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야! 별은 그저 별일뿐이었다. 별을 위해 이름을 짓고 의미를 부여하고 노래까지 부른 것은 인간이었다. 별을 바라보는 마음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름다움은 남겨질 때 추억으로 붙들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은 너무도 일찍 깨달았다.

연아야! 그래도 ‘너’란 아름다움을 추억으로 붙들기 위해 남기는 작업 따위를 벌써부터 하고 싶진 않다. 아니 가능하다면 영원히 하고 싶지 않다. 연아 너는, 시니어무대에 오른 이래 높이만 달랐을 뿐, 시상대에 오르지 않은 적이 없다. 연아 너는, 언제나 3위 안에 들어 TV화면에서 태극기가 사라지지 않게 했다. 이런 너의 눈부신 성취와 위로에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이 ‘이제 연아를 쉬게 해줘야 한다’는 일념(一念)으로 너의 은퇴를 묵묵히 받아들인 것이지, 준비가 돼 너를 보낸 것이 결코 아니다. 연아 너는, 떠나보낼 수 없는 사람이다. 연아 너는, 아직 우리에게 추억이 될 수 없다.

연아야! 아내는 오늘도 너의 레미제라블 연기 동영상을 숨죽이며 보고 있다. 굳이 미국의 피겨칼럼니스트, 제스 헬름스의 극찬이 아니더라도 이 작품이 너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고, 앞으로 나오기 힘든 ‘전설’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예술의 경지에서 이해되고 평가되는 현대 피겨스케이팅의 문을 연 선수는 ‘자넷 린’이라고 하지만, 완연한 ‘예술의 옷’을 입혀 완성한 사람은 분명 연아, 너일 것이다. 앞으로도 현대 피겨스케이팅은 너 이전과 너 이후로 나눠 논의되고 회자될 것이다. 너처럼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우리의 다음 피겨 세대를 위해서라도 정말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솔직히 연아야! 너 없는 피겨 대회가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볼거리가 있단 말이냐.

연아야! 2월에 눈을 감으면 네가 떠오른다. 눈부시게 하얀 얼음판... 언제나 너는 그 판을 가지고 논다. 길고 긴 팔다리를 마음껏 휘저으며 나비처럼 뛰어오르고 새처럼 날아오른다. 숨죽이며 너만을 지켜보던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가 감동으로 끊이지 않을 때, 흥분한 전 세계 방송해설자들의 격렬한 외침과 찬사가 어김없이 뒤따른다. “김연아는 아사다마오가 정말 잘한 뒤 연기했는데도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네요. ‘내가 1위거든. 이제 넌 곧 2위야’.” “제가 본 올림픽 프로그램 중 가장 눈부신 작품이네요. 관중 모두가 기립하는군요. 연기가 끝났어요. 여왕이여 영원하라!” “김연아와 경쟁하는 동시대 여자 스케이터에게 유감을 표합니다. 이 소녀와 함께 있는 동안 그녀를 이기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요.”

연아야! 여기저기에서 주워듣는다고 들었지만 여전한 피겨 문외한으로서 아직도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지난 2009년 네가 왜 갑자기 ‘트리플 루프’를 포기한다고 공식 발표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긋지긋한 고관절 부상과 펜스 충돌 등의 ‘트라우마’로 성공 확률이 낮아서 그랬던 것이니? 네가 직접 시원하게 이유를 밝힌 적이 없는 것 같구나. 다섯 가지 트리플 점프를 모두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세계에서 사실상 너와 캐나다의 ‘조애니 로셰트’ 밖에 없다고 했을 때, 한 가지쯤 안한다고 해도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만은, 기자 특유의 의구심은 오랜 세월 이 이유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김연아의 탁월함은 점프 기술에 있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연아의 특징적인 스핀과 싯스핀, 다양성, 능숙한 움직임, 음악 해석 등은 보통의 스케이터들과 다른 김연아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너의 점프를 최고 수준으로 호평한 헬름스의 평가가 생생하게 귓전을 맴돈다.

연아야! 지난해 소치올림픽에서 너의 금메달을 도둑질해 간 ‘소트니코바’가 이후 다시는 세상이 주목하는 그 어떤 무대에도 나올 수 없음을 나는 일찍이 단언했다. 세상은 “분명 완벽한 최고의 연기를 펼쳤는데 어떻게 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아직도 답을 구하지 못했다. 피겨의 역사는 소트니코바를 소치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디펜딩챔피언 김연아의 금메달을 푸틴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조야한 실력으로 어줍지 않게 훔쳐간 선수로 기억할 것이다. 러시아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니 만큼 반드시 러시아 선수가 금메달을 가져가게 하겠다는 푸틴의 저열한 농간과 더 이상 아시아 선수에게 ‘피겨 여왕’ 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서구의 졸렬함이 만들어낸, 참으로 부끄럽고 기괴한 합작품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오랜 세월, 너 하나를 견제하기 위해 북미와 유럽이 서슴지 않고 자행했던 그 치졸함과 일본의 돈 자랑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지고 기가 막히다. 정말 너 하나를 끌어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규칙을 밥 먹듯이 바꿨고 점수시스템을 유린하고 난도질했단 말인가. 그런 꼼수와 반칙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김연아’임을 모르고 말이다.

연아야! 세상은 봄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너의 25번째 봄은 무엇을 꿈꾸고 도모하고 있니? 창문 너머 등 돌린 그림자가 옛 연인의 것인 줄 알고 언제까지나 창문을 닫지 못하듯, 네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어떤 지면이든 네 이름 석 자가 활자화되면 아직도 우리의 호흡은 가팔라지고 마음은 설렌다. 우리 연아에게 연인이 생겼구나, 아! 헤어졌구나, 갈라쇼에 나서는구나, 대학을 졸업했구나,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구나, 훈장을 받는구나...

연아야!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너의 남은 삶은 세상의 특별한 주목을 받을 것이다. 이미 너는 지난 20년 동안 너의 몸을 부숴가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행복을 선사했다. 더욱이 마지막에 우리의 다음 피겨 세대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룬 네가 악착같이 올림픽추가출전권까지 따가지고 왔을 때 국민들은 사랑을 넘어 경외감마저 느꼈다. 그래도 연아야, 너의 남은 생(生)은 훨씬 더 자유롭고 평범했으면 좋겠다. 혹여 지금까지 네가 이룬 것에 어울리고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강박감과 부담감이 있다면 떨쳐버려라. 그저 네 또래들처럼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해놓고 보니 “특별히 지금 불행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는 대인배에게 주제 넘는 충고인 듯하다. 비록 너보다 스무 살 가까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일면식도 없으면서 허락도 받지 않고 공개된 지면에서 경어(敬語)를 쓰지 않은 나의 부덕함을 용서해라. 칼럼의 형식을 빌렸지만 솔직히 처음부터 쓰고 싶었던 것은 연서(戀書)였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쓰는 편지로서의 연서(戀書)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쓰고 싶은, 그런 고맙고 또 고마운 대상에게 바치는 작은 헌정서(獻呈書)를 쓰고 싶었다. [사회부장] [2015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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