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지만 불편한 신조어가 2015년을 휩쓸었습니다. ‘금수저’, ‘헬조선’, ‘취업깡패’, ‘N포세대’.. 청춘들의 올해는 유난히 고달팠나 봅니다. 자조와 분노, 박탈감으로 채워진 이런 단어들이 가장 유행한 것을 보면요. 이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금수저’ 입니다. 얼마전 대학생이 뽑은 올해의 신조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네요. ‘금수저’는 부유한 부모 밑에서 자라 경쟁사회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사람이나 계층을 뜻하는데, 그 아래 ‘은수저’ ‘동수저’가 있고 ‘흙수저’가 이 수저계급의 맨 밑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치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연상케하는 이 신조어가 최고로 주목을 받은 것은 불평등의 대물림이 한국사회에서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일테지요.
 
출세하려면 부모를 잘 만나거나 후광을 잘 잡아야 한다는 이런 기준은 지금의 정치판에도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2015년 정치권에서 회자된 어떤 말들은 이 ‘수저계급론’과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진실한 사람들을 선택해달라’고 발언한 뒤 ‘진박(진실한 친박)’이란 단어가 정가의 유행어가 되더니 이제는 ‘진박 서열’까지 등장했습니다. ‘친박’과 ‘비박’으로 뭉뜽그려 나뉘던 개념이 ‘원박,가박,용박,멀박,홀박,짤박’ 등으로 세밀하게 분류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고요. 친박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진박’ 안에서 서열을 나누는 ‘진박 골품제’까지 나왔습니다. 신라의 신분제도를 빗댄 ‘진박 골품제’에서 성골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윤상현 의원, 김재원 의원 등이란 사실은 이제는 익숙해진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코미디 같은 한국 정치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후광으로 출세길을 걷고 있는 이들 ‘진박’은 내년 총선에서까지 ‘금수저’를 물고 출마하려는가 봅니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문제없다고 인식되는 TK(대구경북) 지역으로 죄다 몰려가서 손쉬운 경쟁을 준비하고 있고요. 또 박 대통령께서 최근에 "진실한 사람이란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어주면서 이 ’금수저‘를 마음껏 내놓고 자랑하는 것이 득이 되는 호기를 잡고 있습니다. 이들이 본인의 경쟁력과 관계 없이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이런 상황이 그대로 간다면 자신이 '흙수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보는 자조와 박탈감으로 뒤틀린 현실을 원망하겠지요. 불평등한 게임이 시작되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3일 청와대에서 ‘2015 핵심개혁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에가 나비가 돼 힘차게 날기 위해서는 누에고치라는 두꺼운 외투를 힘들게 뚫고 나와야 하듯이 각 부처가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이룰 수 있다”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열심히 노력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은 정말 소중합니다. 또 노력과 실력이 성공을 가져다주는 현실, 이른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신화가 설 자리를 다시 찾아야만 사회는 온기로 넘쳐날 것입니다.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인의 후광이나 친소관계가 아니라 노력과 실력이 알맹이인지 쭉정이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돼야만 하지 않을까요? 이제는 총선 현장에서 유권자들에게 건네지는 명함에 ‘진실한 사람’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면 그것은 본인보다는 뒷배경이 좋다는 뜻의 ‘금수저’로 읽혀야 합니다. 2015년을 보내며 재미있지만 불편한 이 신조어의 유행이 재빨리 지나가기를 기대해봅니다./정치외교부 이현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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