생(生)을 위한 선택지가 되는 셈이지요” 제헌 이래 경찰 출신 국회의원들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19대 국회에는 그나마 여야 합쳐 3명입니다. 전현직 통틀어 정치력이나 의정활동 등에서 이렇다할 족적을 남긴 경찰 출신 국회의원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군요. 20대 국회에서는 좀 기대를 해봐도 될지 모르겠습니다/정치외교부 이현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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