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청소년 국가대표 후보선수단을 맡고 있는 80년대 탁구스타, 양영자 감독님

양창욱 : 20일 '양창욱의 아침저널'[FM 101.9 MHz (서울)] 3부입니다. 그립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보는 시간이죠. '목요스페셜 그 사람 지금' 이어가 보겠습니다. 오늘은 어떤 분을 모시냐하면요. 80년대 우리나라에 탁구 열풍을 몰고 왔던 최고의 탁구 스타입니다. 지금은 청소년 국가대표 후보선수단을 맡고 있는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양영자 감독님 전화연결 돼 있습니다. 감독님, 나와 계시죠?

양영자 : 네, 안녕하세요

양창욱 : 정말 오랜만에 목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도 선수시절의 감독님 목소리를 직접 들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몽골에 가셨다가 최근에 들어오셨다고요?

양영자 : 네 몽골에서 선교생활 하다가요 지금은 들어온 지 3년 되었네요

양창욱 : 아, 3년이나 되셨군요. 몽골에 계시다가 완전히 들어오신겁니까?

양영자 : 네네.

양창욱 : 그런데 전화상태가 왜 이렇게 안 좋죠?

양영자 : 제가 스피커 폰으로 해서 그런가봐요. 꺼볼게요. 지금은 잘 들리나요?

양창욱 : 네. 제 목소리는 잘 들리시죠? 감독님? 그럼 몽골에 얼마나 가 계셨던 거예요?

양영자 : 97년도에 가서 14년 있다가 왔거든요.

양창욱 : 네, 97년에 왜 가신 거예요?

양영자 : 남편하고 가족이 선교 사역하러 갔다가 그 곳에서 탁구도 저는 가르치고 그러다가 들어왔지요.

양창욱 : 그러셨군요. 몽골이 탁구는 거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죠? 가셨을 때는?

양영자 : 지금도 마찬가지인데요. 거기는 탁구에 재능이 있는 그런 선수들이 없었고, 아무래도 추운 나라이다 보니까 씨름, 말 타는 것 이런 것을 잘 하는 편이고요. 탁구는 잘 하는 나라는 아닌 것 같아요.

양창욱 : 탁구 인구는 좀 있습니까? 하려는 인구나 의지를 가진 인구는 조금 많이 있습니까? 지난 10년동안 보셨을 때.

양영자 : 인구도 그다지 많지 않군요. 저는 사실 몽골에서 계속 14년 있었던 것이 아니고요. 몽골이 우리나라 남북한처럼 분단국가로 돼 있거든요. 내몽골이 있고 외몽골이 있는데 저는 내몽골에 조금 더 오래있었어요. 중국 안에 있는 내몽골에.

양창욱 : 아, 그러셨군요.

양영자 : 울란바토르라고 하는 수도가 있는 외몽골에서 6년 있었고요. 중국 안에 내몽골에서 8년 정도 있었어요.

양창욱 : 그러면 처음에 거기서 탁구를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하셨던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추운나라고 씨름같은 것들이 더 유행하고 있는 그런 나라인데.

양영자 : 사실은 제가 탁구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 목적만 가지고 간 것은 아니고요. 남편이 아무래도 선교사고 그러다보니까 남편이 해야 될 일도 있고, 제가 해야 할 일도 찾다보니까 저는 거기에서 탁구를 가르친 것이고요. 비자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탁구를 가르쳐준다는 이유로 비자도 받게 되었고.

양창욱 : 그러셨군요. 대단히 용이했겠습니다 그거는.

양영자 : 맞습니다.

양창욱 : 거기 몽골에는 그럼 탁구 국가대표팀이나 청소년대표팀 뭐 그런 팀들이 있나요?

양영자 : 네. 몽골 대표로 나오는 팀들이 있고요. 그런데 내몽골은 거기는 중국이기 때문에요, 내몽골 대표팀이라고 하더라도...

양창욱 : 중국 소속이군요?

양영자 : 중국 소속이기 때문에 국가대표가 되기는 아주 어렵죠.

양창욱 : 그렇겠네요. 세계 최강 아닙니까? 중국이, 탁구는.

양영자 : 네, 맞죠.

양창욱 : 그러면 청소년 대표팀 정도는 맡으셨어요? 감독님께서?

양영자 : 거기에서 저는 탁구를 칠 수 있도록 어드바이스를 해주고 돕는 역할을 했지, 제가 거기서 코치, 감독 직책을 맡은 것은 아니에요. 여러 그룹이 있는데요. 한 클럽만 가르칠 수 없으니까 일주일에 이틀씩 돌아가면서 돌봐주고 그랬죠.

양창욱 : 그러니깐 몽골 탁구인구 저변을 확대시키는데 기여를 하셨군요.

양영자 : 그렇죠

양창욱 : 정말 궁금한게 감독님이 얼마나 유명하신 분인지 몽골 사람들은 알고 있던가요?

양영자 : 처음에는 몰랐어요.

양창욱 : 몽골 분들이 감독님을 몰랐단 말이에요?

양영자 : 네, 그러다가 이야기를 사람들이 해주니까 알게 됐죠.

양창욱 : 제가 사실 80년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에 감독님을, 감독님 선수시절에 참 좋아했습니다. 저와 성도 같고 그래서 더 좋아했는데, 현정화 선수와 이제 주로 복식을 많이 이뤄서 각종 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금메달도 따고 이랬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양영자 선수가 은퇴하고 나서 현정화 선수가 그랜드슬램도 달성하고 그랬지만, 양영자 선수 은퇴하고 나서 현정화 선수의 시대가 열렷던 것이고, 제 기억으로는 현정화 선수가 양영자 선수를 선수시절에 단식으로 몇 번 못 이겼던 것 같은데요. 단식으로 붙어서. 맞죠?

양영자 : 제가 나이가 다섯 살 정도 차이가 나다보니까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초등학생이었고 국가대표 제가 됐을 때는 중학생이고 이러다보니까 그 때는 갭이 있었거요. 현정화 선수가 국가대표 되면서 거의 라이벌이라고 사람들이 할 정도로 상승세를 탔었죠

양창욱 : 그럼 같이 선수 생활을 하신 적은 얼만 안되네요? 현정화 선수가 국가대표가 되고 나서는...

양영자 : 국가대표 되고나서 86년 아시안게임 때부터 호흡을 맞췄거든요. 88년하고 저는 은퇴를 했으니까 한 3년 정도.

양창욱 : 그러니깐 그 시기, 단식을 했을 때는 양영자 선수가 많이 이기지 않으셨나요?

양영자 : 처음에는 많이 이겼다, 그 이후 이겼다 졌다, 왔다 갔다 했어요.

양창욱 : 저는 이게 왜 중요하냐면 학교다닐 때 현정화 선수가 잘하냐 양영자 선수가 잘 하냐 굉장히 많이들 싸우고 그랬거든요. 그런 것으로 많이 얘기하고 싸우고 그랬던 기억이 나서 제가 여쭤봤습니다. 단식으로 세계 2위까지 가셨잖아요? 양영자 선수가. 1위를 하셨던 적은 있나요?

양영자 : 아니오. 2위만 두 번

양창욱 : 그렇죠. 그렇죠. 중국선수 누구시죠? 그 분 한테 밀려서.

양영자 : 83년도 2등할 때는 중국의 조현화라는 선수가 있었고요. 87년도 2등할 때는 허질이라는 중국 선수가 있었는데 그 때 밀렸죠.

양창욱 : 우리 안재형 선수랑 결혼한 중국의 자오즈민 선수는 1위 하신 적은 없군요.

양영자 : 그 선수는 단식에서는 우승한 적이 없어요.

양창욱 : 죄송합니다. 제가 사사로이 여러 가지로 궁금한 것이 많아서 갑자기 많이 여쭤봤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로 현정화 선수와 복식호흡을 맞춰서 두각을 나타내고 전설의 파트너로 많은 대회를 우승하셨죠? 복식으로.

양영자 :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땄고요.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복식으로 땄죠.

양창욱 : 이게 그러니까 복식에서 주로 우승하셨던 것 같아요. 두 분이 단식에서보다는. 중국의 벽을 복식에서만 넘었다 이렇게 봐도 되는 건가요?

양영자 : 아니에요. 86년 아시안게임 때는 단체전을 중국을 이겨서 우승했거든요.

양창욱 : 아, 그랬던 적이 있군요. 정말 이 때, 80년대 양영자 선수, 현정화 선수 덕분에 웬만한 학생들은 탁구라켓 하나씩 다 들고 다녔던 시대입니다. 탁구 붐이 이렇게 일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원래는 처음에는 어떻게 탁구를 시작하시게 된 거예요?

양영자 : 저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했는데 학교에서 야외로 그림을 그리러 갔었거든요. 그런데 차분히 앉아서 그림은 안 그리고 다른 친구들 어떻게 그리는지 왔다갔다하면서 보더래요. 그런데 저희 담임선생님이 ‘쟤는 운동을 하면 좋겠다’ 싶어 추천을 했대요.

양창욱 : 감독님을 보시고 선생님들께서?

양영자 : 네

양창욱 : 그 때가 언제였다고요?

양영자 : 초등학교 3학년 때요

양창욱 : 그 때부터 탁구라켓을 잡으셨군요.

양영자 : 네네.

양창욱 : 그렇게 인연을 맺고 두각을 나타내셨고. 천부적으로 소질이 있으셨던 모양이에요.

양영자 : 천부적으로 소질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 같아요

양창욱 : 그런데 바로 두각을 나타내셨나요?

양영자 : 3학년 때부터 했는데 5학년 때부터 전국대회 2등을 했고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언니들 이기고 해서 2관왕을 하고 그 때부터 부각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양창욱 : 네네, 그러셨군요. 불교방송에서 하느님 이야기를 하시고 좋습니다. 하하. 그래서 국가대표는 처음에 언제 되신 거예요?

양영자 : 고등학교 1학년 때 되었는데요. 81년도요.

양창욱 : 그러면 89년 은퇴까지 8년 동안 국가대표 생활을 하셨군요.

양영자 : 네. 맞아요.

양창욱 : 거의 현정화 선수가 국가대표가 될 때까지는 거의 독주시대였겠네요? 우리나라에서 여자탁구로서는.

양영자 : 그 때 다른 선배들도 있긴 했는데요. 같이 호흡을 맞춰서 했던 윤경미 선배도 있고 이수자 선배 이런 선배들 있었어요.

양창욱 : 그렇게 하시다가 돌연 은퇴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빨리 하신 것 아니에요?

양영자 : 그 때는 빠른 게 아니고요. 25살이면 그 때 은퇴를 했는데 요즘에 늦어져서 그렇죠. 제가 간염이 있었어요. 그래서 88올림픽까지 하는 것도 무리였는데 그 때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했던 것이죠.

양창욱 : 그 뒤로 보통 지도자 길을 많이 길게 걷지 않습니까. 특히 감독님 같은 경우는 지도자로서 충분한 역량있고 기회가 주어졌을텐데 어떻게 지도자의 길을 걸으셨나요? 은퇴 이후에. 국가대표 감독이나 코치를 한다든지 이런 것들...

양영자 : 그 때 소속이 삼성 제일모직이라는 회사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은퇴하고 그 곳에서 이제 지도자길을 가려고 코치를 했었는데요. 그러다가 이제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어머님이 편찮으시면서 간호하게 되고 그러면서 제가 우울증에 걸리게 됐었어요. 그러면서 그걸 그만두게 되었고 공백이 생긴 것 같아요.

양창욱 : 그러시고 결혼하시고 몽골에 가셔서 지도자 생활을 하시고 이렇게 되는군요. 요즘은 뭘 하시고 앞으로는 뭘 하실 건가요?

양영자 : 다시 한 번 말씀해주세요.

양창욱 : 요즘 근황이 어떠신지?

양영자 : 한국에 들어와서 국가대표 후보 선수 전임지도자라는 것이 있는데요. 거의 청소년들이에요.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 후보들을 가르치는 대한체육회에서 운영하는 것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선수들, 전국에서 잘 하는 선수들 모아다가 남자 16명, 여자 16명 되는데 그 선수들을 이제 합숙훈련을 동계 20일, 하계 20일 해요. 거기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양창욱 : 어떻게 보면 국가대표 예비후보군들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 선수들을 가르치고 계시는군요. 오시자마자 3년 전부터 그 일을 계속 하셨던 겁니까?

양영자 : 네

양창욱 : 굉장히 오래되셨는데 저는 몰랐네요. 그런데 참 감독님, 예전만큼 아까도 제가 80년대 탁구 붐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해드렸습니다만, 예전만큼 탁구에 대한 관심, 이런 인기가 없는 것 같아요. 왜 그렇게 된 것 같으세요?

양영자 : 일단은 탁구에 있어서 성적도 좋아야 되고 스타가 있어야 조금 더 탁구 인기가 있는데 전처럼 성적도 없고 큰 어떤 스타가 나오지 않으니까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 같거든요. 와서 보니까 탁구가 많이 이전 탁구와 비교해 변했고요.

양창욱 : 변했어요? 어떻게 변했나요?

양영자 : 예를 들면 저희 시대 때는 탁구 라켓이 두 종류가 있는데 펜홀더하고 쉐이크 핸드가 두 가지가 있는데 이제 펜홀더가 없어지고 쉐이크 핸드로 변화한 거예요.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는 쉐이크 핸드에 이렇다할 모델이 없거든요. 그런데 쉐이크 핸드로 바뀌면서, 중국 탁구도 아니고 뭐 한국 탁구도 아니고 그러다보니까...

양창욱 : 어정쩡해졌군요.

양영자 : 네, 그런 탁구가 됐어요. 그렇다보니까 이전보다 성적을 못 내고 있는 것 같은데 과도기인 것 같고요. 지금도 이제는 조금씩 올라오고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죠.

양창욱 : 기량이나 인기를 예전에 그런 것들을 다시 되찾으려면 어떤 노력들을 더 해야할까요? 후배들이.

양영자 : 물론 제도도 바뀌고 탁구 방식도 바뀌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제도는 어떤 것이냐면 우리가 할 때는 꿈나무들을 키우는 전용 체육관이 있어서 거기에서 집중적으로 훈련을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제 교육도 받아야 하고 학교 교육을, 그런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공부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조금 실력이 뒤처지고 있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양창욱 : 그러면 공부를 안 해야 하나요?

양영자 : 아뇨, 하하. 그런 것은 아닌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선수들의 정신력이 이전보다 남달라야 될 것 같거든요.

양창욱 : 공부까지 병행을 하려면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양영자 : 네, 맞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이 전에는 또, 어떤 헝그리 정신이라는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시대가 좋아져 그런지 선수들에 대한 정신력 강화 이런 것들이 더 필요하고 선생님들도 더 노력을 해야 겠죠.

양창욱 : 그렇군요.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현정화 선수는 오셔서 자주 만나보십니까?

양영자 : 그렇죠. 많이 만났죠.

양창욱 : 두 분이 나이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나는 줄 알았는데 다섯 살 밖에 차이가 안 나시는군요. 이것도 오늘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하하. 방금 제도적인 부분을 잠깐 언급하셨는데, 국가적으로 뒷받침, 정부차원에서 뒷받침 해야 될 일은 없어요? 앞으로 탁구붐이나 기량을 되찾기 위해서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셨던 것 없으세요?

양영자 : 평소에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은요 지금 일본 탁구가 참 잘하고 있거든요. 왜 잘하나 보니까 이전에 우리가 했던 시스템을 지금 일본이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카데미라는 그런 팀을 구성해서 정부에서 지원을 아주 많이 해줘요. 본격적으로 선수를 어렸을 때부터 키우고 있는데 우리도 그런 것을 다시 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하죠.

양창욱 : 알겠습니다. 감독님,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오랜만에 얘기 나눠서 영광이었습니다. 말씀 정말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지도자 활동으로 후배들 많이 양성해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양영자 : 감사합니다.

양창욱 : 80년대 우리나라에 탁구 열풍을 몰고 온 탁구 스타시죠. 양영자 감독님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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