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수 년 정치부 기자생활 동안 해를 거듭할수록 분명하게 느끼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것이다. 단군 이래 최악이라는 실업난에 부모세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스펙(Specification)을 갖추고도 ‘청년백수’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세상은 100세 시대를 외치고 있지만 40대 후반만 되면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할지 입에 풀칠할 걱정을 하는 상황에서, 공무원만큼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철밥통’이 또 어디 있느냐고 다그칠지 모르겠지만 ‘철밥통’을 지키기 위한 공무원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안쓰럽다. 어릴 적에는 촉망받던 수재로 그 어렵다는 고시(考試)까지 붙어 나라 위해 일 한 번 해보겠고 뛰어들었건만 ‘대한민국 땅에서 욕 안 먹는 공무원 없다’는 현실에 그저 참담할 뿐이다. 이런 저런 사고나 재난이라도 터지면 가장 먼저 뛰어나가 처절하게 혹사당하고 심하면 죽기까지 하는 것이 공무원들인데, 언제나 인재(人災) 운운하는 언론의 호들갑과 매도에 죄인 아닌 죄인으로 세상과 국민들의 동네북이 된다. 어느 정권에서나 대통령이 나라 살림 한 번 제대로 해보겠다고 호기를 부리면 예외 없이 가장 먼저 털리고 쥐어 짜이는 것이 공무원들의 호주머니이고, 전문성도 능력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여의도에서 날라든 정치인들의 눈꼴사나운 거들먹거림을 정년까지 영혼 없이 지켜봐야 한다. 여름에는 40도에 육박하고 겨울에는 입김이 서리는 사무실에서.

작금의 이 나라 공무원들은 부처마다 ‘비정상의 정상화’ 개혁 과제를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야당은 흡사 공산당의 자아비판 같다고 험한 소리를 쏟아내지만 어느덧 ‘창조경제’를 밀어낸 박근혜 대통령의 최대 ‘화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곳곳에 나물처럼 널려있는 것처럼 보여도 막상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그래서 국무회의 때 공개적으로 칭찬이라도 받을만한 그런 과제를 찾는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의 대통령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받아쓰기만 하다 부처로 돌아온 장관들은 화풀이하듯이 실∙국장들을 무섭게 독려하고 그 실∙국장들은 밑의 부하직원들을 복수하듯이 쪼아대는 거대한 하향 도미노가 매일 밤 광화문청사와 세종청사를 불야성(不夜城)으로 만든다.

상황이 이쯤 되면 공무원들끼리는 서로 돕고 처지도 좀 봐주고 그래야하는데 같은 공무원들에게 갑(甲)질하는 공무원들의 위세는 기자들보다 더 심하다. 공무원들의 인사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 돈줄을 잡고 있는 기획재정부에 현 정부 들어 표독스러운 시어머니로 급부상한 총리실 산하의 국무조정실까지 공무원들의 설움을 배가시킨다. 물론 서슬 시퍼런 정권 초라 정점은 역시 청와대. 청와대 안보권력이 강경노선의 군인들에 의해 장악되다 보니 통일부 같은 부처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부처로 전락했다. 지난 세월 대화한답시고 원칙 없이 퍼주기만 했던 통일부 관리들에게 이 나라의 대북정책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삼권 분립의 맹점일까. 행정공무원들은 이런 홀대와 고초는 오롯이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자신들에게만 해당된다면서 늘 여의도 국회사무처에서 일하는 입법공무원들을 부러워한다. 국회의원에게 매어있는 보좌관, 비서관들처럼 온갖 정무, 정책적 로드(load)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고 정당의 당직자들처럼 정권획득에 목숨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단지 입법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민의의 전당을 찾아오는 수많은 민원인들에게 하루 종일 고압적으로 꽝꽝거릴 수 있고 어슬렁어슬렁 수다로 소일하다 칼 퇴근까지 할 수 있는 것이 국회사무처의 입법공무원들이라는 주장이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입법공무원들이 들으면 몹시 억울한 얘기이다. 그러나 진의 여부를 떠나 기자 입장에서 봤을 때 입법공무원들이 행정공무원들 보다는 확실히 사각지대(死角地帶)에 있는 것 같다. "입법공무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국회의장을 난 아직 본 적이 없다"는 한 여당 중진의원의 말도 생각난다.

아직은 이른 새벽. 공무원들이 졸고 있다. 어젯밤 과장보다 훨씬 늦게 퇴근했지만 과장보다 먼저 출근해야하기에 쏟아지는 잠을 참다 참다 화장실에서 양치질 하며 졸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밀린 잠을 보충할 수 있을까. 어림없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집안일에 언제나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양가 행사까지 치르고 나면 안 아픈 것이 다행이다. 그 옛날 유토피아까지는 안 돼도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인줄 알고 이 나라 공무원리스트 말석에나마 이름을 올렸을 때는 정녕 공무원이 이런 것 인줄 몰랐다. 남들은 배부른 소리한다고 부러워하고 시샘하지만 우리 공무원들은 안다. 우리가 얼마나 불쌍한지를. [사회부장] [2014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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