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욱 : 26일 '양창욱의 아침저널'[FM 101.9 MHz (서울)] 1부, '불교를 말하다' 시간입니다. 20세기 한국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분이죠, 성철 큰스님. 최고의 선지식이십니다. 항상 중도사상을 강조하셨는데 현대를 살고 있는 지금, 이 중도사상의 의미가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도사상이란 무엇이고 현대사회에서 중도사상이 왜 필요한지 오늘과 내일, 양 이틀간에 걸쳐서 알아보겠습니다. 한국문화연수원 박희승 교수님 전화연결 돼 있습니다. 교수님 나와 계시죠?

박희승 : 예, 안녕하세요. 박희승입니다.

양창욱 : 예, 아침 일찍 감사드립니다.

박희승 : 예.

양창욱 : 성철스님의 중도사상이 담긴 『백일법문』이라는 책이 있지 않습니까?

박희승 : 예, 그렇죠.

양창욱 : 예. 지난해 말에 이제 증보판이 출간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희승 : 예, 그렇습니다.

양창욱 : 이 『백일법문』이 어떤 불서(佛書)죠?

박희승 : 아,『백일법문』은 조계종단이 출범 이후에 처음으로 해인사에 총림이 지정이 되었습니다. 그게 이제 1967년인데요. 그 해 첫 동안거에 성철스님께서 방장에 추대됐는데요. 불교란 무엇인가, 영혼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해서 100일 가까이 법문을 했습니다. 그 법문을 제자 되는 원택스님이 책으로 펴낸 것이 이제 『백일법문』이 됐습니다.

양창욱 : 아, 그렇군요. 근데 잠시, 제가 늘 좀 궁금한 게 성철스님 스승은 어떤 분이세요?

박희승 : 성철스님 스승은 이제 동산스님이라고요, 주로 범어사와 해인사에 오래 계셨고 주지를 지낸 동산스님이 이제 성철스님의 스승이십니다.

양창욱 : 예, 그렇게 되는군요. 근데 이 『백일법문』이 왜 한국 불교의 교과서라는 별칭이 붙었습니까?

박희승 : 아, 불교가 이제 굉장히 심오하고 자비의 가르침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불교는 팔만대장경이라는, 그 경전이 방대하지 않습니까? 또 한문으로 돼 있고. 그래서 기독교는 바이블이고 이슬람은 코란 한 권이면, 한 권으로 모든 교리가 정리가 되는데 불교는 팔만대장경이다 보니까 굉장히 어렵죠. 그래서 아마 성철스님께서도 이런 문제의식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신의 오랜 수행 체험과 또 약 한 10년 동안 두문불출, 문 밖을 안 나가면서 이제 대장경을 섭렵하신 후에 100일 동안 법문을 정리합니다. 불교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그래서 이제 당신이 공부를 한 결론이 이제 불교의 핵심은 중도라는 것을 이제 선언을 한 거고요. 또 부처님의 깨달음이 중도여서 우리도 중도를 깨달으면 생로병사를 해탈해서 영원히 행복할 수가 있다, 이런 입장을 이제 간명하게 정리해놓은 것이 이제 『백일법문』의 가치가 되겠습니다.

양창욱 : 그렇군요, 교수님. 그러면 『백일법문』의 주제이자 지금 우리 불교, 부처님의 근본사상인 중도사상이란 뭐죠?

박희승 : 중도라는 것은 이제 개념적으로는 대립하는 양극단에 집착하지 말고 가운데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리를 이제 중도라고 하거든요.

양창욱 : 아, 가운데에도 집착하지 않는군요.

박희승 : 예예. 그래서 대부분 양극단, 이제 우리가 흔히 많다/적다, 있다/없다, 높다/낮다 이렇게 우리는 항상 이분법적으로 생각합니다. 뭐 지위가 높다, 낮다라든가 또 재산이 많다, 적다라든가 권력이 있다, 없다든가 이런 식으로 비교하고 분별하는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살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제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이런 비교하고 분석하는 양극단의 생각에 집착하고 있으면 우리가 마음이 중도가 되지 못해서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대립하고 갈등하면서 살게 된다, 이런 입장입니다. 그래서 이 양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쳤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이제 자기존재원리, 자기 마음을 알아가지고 영원히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런 것을 이제 깨쳤다는 겁니다.

양창욱 : 예. 일반 저희들도 깨칠 수 있어요?

박희승 : 물론이죠. 우리 선(禪)에서는, 선종에서는 이제 우리가 본래 다 부처라고 보는 입장이거든요. 근데 성철스님이나 부처님이 깨치고 보니까 우리 마음이 본래 부처님 마음처럼 영혼이 자유롭게 해탈돼 있는데 양변에 집착함으로 인해가지고 우리가 그걸 못 보고 있다, 이렇게 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양변을 버리고 지혜만 일으킬 수 있으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가 있습니다.

양창욱 : 아, 그렇군요. 근데 이 불교계도 그렇고 또 현대, 지금 우리 사회도 그렇고 이 중도사상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지금 불교계에 이런저런 안타까운 사건들을 보면요. 누구보다 이 중도사상에 지금 몰입하셔야 될 스님들께서 중도사상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박희승 : 예, 그 점은 뭐 저도 참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고요. 저도 남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뭐 이런 얘기를 하는 거 자체가 조심스러운데요. 근데 이제 그러나 크게 보면 어느 조직이든 갈등이 없는 조직은 또 없습니다.

양창욱 : 아, 그렇군요. 예.

박희승 : 예. 어디에나 크고 작은 갈등은 있기 마련인데요. 그것을 이제 지혜롭게, 그 갈등을 지혜롭게, 중도의 지혜로 이제 다뤄나가고 이렇게 해결해나가는 게 이제 그 부처님의 가르침이거든요. 또 그 사상이 이제 중도에 있는 거고. 근데 왜 그러면 이제 우리 이 교계가, 또 한국 사회나 이런 데가 어려운 갈등에 처해 있나하는 문제가 있는데요. 그것은 저는 중도에 대한 이해나 또는 중도에 대한 실천이 부족한 데서 오지 않나,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양창욱 : 예. 그렇군요. 그런데, 이 중도라는 것을 스스로 깨우칠 수가 있나요?

박희승 : 이게 스스로, 부처님이 이제 대표적으로 스스로 깨친 분이거든요. 당시 여러 사상, 철학을 다 섭렵했지만, 고행주의도 해보셨고 쾌락주의도 해보셨지만 다 깨친 뒤도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거든요. 근데 이제 스스로 명상에 들어서 이제 새벽별을 보시고는 이제 깨치셨는데 그때의 깨침이 이제 중도를 깨달았다고 선언하셨죠. 그래서 우리도 누구든지 이제 마음을 내어서 공부를 하면은, 마음공부를 하면은 중도를 깨칠 수가 있습니다.

양창욱 : 아. 그러면 이렇게하면 된다, 라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게 특별히 있나요? 현대인들이 이 중도사상을 깨우치기 위한 어떤 준비과정이라든지 일상생활에서의 실천과정이라는 차원에서.

박희승 : 가장 좋은 것은 이제 바른 선지식을 찾아뵙고 그 가르침을 받는 게 좋은데요. 이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죠.

양창욱 : 예예.

박희승 : 그래서 가까운 사찰에 불교 교양대학이나 불교 교리과정도 요즘은 많이 개설돼 있으니까 그런 걸 통해서 공부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요. 또 이제 그것도 어려우면 책을 통해서 이제, 성철스님의 책을 통해서, 『백일법문』이란 책을 통해서 이제 혼자서 공부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백일법문』이란 책을 구하셔가지고 그 상(上)권에, 그게 이제 상, 중, 하로 되어있습니다. 방대하죠, 그것도.

양창욱 : 아, 예.

박희승 : 상(上)권에 거기 보면 중도를 아주 핵심적으로 정리, 팔만대장경을 요약해서 중도를 핵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통해서 중도만 확실히 이해하시면 굉장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그것을 이제 실천하시게 되면은 지혜가 나오는, 그래서 삶이 굉장히 풍요롭고 행복해지고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지는 그런 것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양창욱 : 예. 불자 청취자 분께서 이런 문자를 주셨습니다. 8889님, 양쪽에 치우지지 않고 중간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사상의 말씀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공(空)사상과 연결되는 듯합니다. 그렇습니까?

박희승 : 예, 그렇습니다. 아주 정확한 말씀인데요. 중도 그 자리가 바로 공(空)이고 또 내가 없다는 무아(無我)고 또 우리 우주만물이 전부 서로서로 의지해있다는 연기(緣起)이거든요. 그래서 중도를 알게 되면 공(空)도 알게 되고 무아(無我)도 알게 되고 연기(緣起)도 알게 되고 사성제(四聖諦)도 알게 되고 또 심지어는 우리가 그 금강경에 "음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유명한 경구가 있잖아요?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그 마음이 난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게 바로 중도의 마음을 말하는 겁니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거죠.

양창욱 : 예, 그렇군요. 이렇게 근데 현대인들이, 일반 재가불자들이 사실 이렇게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박희승 : 예,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최후의 유언에 보면은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이 계셨잖아요. 부처님, 불교에서는 가장 경시하고 있는 게 게으름입니다. 그래서 게으름의 반대말은 정진이죠. 그래서 우리가 일상생활을 열심히 일을 하고 살면서 또 이 마음공부도 열심히 해야 됩니다. 그래서 『백일법문』이란 책이라든가 또 참선이라든가 기도나 염불 같은 나름대로 자기의 하나의 수행 방편을 정해가지고 열심히 일상생활 하면서 또 열심히 마음공부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창욱 : 예, 알겠습니다, 교수님. 내일 다시 계속 연결해서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희승 : 예, 감사합니다.

양창욱 : 예, 내일 뵙겠습니다. 한국문화연수원 박희승 교수님과 얘기 나눠봤습니다.

양창욱 : 27일 '양창욱의 아침저널'[FM 101.9 MHz (서울)] 1부, '불교를 말하다' 시간입니다. 어제에 이어서 성철스님의 중도사상에 대해서 계속 공부해보겠습니다. 오늘도 한국문화연수원 박희승 교수님 나와 계십니다. 교수님 나와 계시죠?

박희승 : 예, 안녕하세요.

양창욱 : 예. 이 『백일법문』얘기를 하다가, 성철스님의 중도사상을 현대인들, 현대사회에 어떻게 접목을 시켜볼까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어제 얘기가 끝났습니다. 시간이 다 돼서.

박희승 : 예예.

양창욱 : 예. 현대사회에서 중도사상을 접목시킬 때라든지, 특별히 또 필요한 그런 경우를 많이 맞닥뜨리게되나요, 저희들이 살면서?

박희승 :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갑을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양창욱 : 예.

박희승 : 예. 뭐 노사관계라든가 고용관계라든가 이런 갑을관계도 대표적으로 중도사상이 적용될 수가 있죠. 얼마 전에 그 땅콩 리턴 사건으로 유명했지 않았습니까?

양창욱 : 예예.

박희승 : 예. 그것이 이제 소위 갑에서, ‘갑질’한다고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양창욱 : 예. 이른바 ‘갑질’한다 그랬죠.

박희승 : 예. 근데 이제 갑과 을이 한쪽 편만 집착하게 되면 극단적인 사고가 나오죠. 그래서 갑과 을이 갑의 입장에서 을을 존중하고 을의 입장에서 갑을 존중해줘야 상호존중이 되어서, 중도가 되어서 서로 평화롭게 원만한 관계가 항상 유지될 수 있거든요. 근데 한쪽 입장만을 고집을 부리게 되면 파행적이 되거나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평화와 공존, 협력이 어렵게 되겠죠. 그런 것이 이제 중도사상이 적용될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죠.

양창욱 : 예. 근데 우리 일반인들이, 재가불자든 아니든, 일반인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때 욕심이나 이기 때문에 그런 게 근데 쉽지가 않아요. 상생이라든지 공존이라든지 이런 어떤 미덕들을 실천하기가.

박희승 : 그렇죠.

양창욱 : 말은 쉬운데.

박희승 : 예, 맞습니다. 말은 쉽고 또 그런데 행동으로 실천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요. 그러나 이제 그것을 실천해보면 그것이 행복하고 또 우리가 삶의 어떤 보람을 느끼고 가치를 알게 되거든요. 제가 이제 하나의 사례를 좀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양창욱 : 예, 말씀해주시죠.

박희승 :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비싼 주식이 아모레퍼시픽이라는 주식이잖아요?

양창욱 : 그런가요? 예, 저는 주식을 잘 몰라서.

박희승 : 예예. 지금 뭐 굉장히 그 회사가 잘 발전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예, 들은 거는 같습니다. 아모레퍼시픽.

박희승 : 그만큼 이제 주가가 상당히 높아지면서 거기 회장님께서, 서경배 회장님이란 분이 있는데 그분이 이제 『백일법문』을 공부하시고 중도를 이해하셔서 이제 제가 법문을 듣는 노스님께 법문을 듣고, 그 노스님께서 어떤 법문을 하셨냐하면 “회장께서 경영을 할 때 직원들 덕분에 회장이 좀 더 나은 차라든가 아파트라든가 좋은 지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직원이 당신의 은인이 아닙니까?” 이렇게 이제 얘기를 했어요. 그 회장님께서 “직원들 덕분에 제가 이렇게 호강하고 있으니까 직원들이 제 은인이죠. 뭐 직원뿐만 아니라 상품을 사주는 고객들 덕분에 회사가 유지되니까 고객들도 은인이죠. 그 덕분에 우리 회사가 유지되고 저도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러면 앞으로 직원과 고객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한 번 경영을 해보십시오.” 이렇게 이제 권유를 드렸어요.

양창욱 : 예, 노스님께서.

박희승 : 예. 그것을 서 회장께서 그것을, 노스님 법문말씀을 실천하셨습니다. 이해를 하시고 실천을 하셔서 서회장님의 경영방침이 제가 듣기로는 ‘은인경영’이라 그러거든요.

양창욱 : 아, ‘은인경영’.

박희승 : 예. 직원과 고객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경영을 한다는 거죠. 그런 입장에서 이제 하다보니까 고객 입장에서 또 은인들 입장에서 경영의 어떤 결정을 하다보니까 여러 가지로 모두 이익 되는 방향으로 결정을 짓게 되면서...

양창욱 : 아, 상생이 자연스럽게 실천되더라? 예.

박희승 : 그렇죠. 좋은 상품이 나오고 또 직원들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가고 이러면서 회사가 발전하게 된 거죠.

양창욱 : 그렇군요.

박희승 : 그래서 회사가 지금 굉장히 잘 발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이제 중도사상이랄까요?

양창욱 : 그런 걸, 중도사상을 이제 접목을 시켜서 그렇게 된 거다, 그런 사례란 말씀이시고요.

박희승 : 그렇습니다. 예예.

양창욱 : 그럼 서회장님 한 번 모시겠습니다, 언제 한 번, 저희가.

박희승 : 예. 한 번 기회가 되면, 회장님의 사례를 들어 보면 좀 도움이 될 겁니다.

양창욱 : 예. 지금까지 말씀하셨던 사례들은 이제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서 흉악범죄가 지금 기승을 부리고 있지 않습니까? 참 말도 안 되는 그런 범죄들이 지금 참 많이도 벌어지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사회에서, 이런 어떤 의심하고 헐뜯고 악한 이런 마음들, 이런 마음들도 중도사상으로 치유가 되고 정화시킬 수 있나요?

박희승 : 예. 우리 불교가 이제 그런 면에서 큰 매력을 갖고 있는데요. 뭐 누구든지 불성을 가지고 있다.

양창욱 : 불성. 예예.

박희승 : 예.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 그러고요. 또 이 선종에서는, 선(禪)에서는 우리가 본래 부처라는 입장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 있는 사람도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고 또 본래는 부처라는 거죠. 다만, 자기가 부처인 줄 모르고 착각에 빠져서 그런 죄를 지었을 뿐인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그런 사람을 보더라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존중하라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이 부처인 것에 대해서는 믿고, 그러나 그 사람이 착각에 빠져서 죄를 저지르고 잘못된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걸 바로잡는 도움을 준다면 모두 서로 존중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원리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양창욱 : 예, 그렇군요. 교수님께서 『백일법문』에 대한 강좌도 진행하고 계시죠?

박희승 : 예. 저는 이제 『백일법문』강좌도 하고 또 참선 프로그램 같은 걸 통해서 인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예. 근데 이 중도사상을 담은 『백일법문』,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이 너무 어려워서 중도에서 포기한다는 분들이 정말 많으세요.

박희승 : 예. 저도 뭐 장관님들이나 이렇게 인연되는 분들에게, 주변에 있는 가까운 분들에게도 이 책을 많이 권유하고 읽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한결같은 얘기가 이제 책이 어렵다는 얘기죠.

양창욱 : 예. 그러면 오늘 이 시간에 『백일법문』에서 좀 이렇게 가장 귀담아들어야 될 구절이 있으면 한 구절 좀 알려주시죠. 교수님 생각에.

박희승 :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이제 “자기를 바로 봅시다.” 이런 얘기가 이제 성철스님이 늘 말씀하신 거죠.

양창욱 : 아, 자기를 바로 봅시다.

박희승 : 예. 자기 자신을 바로 보자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는 원래 부처인데 지금 착각에 빠져서 이제 중생놀음을 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양창욱 : 아휴, 그렇군요.

박희승 : 예. 그래서 중생놀음을 하게 되면 나다/너다, 높다/낮다, 많다/적다, 이런 것에 늘 분별하게 되어서 비교하고 또 미워하고 좋아하고 이렇게 되면서 마음이 늘 초조하고 불안하게 됩니다. 그런 그 분별심을 버리고 자기를 바로 보게 되면 자기가 본래 부처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자기는 하늘의 태양처럼 늘 빛나고 있는데 우리가 먹구름이 이렇게 가려버리면 햇빛이 안 나오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분별심의 망령에 휩싸이게 되면 자기 본성을 못 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데 자기를 바로 보아서 자기가 태양과 같은 존재라는 걸 알게 되면 먹구름이 걷히면서 지혜가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를 바로 보고 그런, 남도 배려, 존중하는, 내가 좀 귀하면 남도 귀하다는 생각으로 남을 배려, 존중하는 그런 삶과 일상생활을 하게 되면 지혜와 평화의 길이 열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양창욱 : 예. 참, 이 아침에 듣기에 참 주옥같은 말씀들이십니다. 교수님께서 요즘도 『백일법문』을 강의하시죠?

박희승 : 예. 『백일법문』하고 조계사에서 이제 저는 참선 프로그램을 이제 늘 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언제 하고 계시죠?

박희승 :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조계사에서 늘 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예예. 관심 있으신 분들, 조계사에 화요일 날 찾아, 교수님 찾아뵈면 좋은 말씀, 강의를 또 들을 수 있겠네요.

박희승 : 예. 많은 분들이 지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예,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박희승 : 네, 감사합니다.

양창욱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어제, 오늘 공부 참 잘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한국문화연수원 박희승 교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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