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가 장태산 선생님
양창욱(이하 양) : 24일 '양창욱의 아침저널'[FM 101.9 MHz (서울)] 3부, 목요일 3부는 '목요스페셜, 그 사람 지금' 시간입니다. 오늘은 우리 만화계의 거장이십니다. 40년 외길 만화가로서의 삶을 살아오고 계신 장태산 선생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선생님 나와계시죠?
 
장태산(이하 장) : 네 안녕하십니까.
 
양 :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장태산 : 요새는 정신없습니다. 웹툰 그리고 운동하고 그게 전부입니다.
 
양 : 어떤 운동을 즐겨하세요?
 
장 : 그냥 헬스하는데 아주 좋습니다. 몇 년 전에 허리를 크게 다쳤는데 거의 1년 정도 엎드려서 생활할 정도로 병원에서도 낫지 않고 그랬는데 운동하면서 살살 좋아져가지고...
 
양 :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허리 크게 다치면 헬스같은 무리한 운동 하지 말라고 조언받곤 하는데...
 
장 : 네 저도 의사가 그렇게 말하는데 해보니까 조금씩 조금씩 나아져가지고 제가 전문가는 아니라서 권하지는 못하겠는데, 아무튼 운동으로 많이 좋아졌습니다.
 
양 :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선생님 ‘야수라 불리는 사나이‘ 이 작품 참 열심히 봤습니다. 학창시절에 열심히 봤는데 제 기억으로는, 이 작품 전후로 해서 ~뭐뭐라 불리는 사나이가 제목으로 유행됐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장 : 맞습니다.
 
양 :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도 그 때 즈음 나온 것 같고.
 
장 : 맞습니다. 호랑이라 불리는 사나이 등등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양 : 이 작품 크게 히트 했었죠?
 
장 : 네.
 
양 : 선생님께서는 처음에 어떻게 만화계에 입문하시게 되셨습니까?
 
장 : 지금은 수도권인데 옛날에 경기도 파주는 시골이었죠. 거기서 초등학교 3학년 때쯤 병이 걸렸었나 봐요. 자세한 건 어려서 모르겠는데 자꾸 잠을 자면 헛소리를 하니까 어머님이 잠을 덜 자라고 만화책을 빌려다 주셨어요.
 
양 : 어머니께서 직접?
 
장 : 네. 새로운 이야기를 접한 거죠.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데 지금으로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일본 만화영화가 한국에 들어와서 대한극장에서 국민학생들이 단체관람을 갔는데 그걸 보고 매료가 되어서 막연하게 만화가의 길로 자연스럽게 접어들게 됐죠.
 
양 : 만화가 보는 게 좋고 재미있다고 해서, 단지 이것만으로 만화라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 것이 굉장히 그림에 큰 소질이 있어야 하잖아요?
 
장 : 뭐 큰 소질은 모르겠고, 조금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미술시간을 좋아했는데 만화책 보다가 엉뚱하게 출판사에 찾아갔어요. 찾아가서 겨우 열서너살 짜리가 와 가지고 만화 원고 사이즈 가르쳐다오, 만화원고 좀 보여다오...
 
양 ; 직접 가셨어요?
 
장 : 네. 그러니 출판사에서는 어이가 없죠. 가서 보니까 원고라는 게 또 다른 세계더라고요. 인쇄술이 좋았으니까 만화책하고 보던 것하고 달리 너무 좋아가지고 선생님 찾아뵙고 문하생이 되려고 했는데 어리니까 한 16, 7살 때 시작하게 됐죠.
 
양 : 사실 제 기억에 선생님 그림이 좀 달랐어요. 제 어릴 때 기억도, 그 때 당시에 명랑만화가 유행하고 익숙하던 시대였는데, 선생님 만화 그림은 새롭게 처음 접하게 된 그런 그림들이었죠. 굉장히 그림이 달랐던 기억이 선명하게 나는데요. 그런데 요즘 세대들은 저희세대와는 달리 만화 잘 안 보는 것 같아요. 특히, 종이만화 같은 것 안보는 것 같아요. 저희는 보물섬 같은 만화잡지도 많고 그랬는데 요즘은 주로 웹툰으로 보고 그런 것 같습니다. 요즘 분위기나 이런 것들, 서운하지 않으세요?

장 : 서운했죠. 서운한 정도가 아니고 뭐라그럴까 깜깜했죠. 막막했죠.

양 : 사실 만화라는 게 제본소 가서 쥐포 같은 것 뜯어먹으면서 보는 게 참 맛인데, 요즘은 제본소 만화가 거의 사라지고 웹툰으로 본다고 그러고, 만화잡지도 없어지고...
 
장 : 없어지고요.
 
양 ; 그래서 선생님께서도 올해부터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죠?
 
장 : 그렇죠.
 
양 : 개인적으론 어떤 계기가 있으셨는지?
 
장 : 시대가 바뀌면서 만화뿐 아니라 종이시장이 서서히 침몰해가는 형태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저희도 조바심이 나죠. 만화는 그리고 있는데 남의 눈에 의해 읽히지가 않으니까. 은퇴했느냐 이런 소리도 들리고 그러고 있다가 막연하게 웹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양 : 준비 기간이 상당히 길었다고 들었고, 처음에는 많이 망설이셨나봐요?
 
장 : 엄청나게 망설였죠.
 
양 : 왜요? 분위기가 그렇게 가면은 쉽게 승복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시대적 대세가 그런 것이다 하고.
 
장 : 아니 그런데 거의 40년 가까이 했던, 그렸던 시대가 그게 아니었고, 주 장르를 다 내려놓고 바꾸자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양 : 그렇군요. 그래서 올해 1월에 웹툰을 시작하셔서 만든 작품이 ‘몽홀’. 몽고와 징기스칸의 이야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이고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이 작품을 구상했고 연재하고 계신가요?
 
장 : 몽골. 어려서 제 기억으로는 40년은 더 된 것 같은데 징기스칸 영화가 나왔어요
 
양 : 기억이 납니다.
 
장 : 아이러니하게도 할리우드에서 존 웨인이라는 유명한 배우가 나온 동양의 영화죠. 그걸 보고서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았어요. 저거 언젠가는 만화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묵혀두고 자료조사하고 그러다가 몽골이라는 지금도 힘들지만 자연환경이 너무 척박하니까 그 속에서 인간이 살아남는 이야기를 굉장히 화두처럼 그려보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출판계가 자꾸 안 좋아지고 종이만화가 줄어드니까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가 엎어지고 엎어지고 이러면서...
 
양 : 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장 : 원치 않게 이게 10년 정도 넘겨서 갖고 왔는데 우연치 않게 네이버 관계자가 놀러왔다가 그걸 보더니 합시다, 이렇게 되가지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양 : ‘몽홀’이 구상부터 실질적으로 실현이 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린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장 : 어떻게 보자면 그것보다 더 됐을 수 있죠. 영화를 보면서부터 계속 그런 생각을 하면서 뭐라 그러나 아마 동물들 그림도 연습하게 되었고, 말이나 사냥 같은 걸 해야 되니까, 차근차근 온 것 같아요. 그러고 뭐 꽤 큰 화두 같은 작품이고 그렇게 된 거죠.
 
양 : 그러면 ‘몽홀’은 징기스칸이라는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역사서사물에 무게를 두고 계신 겁니까?
 
장 : 빠질 수는 없겠지만 제 본 마음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죠. 영웅의 등장보다는 우리가 과연 지금의 문명의 잣대로 봐서 야만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갖게 되는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시작했습니다
 
양 : 이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떤 겁니까?
 
장 : 결국은 인간적인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자기가 처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판단이라는 게 과연 의미가 있나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과연 물이 없는 상태에서 한 일주일을 살게 된다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동물에 가깝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데 계속 목적을 두고 있는데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 어느 정도 묘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양 : 장태산 선생님이 처음으로 시작한 웹툰 작품 ‘몽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몽골과 징기스칸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웹툰을 하시니까 뭐가 가장 종이만화를 그릴 때와 다르던가요?
 
장 : 단순하게는 제일 처음에는 질감이죠. 종이에다가 그리는 것은 특유의 만화지 질감이라든지, 펜슬 하나 그려도 어떻게 의도치 않게 나간 펜슬이 내 묘사 이상의 것으로 묘사가 되는 경우가 있고, 두 번 다시 되풀이가 안 되는 그런 것이 있고 어떻게 보자면 그림을 그리는 데 땀 흘리며 그것을 같이 그리게 되는데, 웹툰이라는 것은 디지털 장비들을 쓰는데 그게 쉽게 이야기해서 유리판에 그리는 것 같아가지고 그게 적응하기 힘들었고, 환경도 바뀌고 이러니까 거기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2, 3년 걸린 것 같아요.
 
양 : 제가 듣자니 선생님 개인적으로는 프로그램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은 안 하시려고 하신다면서요? 프로그램 사용하시면 수월하실텐데 왜 사용을 안 하세요?
 
장 : 그거는 경험에서 오는 건데 만화가라는 건 이게 정도는 아니지만 제 생각에는 그 작가의 특성이 배어 나와야 된다고 봅니다.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시간 단축의 의미로 많이들 쓰다보니까 작가를 차별화 하는 데는 아주 안 좋은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디지털로 그리지만은 될 수 있으면 손맛을 내는 것으로 가보자, 해서 그런 것을 쓰지 않게 되더라고요. 저절로.

양 : 작가 특유의, 그 작가만의 아우라를 내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사용하시는 게 별로라는 말씀이시군요. 선생님 나와 계시다니까 문자가 실시간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9943님, 장태산 화백님의 ‘용호취’가 기억납니다. 반갑습니다. 만화잡지 보물섬 매니아였는데 장태산 화백님의 목소리를 들으니까 다른 화백님들의 근황도 궁금해집니다. 7175님, 어릴 때 만화를 좋아해서 부모님께 야단맞으면서도 짬짬이 만화를 보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어른이 돼서도 머리가 복잡해지면 만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이렇게 청취자 분들께서 문자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건 제가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 이현세 선생님하고, 두 분이 친구분이시잖아요? 그런데 두 분, 정말 잘 생기셨어요. 그리고 비슷하게 생기셨어요. 그렇죠? 그런 말씀 많이 듣지 않으세요?

장 : 들은 정도가 아니고 지금은 덜한데 예전에 젊었을 때는 어느 모르는 사람이 반기면서 아는 척을 할 정도로...

양 : 예, 저도 너무 비슷하게 생기셔가지고 정말 깜짝 놀랐던 적이 많은데, 그렇군요. 선생님 인생에 있어서 만화란 어떤 것이고 수많은 만화지망생과 후학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죠.
 
장 : 제일 난감한 질문이 만화가 무엇이라는 것인데,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오면서 많이 생각해봤는데 이게 계속 시대에 따라서 변하는 것 같으니까 저는 진짜 모르겠어요. 윤승운 선생님 같은 분하고 이야기할 때 선생님, 만화가 뭡니까? 하고 여쭤보니 야, 일흔이 넘도록 그린 나도 모르는데 이제 꼴랑 환갑 넘은 놈이 뭘 그걸 어떻게 아냐 하시더라고요. 살다보면 언제간 알아질까요요. 쉽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후배들은 잘 하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뭐라 그럴까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불만들이 솟아나올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저는 잘하고 있다고 봐요. 박수 쳐주고 있습니다. 감수성이라고 그러죠. 20대 때, 30대 때, 40대 때 표현하는 만화들이 있고, 50대가 표현하는 만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저도 노력하고 그들도 노력해야지요
 
양 : 아쉬운 점은 없으세요?
 
장 : 아쉬운 점도 있죠. 당연히 옛날에 만화 도제산업이다 보니까 한동네 사람들처럼 서로 간에 오고가는 그 정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죠. 원고를 갖다 주고 돈도 은행에 가서 노란봉투에 월급으로 받고... 요새 같은 경우에는 웹하드에 원고 올리고 돈은 통장으로 들어오고 필요한 것들은 메신저로 나누고 말고 그러니까...
 
양 : 예, 정말 삭막하네요.
 
장 : 네, 그런 데서 오는, 그런 것은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지만.
 
양 : 예, 선생님 오늘 말씀 잘 들었고요. 항상 건강하게 좋은 작품 활동 계속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장 : 감사합니다.
 
양 : 만화가, 장태산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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