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계의 고질적인 파벌싸움, 비리, 폭행 등으로 유도인구 계속 줄어"

▲ 80년대 유도영웅, 김재엽 동서울대학 경호스포츠학과 교수
양창욱(이하 양): 26일 '양창욱의 아침저널'[FM 101.9 MHz (서울)]3부 시작하겠습니다. 금요일 3부는 '금요한마당, 주말이 좋다'로 꾸밉니다. 80년대 우리 유도계의 영웅이십니다. 김재엽 교수님 모시고 3부 꾸며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나와 계시죠?

김재엽(이하 김): 네, 안녕하세요?

양: 네, 안녕하십니까? 아침 일찍 감사드립니다.

김: 아이고, 별 말씀을.

양: 요즘은 주로 어떻게 지내십니까? 근황부터 소개해 주세요.

김: 저는 동서울대학교에서 경호스포츠학과에 학생들하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양: 경호스포츠학과 교수님이시군요. 그럼 그 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진로가 대부분 경호 쪽으로 가게 되나요?

김: 네, 시큐리티쪽과 스포츠 쪽, 두 갈래 길을...(통화상태 불량)

양: 네, 교수님 말씀을 조금만 더 크게 해 주십시오. 졸업 후 진로를 학생들이 어떻게 잡고 있다구요?

김: 졸업을 하면 학생들이 시큐리티(경호.보안)쪽하고 스포츠 쪽하고 두 갈래 길로 가고, 취업률이 높습니다.

양: 그렇군요. 대통령 경호실도 가나요?

김: 거긴 공경호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힘들고요. 민간 사업체 쪽으로...

양: 아, 사설 경비 쪽으로.

김: 업체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캡스나, 이런 쪽으로 많이 가고요. 보안업체 쪽으로 많이 가는 편입니다.

양: 네, 최근 경호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많이 나와서 그런지 젊은 친구들이 선호하는 느낌도 드는 데, 여성분들도 많이 있죠?

김: 네, 그렇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7:3 정도로. 특히, 또 무도를 하는 여학생들, 이런 학생들이 많이 관심을 갖고 지원도 많이 하고 그렇습니다.

양: 그렇군요. 경호학과나 이런 종류의 과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죠?

김: 그렇지 않습니다.

양:아, 오래 전부터 있었나요?

김: 1995년도에... 경호 학문이 들어왔죠.

양: 아, 1995년도에.

김: 네, 그렇습니다. 그 이후로 대학에서 경호학과가 많이 생겼고요. 용인대 등에서 박사를 배출하고 그랬죠.

양: 네, 그랬군요. 저희들이 쉽게 접할 수 있고 잘 아는 것 같아도 또 의외로 생소한 분야가 이런 분야인데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제, 교수님 나오셨으니, 선수시절 얘기부터 먼저 좀 해봐야 겠습니다.

김: 하하, 네.

양: 선수 시절, 저도 어릴 적에 80년대에 교수님 경기를 많이 지켜봤는데 몇 번 안 지셨죠? 전체 선수생활 통틀어서. 올림픽 무대나 이런 공식적인 무대로 따져 보면.

김: 공식 무대는 딱 한 번 졌습니다.

양: 아, 그 일본 호소가와 선수한테요?

김: 네, 네, 84년도 LA올림픽 결승 때.

양: LA올림픽 때, 그렇죠. 그 때 지셨고 그 뒤로는 진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88년도에 저 고등학교 때 교수님 경기를 모두 봤는데 한 번도 안 지고 금메달 딴 걸로 기억하거든요.

김: 네, 네.

양: 그래서 굉장히 심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죄송스럽습니다만, 하하.

김: 하하, 공식적인 유도가 있는 전 세계 무대에서는 19개 금메달을 따면서 딱 한 번 졌습니다.

양: 네, 딱 한 번 지셨죠. 대단하십니다. 그 때가 LA올림픽 84년도에 결승전에서 호소가와 선수한테 져서 은메달이었는데, 그 뒤로는 호소가와 선수한테도 한 번도 안 지신 거네요?

김: 네, 네.

양: 한 번밖에 안 지셨군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원래부터 어릴 적부터 유도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김: 저는 어릴 땐 유도보다 축구를 좋아했고요. 축구 선수생활을 잠깐 했었고요. 축구를 하다가 어릴 때 초등학교 예산 문제로 인해서 해체가 되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유도 도장을 찾게 됐죠.

양: 아, 네.

김: 도복을 입고 사람을 메치고 하는 데 매료가 돼서, 그 때부터 유도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양: 네, 그러니까 축구를 좋아하셨는데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유도로 바꾸게 되셨고... 그런데 워낙 운동에 소질이 있으니까 그런 구기 종목에서도 유도 종목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운동을 잘 하시고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김: 어릴 땐 잘한 것 보다는 운동을 상당히 좋아했고 관심도 많았고요. 당시 1976년도 몬트리올 올림픽이 있었는데, 그 때 아마 제가 TV를 보면서 양정모 선수나 작고하신 장은경 선배님이 메달을 따고 난 이후에 더 많이 유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양: 아, 그 이후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셨군요.

김: 네, 그렇습니다.

양: 제가 또 인상적인 것이었던 것이 항상 시상식 때 한복을 입고 나오셨잖아요. 그러지 않으셨나요?

김: 그건 1988년도 올림픽 때... 그 날 마침 추석날이었고...

양: 아, 그래서...

김: 제가 많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올림픽에선 못 따고 있었습니다.

양: 그렇죠, 그렇죠. 88년 전까지는.

김: 네, LA올림픽 때 은메달에 머물렀기 때문에, 한복입은 건 우리나라 고유명절인 추석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금메달만 인정하는 편이거든요.

양: 아, 그렇죠.

김: 특히 우리나라는 더 많이 은메달, 동메달은 묻혀지는, 금메달에 묻혀지는 경향이 강합니다.

양: 네, 사실 은메달, 동메달도 따기도 정말 힘든 건데 그쵸? 세계에서 2위하고 3위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항상 1위만을 기억해주더라고요.

김: 네, 그래서 은퇴경기를 서울올림픽에서 했기 때문에, 만약에 서울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못 땄으면 또 4년을 더 했을지도 모릅니다.

양: 아,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까지?

김: 그런데 다행히 금메달을 따고 은퇴를 했는데 인정해 달라는 뜻이죠. 한복을 입은 이유 중에 하나는.

양: 아, 네.

김: 난 할 만큼 했다, 그런 액션이죠.

양: 수 많은 금메달을 땄지만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은 그런 의미를 갖고 있군요.

김: 그렇습니다.

양: 교수님, 그리고 나서 바로 은퇴하셨습니까?

김: 네, 그렇습니다. 서울올림픽 끝나고.

양: 바로 지도자 생활에 들어가셨고.

김: 네,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코치로 들어갔죠.

양: 그런데 지도자 생활하실 때 추성훈 선수를 가르쳤던 거에요?

김: 아, 추성훈 선수는 제가 국가대표 선수 시절에 추성훈 선수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 태릉선수촌에 어머니가 추성훈 선수를 데리고 온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저한테 유도를 좀 배웠으면 좋겠다...

양: 아, 추성훈 선수 어머님께서.

김: 네, 그 때 초등학교 어린 아이였는데 눈매를 보고 얘는 참 뭔가... 운동선수는 대체로 눈을 보면 뭔가 이 선수가 훌륭한 선수가 되겠다, 아니겠다 판단이 좀 서거든요. 어린 아이가 유도를 배우면서 상당히 아집도 있었고 욕심도 있었고 노력하는 그런 것들을 상당히 크게 봤어요.

양: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교수님, 국가대표 선수 시절에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나요?

김: 그건 개인적으로.

양: 아, 시간을 짬짬이 내셔서.

김: 저도 선수생활 할 때라 지도자 생활하고 병행할 순 없는 상황이니까.

양: 그렇죠. 시간도 없으실 텐데.

김: 추성훈이란 교포 아이는 개인적으로 일본에서 한국까지 와서 저한테 배우고 싶다는 어머님의 요청 때문에 제가 개인적으로 훈련 외의 시간에 추성훈 선수를 데리고 가르친 거죠.

양: 네, 얼마나 가르치셨나요? 초등학교 때의 추성훈 선수를?

김: 추성훈 선수가 방학기간에 나와서 한 달, 태릉선수촌에서 한 달 정도를...

양: 한 달 정도. 쉽게 말해 추성훈 선수의 기초를 교수님께서 닦아 주셨군요.

김: 하하, 일본에서 기본적인 건 다 배웠겠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 조언을 해준 적이 있죠.

양: 이건 참 재밌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네요. 그런데 제가 알기론 추성훈 선수가 유도를 참 잘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부산아시안게임인가 그 때도 메달을 딴 것 같은데.

김: 네, 추성훈 선수의 재량은 한국 선수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일본에서 유도를 배운 선수고, 기술적 측면이나 정신적 측면이 뛰어난 선수였죠. 국적이 한국이다 보니까 일본에서 평가전을 할 수 없었죠. 국적이 한국이다 보니까 한국에 와서 그 당시에 부산시청이란 시도 팀으로 들어가서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한국 국가대표 평가전을 나가게 되죠.

양: 아, 네, 그렇군요.

김: 거기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도 모 대학의 권력 행세로 쫓겨나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었죠.

양: 안 그래도 제가 그 얘기를 이어가 볼까 하는데. 그런 파벌이나 이런 것들이 그 때부터 이미 횡행하고 있었군요.

김: 파벌이란 것은 유도계의 고질적인 병인데... 지금 옛날에 저희들 때뿐만 아니라...

양: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네.

김: 선배님들도 파벌에 대한 피해는 상당히 많이 속출하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아마 저는 유도계, 한 20년 전에 유도계를 나왔지만 지금까지 파벌에 대한 횡포는 아직까지 이어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양: 네, 이게 계속 문제가 그렇게 제기되고 그래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문제인가 봐요? 이런 것들이.

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종목에, 조직의 힘을 회장이나 총장, 이런 협회나 모든 분들의 임원들이 편파적인 조직들을 형성해서 다른 타 대학의 선수 출신들을 개입 못 하게 하는 경향이 컸었죠.

양: 네, 그렇군요.

김: 그래서 저도 시도팀의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올림픽이라는, 세계선수권이라는 건 굉장히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건데, 꿈과 희망을 4년 동안, 4년 만에 한 번씩 열리는데, 선수들한테는 정말 꿈입니다, 올림픽이라는 것 자체가. 그런데 평가전 과정 속에서, 대표선수를 뽑는 과정 속에서 특정 대학에 편파판정을 일삼고, 판정시비가 속출하고, 특정 선수들에게..

양: 승부조작, 네.

김: 승부조작이라든지 이런 걸로 해서 특정대학만...

양: 몰아주고, 네. 

김: 이런 것들이 실제 저희들때부터, 선배들때부터 있다 보니까. 저도 지도자 생활하면서 시위를 많이 했죠.

양: 네, 정말 항의를 많이 하셨죠.

김: 저도 오랫동안 스포츠계에 있었지만, 깨끗해야 하지 않습니까?

양: 그럼요. 어느 분야보다도 깨끗해야 하는 게 스포츠의 세계인데...

김: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특히 무도를 하는 사람들이 깨끗하지 못해서 제가 너무 많은 시위를 하다 보니까, 제가 유도계에서 좋게 말해 나왔다고 하지만, 사실상 쫓겨난 거죠.

양: 아이고, 쉽게 말해 당시 불합리한 비리 등에 적극적으로 항의하시고 싸우시다가 물러나게 된 건데... 그렇게 20년 전에도 많이 싸우고 항의하고 그랬는데, 지금까지 완전히 치유되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는 게 참 서글픈 것 같습니다. 그런... 네, 말씀하십시오.

김: 안타까운 현실이고요. 유도계의 파문들이 고질적으로 지금까지 몇 십년 동안 반복돼왔던 그런 것들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고 있는데 상당히 안타깝고 창피하고 유도인으로서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가 뭐냐 하면, 지금 언론에서 유도계의 고질적인 병들을 막 보도하고 있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변화가 된다 하면 상당히 앞으로 스포츠 발전을 위해서, 작게는 유도의 발전을 통해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양: 아, 언론에서 이렇게 공론화해주고 있는 되는 과정들이? 네, 네.

김: 네, 네. 그것이 지금뿐만 아니라 20년 전에도 이런 것들이 언론에서 보도되고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해도 변화되지 않으니까...

양: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김: 글쎄요, 저는 그런 (비리) 조직이 워낙 탄탄하게 돼 있고, 그 다음에 그 조직이 아니면 유도계를 이끌어 갈 수 없다는 어떤 권력 행사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권력 행사가 상당히 외부 타 대학 출신들, 지방 유도인들, 이런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내가 예를 들어서, 유도협회나 시합장에서 안 좋은 행위들을 어필하면 "김재엽 입장이 난다(꼴 난다), 쫓겨난다" 이런 인식들이 만연하기 때문에 유도장에서 말을 못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양: 예, 그렇군요.

김: 그래서 언론에서 저도 전화를 많이 받고 있는데, 언론에서 해결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보도만 할 뿐이지, 지금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양: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해결방법이 있을 것 아녜요. 이렇게 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이런 것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김: 해결의 실마리는, 모든 특정대학의 사람들을, 그 사람들이 비리에 대해, 아니면 권력 행사에 대해 언론에서 조직을 없앨 순 없는 거잖습니까?

양: 그건 그렇죠.

김: 그런데 이것은 이미 정치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골이 많이 깊어서 많은 사람들이, 유도를 좋아하는 어린 아이부터 시작해서, 저 대학에 가지 않으면 나는 유도로써 성공할 수 없다 생각하기 때문에 유도인의 인구가 자꾸 줄어드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양: 아, 네.

김: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까지 지금 유도부가 없어지는 실정이거든요. 그런 것의 책임은 당연히 유도협회나 지금 권력행세를 하고 있는 일정 대학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 만약 그들 스스로 책임을 못지고 그런 것을 못 없애면 어떤 공권력이라든지 강제성으로라도, 없애야하는 것 아닌가요?

김: 그렇지 않고, 그런 것 보다는, 제가 항상 주장하는 것이, 전 특정 대학을 안 나왔지만 타 대학 출신도 메달을 딸 수 있고 훌륭한 선수를 배출시킬 수 있다는 건데, 그렇지 않고 특정 대학이 우리 대학에 안 들어오면 너희들은 클 수 없다는 인식을 아이들한테 혹은 선수들한테 심어주고, 그런 걸로 인해서 운동부가 자꾸 없어진다는게 유도인으로서 안타까운 현실이죠.

양: 네, 그렇군요.

김: 저는 유도계를 20년 전에 나왔기 때문에 지금 유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지만 언론을 통해서 보면 한심스럽고 안타깝고 정말 더 많이 보급해서 많은 사람들이 유도를 사랑하고...

양: 네, 저변확대로 정말 제대로 된 유도붐이 일 수가 있는데...

김: 네, 그렇게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했으면 하는 바람이 큰데, 자꾸 이런 걸로 인해서, 내 자식도 유도를 시키겠습니까? 이런 비리나 또는 언론에서 안 좋은 보도들만 나오고 있는데, 과연 유도 인구가 앞으로... 그래도 메달밭이었는데...

양: 맞아요, 요즘은 사양 종목처럼 돼가고 있죠.

김: 네, 침체돼가는 이런 현실이 안타깝다 생각합니다.

양: 네, 요즘 폭행에다가 승부조작, 공금횡령, 비리, 파벌 이런 얘기들밖에 안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유도계 관련 소식들은.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정말 이제는 끊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유도를 사랑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또 우리 국민들이 힘들때 유도가 준 기쁨도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는데... 얼른 이런 것들이 진정되고 개선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교수님. 오랜만에 말씀듣고 목소리 들어서 저는 참 개인적으로 반가웠습니다. 지금까지 80년대 유도영웅이었던 김재엽 교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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