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도전자들이 앞다퉈 출마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도 대거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진실한 사람만 선택받게 해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이 ‘청와대 이름표’를 단 인물들은 더 많아졌습니다. 이들은 표밭을 일구는데 분명 ‘신참’일텐데 대체로 자신감에 차 있어 보이고요. ‘공천=당선’이라고 여겨지는 TK지역에서는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합니다. 절반 이상 임기를 채운 대통령의 곁에 있었다는 한줄 이력이 이렇게 빛을 발한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세간에서 ‘진박(진실한 친박)’으로 분류하는 이들의 근황에 시선이 쏠리는 시즌입니다.
 
그런데 이들 현 정부 청와대 이력의 출마 예정자 가운데 한분이 며칠 전 제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쓴 웃음을 짓게 만들면서요. 이 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진 한 장(위쪽 사진)을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현 정부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전 검사의 지난 14일 총선 출마선언 기자회견으로, 회견장 단상 전면에 붙은 ‘특명받은’ 이란 문구가 이채롭기까지 합니다. 사진 속 현장이 박근혜 대통령이 내리 4선을 했던 ‘정치적 고향’ 대구 달성군이기에 ‘특명’이란 단어는 이 지역 유권자들에게 정말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마치 군대 용어 같은 긴장감이 흐르는 이 단어에서 저는 애처로움과 서글픔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세가 여전히 드높은 TK 지역에서는 박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도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박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것 처럼 보이게끔 과장하고 조작하는 것이 당선 전략으로 통하기도 합니다. 하물며 지난 18대 총선때 대구에서는 박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던 인물이 ‘친박연대’란 급조된 당의 이름 덕분에 당선된 일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공천 내락’을 받았다는 뜻으로까지 읽힐 수 있는 ‘특명 받은’이란 문구로 선거 캠페인을 펼친 경우는 아마도 TK 지역 선거에서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곽상도 예비주자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특명’의 의미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달성의 군민으로부터 특명을 받아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뜻"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출마선언문에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18번이나 사용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그토록 유권자들의 심판을 요구한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 되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지역 유권자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을까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대통령 집권 후반기에 치러지는 총선에 대거 뛰어드는 것은 비교적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자신의 국정 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는 인물이 의회에 대거 포진하는 것을 원치않는 대통령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측근이라고 선전하는 차원을 넘어 특명을 내렸다는 논란을 빚게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대통령의 생각도 달라지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진정 ‘충신’이라면 과연 지나친 오해와 부담을 대통령에게 안겨줄 수 있는 ‘특명’이란 단어를 주저없이 쓸 수 있을까요? 오히려 변변한 신하가 아니고 ‘특명’ 같은 것은 받을 처지도 못되기 때문에 그렇게 질러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것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박근혜 마케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이들이 넘쳐나는 TK 지역에서 앞으로 ‘특명 바람’이 불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워집니다.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서 존재하는 ‘특명받은 000’들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상황을 그려보니 정치가 더욱 서글픈 현실로 다가옵니다./정치외교부 이현구 차장
 
[참고 : 네이버 사전]
特命특명
①특지(特旨) ②특별(特別)한 명령(命令) ③특별(特別)히 임명(任命)함. 또는, 그 임명(任命) ④특별(特別) 명령(命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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