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우려는 기어이 현실이 됐다. 예고됐던 유럽의 텃세와 러시아의 난폭한 편파 판정은 여왕의 마지막길을 끝내 막아섰다. 무려 20년 동안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던 유럽은 아주 작정을 하고 ‘점수 퍼주기’ 심판진을 구성했고, 연아가 등장할 때 부부젤라까지 불어대던 버릇없는 러시아 관중들은 전날 핀란드에게 져 4강 진출이 좌절됐던 아이스하키에서의 패배를 연아의 금메달을 도둑질함로써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기자가 백번을 양보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금메달을 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획득한 점수이다. 소트니코바는 엉덩방아만 찧지 않았을 뿐 분명 눈에 띄는 실수가 있었고 부자연스럽고 뻣뻣한 동작이 많았는데, 피겨 역사상 가장 완벽하다는 연아의 지난 밴쿠버 올림픽 점수에 버금가는 점수를 받아 자신의 기록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점수를 얻은 연아를 말도 안 되게 이겼다. 미국 ‘LA타임즈’ 피겨 담당 빌 플라시케 기자의 말대로 “어떻게 1등을 한 선수가 완벽한 경기를 했는데 질 수가 있는가?”. 영국 BBC 해설가가 김연아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외쳤던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잘할 수 없는 연기를 펼쳤다. 금메달을 확신한다.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공감할 것이다”는 감동의 탄성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정녕 경기 후 연아가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연습 때 보다는 매끄럽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을 위로로 삼아야 하는가. 아니면 두 번째 ‘트리플 럿츠’을 하고 나서 미세하게 불안했던 그 마지막 동작까지 끄집어 내 안타까워해야 하는가. 이도 아니면 정말 구질구질하게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기를 바랬어야하는가.

혹자들은 “소트니코바의 스핀이 뛰어났고 트리플을 하나 더 뛰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연아보다 우세하다.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눈과 귀가 광분하며 이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치명적인 소트니코바의 '두 발 착지' 실수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피겨는 이미 예술이지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겨를 예술로 만든 것은 연아다. 그래서 올림픽 2연패의 카타리나 비트의 말처럼 “진정한 챔피언은 연아다”. 전 세계가 지금 푸틴의 농간에 놀아나고 능멸당했다고 분노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가장 쿨하고 담담한 것은 대인배 연아뿐이다.

사실 연아는 지난 2006년 시니어 데뷔 이후 2008년까지 늘 이렇게 시달려왔다. 유리벽에서 콩나물이 자라는 것과 같은 기적으로, 척박한 피겨불모지에 혼자 뚝 떨어지듯이 태어난 이 피겨천재는 모든 것이 열악한 국내환경과 유럽, 북미 대륙의 가혹한 견제, 일본의 돈자랑을 오직 자신의 실력 하나로 극복하며 처절하게 싸워왔다. 마침내 2009년 그녀가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완벽한 연기로 세계기록과 여자선수 최초로 200점대를 돌파하자 세상은 비로소, 아니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진정한 ‘여왕’으로 인정하며 굴복했다. 이때까지 아사다 마오와의 전적에서 김연아가 다소 열세였던 것은, 물론 본인의 부상도 있었겠지만, 이런 경기 외적인 부분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아사다 마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긋지긋한 이 ‘경기 외(外) 저주’를 늘 달고 다녔던 연아는 “텃세도 경기의 일부”라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잘 알려졌다시피 지금 연아의 몸은 서있는 것이 기적이다. 어릴 적부터 십 수 년을,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혹독한 훈련으로 혹사당해온 연아의 몸은 걸어 다니는 부상병동이고 주사 없이는 경기를 뛸 수 없는 지경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연아의 의연하고 강철 같은 정신력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수 천 번의 훈련으로 몸 스스로 극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정신은 나갔지만 몸이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환상적인 경기를 펼치는 것은 아닐까.

시니어무대에 오른 이래 연아는 단 한 번도 시상대에 오르지 않은 적이 없다. 높이만 달랐을 뿐이다. 연아는 절대로 TV화면에서 태극기가 사라지지 않게 했다. 언제나 3위 안에는 들어 해맑은 미소로 국민들의 가슴에 울림과 기쁨을 줘왔다. 이제 아이스링크에서 다시는 연아를 볼 수 없다. 숨이 멎는 것 같은 아쉬움이지만 이 아쉬움보다도 앞서는 것은 “이제 연아를 쉬게 해줘야한다”는 생각이다. [사회부장] [2014년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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