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파시인 3인방(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중에 조지훈선생이 술 가장 셌다"

▲ 젊은 날의 아버지 故박목월 시인과 아들 박동규 교수

 양창욱 : 26일 '양창욱의 아침저널' [FM 101.9 MHz (서울)] 3부, '목요스페셜, 그 사람 지금'으로 시작합니다. 우리 시문학계의 거목이죠, 박목월 선생님이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습니다. 그제 24일은 37년 전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기일이었습니다. 헌정시집이 발간되고 선생님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행사가 잇따라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 '목요스페셜, 그 사람 지금' 시간에는 故 박목월 선생의 큰 아들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문학자이신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교수님 나와 계시죠?

박동규 : 네, 안녕하세요.

양창욱 : 예. 오랜만에 목소리를 듣습니다, 교수님.

박동규 : 그래요, 반갑습니다.

양창욱 : 예. 제가 어릴 적엔 방송에서 자주 뵙고 그랬었는데 요즘 방송활동은 잘 안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박동규 : 네. 요새는 글 쓰느라고 붙잡혀가지고...

양창욱 : 사실 뭐 박목월 선생님이나 박동규 교수님, 저희 어릴 때는 교과서에서나 늘 뵐 수 있었던 분들이죠.

박동규 : 네, 그렇습니다.

양창욱 : 예. 그제 오후에,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 집 서울'에서 박목월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고 들었습니다. 이 중구 예장동 '문학의 집 서울' 이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입니까?

박동규 : 그 장소는 원래 옛날에 중앙정보부 자리를 서울시에서 받아서 문학공간으로 자리를 바꾼 겁니다. 그걸 문학인들이 새로운, 아름다운 세계를 열어가는 어떤 이벤트 공간으로서 활동을 할 수 있게끔 해준 그런 자립니다.

양창욱 : 아, 규모가 좀 있나요, 거기가?

박동규 : 예?

양창욱 : 크기가 좀 큰가요?

박동규 : 아니, 크지 않습니다. 아담하게 생겨서 약 한 150명 정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여러 시인들이 다함께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예예. 이 헌정시집이 또 증정이 되고 시낭송도 있고 이랬었다고 하던데 이번에 그 헌정시집에는 어떤 분들이 준비를 하셨나요?

박동규 : 네, 헌정 시집에 중심이 된 것이 한 40명 넘은 시인들의 작품들이 그 헌정시집에 수록이 됐는데 이건 제가 한 것이 아니고 이제 '목월포럼'이란 것을 통해서 목월선생한테 직접 이제 얼굴 보고 배우신 분들...

양창욱 : 아, 그런 제자 분들만.

박동규 : 네, 그 분들이 중심이 돼서 이 시집을 만들었고 이제 내가 아버님을 대신해서 그 자리에서 받았습니다.

양창욱 : 아, 그러셨군요. 40분이나 되는 제자 분들께서 참여하신 거군요.

박동규 : 그렇습니다.

양창욱 : 이미 그 제자 분들께서도 뭐 교수님들, 시인들이 많으실 텐데. 많이 또 이제 원로급이시죠? 그 제자 분들도.

박동규 : 그렇죠. 뭐 허영자 시인이라든가 이승훈 시인이라든가 유안진, 오세영, 이건청, 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나태주 시인 등 뭐 그 분들은 지금 한국 시의 가장 정상에서 시를 쓰고 계시는 분들이죠.

양창욱 : 예, 그렇죠. 이번 헌정시집이 처음은 아니죠? 처음이었나요?

박동규 : 헌정은 처음입니다.

양창욱 : 아, 헌정시집은.

박동규 : 이제 목월시인이 남기고 간 그 「심상」 잡지를 통해서, 시 전문 잡지를 통해서 배출한 시인들이 이제 다시 쭉 이어져나가고 있습니다.

양창욱 : 예. 이 헌정시집에 좀 특별한 내용들이 담겼나요, 교수님? 어떤 내용들이 담겼는지 궁금합니다.

박동규 : 안그래도 내가 그래서 헌정시집을 이제 집에 와서 자세히 보니까 사실은 한국 시의 중심 되는 내용, 위치에서 쓰신 분들의 시 중에서 이 박목월 시인에 대한 시만 제가 한 번 훑어봤습니다.

양창욱 : 예예.

박목월 : 그래서 우리 오세영 시인이 쓴 ``박목월``이란 시를 보니까 "눈밝은 청노루 하나/타박타박 홀로 눈밭을 걷다가/고개 들어 문득/뒤돌아본다./하이얗게 눈 덮인 겨울 산등성/앙상한 나목 사이로/달빛은 찬란히 쏟아지는데……"하는 이 ``청노루``에 대한 이야기를 쓴 시를 제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양창욱 : 그렇군요.

박동규 : 네. 이런 시들이 각각, 그뿐만 아니라 박상천 시인이 또, 그분은 또 ``끝내 하지 못한 질문``이란 시를 통해서 목월생각을 또 만들어낸 것도 있었고요. 이 시집 속에는 이런, ``모량리의 하늘``이라던가 이런 박목월 선생과 연결된 시들도 많이 들어있습니다.

양창욱 : 예예. 전부 다 박목월 선생님과 연결이 돼있고, 고인을 추억하고 기리는 그런 시들로 그렇게 다 구성이 됐군요. 몇 편이나 담겨있나요?

박동규 : 이 속에는 뭐 제가 이걸, 120명의 페이지까지 가는 것이니까 한 100편 넘게, 120편 정도가 들어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됩니다.

양창욱 : 예예. 박목월 선생님하면 정말 1939년, 24살의 나이로 등단을 하셔서 조지훈, 박두진 선생님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토속적인 풍경, 이런 삶을 담은 자연의 시인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 아드님이신 박동규 교수님께서는 그 박목월 선생이 남기고 가신 그 창작노트들을 가지고 계신다면서요, 실제로?

박동규 : 그것이, 이제 창작노트라는 것이 처음에 박목월 선생의 시작(詩作) 과정에 대한 하나의 형태인데 제일 처음에는 이제 노트에다 먼저 연필로 쓰시고 그리고 또 수정하시고, 수정해서 고쳐가지고 다시 그것을 이제 완결이 돼야 원고지에다 써서 발표를 하시고 이런 과정을 거쳤던 그 처음 쓰셨던 노트들, 그것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양창욱 : 아, 예.

박동규 : 네. 그래서 그 속에서 보면 발표한 시와 노트 시에 조금씩 달라진 것도 들어있고 그리고 또 이미지만 이렇게 쓰고서 그냥 남겨놓은 기억들도 있고요. 기록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양창욱 : 아, 예. 그게 굉장히 빛바래고 오래된 노트들이겠어요, 당연히.

박동규 : 그렇죠. 뭐 60년, 50년 이렇게 해서 시작(詩作) 전반에 걸쳐서 이걸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전부 정리를 해서 이걸 순서대로 이렇게 해놨는데 한 300여 권 해놨는데 그 안에는 저는 아직 다 훑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사이사이에 몇 편의 시만 제가 읽어볼 수 있었고 그걸 이제 다시 100주년 기념을 해서 이제 정돈, 정리정돈 해가지고 새로운 미발표작 시들을 다시 찾아내는 작업을 해볼 예정입니다.

양창욱 : 예. 이제 발간하신다는 그런 말씀이시죠? 발간 작업을 좀 하시겠다는...

박동규 : 그렇죠. 이제 발표해낼 작정입니다.

양창욱 : 예. 그 창작노트에는 그럼 말씀하신 대로 뭐 미공개 시도 있을 것이고.

박동규 : 그렇죠. 아마 내 생각에는 아마 80%는 미공개 시였을 것이고 근데 그런 것들을 이제 어떻게 우리가 정돈해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보고 그렇습니다.

양창욱 : 예, 그렇군요. 아주 귀중한 자료신데 또 어머님께서 그거를 마침 보관을 오랫동안 하셔갖고 참 다행입니다.

박동규 : 저는 못하고요. 하하.

양창욱 : 하하. 아, 교수님께선. 5261님이 교수님 나오시니까 문자를 주셨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가 참 좋아집니다. 7175님, 교수님 반갑습니다. 좋은 문학은 우리들의 안식처가 되는 것 같습니다. 행복한 아침입니다. 건강하세요. 참 교수님, 이 시, 이런 문학 참 좋지 않습니까?

박동규 : 그렇죠. 시라는 것이 무슨 뭐 돈을 벌게 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꼭 종교를 믿듯이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양창욱 : 예.

박동규 : 삶의 내용을 가지고 그것을 고민하고 하는데 그런 것들을 이제 털어놓고 우리가 꿈꾸고 나아지고 변하고 속을 비우고 하는 일들에 그 시가 영향력을 미치고 또 그러한 지침을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양창욱 : 예. 그래서 그 아름다운 시를, 참 스스로 이렇게 지을 수 있는, 그런 재능을 물려받았으면 참 좋을 거 같은데. 그것은 아무에게나 많은 사람들에게 허용된 재능은 아닌 거 같아요.

박동규 : 제 생각은 뭐 지나가면서 우리가 흘리는 말 속에 들어있는 것이라 한 번씩, 조금만 정신 다듬어보면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면 시가 아니더라도.

양창욱 : 예예. 뭐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글귀 정도는 건질 수 있다...

박동규 : 그래요.

양창욱 : 예. 이쯤에서 그러면 이 박목월 선생님의 대표적인 시죠. ``나그네`` 시 한 수 낭송해주시죠.

박동규 : 그래요. 이것이 목월선생이..

양창욱 : 예, 시 소개도 좀 해주세요.

박동규 : 젊은 날인데 24살, 25살 때 쓴 시입니다. 나그네.

양창욱 : 24살, 25살 때 쓰셨어요, 박목월 선생님께서?

 

 

박동규 : 그렇습니다.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南道) 삼백 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양창욱 : 참 여운이 깁니다, 선생님.

박동규 : 그래요. 이 시를 제작할 때만 해도 참 어려운 시기에 박목월 선생이 겪었던 마음의 서러움 같은 것이 이 속에 다 배어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양창욱 : 예. 어떻게 24살, 25살 때 이런 시를 쓰실 수가 있나요? 저 젊었을 때 이렇게 생각하면... 선생님, 굉장히 이게 뭔가 많은 내공과 깊이가 있어야 이런 시가 나올 것 같습니다.

박동규 : 하하.

양창욱 : 네, 그때 저는 뭐 술 마시고 놀았던 기억밖에 없어가지고요.

박동규 : 그래요.

양창욱 : 7471님이 이런 문자를 주셨습니다. 시를 참 좋아합니다. 주옥같은 글 감사합니다. 박동규 교수님께서 또 ``나그네``를 낭송해주시니까 더 의미가 깊었던 시간인 것 같습니다.

박동규 : 그래요. 제가 잘했나 모르겠습니다.

양창욱 : 아휴, 너무 잘하셨습니다. 저명한 국문학자로서 기억하는 대시인이 아니라, 아들이 기억하는 아버지 박목월 시인은 어떤 모습이셨습니까?

박동규 : 그렇습니다. 뭐 우리들의 가족으로서 아버지라는 것은 참 내가 어린 날 생각해보면 정말 힘들고 무서웠을 때라도 항상 내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아버지였습니다.

양창욱 : 아, 자상한 아버님이셨네요.

박동규 : 그렇죠. 그래서 뭐 갔다가 내가 어려운 일 있어서 상의하면 "그래, 그건 그렇다." 하고 이야길 해주시고. 내가 서울대학 교수가 돼서, 내가 교수된 지 처음에 논문을 이렇게 쓰지 않았어요? 논문을 써서 내가 자랑스러워서 "아버님, 이 논문 제가 썼는데요." 하고 갖다드리면 그 다음날 며칠 있다가 보면 내 방문 앞에 아버님이 내 논문을 보시고 이제 거기다가 밀어놓고 가셔요.

양창욱 : 아, 예.

박동규 : 그 안에 보면 빨간 연필로...

양창욱 : 아이고.

박동규 : 다 물음표 쳐놓아가지고 논문이 빨갛게 되어있어요.

양창욱 : 아, 예.

박동규 : 문장 덜 된 거, 표현이 어려운 거, 논리가 부족한 거,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을 전부 해가지고 적어놓고선 아무렇지도 않게 내 밑에다가, 방 밑에다가, 문 밑에다가 놓고 가시는 그런 아버지세요.

양창욱 : 예, 그 정도로 자상하셨군요.

박동규 : 그렇죠.

양창욱 : 사실 그때 어른들이 그런 자상함이 잘 없으시잖아요.

박동규 : 그래요. 그런데 워낙 아버님이 따뜻하고 그래서 어떤 인간적으로 너무 이렇게 사람들에게 정을 베푸는 그런 형(形)의 아버님이셨기 때문에 야단도 안 치시고 그렇게 지내고 그랬습니다.

양창욱 : 예예, 그러셨군요. 조금 전에 이 박동규 교수님께서 아버님이신 박목월 시인의 그 ``나그네``를 잘 읽었냐, 내가 낭송을 잘 했냐, 저에게 물어보셨는데 문자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7175님, 교수님, 저는 눈물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3275님, 눈시울이 적셔옵니다. 9287님, 선생님 시 정말 잘 들었습니다.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아요. 이렇게 들으셨답니다, 청취자 분들께서.

박동규 : 아휴, 고맙습니다.

양창욱 : 근데 교수님, 제가 늘 궁금한 게 또 하나 있어요. 교수님께서는 살아생전의 그 조지훈 선생님이나 박두진 선생님을 다, 아버님하고 친하셨으니까 직접 뵈셨을 거 아니에요?

박동규 : 그렇습니다.

양창욱 : 예. 그분들, 그 어른들 이제 생전 모습을 뵈셨을 건데 어떠셨습니까? 저는 그런 게 참 궁금해요.

박동규 : 네. 뭐 우리 청록파 3가들이 서로 모여서 하는 데는 더러 시내에서 모여서 지내고 그랬지만 어쩌다가 1년에 한두 번씩 우리 집에 찾아오시곤 한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기억이 나는 건 우리 집에 오시면 한 이틀은 술을 마셔야 돼요.

양창욱 : 예. 참 세 분, 술 유명하시죠.

박동규 :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럿이 모여서, 특히 이제 조지훈 선생은 또 이 소주잔에 이렇게 술 마시는 걸 일본풍이라고 해서 싫어하셔가지고 그래가지고 이제 다락(대야)에다가 술을 부어가지고, 왜 그 김장할 때 쓰는 다라(대야) 있잖아요?

양창욱 : 아, 예예.

박동규 : 거기다가 술을 부어가지고 두둑하게 해놓고 바가지를 던져놓고서 거기서 이제 서로 문학 얘길 하면서 마시다가, 마시다가, 일어나고 또 마시다가, 이렇게 해서 하룻밤을 쭉 지내는 그런 것을 제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

양창욱 : 아. 그럼 세 분 중에서 조지훈 선생님이 제일 술은 잘 드셨던 거예요?

박동규 : 조지훈 선생이 술을 아마 제일 많이 잘 드신 걸로 생각이 됩니다.

양창욱 : 예. 그렇니까 그 항아리, 김장항아리에다 바가지를 띄워놓으시고 이제 거기서 술을 드셨군요?

박동규 : 네네.

양창욱 : 참 대단하십니다.

박동규 : 하하하.

양창욱 : 그렇게 이제 밤새 문학 얘기를 하시고 삶의 얘기도 하시고 그러셨군요.

박동규 : 그렇죠. 아침에 또 하고 그렇게 아주 뭐라 그럴까, 문학이라는 것이 일상보다 앞서서 이야기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뭐 밥 먹었냐, 뭐 오늘 어떻게 지냈느냐 이런 얘기, 일상성이 앞서지 않습니까?

양창욱 : 그렇죠, 예.

박동규 : 그분들은 만나면 뭐 잘 있었냐, 너 어떠냐, 이런 얘기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이 안 돼서 어떡하나, 문학에 대한 고민, 이 문학에 대한 의견, 시가 만들어지는 자기들의 괴로운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고 그런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양창욱 : 예, 그러셨군요. 아휴 뭐 듣기만 해도, 말씀만 들어도 눈에 선하고 그렇습니다. 푸근하고. 시인 박목월에 대한 여러가지 평가들이 있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이런 저런 평가들을 해주고 계신데 이 평가들이 다 마음에 드시는지? 국문학자로서 또 아들로서 어떠신지.

박동규 : 음, 제 생각엔 그렇습니다. 시의 학술적 평가라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우리가 잘 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에 대한 어떤 발견들을 균형 있게, 조리 있게 설명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양창욱 : 예.

박동규 : 그렇다면 평가라는 것은 그 시인이 남긴 시가 우리 가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아끼고 있는가 하는 것도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데 우리 박목월 시인에게 있어서는 나는 뭐 평가에 있어서는 내가 자식이라서 고맙단 얘기밖에 할 게 없는 사람이지만 또 우리가 박목월 선생이, 시인이 가지고 있었던 시 세계가 우리 한국 시의 중심에 서있고 우리 민족의 말과 언어의 깊이를 더 지평을 넓혀가는 데 기여한 것에 대해서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예. 비슷한 질문이 될지 모르겠지만은 국민들이, 앞으로 후대에 사는 사람들이 시인 박목월을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습니까?

박동규 : 그렇습니다. 박목월의 시 세계는 처음 초기에 있어서 우리가 알다시피 ``나그네``거나 이런 시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그 속에 들어있는 인간의 삶의 정신들이 이제 중기에 가서는 또 우리가, 우리 생활 속으로 자꾸 발전해나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습니까? 그래서 박목월 시는 하나가 아니라 이 계단처럼 한 세 번, 네 번의 변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그네``를 읽으신 분들이 조금, 이제는 이라든가 아니면 넘어가는 단계를 한 번씩 이렇게 다시 읽어줬으면 하는 것이 제가, 우리가 바라는 것입니다.

양창욱 : 예,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교수님. 교수님께 또 문자가 들어와 있습니다. 4124님, 선생님 건강하세요. 좋은 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참 좋은 아침입니다. 이렇게 또 문자를 주셨고요. 6404님이 시가 새롭게 마음에 젖어듭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지금 또 의견을 주셨습니다.

박동규 : 고맙습니다. 그런 분도 계시군요.

양창욱 : 예, 그럼요. 교수님 나오면 너무 좋아들 하시죠. 방송에도 자주 나와주시고 이러셨으면 좋겠는데.

박동규 : 그래요.

양창욱 : 잠깐 향후 계획 같은 거, 잠깐 좀 소개해주시고 마무리하시죠.

박동규 : 네. 제 생각에는 이제 5월 30일에 용인공원에서 박목월 시비 제막을 하고 용인공원 조성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행사를 하고 그게 끝나야 되겠는데 그거 준비하느라고 바쁜데 저 개인으로서는 이제 삶과 소설이라는 그런, 만들어진 삶과 주어진 삶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결합시키고 지내는가 하는 글을 쓰고 있는데 지금 완성되기만을 기다립니다.

양창욱 : 예, 알겠습니다. 교수님, 오늘 아침에 말씀 정말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동규 : 잘 말했나 모르겠습니다.

양창욱 : 아휴, 정말 좋은 말씀 많이 주셨어요. 고맙습니다.

박동규 : 고맙습니다.

양창욱 : 예예. 지금까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동규 명예교수님과 얘기 나눠봤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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