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워인터뷰 ]
 
파워인터뷰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에 뉴욕 미국에 있는 카네기홀이라고 있잖아요? 거기서 대한민국 광복 70년의 역사를 가요와 함께 되돌아보는 그런 토크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한 사람이 이 자리에 가서 음악 가요사로 한국현대사를 해설도 하고 또 노래도 직접 불렀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 분을 직접 오늘 파워인터뷰에 모셨습니다.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 나오셨습니다.
 
고성국(이하 고): 어서오세요. 의원님.
 
김장실(이하 김): 네, 안녕하십니까!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 김장실입니다.
 
고: 의원님 불자 정치인으로 아주 유명하신데... 오랜 만에 나오셨습니다. 우리 불자들에게 인사 말씀 좀 해 주세요.
 
김: 네, 불교방송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부처님 가피로 만사형통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고: 저희 불교방송이 요즘 새롭게 다시 한 번 해 보자고 그러고 좀 열심히들 합니다.
 
김: 네, 저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우리 선상신 사장님 취임하신 이후로 불교방송이 대단히 변하고 있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고: 그런데 저 불자국회의원들 많잖아요? 정각회입니까?
 
김: 네, 불교정각회입니다.
 
고: 뭐 별로 관심 안 가지시는 것 같던데...
 
김: 아닙니다. 가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 의원님 역할 좀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 제가 소개 말씀을 뉴욕 카네기홀에서 대중가요로 본 한국근대사회의 발전상이라는 토크 콘서트, 이거를 열렸다. 이렇게 소개해 드렸는데 이거 저 어떻게 해서 의원님이 여기 참여 하시게 된 겁니까?
 
김: 네, 줄리아드를 졸업한 한국인 클래식 전문가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십 수년간 클래식만 해 오셨는데 이제 카네기홀로부터 신용을 많이 얻고 해서 아마 몇 년치 1년에 수십회를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을 카네리홀로부터 얻었습니다.
 
고: 아, 그래요?
 
김: 그런데 이 분이 클래식만 하다가 아, 금년은 광복 70주년이지. 뭘 할까 하다가 저를 만나서 얘기를 하던 중에 야, 노래로 한국의 대중가요로 한 번 광복 70주년을 해설하는 게 좋겠다. 그러면 과연 국회의원인 당신이 카네기홀 설 자격이 있느냐? 해서 저를 테스트를 여러번 했습니다.
 
고: 아, 직접... 어떤 테스트를 하셨습니까?
 
김: 네, 현장에서 불러보라. 얘기를 해 봐라.
 
고: 아, 노래를 해 봐라?
 
김: 네. 그 다음에도 또 제가 그런 공연을 한 게 지금 인터넷에 많이 둥둥 떠다니는데 그것도 보고 그러더니 진짜 되겠다. 네, 이렇게 해서 이 분이 이제 카네기홀에 신청을 했더니 잘 아시겠지만 또 프로 가수도 허락이 잘 안 되는...
 
고: 아, 그럼요. 카네기홀에 아무나 설 수 있는 곳이 아닌데...
 
김: 네, 미국 유명힌 일화가 있습니다. 하여튼... 그건 클래식 전문공연기관이 되었기 때문에 굉장히 대중음악하시는 분들도 그 자리에 서려고 오랜 투쟁 끝에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기획자가 잘 설명도 하고 제가 또 한국의 예술의 전당 사장 출신인 것도 알고 뭐 이런 저런 인연이 되어 가지고 통과가 돼서...
 
고: 아니 그러니깐 김장실 의원이 오디션에 통과해서 카네기홀에 섰다 이런 말씀 아닙니까?
 
김: 그렇습니다.
 
고: 아니 노래를 얼마나 잘 하시길래? 하하.
 
김: 뭐 노래 열심히 부르고 있습니다.
 
고: 아니 잠깐만요. 우선 우리 청취자들께서 못 믿으실 것 같아요. 우선 의원님 노래 실력부터 한 번 저희도 오디션 해 보겠습니다. 어떤 노래 한 곡 들려 주실래요? 이 날 공연에서 나왔던 노래 중에...
 
김: 네, 이별의 부산정거장. 1950년대 그 부산에서 피난살이 해 온 그 애환을 그린 이별의 부산정거장 한 번 불러 보겠습니다.
 
고: 아, 그 노래요? 저희가 반주 준비했습니다. 반주 틀어드리면 하시면 되겠네요?
 
김: 네, 그렇습니다.
 
고: 네, 반주 부탁합니다. 음 지금 반주가 나올 겁니다.
 
 
김: 네. 준비하...
 
(반주 흐리고)
 
고: 네, 남인수 씨의 노래군요. 김장실 의원이 부릅니다.
 
김: (노래부름)‘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요, 경상도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 이별의 부산정거장’
 
고: 하하. 아이고 참. 이거 저 시간이 없어서 하하. 야 이거 통과되셨어요? 아니 지금 저 밖에 선상신 사장하고 신두식 정치부장하고 뭐 스텝들이 다 나와서 같이 박수치면서 아주. 하하. 아니 노래는 원래 하셨습니까?
 
김: 네, 노래는 사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어릴때부터 유행가를 내내 부르고 다녔습니다.
 
고: 근데 가수로 데뷔도 하셨어요? 그러면?
 
김: 아닙니다. 가수 데뷔는 안 했는데 그 비슷하게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고: 그래도 이건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시는 것 같은데요.
 
김: 감사합니다. 하하.
 
고: 아, 이런 식으로 노래를 하고 또 노래에 얽힌 역사 우리 역사 사연을 설명을 하고.
 
김: 이것은 먼저 이 노래가 어떤 시대적 의미를 갖고 있느냐? 그 때 무슨 정치적 사회적 사건이 일어났느냐? 먼저 시대정신을 설명을 하고 정치적 사회적 사건을 곁들여서 설명을 해서 노래를 부르고 그다음으로 넘어가고 이런 식입니다.
 
고: 모두 몇 곡을 했었죠?
 
김: 11곡입니다.
 
고: 어떤 노래를 어떤 사연으로 소개를 하셨는지요?
 
김: 예를 들어서 1945년 해방이 되면 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게 시대정신인데 울어라 은방울 뭐 사대문을 열어라 이런 노래부터 해서 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게 마구 쏟아져 나오는데 그 중에 가장 해방의 기쁨을 진지하게 잘 표현하고 또 대중이 많이 따라불렀던 노래가 바로 귀국선입니다.
 
고: 귀국선.
 
김: `돌아오네, 돌아오네‘ 하는 그 노랩니다.
 
고: 아, 그 노래구나? 하하.
 
김: 1950년대는 잘 아시겠지만도 한국전쟁이 얼마나 큰 충격이 컸습니다. 그래서 흑남부두에서 저 가족을 잃어버린 사나이의 슬픔을 그린 굳세어라 금순아. 그 사람이 가족을 잃어버리고 처음에는 부산에 와서 온갖 신상을 겼다가 경상도 처녀하고 사랑을 하다가 휴전협정이 맺어 지니깐 아이고 서울로 가야되겠다. 이래가지고 경상도 아가씨를 붙잡는데도 뿌리치고 부산역에 나갔더니 경상도 아가씨가 우찌 알고 또 나와 가지고 찻장 밖에서 울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서울로 가면 그 동안 잃어버렸던 우리 가족들이나 사랑하는 여인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기대감도 있습니다만 또 밖을 보니깐 또 그 동안 정들었던 경상도 아가씨하고 헤어집니다. 그게 이별 부산정거장.
 
고: 그 노래가 이별의 부산정거장이에요?
 
김: 그렇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50만의 전쟁 미망인과 10만의 전쟁 고아가 생깁니다. 그러면 길에는 전부 전쟁 고아들이 껌 팔이를 한다. 신문을 판다. 아니면 돈을 한 푼 주이소. 밥 주이소. 이렇게 다닙니다. 그러니 우리 대중 가요가 고아들을 상대로 큰 노래가 많이 있는데 그 중에 대표곡이 네, 가는 봄 오는 봄하고 하고
 
고: 가는 봄, 오는 봄.
 
김: 생일 없는 소년, 이런 것들입니다.
 
고: 생일 없는 소년? 야, 제목만 딱 들어도 찡하네.
 
김: 네, 그래서 가는 봄 오는 봄 같은 게 되게 슬픈 노랩니다.
 
고: 그 들으면 알 것 같은데 제목만으로 모르겠어요. 한 소절만.
 
김: ‘하늘 마저 울던 그 날에 눈보라가 치던 그 밤이’
 
고: 야, 이 노래구나. 하하.
 
김: 네, 그렇습니다.
 
고: 아이고 참 그게 가는 봄, 오는 봄이었구나.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엔 어떤 노래를?
 
김: 네, 그 다음에 그 이승만 대통령이 발췌개헌 권위주의 체제로 치닫으니깐 이제 민주당이 1955년에 생기죠. 그리고 56년 대통령 선거 때는 이제 정권 교체를 하겠다 해서 신익희 선생을 내 세웠는데 이 분이 한강변에서 30만을 모아놓고 사자후를 토하고 나니깐 사람들이 아, 정권 교체 되겠다 해서 호남 유세를 1956년 5월 5일 오후 5시에 서울역에서 떠나다가 익산...
 
고: 기차타고 가다가...
 
김: 익산 항등역에서 떠났으니깐...
 
고: 그래요. 갑자기 심장마비 와서...
 
김: 네, 그러니깐 그 전에 박천석 선생 목표의 가요제 심사 갔다가아니 경부선이라는 노래는 있는데 왜 호남선은 노래가 없냐 해서 비 내리는...
 
고: 비 내리는 호남선이 그렇게 나온 거에요? 하하.
 
김: 만들어 가지고 음반 취입을 해 놨는데 신익희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니깐 소문이 어떻게 났냐면 유언비어입니다. 야, 이 신익희 돌아가니깐 신익희 선생 부인이 너무 억울해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작곡했단다. 아, 작사했단다.
 
고: 아, 그런 식으로 작사했단다. 실제로는 작사자가 다른...?
 
김: 아닙니다. 그게 소문이 다니깐 이 노래가 엄청 히트했습니다. 물론 노래도 좋죠.
 
고: 비 내리는 호남서도 야. 참 이거... 한 번...
 
김: ‘목이 메인 이별가를’ 이런 식으로... 하하.
 
고; 더 하고 싶은데...하하 알겠어요. 동백아가씨는 어떻게 해서 나온 노래에요?
 
김: 네, 60년 되면 경제 개발...
 
고: 나 이거, 18번인데 하하.
 
김: 경제 개발이 본격화 되니깐 이제 촌에서 놀던 사람들이 전부 기회의 땅인 도시로 찾아 올라갑니다. 그래서 많이들 출세 하죠. 그래 촌에서 보리밭에서 서로 뽀뽀를 하면서 사랑했던 그 아가씨하고.
 
고: 아니 근데 보리밭 따가운데 어떻게 자꾸 보리밭을 갔을 까요?
 
김: 거기가 뭐 몸을 숨길 데는 거기 뿐이죠. 그렇게 해서 사랑했던 여인하고 내가 서울에 가서 출세를 하면 데리고 갈게 했는데 그마 그 남자는 출세를 하면 서울에 참 지체 높은 아가씨하고 결혼을 해 버립니다.
 
고: 전부 영화가 그런 영화였어요. 배신하는 영화.
 
김: 네, 그래서 1960년대 초중반의 라디오 드라마가 되게 인기 있었는데 라디오 드라마 영화 우리 대중가요 주제의 6,70%가 출세한 남자와 서울로 가서...
 
고: 버림받은 여자.
 
김: 버림받은 여자는 전부 섬에 삽니다.
 
고: 아, 그 참... 하하.
 
김: 그리고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것은 바다 때문에 못 간다. 이 바다가 바로 출세라는 사회적 장벽입니다.
 
고: 바다가 육지라면 뭐 그런 것 같아요.
 
김: 네, 그래서 이미지가 1967년에 불렀던 섬마을 선생, 남진의 가슴 아프게,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이 모든... 참 전부다 남자는 서울로 가서 출세하고 여자는 촌에 남아. 촌인데 그게 전부 섬이고.
 
고: 전부 섬이고.
 
김: 네, 그리고 바다라는 사회적 장벽 때문에 당신에게 못 갑니다. 그렇습니다.
 
고: 그 동백아가씨도 섬에 있는 동백꽃 그거...
 
김: 네, 그런데 촬영은 1964년 김기 감독이 부산 사하구에 있는 다대포 해장욕장에서 찍었습니다. 신성일, 엄앵란 두 청춘 스타를 동원해 가지고.
 
고: 동백아가씨라는 영화?
 
김: 네, 그렇게 영화를 다 찍고 나서
 
고: 신성일, 엄앵란?
 
김: 네.
 
고: 두 사람 부분데?
 
김: 네, 그 때는 부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산도라는 분하고 부산 대신동에 있었는데 이 분들한테 작사와 작곡을 시켜가지고 이미자가 불러서 히트했습니다.
 
고: 이거 저 시간이 모자르네. 하하. 그 카네기홀에서의 공연을 이런 식으로 하셨다는 거죠?
 
김: 네,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고 또 노래 부르고 그래가지고 예를 들어 동백아가씨 같으면 다 해석하고 나서 ‘헤일 수 없이` 이런 식으로 노래 부르면서도... 재즈 밴드에 맞춰서...
 
고: 많이들 오셨어요?
 
김: 네, 카네기홀 와일 홀이라는 홀이 소규모 콘서틀 홀인데 거기 만석이 되어 가 영업에는 솔드아웃이라고...
 
고: 솔드아웃? 매진?
 
김: 네, 매진이라고 포스터에 딱.
 
고: 표를 딱 붙이죠?
 
김: 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고: 야 기분 좋으셨겠네, 하하.
 
김: 네, 기분 좋습디다.
 
고: 아이고 그거 한국에서도 다니면서 하면 잘 좋을 것 같은데...
 
김: 네, 한국에는 각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수백회 강연을 했습니다.
 
고: 이거 저 다음에 우리 저 불교방송에서 특집으로 한 번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아이고 저 마무리를 해야 되겠네요. 지금 의원님 부산에서 지금 활동하시죠?
 
김: 네, 부산 사하갑에 출마하려고 작년 12월 말부터 다니고 있습니다.
 
고: 어떤... 유권자들 많이 만나실텐데 지금 어떤 말씀들... 지금 야단 많이 맞지 않으세요?
 
김: 네, 많이 참 맞습니다. 우선은 어떻게 국민민복을 생각하지 않고 정파전 이해관계를 그렇게 앞세우는가? 두 번째는 왜 그렇게 싸우는가? 줄고 그런 얘기들을 합니다.
 
고: 야단 맞으시고 노래부르기는 참 그런데... 하하.
 
김: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10명이고 20명이 모이면 육성으로 부르면서 잘 좀 봐 주십시오. 하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고: 이 정치권 들어오시기 전에도 쭉 문화정책적으로 일하셨잖아요?
 
김: 네, 그렇습니다. 문화부에서 국장, 실장, 차관, 예술의 전당 사장.
 
고: 예술의 전당 사장. 이렇게 문화 쪽 일을 쭉 하셨고 또 뭐 불교계를 위해서도 굉장히 일을 많이 하셔서 그 비례대표 지난 4년 간도 정신없이 다니셨던 걸로 제가 기억합니다. 뭐 시간이 다 돼서 짧게 앞으로 만약에 20대 국회 등원 한다면 어떤 각오로 일을 하고 싶으신지 어떤 일을 꼭 하고 싶으신지 좀 말씀 듣겠습니다.
 
김: 네, 우선 한국이 완전히 선진화되고 통일을 하는 기반을 닦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한국의 경제도 더 뻗어 나가야 됩니다. 아울러서 한국의 문화가 세계 표준이 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됩니다. 지금 대중문화 한류가 시작되고 있는데 그것을 한국의 의식주를 포함한 생활문화한류로 넘겼다가 넘길 수 있는 준비를 갖춰다가 그 다음은 한국의 정신문화와 제도의 한류가 마지막에 꽃 필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 많은 분들이 가수하세요. 문자를 보내셨는데... 하하. 일단 국회의원부터 하시겠다고. 하하.
 
김: 네, 그렇습니다. 이것은 부업이고 정치는 본업입니다.
 
고: 알겠습니다. 오늘 여기서 마무리 할게요. 고맙습니다.
 
김: 네, 감사합니다.
 
고: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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