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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세계종교로서의 '불교'
홍진호 기자 | 승인 2015.06.06 16:30

온 나라가 중동호흡기 증후군, 메르스로 뒤숭숭하다. 메르스 사태로 불교계 행사가 줄줄이 연기 또는 취소되면서 취재거리도 한결 줄었다. 그 어느 해보다 정신없이 부처님오신날을 보낸 이후 찾아온 작은 쉼표 같은 느낌이다. 부처님오신날에 맞춰 쓸려고 마음먹었던, 그러나 바쁜 취재로 마음을 접었던 불교에 대한 단상을 몇 자 적어본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렸을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여의도에서 시작하는 연등행렬에 참가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동국대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하고, 불교 방송사와 언론사에 일한지 벌써 13년 째 이다. 그 전 직장에서는 PD로 이제는 기자로 일하지만, PD와 기자를 떠나, 그저 부처님 밥 축내지 않고 불교 일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해 두해 나이가 들어서인가, 올해는 부처님오신날의 의미가 더욱 새로워지고 각별했다.
 
인간의 근원적 고통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으며, 만인의 평등을 추구했던 부처님의 가르침과 혜안이 이전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불교의 이러한 힘이 본토에서 흔적만이 남은 불교를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로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혼자 곱씹어 보게 되었다.
 
세계 4대 종교는 많은 이들이 아시다시피 기독교와 이슬람교, 불교, 유교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 종교의 탄생 시기가 비슷하다. 예수가 탄생한 기원 1세기를 기점으로 600년 전에는 부처가, 600년 후에는 무함마드가 태어났다.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 또한 부처와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6세기에 태어났다.
 
왜 그럴까? 왜 이전도 아니고 이후도 아니고 그때 4대 성자가 비슷한 시기에 출현해서 4대종교가 출현한 것일까? 몇 가지 이유 중에 하나는 그 당시 농사로 인한 잉여생산물이 생김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이 심해 졌기 때문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물질문명을 뒷받침해 줄 정신문명의 필요성이 4대 종교의 탄생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로, 인간은 오랜 세월 절대적인 굶주림에 시달려 왔다. 다른 동물에 비해 몸집도 작고 힘도 없었던 인간은 냉혹한 자연과 포식자 앞에서 언제나 약자였다. 그러다가 인간은 수렵과 사냥을 뛰어넘어, 오랜 굶주림에 해방 될 획기적인 발명에 이른다. 바로 농사다. 자연이 주는 것을 먹는 게 아니라 인간이 자연을 이용해 먹을 것을 만드는 것이다.
 
떠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 머물며, 씨를 뿌려 곡식을 얻고, 동물의 고기를 사냥이 아닌 사육을 통해 얻게 되었다. 언제나 먹을 것이 모자랐던 인간은 이제 생존에 필요한 양을 먹고도, 식량이 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 오랜 세월 유지되던 평등한 공동체 사회는 잉여생산물의 출현과 함께 사라졌다.
 
사회는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가 나뉘었고, 조금이라도 더 가지기 위해 전쟁이 시작됐다. 식량생산에 따라 인구는 늘었으나, 늘어난 인구를 감당할 만큼의 식량을 생산 할 수 있는 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땅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었고, 이 전쟁에서 싸우는 이들 곧 무사 계급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계급 사회의 시작을 알렸다.
 
물론 각 지역별로,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계급제도의 탄생배경은 저마다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대동소이하다. 특히 정치적 제도가 미약했던 시기에 계급이란 제도로 사회가 분화되자, 기존 종교는 제도를 대신해 계급제도 유지에 더욱 힘을 쏟았다. 그러자 피지배 계층이 이에 반발했고, 혼란한 사회에 민중을 이끌었던 것이 4대 종교이다.
 
기독교의 사랑, 이슬람교의 평등,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은 그 옛날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지만 평화로웠던 그 시대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해법을 담고 있는 것이다.
 
부처는 기존 인도사회에서 공고하게 뿌리 내려진 카스트 제도의 타파를 주장했고, 예수는 로마제국 시대 핍박받는 민중의 지도자로 등장했다. 무함마드 또한 아랍 민족 간의 갈등이 정점에 달했을 때 혜성처럼 등장했다. 공자는 어떠한가? 춘추 전국시대의 혼란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가르침이 종교화 된 것이 바로 유교이다.

특히 불교는 카스트제도 철폐와 함께 여성의 출가 허용 등 그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상을 피력했고 실천했다. 지금은 힌두교에 융화되고 이슬람교의 박해 속에 본토에서 불교가 자취를 감췄지만, 인도에서도 한 때 불교가 본토의 종교로서 추앙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인도 최초의 통일왕조라 일컬어지는 마우리아 왕조 때이다. 그리고 이 마우리아 왕조의 황금기를 연 사람이 중국의 진시황과 비견되는 ‘야쇼카 대왕’이다. 중국과 인도의 첫 통일왕조의 왕이라는 점에서 진시황과 아쇼카 대왕은 비슷하지만, 둘의 통치 스타일과 이후의 평판은 사실 180도 다르다. 진시황이 분서갱유와 불로초, 아방궁, 거대한 능묘 건립 등의 오명에 휩싸여 있지만, 그에 반해 아쇼카 대왕은 인도에서 전륜성왕이라고 불린다.
 
전륜성왕은 인도의 고대신화에서 통치의 수레바퀴를 굴려, 세계를 통일하고 지배하는 이상적인 제왕을 뜻한다.
 
마우리아 왕조의 3대왕인 아쇼카 대왕은 동쪽으로는 그 당시 어떠한 왕조도 정복하지 못한 칼링가 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서쪽으로는 인더스 강을 지나 아프가니스탄 동부까지 남쪽으로 크리슈나 강 유역까지, 북쪽으로는 까쉬미르 등 현재의 네팔 지역까지 점령했다. 물론 인도 남부의 일부는 통치하지 못했으나,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인도 반도 전체를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 한 것이다.
 
특히 아쇼카 대왕은 단순한 정복 군주로서의 위대함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에 비견되는 성군으로 칭송을 받았다. 불교의 불상생과 비폭력에 근거한 정치를 실현했다. 국민은 물론 아픈 동물들 까지 치료할 수 있는 의료시설을 만들고, 여행을 다니는 국민들을 위한 숙박소를 마련하고, 음료수 등도 제공했다. 길에는 가로수를 심었고, 관개시설도 설치했다. 자신이 정복한 지역을 불살생과 비폭력에 근거해 다스려 환송받았다.
 
특히 아쇼카 대왕은 세계사적으로 불교가 세계종교로 발돋움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제왕으로 평가된다. 그는 부처의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을 비롯한 불교 4대 성지를 10년에 걸쳐 265일간 순례를 하고 각지에 절과 탑을 세워 불교를 보호했다.
 
그의 성지 보존 노력과 그가 각지에 세운 아쇼카 석주는 현재까지도 불교 연구에 있어서 절대적인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전법에 힘썼다. 불교를 다른 곳으로 전파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과 동생을 전법사로 인도와 가까운 스리랑카와 미얀마에 파견했다. 거대한 통일왕조의 왕족이 직접 인근 국가로 가 불교를 전한 것이다.
 
전법사의 파견은 더 광범위하고 지속적이었다. 시리아와 이집트, 마케도니야, 그리스까지도 전법사를 파견해서 불교의 가르침을 전했다.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에 까지 이른 것도 이 당시 아쇼카 대왕이 파견한 전법사 때문이다. 안으로는 8만개의 절과 탑을 세우고, 전 세계 곳곳에 전법사를 파견했으니 불교 세계화의 첫 걸음은 아쇼카 대왕이 내디뎠고, 중국이 불교를 받아들임으로써 불교는 세계종교가 된 것이다.
 
물론 중국이 불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힘들었다. 유교와 도교의 협공에 불교가 중원의 종교와 사상으로 유입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효와 충, 예로 상징되는 유교와 불교는 비슷한 점을 찾기가 어렵다. 그 당시 유교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가 물려준 머리카락을 한 올도 남김없이 밀어버리고, 의복을 중시하는 유교와 반대로 천 조각 하나를 걸치니, 불교사상에 귀를 기울이기 전에 거부감부터 들었을 것이다. 이 뿐 만인가, 성인 남자가 장가를 안 가고, 후손을 잇지 않는다고 하니, 효를 중시하는 유교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너무도 유연하게 중국사회에 융화되고 본토의 종교로 성장했다. 불교학자들은 당시 중국의 전법사들이 도교의 용어와 사상을 빌려 불교를 알리고 포교한 것이 불교 현지화의 큰 힘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는 세부적인 방법론이다. 불교가 중국 내에서 받아들여 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불교가 인도 본토에서 사라진 이유와 같다. 카스트 제도의 철폐를 내세웠던 부처님의 평등사상은 유교라는 지배계급의 종교이자 정치체제에 갇혀 있던 민중들의 마음에 큰 파장을 던졌기 때문이다.
 
불교사상을 보면 인도의 힌두교문명을 배경으로 탄생됐으나 그 틀을 깨뜨려 버렸다. 아트만을 부정하는 무아사상 등은 힌두교와 불교를 근본적으로 가르며, 이외에도 그 당시 사회에 반하는 혁명적인 사상이 내포 돼 있다. 이것이 그 당시,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통용되지 안 않지만, 이러한 불교의 사상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녔기에 결국 세계의 종교가 된 것이다.
 
두려움을 떨치고 자신이 탄생된 틀을 깨버리고 방법에 규정되지 않고 진화하며 세계종교로 발전한 불교를 보면, 한 국가와 사회, 조직, 그리고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많은 생각을 남기게 한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가 온 나라를 뒤덮은 이때, 과연 부처님은 어떠한 가르침을 내릴까? 메르스가 준 잠깐의 여유에 마음은 오히려 더욱 분주하다.

홍진호 기자 / jino413@dreamwiz.com

홍진호 기자  jino41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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