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김도향 선생님
양창욱(이하 양): 11일 '양창욱의 아침저널'[FM 101.9 MHz (서울)] 3부, 목요일 3부는 그립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목요스폐셜, 그 사람 지금'. 오늘은 정말 도인처럼 살아가시는 분이시죠. 또 그렇게 노래하시는 분입니다. 가수 김도향 선생님 만나보겠습니다. 선생님 나와 계시죠?

김도향(이하 김): 네, 안녕하세요.

양: 네, 안녕하십니까. 아침 일찍 감사드립니다.

김: 네, 감사합니다.

양: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김: 어... 잘 먹고 잘 살죠, 하하하.

양: 네, 선생님 댁이 실례지만, 어디시죠?

김: 아, 요즘은 그냥 서울에 있어요.

양: 아, 그러시군요. 언제든 선생님 생각하면, 서울을 벗어난 산과 물이 있는 곳에 기거하시는, 그런 분위기와 느낌이 드는데, 서울에 계시는 군요?

김: 네, 네.

양: 올해가 벌써 데뷔 45주년이라 들었습니다.

김: 그러네요. 진짜 눈 깜빡할 사이네요...

양: 올해 특별히 관련하고 계획하고 계신 것 있는지요?

김: 아니요. 새로 음원을 하나 발표하려고 준비하고 있구요.

양: 네.

김: 한 두 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양: 지금 준비중이시군요?

김: 네.

양: 선생님께서는 원래 처음부터 가수가 꿈이셨어요?

김: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양: 아, 그런 것 아니에요? 그럼 뭐가 꿈이셨어요?

김: 영화감독을 하고 싶어 했는데, 중학생 때부터. 그게 자기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제 주위에 마치, 굉장히 오래 살다 보니까... 자기가 하고 싶었던 대로 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양: 네, 그럼 영화감독을 처음 꿈꾸셨던 계기는 있으실 것 아니에요.

김: 그건 제가 중학교 때 바로 옆집이 하루에 두 편, 세 편 상영하는 우미관이라는 극장이 있는데...

양: 아, 극장이었기 때문에... 네.

김: 저녁마다 마실 가서 매일 영화를 봤죠.

양: 하하, 그러셨구나. 네. 그때 보셨던 기억이 나는 영화가 뭐가 있을까요, 그 시절엔?

김: 제가 중학교 때, 국산영화들은... 나애심씨의 <백치 아다다>, <벙어리 삼룡이> 이런 명작들이 있었구요, 서부영화들은 주로 존 웨인 주연의 영화들...

양: 아, 그 때가 그 시절이군요. 요즘도 가끔 케이블 등에서 디지털로 잘 복원해서 틀어주기도 합니다. 하하. 그렇군요. 그러면 이 영화감독에서 가수로 되는 과정에서, 가수는 사실 노래를 잘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선생님.

김: 저는 팔자에 보니까, 가수가 없어요. 그냥 저는 의사나 그런 쪽인데... 우연히 하여튼 제대하고 집에 좀 살기가 어려워서, 어머니 모시고 살았는데 돈 벌기가 어렵더라구요.

양: 네.

김: 그래서 군대 가기 전에 연습했다가, 군대 갔다 와서 나이트클럽이라든지 카바레든지, 카페라든지 등등 그런 곳에서 바로 오디션 보고 일하기 시작했어요.

양: 아, 네... 천부적으로 가수에 소질이 있으셨던 거네요...

김: 아니요,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 안하고...

양: 아, 그렇습니까?

김: 지금도 제가 노래를 제일 못하고 있어요, 가수 중에.

양: 아, 그렇게 생각하세요?

김: 네, 그래서 제가 매일 연습을 하죠. 그래서 노래도, 어느 예술도 마찬가지지만...

양: 아... 겸손의 말씀을 들으니 오히려 숙연해집니다, 마음이. 그래서 이제 ‘바보처럼 살았군요’, ‘벽오동 심은 뜻은’ 이런 히트곡들도 있으시지만, 그래도 선생님 하면 가장 명징하게 다가오는 게 CM송이에요. 정말 많은 CM송을 작사, 작곡하시고 또 실제로 부르시기도 하셨잖아요. 한 몇 곡이나 작사, 작곡하셨죠?

김: 아... 3천 곡 정도 넘는 거 같아요.

양: 그럼 우리나라 웬만한 제과나 과자, 음료 식품들은 다 이렇게 하셨다 해도 과언이 아닌가요?

김: 다는 아니구요. 한 대여섯 개 관련 오디오 프로덕션이 있었어요. 그 가운데 하나죠. 그런데 이제 %로는 좀...

양: 굉장히 많이 차지하셨던 거고.. 그 중에 하나라고 보기엔 훨씬 더... 네, 하하, 그러셨구나. 돈도 많이 버셨겠습니다. 직접 부르시기도 많이 부르셨잖아요? 3천곡을 다 부르시진 않으셨지만.

김: 그래도 천 오백 곡 정도는 불렀나? 그래요.

양: 아유, 참 많이도... 이게 그런 거에 비법이 있을 것 같아요. CM송은 간결한 선율로 그 제품을 홍보할 수 있게 다가와야 하고, 저희들에게 오랫동안 뚜렷하게 남아 있어야 하고...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것 같거든요, CM송은?

김: 그렇죠. 그런데 제가 우연히 영화감독한다고 영화 보면서 그림과 음악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것이 잠재의식에 많이 녹아서, 그게 전부 CM송으로 표출된 것 같아요. 아주 어렸을 때 15, 16살 때 들어왔던 많은 음악들, 화면들이 한참동안 용해돼 있다가 한 서른 살 되니까 폭발하더라구요.

양: 아, 그렇군요.

김: 아, 그렇게 만들어졌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양: 굉장히 쉽게 쓰시고, 또 금방 쓰시고...

김: 네, 그랬어요. 그렇게 고민을, 고민을 한 곡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그렇게 안 했어요.

양: 아, 그렇군요. 김도향 선생님 나와 계신다니까 문자들이 쏙쏙 들어오고 있습니다. 9404님. 선생님 반갑습니다. 선생님 태교음악으로 태교했던 아이가 지금 군 복무중입니다. 10월에 제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김: 아, 감사합니다.

양: 선생님, 참 태교음악, 명상음악도 많이 발표하셨죠. 요건 뒤 쪽에서 좀 더 얘기를 하겠습니다만, 네. 7175님. 막힌 마음을 허무는 듯한 ‘벽오동 심은 뜻은’ 참 좋구요. 이것도 참 좋지만,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들으며 저도 삶을 되돌아 보게 됏습니다. 네, 저도 ‘바보처럼 살았군요’ 커서 다시 들었을 때는, 이 음악 정말 엄청난, 대단한 음악이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릴 때는 그냥 들었는데, 성인이 되고 인생에 대해 힘들고 이럴 때 특히 더 그런 것 같았습니다. 5261님 정말 반갑습니다. 한창 때 흥얼거렸던 CM송들이 생각납니다. 건강하세요. 3271님. 선생님 노래 참 많이 불렀습니다. 네, 김도향 선생님하고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김: 네, 반갑습니다, 하하.

양: 여전히 팬들이 많으세요, 선생님. 그런데 세시봉의 윤형주 선생님과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김: 네, 제가 선배인데. 그 친구가 가수한 건 저보다 선배죠.

양: 아, 그러시군요.

김: 제가 세시봉에 참여가 안 된 건 그 당시가 저 군대에 있을 당시에요.

양: 아, 그러셨군요.

김: 마침 제가 군대갈 때 그 친구들이 음악활동 하고, 제대할 때 그 친구들도 끝났더라구요. 제가 1970년에 데뷔한 이유가 70년 1월에 제대해서 그렇습니다.

양: 아, 그러시군요. 솔직히 상당히 왜 세시봉 멤버에 참여하지 않으셨나 궁금했습니다. 윤형주, 조영남 선생님 이런 분들과 친하신데... 아, 제대하고 나서 바로 데뷔하셨고, 그 때쯤이면 세시봉은, 이제 트윈폴리오나 이런 팀들은 거의 활동을 접은 그런 시점이었죠?

김: 아니요, 그 때... 트윈폴리오가 헤어지고 그러면서 거의 사라졌어요.

양: 그러니까요. 트윈폴리오의 윤형주, 송창식 등 세시봉 멤버, 이 분들은 다 듀오 활동을 접는 분위기였고, 솔로활동으로 전향하시는 그런 시점이었죠.

김: 네, 저는 투코리언스로 듀엣으로 데뷔했어요.

양: 아, 선생님께선 데뷔를 듀엣으로 하셨구요.

김: ‘벽오동 심은 뜻은’ 이런 노래를 만들어 불렀는데, 갑자기 난리가 났어요. 평생 그 노래 때문에 바쁘게 산 것 같아요.

양: 하하, 그 때까지... 이전엔 들어볼 수 없었던 음악이었잖습니까. 당시만 해도.

김: 그렇죠. 그런데 전 매일 들었던 음악이죠. 굿거리장단에 제 나름대로 약간 서양적인 발성을 하고 시원하게 불렀더니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더라구요.

양: 네, 그렇군요. 지금 제가 얼핏 궁금한 것이, 윤형주 선생님도 CM송을 많이 하셨잖아요? 그러고 보니깐.

김: 윤형주 군이 저와 사무실을 같이 만들어가지고, 둘이 처음에 많이 했어요.

양: 아, 같이 계시니까 두 분이서 많이 하셨군요. 네, 아, 또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7175님이 또 문자를 주셨습니다. 며칠 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랩 음악으로 흥겹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행복한 바보가 돼서 즐거웠습니다. 김도향 선생님 건강하세요. 요즘 후배들이 랩 버전으로도 만들고 그러나 보죠?

김: 아, 예. 하하하.

양: 그런 거 보시면 굉장히 흐뭇하시겠어요.

김: 그런 생각은 없어요.

양: 하하하, 그런 생각은 없어요? 아니, 그런데 특이한 이력 중에 하나가, 제가 참 놀랐는데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의 음악감독을 하셨어요?

김: 아, 네... 초창기에 맡아서 음악들을 제 밑에 작곡가들과 가수들이 많았거든요. 그 때 만들어주고, 중간 중간 다른 노래는 제가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양: 네, 그럼 둘리 노래는 직접 부르신...

김: 둘리 주제가 말구요. 그 뒤에 마이콜.... 그런 노래를... 하하.

양: 아, 그러셨구나.

김: 때에 따라서... 되는 건 제가 해주고 그랬어요.

양: 사실 저도 뭐, 어릴 때 그랬지만 웬만한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둘리 안 보고 자란 애들이 없기 때문에 이 이력은 정말 제가 특이하게 봤습니다. 그런데 1980년에 ‘바보처럼 살았군요’ 이 이후에 산으로 들어가셨어요, 선생님.

김: 그게 산으로 들어갔다는 건 좀 와전됐고...

양: 와전됐군요.

김: 제가 그 속세 생활보다는 산에 왔다갔다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입산은 아니고. 자주 갔죠. 제가 처자식이 있는데 어떻게...

양: 그렇죠, 그렇죠. 그러니까 속세를 버리고 입산하는 그런 개념보다는, 등산보다는 조금 강한 그런 개념이군요? 자주 다니셨군요.

김: 주로 머문 데가 사찰들이었죠. 따라서 운영하는 토굴같은 데 그런 델 많이 돌아다녔죠. 며칠씩 명상하고 내려오고 그렇게 한 거죠.

양: 네, 그랬군요. 사찰에 많이 머무셨군요...

김: 그러면서 산에서 태교음악같은 구상이 떠올랐고, 명상음악 같은 건 그런 데 앉아서 저절로 떠오르죠.

양: 그러니까 이게 입산까진 아니어도 자주 다니셨는데... 굉장히 오래 거기 머무시고, 충분히 산과 물을 가까이 하셨군요, 일반인들보다는.

김: 그렇죠. 1980년에 그렇게 됐죠.

양: 그렇게 하시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습니까?

김: 그 때 바보처럼...을 발표하면서 그 때까지도 정말 바쁘게 살았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보고 칭찬을 많이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엔 전부 내가 한 것 같지 않고...

양: 네.

김: 그냥 내 영혼 속, 머릿속에 슥 스쳐가는 걸 표현했을 뿐인데 그걸 내 거라고 하기도 좀 애매하잖아요. 그게 그럼 거기에 내가 누군가... 뭐, 그런 생각을 시작했어요.

양: 아...

김: 도대체 내가 누구지? 자꾸 사람들이 나보고 곡 잘 썼다고 하는데, 내가 쓴 것 같지 않거든요. 그런 의문점들이 막 생기기 시작할 때... 그때 마침 산 생활을 즐기던 수련하는 젊은 친구들을 만나 그 친구들이 주위에 오면서, 같이 어울리면서 그게 인연이 돼서 다니기 시작했어요.

양: 아...

김: 인연이에요.

양: 요즘도 그럼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주 산에 다니시는지요?

김: 아, 그게 제가 2000년이죠. 15년 전에 막 다니면서 수련하고... 그게 너무 재밌었어요. 재미없으면 그거 못 해요.

양: 그렇죠. 누가 시켜서는 못 하는 겁니다.

김: 마누라 눈치는 많이 봤지만, 하하. 제가 제주도에 치매노인 요양원에서 봉사단이 봉사하는데 노래를 좀 해달라고...

양: 아, 네.

김: 그래서 내가 20년을 노래 안 했는데 어떻게 하나... 그랬는데 하여튼 가게 됐어요. 그래서 거기서 노래를 했습니다. 치매노인 요양원에서. 그런데 한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시더니 “김도향이다!” 소리치는 거예요. 그래서 숙연해지고 막 울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노래하다가 저도 좀 이상해졌죠. 그래서 노래하다 내려와서 왜들 그러시느냐고... 그랬더니 저 할머니가 10년 동안 말씀을 못 하셨는데 그 순간에 일어나서 얘기를 했다 이거에요. 그래서 저도 깜짝 놀라서 아, 이게 노래한다는 게... 참 놀라운 것이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가수나 해볼까...

양: 아, 예.

김: 그래서 노래 연습을 많이 해서 가수로 다시 재데뷔를 했죠.

양: 예. 그러니까 마치 절필하듯이 글 쓰시는 분들이, 노래를 한 20년 안 하셨군요?

김: 그렇죠.

양: 선생님, 노래 안 하시면 안 되죠... 하하.

김: 그 대신 음악을 했죠.

양: 네, 직접 노래만 안 부르신 거고... 그러시군요. 아니 그래서 어쨌든, 산 이미지, 어떤 명상음악, 태교음악 이런 것들을 이후에 많이 만드시고 그래서, 이런 이미지들 때문에 한참 후에 뵌 외모가 너무 도인처럼 보이셨어요.

김: 하하하.

양: 그래서 그런 이미지들로 많이 고정되고... 기 수련, 이런 느낌으로도 많이 가고... 건강 얘기도 많이 하시고 그러니까. 젊은 세대들은 그런 쪽으로 인식을 많이 하고 그런 경우가 많았죠. 그러다 선생님, 굉장히 젊은 시절에 조영남 선생님과 찍은 사진을 봤는데, 아... 이런 시절도 있으셨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1090님. 지금도 LP판으로 한 번씩 노래를 듣습니다. 김도향 선생님 목소리 오랜 만에 들으니 정말 반갑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이렇게 문자 주셨습니다. 6386님. ‘바보처럼 살았군요’는 지금도 참 좋은 노래입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많은 분들이 선생님 건강을 염려하시는 그런 나이가 되셨군요. 진짜, 네. 7175님. 세상을 다 품은 것 같은 큰 사람. 선생님 우리 곁에 있어 참 행복합니다. 이렇게 문자를 주셨습니다.

김: 너무 과찬이십니다.

양: 선생님, 이제 시간이 다 돼서, 마무리를 좀 지어야겠습니다. 선생님, 남은 여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꿈, 요것만큼은 더 이루고 싶다. 이런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김: 저는 사실 꿈을 안 꿔요.

양: 하하, 꿈을 안 꾸세요?

김: 매일 아침이 그... 태양을 만나고 바람을 만나고 내 주위 식구들이 건강하게 일어나는 게 너무 기뻐서 특별히 꿈을 꿀 일은 없어요, 사실. 그런데 이렇게 자꾸 물어보면, 내가 뭘 하긴 해야겠지? 하며, 이렇게 많이 쌓여있는 게 있죠.

양: 네, 그러시군요.

김: 지금 이제, 다음 번 작품은 치매에 관련된 명상음악을 만들어야겠다, 그런 구상을 한 지는 많이 됐어요.

양: 아, 그런 어떤 작품 활동에 대한 계획은 늘 있으시군요?

김: 글쎄, 있는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하.

양: 네, 그러시구나. 책도 많이 내셨잖아요? 진짜. 건강 관련... 하하.

김: 두, 세편 냈는데요... 구차한 건 안 써요. 그리고 책을 쓰니까요. 단점이,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해석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 이거 쓰는 게 아니구나... 그 다음부터 안 써요.

양: 보시는 분들이 이렇게 또,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시는 군요.

김: 제가 원하는 방향하고는 달리, 산불이 퍼지듯이 잘못 가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양: 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말씀 정말 감사드리구요. 늘 건강하시고 또 좋은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 네, 감사합니다.

양: 지금까지 가수 김도향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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