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종어보, 해외 소장자의 자발적 반환 첫 사례...향후 해외문화재 환수에 좋은 본보기 될 듯

▲1471년 제작돼 1943년 이후 미국으로 유출됐던 조선왕실문화재 '덕종어보'가 53년 만에 우리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이 아버지 의경세자, 덕종을 기리고 추존하기 위해 만든 도장이다. 해외 소장자와 협상을 통해서 돌려받은 첫 사례여서 앞으로 문화재 환수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창욱 : 3일 '양창욱의 아침저널' [FM 101.9 MHz (서울)] 3부입니다. '금요한마당 - 주말이 좋다' 시작하겠습니다. 최근에 미국으로 유출됐던 조선 왕실 문화재 덕종어보가 53년 만에 우리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해외 소장자와 협상을 통해서 돌려받은 첫 사례여서 앞으로 문화재 환수에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오늘 '금요한마당 - 주말이 좋다' 시간에는 이 덕종어보 얘기를 좀 더 해 보겠습니다.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이상규 교수님 전화연결 돼 있습니다. 교수님 나와 계시죠?

이상규 : 네, 안녕하세요.

양창욱 : 예, 아침 일찍 감사드립니다.

이상규 : 네네.

양창욱 : 덕종어보가 우리나라로 이제 공식 반환이 됐는데 덕종어보가 뭐죠?

이상규 : 예. 덕종어보는 쉽게 말씀드리면은 덕종 임금의 도장이라는 뜻인데요. 이 덕종은 아마 여러분들, 청취자 여러분들, 석보상절이라면은 다 아시고 계실 것 같은데요. 세조의 맏아들이 바로 덕종이었습니다. 의경세자였는데 세조가 임금에 등극하자 세자로 책봉이 돼있던 의경세자가 죽게 됩니다.

양창욱 : 예예.

이상규 : 그래서 세조가 굉장히 상심을 하면서 그의 아들인 덕종, 의경세자의 천도를 빌고 또 자기 어머님의 극락왕생을 비는 뜻에서 석보상절이라는 책을 만들었었죠. 바로 그 비운의 주인공이 바로 덕종이라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데요. 바로 성종 임금의 아버지죠. 이 의경세자가 죽게 되자 화관왕으로 추존이 됩니다. 추존을 하면서 쉽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임금으로 추존한 로고로서 덕종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그래서 만든 옥쇄가 바로 덕종어보인데요. 덕종어보는 황동에 금도금을 한, 입힌 것으로 약 4.45kg, 가로 세로 약 10cm 가량의 아주 화려한 임금의 도장이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양창욱 : 예, 그렇군요. 근데 이 덕종이 이제 스무 살에 이제 요절을 하게 되잖아요? 그쵸?

이상규 : 네, 그렇죠.

양창욱 : 의경세자가. 그쵸? 이분이 세조의 큰아드님이셨고요?

이상규 : 맏아들.

양창욱 : 예. 그렇니깐 오래 살아계셨으면 당연히 왕위를 계승하셨어야 할 분이 이제 덕종이신 거고.

이상규 : 그렇죠. 20세에 일찍 요절함으로써 참 안타까웠죠. 또 세조께서 무척 아끼고 사랑했던 의경세자가 죽게 되자 세조가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그런 업보를 소위 씻기 위해서 그리고 또 자기 아들의 극락천도를 위해서 석보상절이라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글로 쓴 것입니다. 석보상절은 그런 원업들을 없애기 위해서 만든 책이죠.

양창욱 : 예, 그렇군요.

이상규 : 어떻게 보면 이 덕종어보는 그 당시에 만들어서 종로 영녕전에 보존을 하고 있었는데 역대 임금들 어보들이 여러 가지가 있죠. 그것을 영녕전에 보관을 하고 있었는데 해방이 되기 전에 1943년까지 우리 종로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양창욱 : 아아.

이상규 : 그래서 이것이 없어진 것이 아마 해방과 6.25전쟁을 통해서 없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요. 대표적으로 6.25 전란 때 아마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고 있는데요. 토마스 스팀슨이라고 하는 미국 할머니는 많은, 컬렉션으로 많은 조선의 유물들을 수집했습니다. 그러다가 토마스 스팀슨의 외손자가 할머니가 돌아가실 무렵에 미국의 그 시애틀 미술관에다가 이 유물들을 전부 다 기증을 했습니다. 그 기증 유물 중의 하나가 바로 덕종어보가 되겠는데요. 마침 우리나라에서 문화재청과 그리고 또 시애틀 미술관의 담당자 간에 아, 이것은 분명하게 조선의 임금의 도장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대한민국으로 반환을 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라고 하는 그런 우리 측의 요청에 따라서 시애틀 미술관 관련 관계자들이 만장일치로 이것은 한국의 문화의 상징이고 또 분명한 한국의 물건이기 때문에 반환하는 것이 옳다, 이렇게 해서 해외 유출 문화재 중에서 소장기관에서 자발적으로 반환이 만장일치로 의결이 됨으로써 우리나라로 다시, 우리 품으로 되돌아온 것이죠.

양창욱 : 예예. 잠시만요, 교수님. 지금까지 말씀을 좀  차근차근 정리를 해봐야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성종이 아버지 덕종을 기리기 위해서, 추존하기 위해서 이제 덕종어보를 만들었고 이것이 내려오면서 1943년도까지는 종로에 있었다는 거죠, 이것이?

이상규: 그렇죠.

양창욱 : 그러면 1943년 이후에 누군가에 의해서 미국으로 반출이 된 거네요?

이상규 : 그렇죠.

양창욱 : 예. 누가 왜 가져갔을까요? 이건 모르는 거죠?

이상규 : 그것은 지금 추정을 할 수 밖에 없는데요.

양창욱 : 어떻게 추정이 되나요?

이상규 : 6.25 전쟁 동안에, 대체적으로 미국으로 반출된 문화재들은 6.25를 전후해서 많이 반출이 됐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때 반출이 돼서 1963년도에 미국 시애틀 미술관으로, 1963년도에 토마스 스팀슨의 소장품으로 들어간 다음에 시애틀 미술관으로 간 거죠.

양창욱 : 예. 그러니까 이제 토마스 스팀슨이란 할머니가 이것을, 미국에 있는 걸 구입해서 갖고 있다 시애틀 미술관에 기증을 하는군요.

이상규 : 네네, 그렇죠.

양창욱 : 예예, 그렇게 되는군요. 근데 그때가 1963년이라고요?

이상규 : 네네.

양창욱 : 예. 그 후로도 굉장히 오랜 세월에 있다가 저희 품으로 온 거네요?

이상규 : 그렇죠. 아까 양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약 60년 만에 되돌아온 것입니다.

양창욱 : 예. 그렇니까 60년 동안 이 덕종어보는 시애틀 미술관에 있었던 거고요? 그럼 60년 동안 저희 한국 정부나 관계자들은 시애틀 미술관에 이게 있다는 건 알았겠네요?

이상규 : 아, 그렇죠.

양창욱 : 그런데 이거를 가져올 생각들을 60년 동안 안 하셨나요? 노력들을.

이상규 : 우리나라 정부뿐만 아니고 문화재 반환을 요청하는 많은 시민단체, NGO 등 민간의 차원에서도 반환 요청을 하고 이런 노력들이 곳곳에서 지금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에 일본으로부터 조선왕조실록이 다시 반환이 됐던 거라든지 또는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 합의가 됐던 외규장각 고문서들은 지금 추진이 되다가 중단이 돼버린 그런 사례들도 있죠.

양창욱 : 예. 그렇니까 덕종어보를 반환하기 위한 노력들은 구체적으로 없었냐고요? 지난 60년 동안. 이번 이전에.

이상규 : 아, 그것은 계속 지속됐던 것은 아니고 최근에 우리 문화재청에서 시애틀 미술관에 공식적으로 이것은 분명한 한국의 물건이다, 유물이기 때문에 반환을 바란다라고 하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 요청을 시애틀 미술관의 담당자들이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거죠.

양창욱 : 받아들인거고, 예...

이상규 : 네, 만장일치로. 사실은 그게 아마 시애틀 미술관에서도 그 토마스 스팀슨으로부터 기증을 받은 유물이지만 아마 토마스 스팀슨은 아마 밀거래로 돈을 주고 샀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우리의, 대한민국의 문화재라고 하는 것이 너무 명백하니까 이것이 만장일치로 되돌아왔다라고 하는 거죠. 어떤 면에서 앞으로 해외 전역에 나가있는 우리 문화재 반환을 하는 데 하나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양창욱 : 예. 그러니까 이 시애틀 미술관이 자발적으로, 기증하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돌려줬기 때문에 이게 이제 한 어떤 전범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씀이신 것 같고요.

이상규 : 아, 그렇습니다.

양창욱 : 예예. 토마스 스팀슨, 이걸 처음으로 구입해서 시애틀 미술관에 기증하신 이 분은, 고미술품 무슨 수집가 그런 분이셨나요? 뭐하시는 분이셨죠?

이상규 : 아, 그렇습니다.

양창욱 : 아.

이상규 : 고미술품 수집가였습니다.

양창욱 : 예예, 그런 분이셨군요.

이상규 : 네네.

양창욱 : 예. 그렇니까 많은 분들이 이렇게 좀 마음을 착하게 내시니까 거기서 전해지고 또 기꺼이 자발적으로 저희 품에 오고 이렇게 되는 거군요?

이상규 : 그렇죠. 문화재라고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개인의 자산 가치가 아니고 인류의 문화유산이고 한 나라의 문화자산이기 때문에 이것을 소유적 가치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얼마 전에 훈민정음 해례본도 마찬가지죠. 전 세계 유일의 문화자산임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이 소유의 욕망에 어두워져서 은닉하고 은폐하고 훼손함으로써 인류의 문화자산이 영원히 소멸할 수도 있는 것이죠.

양창욱 : 예예.

이상규 : 그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이번 덕종어보의 반환 조치는 대단히 여러 가지 시사적인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문화재가, 통계에 의하면은 열일곱 나라에 약 7만 6천여 점이 나가있는데 일본이 45%...

양창욱 : 지금까지 반환된 거 말고 7만 6천여 점 정도가, 지금 나가있는 게 그 정도 반출이 돼있는 거예요?

이상규 : 그렇죠.

양창욱 : 예예.

이상규 : 일본에 45%, 미국이 22.2%, 프랑스가 4%인데요. 이 문화재 유출은 대체적으로 전란과 관계가 있습니다. 임진왜란을 통해서 조선 왕실의 문화재가 대량으로 빠져나가고 또 식민지, 조선, 한일합방에 의한 기간 동안, 36년 동안 우리나라의 주요 문화재들이 거의 완전히 일본에 수탈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양창욱 : 예예, 그렇군요.

이상규 : 그뿐만 아니고 6.25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주둔했던 미군들에 의해서 또 대량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이 해외에 반출이 되고 프랑스는 병인양요...

양창욱 : 예, 병인양요. 예.

이상규 : 병인양요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주요 문화재들이 반출됐는데 이것이 일종의 문화재 반출은 식민지 제국주의 전략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소위 강대국의 문화재를 탈취해나감으로써 우리들이 열등감을 느낄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드는 고도의 제국주의 문화 전략이라고...

양창욱 : 볼 수 있군요.

이상규 :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됐고 그렇니까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재를 다시 우리나라로 되돌려놓는 노력을, 국가뿐만 아니고 전 국민들이, 시민단체나 여러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된다. 특히...

양창욱 : 예예. 그런데 교수님, 만여 점 정도를 정부가 돌려받았다고 하는데도 7만 6천여 점이 아직 나가있는 상황인 거죠?

이상규 : 실질적으로 칠만 점도 더 넘습니다.

양창욱 : 예예. 근데 제가 좀 궁금한 것이 이게 대부분 이렇게 불법 반출된 것을, 과거의 어떤 역사 시점에 불법 반출된 것을 지금 소유하고 있는 이 국가에서도 알고 있잖아요?

이상규 : 그렇죠.

양창욱 : 그러면 정부 차원에서 이제 그거 불법으로 반출된 거니까 이제 그만 돌려 달라, 이렇게 정부 차원에서 요청을 하면 그 나라는 당연히 응해서 돌려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상규 : 하하.

양창욱 : 왜 그걸 안 돌려주죠? 저는 이게 너무 궁금해요.

이상규 : 불법 반출만이 아니고 현재도 우리나라 문화재보호법이 너무나 느슨하기 때문에 그런데도 우리 문화재, 주요 문화재들이 상당수가 밀반출,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일본의 매우 유명한 학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나라 유학생을 앞장세워서 아주 중요한 유물들을 매입해서 유학생 가방에 넣어서 데리고 나갑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문화재를 소위 밀반출하는 사례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양창욱 : 예. 그런데 정부 차원에서 그 불법 반출되고 밀반출된 문화재를 좀 돌려달라고 하면은 그 쪽도 정부 차원에서, 공식 라인에서 왜 기꺼이 응하지 않느냐고요.

이상규 : 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매입해서 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양창욱 : 뭐를 해서요?

이상규 : 사서.

양창욱 : 아, 사서. 매입을 해서 간 경우가 있다. 예.

이상규 : 그렇죠. 그래서 이 나라 정부에서 지금 문화재 보호...

양창욱 : 근데 정식으로 매입을 해서 나간 거면 어떻게 보면 불법 반출이 아니잖아요?

이상규 : 불법 반출이죠.

양창욱 : 그것도 불법 반출로 보는 겁니까?

이상규 : 못 하게 돼있는 것을, 이것을 교묘하게...

양창욱 : 아, 교묘하게. 예.

이상규 : 소위 한국의 유학생들을 통해...

양창욱 : 장물 비슷하게 이렇게 좀 불법적인 방법으로 매매가 이루어지면은...

이상규 : 그렇죠, 그렇죠.

양창욱 : 아, 그런 경우에는 돌려받기가 힘들어지는군요.

이상규 : 그래서 사실 문화재 중의 상당수는 이게 밀반출인지 매입을 해서 나갔는지 등등이 판단이 잘 서질 않습니다.

양창욱 : 아, 그래서 어려움이 있군요, 반환에.

이상규 : 아, 그럼요. 그리고 일본에 반출된 문화재들 중 국가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그래도 보존 상태도 양호하지만 개인적으로, 소위 기호, 개인적인 기호품으로서 팔려나가거나 거래가 된 것들은 거의 반환이 어렵다, 불가능하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참 문화재 반환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애매하고 대단히 난해한 일 중의 하나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양창욱 : 예, 알겠습니다. 5351님, 덕종어보가 우리나라에 되돌아와서 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일제 때나 6.25 때 도난당한 다른 문화재들도 전부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5351님이 문자를 주셨습니다. 뭐 정부 차원에서도 계속 좀 노력을 하고 있는 거죠? 어찌됐든 간에.

이상규 : 아, 그렇죠.

양창욱 : 예, 쉽지 않아서 그렇지.

이상규 : 네네.

양창욱 : 예. 계속 노력을 하고 있군요.

이상규 : 그리고 많은, 그동안에 성과들도 많았습니다.

양창욱 : 예. 근데 교수님, 저희가 지금 다른 나라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있죠?

 이상규 : 아, 있죠.

양창욱 : 예. 저희도 잘 안돌려줍니까?

이상규 : 그렇죠.

양창욱 : 아아. 저희도, 우리나라도 잘 안 돌려주는군요.

이상규 : 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렇게 많지는 않은 편이고.

양창욱 : 예. 그렇겠죠. 저희야 뭐 이렇게 약탈이나 침략 같은 것을 한 적이 없으니...

이상규 : 아, 그렇습니다. 네네.

양창욱 : 어쨌든 다른 나라 문화재를 우리나라도 이제, 우리 정부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역시 쉽게 돌려주지는 않고 있다?

이상규 : 그렇죠.

양창욱 : 예. 그럼 뭐, 다른 나라들이 안 돌려준다고 저희가 계속 뭐라고 할 일만도 아니군요.

이상규 : 하하하. 네네.

양창욱 : 예. 어찌됐든 이번 일을 계기로, 이 덕종어보 반환을 계기로 이렇게 자발적으로 기증하고 돌려주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상규 : 네네.

양창욱 : 예. 문화재 환수, 이거 뭐 백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이상규 : 네, 감사합니다.

양창욱 : 지금까지 '금요한마당 - 주말이 좋다',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이상규 교수님과 함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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