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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양창욱의 아침저널] 노민상 "박태환을 용서해주세요, 한 번 더 기회를 주세요"
양창욱 | 승인 2015.09.07 14:21
   
 

양창욱(이하 양): 8월 27일 목요일 '양창욱의 아침저널'[FM 101.9 MHz (서울)] 3부, 목요일 3부는 '목요스페셜 그 사람 지금'으로 꾸밉니다. 그립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수영영웅이죠. 박태환 선수의 스승이신 노민상 감독님 만나보겠습니다. 감독님 나와 계시죠?

노민상(이하 노): 네. 안녕하세요.

양: 안녕하십니까. 또 오랜만에 이렇게 인터뷰를 갖게 됩니다. 잘 지내시죠?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노: 어... 요즘에 뭐 그냥 꿈나무 아이들 가르치면서 박태환 선수하고는 6월 1일서부터 운동을 이제 시작을 했죠.

양: 특별하게, 지금 가르치고 계신 선수들을 만난 계기가 있습니까?

노: 계기라고는 뭐 있는 것이 아니고요. 어차피 제가 수영인의 한 사람이고 제가 가지고 있는 기능이 또 그것이고 태환이는 뭐... 또 그 아이들이 저희 사명이라고 볼 수가 있잖아요. 가르치는 데 있어서.

양: 그렇죠. 그러니깐 사실 감독님은 늘 이렇게 수영과 관련된 일을 계속 하셨던 거에요. 그러면서 박태환 선수도 만나게 된 것이고, 지금 또 아이들도 지도하고 계시는 것이고.

노: 네.

양: 방금 말씀하셨던 박태환 선수 얘기를 지금 안 할 수 없는데, 지난 6월부터 감독님 수영교실에서 일반 회원으로 훈련중이라면서요?

노: 네. 그렇습니다.

양: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요?

 노: 지금 음... 본인이 성찰의 시간을 많이 가졌고요. 그 성찰에서 오는 겸손이 결국은, 새로운 뭐, 어떤 지도부들도 그 겸손이 결국은 일련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뭐 그런 시간을 통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양: 네 그렇군요. 사실 뭐 도핑 파문이 작은 건 아닌데 그래서 국민들이 많이 좀 박태환 선수에게, 워낙 우리 영웅이었고, 또 기대가 컸던 선수였기 때문에 실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또 여론도 많이 싸늘하고 그런데... 이런 것들, 지금 여론이나 국민적인 분위긴 잘 알고 있죠? 선수 스스로도?

노: 아 그렇죠. 잘 알고 있죠.

양: 박태환 선수가 서운해 합니까?

노: 서운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죠. 어찌됐든 간에 자기가, 이유가 어쨌든, 분명히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되는 것들이고 또 그런 시간을 통해서 그 선수가 아직 살아갈 날이 많으니깐 우리 국민들께서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고 또 받아주셨으면 하는 게 스승으로서 부탁이에요.

양: 네 그렇군요. 감독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노: 저도 마찬가집니다.

양: 네 그렇군요. 이게 그런데, 도핑 파문이 촉발된 어떤 처음 시점을 보면 박태환 선수도 자기도 잘 몰랐던 어떤 실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가 있는 거죠? 결과를 떠나서?

노: 네 그거는 뭐 어떻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일단은 그런 부분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죠.

양: 네 그렇군요. 우리 국민들이 지금 박태환 선수에게 많이 가혹합니까? 그런 건 아니죠? 워낙 기대가 컸기 때문에 또 그런 걸 수도 있고요.

노: 아, 그럼요. 그거는 너무 아꼈고 애칭까지도 '마린보이'로 만들어주실 정도로 아꼈던 부분이 있었고, 그거야 뭐 당연히 화가 나시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화나시는만큼 용서도 좀 빨리 해 주셨으면 좋겠고.

양: 네 그렇군요. 근데 이 대한체육회 규정상 도핑 선수는 3년간 태극마크를 달 수 없잖아요?

노: 네 그렇습니다.

양: 네. 그러면 박태환 선수 지금 나이로 봤을 때, 이 3년 기간을 다 지나고도 과연 그 이후에, 그 3년 이후에 제대로 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 이런 우려가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 그 우려는 당연한 거고요. 하지만 그건 3년 후 얘기고 지금이 중요한데 우리가 3년 후를 생각한다는 것은, 그건 아니라고 생각이 들고요. 지금 이 순간서부터가 중요하거든요. 이를 테면, 지금 세계수영연맹에서 18개월이 내년 3월 2일날 끝나는데, 그 시점까지가 중요한 것이지, 그 이후는 중요하다고 생각이 안 들죠.

양: 그 이후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네.

노: 지금 반성이 없는데 그 이후에 반성이 될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이 들고요. 이건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고 나머지는 나머지의 문제라고 생각이 들어요.

양: 그렇군요. 감독님께서 대한체육회나 또 박태환 선수에서 바라는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노: 그 물론 바람이 있지요. 바람이라면 음... 박태환 선수는 성찰의 시간을 아주 엄숙히 가져야 되고요. 또 대한체육회에게 바람이 있다면 박태환 선수가 얼마만큼의 반성을 하는 것에 따라서 한 번 기회를 주는 것도 스승으로서 한 번 생각을 해 보는 거죠.

양: 기회를 준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시죠?

노: 네 열심히 하고 인고의 고통을 겪고 나면 한 번 더 그 기회를 주셨으면 하는 게 조금만 희망이에요.

양: 징계를 일찍 해지한다든지, 감해준다든지 이런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노: 네.

양: 그렇군요. 감독님 나오셨다니깐 실시간으로 문자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노 감독님, 노민상 감독님 반갑습니다. 박태환 선수가 참 안타깝습니다. 감독님께서 힘이 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이렇게 실시간으로 청취분들께서 또 문자를 주셨습니다. 네, 큰 힘이 돼 주시고 계시죠.

노: 아, 그럼요.

양: 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또 우리 박태환 선수를 옆에서 지도해오신 분이니깐요. 그런데 감독님은 처음에 어떻게 수영과 인연을 맺으셨어요?

노: 아 저는 이제 원래 제 고향이 한남동이니깐요. 자연스럽게 한강하고 이렇게 접할 수가 있었죠. 저희들 어린 시절은 겨울이면 한강이 꽁꽁 얼었으니깐 썰매 끌면서 놀았고 여름에는 자연스럽게 이제 수영하고 놀았고 그랬죠.

양: 네. 근데 그건 뭐 놀이삼아서 하는 수영 정도였을 거 아니에요? 어떤 수준을 논하기 보다는... 그렇죠?

노: 네, 그렇죠.

양: 근데 지금 감독님의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 보면 우리나라 수영이 정말 불모지고 활성화가 안 됐을 시절인데, 수영의 길을 가고 수영선수로서 활동을 하고, 또 지도자의 길을 가고 이렇게 생각하셨던 어떤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노: 아, 이게 그거는, 저희가 자연스럽게 수영에 접할 수 있었던 것은 고관동이라는 한남동 옆에 고관동이라고 있는데, 그 때 그 오산 중고등학교라고 수영명문학교가 있었어요.

양: 아, 수영 명문이? 그 때가 몇 년도 인가요? 몇 년도 쯤이죠?

노: 이제 그 선수들이 수영하는 걸 보고 아 저렇게 하는구나를 알게 됐고요. 또 절실하게 동경해서 그림을 그렸던, 우리 조오련 선수라고 잘 아실 겁니다.

양: 네 그럼요. 아시아의 물개아닙니까.

노: 네 그 분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가 있죠.

양: 어떤 영향? 그러니깐 그 분의 활약상을 보면서 이렇게 닮고 싶다는...?

노: 네 그렇죠. 저희가 그 분을 보고 꿈을 키운거죠.

양: 네 그 분의, 조오련 선수의 영향을 받았군요. 네. 그렇군요. 이게 수영 불모지여서 우리나라가, 처음에 선수생활도, 뭐 지도자생활도 참 힘드셨을 것 같아요.

노: 그 시절에는 뭐 보통 수영장 가서 한다고 그러면 이해들을 못했죠. 한강 두고 왜 가느냐?

양: 하하하. 수영장은 많이 있었습니까?

노: 수영장이 많이 있지도 않았으면서도 그랬죠.

양: 네. 참 이해들도 못하고 그런 시절이었군요. 네 그래서요?

노: 왜 가느냐. 뭐 시합 때문에 간다. 한강에서 해도 되는데 왜 가느냐 이해들을 못하셨죠. 저희 부모님들은요.

양: 여자 선수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노: 아, 많지 않았죠.

양: 아무래도. 네. 이게 우리나라 수영이 확실하게 이렇게 붐이 일었다는 게 이제 뭐 80년대 최윤희 선수 때, 그 때 이제 붐이 일었다고 보면 되나요? 그 전에 조오련 선수가 먼저 붐을 일으켰나요? 어떻게 되죠?

노: 조오련 선배님이 먼저 붐을 일으켰고요. 그 다음에 이제 이어지는 게 최윤희 선수. 이렇게 이어진거죠.

양: 네. 그러니깐 그 때가 뭐 보면 한 7, 80년대 그 때쯤 되는 거네요.

노: 아 그렇죠. 그렇게 되는 거죠.

양: 굉장히 그러면 늦게 붐이 분 걸로 볼 수 있겠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노: 네 그렇죠.

양: 그러다가 이게 우리 박태환 선수가 탄생하게 된 건데, 박태환 선수의 기량은 지금 뭐 세계 선수들과 비교를 해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비교를 해도 손색이 없는 거죠?

노: 아... 물론 이제 6개월 정도 운동을 안 했지만, 그 실력도, 정신과 실력이 함께 가는 것이기때문에 당연히 성숙됐죠.

양: 네. 정신력.

노: 아픔이 있었던 만큼 고통스럽고 고통이 있었던 것만큼 인간성을 배웠으니깐요.

양: 정신력이 그 만큼 더 무장이 됐겠군요.

노: 네 그렇죠.

양: 근데 제가 늘 이 박태환 선수하면 이런 거 하나는 꼭 여쭤보고 싶었어요. 감독님한테. 이게 남자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참 쉽지 않잖아요? 이게 서양 선수들하고.

노: 아. 쉽지는 않죠.

양: 우리 동양선수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박태환 선수는?

노: 일단은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했고요. 그 이후에 그 선수가 꿈이 있었어요. 그거는 나는 할 수 있다는 네 그런 것들. 나약하지 않고요. 근데 요즘에 이렇게 운동시키시는 분들을 보면, 내 아이 점수는 후하게 주면서 지도자들의 점수는 많이 안 주려고 하거든요.

양: 아 네. 그런 부분이 있군요.

노: 네 자기의 그 아이의 탓을 하기 전에 모든 시합에서 안 되면 지도자 먼저 탓하는 이런 부분, 이런 부분은 빨리 없어질수록 좋은 거거든요. 첫째는 먼저 다 내 탓으로 돌리고 이렇게 해야 올바르게 가는 것이거든요.

양: 지도자 탓을 먼저하는 군요?

노: 네. 그거는 자기 반성의 시간도 안되고 절대로 멀리 갈 수가 없습니다. 내 반성이 없는데 어떻게 빨리 가요? 이런 것들은 우리가 고쳐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이 들고요.

양: 선수들이 부진하거나 정신이 부족할 때는 스스로 탓하거나 이래야 되는데, 뭐 지도자 탓을 먼저하고 이런 풍조 같은 건 고쳐져야 된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노: 아, 그럼요.

양: 문자가 또 실시간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감독님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3271님. 개인적으로 수영 경기를 참 좋아합니다. 박태환 선수가 하루 빨리 돌아와서 멋진 경기를 보여주길 바랄 뿐입니다. 9287님. 박태환 선수처럼 훌륭한 선수들을 키우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감독님 항상 건강하시고요. 우리나라에 훌륭한 선수들을 더 많이 키워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독님에게 실시간으로 문자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노: 네 감사합니다.

양: 감독님이 얼마나 큰 노고가 있었고, 얼마나 크게 애 쓰셨는지 이렇게 청취자분들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노: 네 감사합니다.

양: 근데 감독님 개인적으론 불교하고도 참 인연이 남 다르고 특히 혜총스님하고 각별한 인연이 있다, 이렇게 들었습니다.

노: 네. 아. 혜총스님의 그 맑은 모습을 보면 아기 같으세요.

양: 아 혜총스님이요? 하하. 전 포교원장 혜총스님이요?

노: 네, 그래서 2008년도 베이징에서부터 인연이 돼 가지고요.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도 오셔 가지고 우리가 양궁에서 중국하고 단체전 결승인데, 텐텐으로 서로 막 1점차로 박빙의 승부를 벌릴 때였는데, 그 때 해총스님의 모습이 간절하게 뭔가를...

양: 염원하는 것 같고?

노: 네, 기도가 통했는지, 결국은 우리가 마지막 10점을 쏴 가지고 그 때 우승을 했거든요. 그러면서 이렇게 지나가면서 다 중국 선수나 누가 됐든간에 이렇게 다 지도를 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저게 진짜 참모습이 아닌가. 그러면서 더 스님을 존경하게 됐고, 제 법명도 혜총 스님이 지어 주셨거든요.

양: 네 법명도?

노: 네, 법명도요.

양: 결례지만, 법명이 감독님 어떻게 되시죠?

노: 관수입니다.

양: 다시 한 번?

노: 관수요. 볼 관자, 물 수자.

양: 아 관수요? 이 관수라는 법명을 또 우리 전 포교원장이신 혜총스님께서 지어주셨군요. 요즘도 자주 만나십니까?

노: 요즘에는 좀 못 봽고 있어요.

양: 운동경기가, 큰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이 열려야 같이 응원도 가고 그러실텐데... 네. 그렇군요. 감독님 집안 자체는 불교셨나요?

노: 네, 뭐 저희 집안은 뭐 불교였죠.

양: 아, 그러다가 집안에서부터 불교와의 인연을 이렇게 이어 오시다가 2008년도에 혜총스님하고 인연이 닿아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계시고 있군요.

노: 네.

양: 네. 아이고 참 이게 감독님하고 혜총스님 인연은 참 종단 안팎에서도 굉장히 유명하더라고요. 두 분 친하시다고. 그런 얘기들도 많이 하더라고요.

노: 그 분은 제가 잊을 수 없죠.

양: 하하 그러십니까? 네. 앞으로도 좋은 인연 계속 이어 가시고요. 앞으로 계획 같은 것 있으시면 좀 말씀해 주시죠.

노: 이제 계획이 있다면 먼저 박태환 선수가 잘 해서 어떻게든 조국에 대한 은혜를 저 버리지 말고 꼭 재기하길 바라고요. 또 제가 정하는 클럽에서도 부모들이 좀 더 넓게, 지금보다는 내일을 또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격려를 하면서 가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불심 속에서 좀 더 자유럽게 너그럽게 이렇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양: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오늘 박태환 선수 얘기, 또 감독님 개인사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까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노: 네.

양: 다음에 또 모시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노: 수고 하셨습니다.

양: 네. 노민상 전 수영 국가대표 감독님과 얘기 나눠봤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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