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시설과 규모를 갖춘 첫 공연장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시민회관이었다. 그리고 4천석 규모의 이화여대 강당이 있었다. 특히 1972년 시민회관이 화재로 영영 사라진 뒤에는 이대 강당이 그 역할을 주도적으로 대신했다. 1969년 《The Young Ones》《Summer Holiday》등 숱한 히트곡을 내며 전 세계 소녀들의 로망이자 팝의 피터팬으로 불리던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이대 강당에서 내한 공연을 했다. 열광한 인근 고교의 소녀 팬들은 자신의 마스코트와 액세서리, 손수건 등을 실성한 사람들처럼 날려 보냈고 급기야 자신들의 속옷까지 벗어 던졌다고 한다.

이 소녀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또래라는 것을 알면 기분이 묘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대중문화사에 기억될 이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인 1970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 사후부터 1979년 10.26사태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퍼스트레이디 직무를 수행한다. 어린 국모(國母)는 이때부터 정치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래들이 소녀적 치기와 사랑타령으로 하루해를 보낼 때 자기보다 보통 서른 살은 많은 정관계 인사들과 교분을 쌓고 부모연배는 족히 됨직한 국내외 지도자들과 수시로 조우하며 정치를 알아갔다. 측근인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탄복한 ‘뼈 속까지 공적인 마인드’의 본격적인 성장도 이 때부터였으리라. 대한민국 정치입문의 평균 나이를 40대 중후반으로 봤을 때 20년이나 빠른, 실로 엄청나게 빠른 선행학습이었다.

야권에서 흔히 주장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不通) 이미지는 대통령의 치밀한 정치적 계산의 산물인 듯하다. 대화를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고도의 정무적 셈법에 따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하지 않는 것이다. 실례로 지난 8월 세제개편 논란이 청와대 경제수석의 이른바 ‘거위깃털 뽑기’ 실언으로 더욱 확산되자 박 대통령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길 바란다”며 단칼에 진압했다. 지난달 러시아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와 베트남 국빈방문을 마치고서는 상승한 지지율을 바탕으로 전격 여야3자회동을 제안해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꿰찼다. 처음부터 야당에게 줄 선물은 준비하지 않아 회담 결렬은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대통령은 나름 애를 쓰고 있는데 야당이 몽니를 부려 정국이 계속 꼬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매를 맞아야할 때와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며 대화의 물꼬를 터야할 때를 본능적으로 아는 대통령인 것이다. 중심에서건 변방에서건 지난 40년 가까이 정치판에 있으면서 직접 경험으로 터득해 스스로 체화한 선행학습의 결과이다.

이렇게 선행학습이 잘 된 대통령이 외치고 있는 ‘제2의 새마을운동’이 갖는 함의(含意)가 궁금하다. 박 대통령은 ‘제2의 새마을운동 추진→국민통합→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업을 긍정적으로 재조명하면서 경제부흥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범국민적 공감대를 통해 국민운동, 국민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반대했던 48%의 국민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이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정적인 잔재가 부활되지 않겠느냐는 점이었다. 설사 새마을운동이 지난 민주화정권에서 평가절하되며 긍정적인 면이 많이 훼손됐다하더라도 어찌 보면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취임 8개월의 박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 복원하고 바로잡으려는 모양새는 왠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먼저 나서서 가르치듯이 세뇌시킬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먼저 그 가치를 알고 자발적인 공감대를 널리 형성시킨 뒤 대통령과 정부가 자연스럽게 뒤쫓을 일이었다. 선행학습이 잘 된 대통령이라 누구보다 이런 휘발성이 강한 이슈를 다루는 방법을 잘 알 터인데 대통령의 속내를 알 길이 없다. [사회부장] [2013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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