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와 네팔 등지에서 해외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108자비손' 대표 권형옥씨. "마음을 치료해주는 약은 왜 없을까요?" "부처님께 능력만큼만 알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아름답고 큰 사랑은 경계가 없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저는 어디서나 많이 파는 깨끗한 생수일 뿐이지만 이 생수가 의사가 없는 오지에 가면 생명수가 됩니다. 이것이 제가 해외의료봉사를 하는 이유입니다" "기생충약만 받아가도 고마워서 우는 그 사람들을 보면 행복해집니다. 제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봉사를 하는 것이고 부처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게 정말 행복합니다" "제가 의료봉사를 안하면 저는 병원을 운영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원래 능력이 10인줄 알았는데, 의료봉사를 하고 나서 제 능력이 100으로 늘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두 아들들에게 얘기합니다. 엄마가 너희들에게 남겨줄 유산은 없지만 엄마가 살아온 이 길이, 너희들에게 소중한 유산이 꼭 될 것이다"

 양창욱 : 19일 '양창욱의 아침저널' [FM 101.9 MHz (서울)] 1부 '불교를 말하다' 시간입니다. 의료 환경이 낙후된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의료봉사의 자비행을 실천하고 있는 단체가 있습니다. '108자비손' 이라고 하는데요, 이름이 참 예쁘죠? 대표인 권현옥 대표님 연결돼 있습니다. 권현옥 대표님 나와 계시죠?

권현옥 :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양창욱 : 예, 아침 일찍 감사드립니다. 대표님이 근데 산부인과 전문의세요?

권현옥 : 네.

양창욱 : 아. 전문의가 되신 지는 얼마나 됐나요? 의사로 꽤 오래 활동하셨을 것 같아요.

권현옥 : 25년 정도 됩니다.

양창욱 : 25년 정도. 근데 25년 정도 의료 활동을 하시면서 계기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108자비손 활동을 하시게 된.

권현옥 : 15년 전에 산부인과 친구, 그 친구도 의사인데 그 친구하고 굉장히 친했어요. 근데 그 친구가 유방암으로 죽게 돼요.

양창욱 : 아아.

권현옥 : 네. 그래서 제가 그 친구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죽음이라는 게 멀리 있는 게 아니구나,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거를 꼭 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친구하고 약속이 우리가 나중에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안정이 되면 의료봉사를 가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그 친구가 먼저 가니까 더 이상은 늦춰서는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불교를 알게 됐죠. 우리가 이제 사실은 오늘 방금 뉴스도 보니까 우리가 그렇게 많이 추구하는 부귀영화라든지 재산 이런 게 결국 우리가 인생에서 어떤 불가항력의 문제를 만났을 때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거를 그때 깨달았죠.

양창욱 : 아이고, 예. 참 아침부터 귀한 말씀이십니다.

권현옥 : 그런데 우리가 이제 평생 우리가 부귀영화를 추구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근데 우리가 정말로 몸이 아플 때는 먹는 약이 있는데 왜 마음이 아플 때는 먹는 약이 없을까 생각했죠.

양창욱 : 아, 마음이 아플 때는 왜 먹는 약이 없을까. 예.

권현옥 : 예. 그때 제가 이제 불교를 알게 됐죠.

양창욱 : 예. 그러니까 15년 전에 불교를 알게 되신 거네요?

권현옥 : 뭐, 그쯤 됩니다.

양창욱 : 예. 그럼 그전에는 모르셨나요? 그땐 종교가 없으셨나요?

권현옥 : 아뇨, 그냥 어릴 때부터. 엄마가 굉장히 불자였어요.

양창욱 : 아, 어머님께서.

권현옥 : 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냥 엄마 따라가서 그냥 초파일 같은 때 등을 닦았어요. 우리 등 만드는 거 있죠?

양창욱 : 예예, 연등이요.

권현옥 : 네, 연등 만들면 그때 이제 스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어릴 때 일 시키니까 괜히 좋은 말씀 해주신다고 너 등 닦으면 나중에 크게 좋은 일 생길 것이다 하셨는데, 제가 정말로 이렇게 의사로서, 정말 작은 의산인데,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이렇게 다른 여러 나라에 봉사를 가는 것으로 봐서는 그때 부처님 자비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양창욱 : 예. 아휴 아침부터 마음이 참 따뜻해집니다. 대표님, 그러면 '108자비손'이라는 건 언제 만드신 거예요?

권현옥 : 그래서 제가 이제 불교가 너무 좋아서 출가를 하고 싶었어요.

양창욱 : 아, 스님이 되고 싶으셨군요.

권현옥 : 예. 그래서 제가 길상선사의 원담스님이 계시는데 그 스님한테 출가하고 싶다고 가니까 안 된데요.

양창욱 : 왜요?

권현옥 : 가족도 있고 이렇기 때문에 그냥 가족을 부처님처럼 모시고 네가 제일 잘하는 의료봉사를 통해서 부처님 은혜를 갚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양창욱 : 아, 그렇게 자비행을 실천해라.

권현옥 : 그래서 이제 그 계기로 이제 인도 의료봉사를 가게 됐죠.

양창욱 : 아, 인도에.

권현옥 : 인도 의료봉사를 가게 됐는데 우연히 월호스님이 그 다람살라에 가시는 일이 있었거든요.

양창욱 : 예, 월호스님께서.

권현옥 : 예예. 한 10년쯤 전일 거 같습니다. 그때 제가 이제 인도나 티벳에 의약품이 부족하니까 제가 의약품 모금을 해서 드릴 테니까 거기에 이제 후원을 좀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죠. 그래서 그때 제가 이제 처음으로, 그전에는 쭉 같이 의료봉사만 하다가 처음으로 제가 이제 의약품 모금을 한 거죠. 근데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모여갖고 여행가방 5개가, 5개 분량이 만들어진 거예요.

양창욱 : 아이고, 예.

권현옥 : 그랬습니다. 그때 월호스님을 통해서 다람살라에 2개를 드리고 3개가 남았으니까 이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 네팔 룸비니에 한 번 가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도 혼자 정말로 여행가방 3개 들고 그 룸비니 대성석가사로 내려갔죠. 그때부터 이제 성지 순례가 시작된 거죠, 성지 의료봉사가.

양창욱 : 성지 의료봉사가. 예. 그럼 그동안 몇 개 나라, 몇 개 국이나 다니신 거예요?

권현옥 : 한 12년 동안에 30번 정도 간 것 같습니다.

양창욱 : 이야, 정말 많이 다니셨네요.

권현옥 : 근데 최근에 이제 한 10년간은 거의 인도하고 네팔만.

양창욱 : 인도하고 네팔. 의료환경이 아무래도 낙후된 나라들을 다니셔야 됐으니까. 그쵸?

권현옥 : 예. 그때 이제 룸비니에서 처음 만난 애가 1살 아리라는 애이고, 5살 마씨다라는 애인데 그 애가 이제 5살 귀머거리, 벙어리에요.

양창욱 : 아이고, 예.

권현옥 : 아이가 저를 처음 만나니까, 애가 자기 입을 열어줄 거라고 기대하고 입을 벌리고 있는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양창욱 : 아휴, 그렇죠. 참 듣기만 해도 안타깝습니다.

권현옥 : 그리고 그 다음에 나타난 환자가 그 동생 아리라는 앤데 그 친구는 입천장이 구멍이 난 구개열이에요. 역시 또 그 애를 제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잖아요. 나타난 엄마가 이슬람 사람인데 눈만 딱 내놓고 있는 그런 사람인데, 그 눈빛이 제가 이제 어떻게 해줄 수 없으니까 석고상으로 바뀌는데 제가 태어나서 그렇게 좌절감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양창욱 : 예, 뭔가 해줄 수 없으시니까.

권현옥 : 예. 제가 참 부처님한테 기도할 때 '능력만큼만 알게 해달라' 하거든요. 근데 능력 밖이니까 너무 가슴이 아파서 부처님한테 기도하고 한국에 와서 이 소식을 알렸죠, 친구들한테. 순식간에 모금이 된 거예요. 아이를 살리자는... 그래서 그때 이제 스님이나 가족들, 친구 이런 여러 사람들이 애를 살리자는 모금이 시작돼 그때부터 '108자비손'이 만들어진 거예요.

양창욱 : 아, 그때가 몇 년쯤 되시는 거죠, 그러니까?

권현옥 : 2009년도 12월 달에 갔다 왔으니까 2010년도 1월 달에 만들어졌죠.

양창욱 : 아, 5년 정도 됐군요. 그렇군요. 아휴, 정말 훌륭한 활동을 하십니다, 진짜. 근데 지금 이렇게 의료 봉사활동을 쭉 하시면서 이제 사람들, 같이 동참하시는 분들도 많이 늘어나고 그러셨을 것 같아요, 처음보다는.

권현옥 : 네네.

양창욱 : 108자비손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권현옥 : 저희들이 이제 어떤 큰 단체는 아니고요. 결국 제 봉사를 도와주는 후원회에요, 이게. 그래서 우리 불자들도 있고 친구도, 친구 중에 기독교 친구들도 많아요. 기독교 친구들이 후원금을 내주고 불자인 제가 가서 이슬람, 힌두교 사람들을 치료를 하잖아요. 그러니까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아름답고 큰 사랑은 경계가 없다는 거예요.

양창욱 : 아, 종교를 초월하는 거고. 예, 그렇게 되는군요. 그러면 의사 분들도 많이 계시겠어요, 108 자비손에는?

권현옥 : 친구들도 많고 아직은 이제 자기 병원도 해야 되고 하니까 같이 가는 건 좀 어렵고요. 그리고 또 제가 가는 데는 의료 오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가 없어요.

양창욱 : 예, 의료 오지. 아휴, 권현옥 대표님이 많이 힘드시겠어요? 거기 가실 때마다. 오지고 참 낙후된 국가고 이러셔서.

권현옥 : 그래서 제가 세 번 웁니다. 갈 때 의약품 운반할 때 힘들어서 울고, 또 가서 봉사하다보면은 도와주는 사람이 자기 볼일만 보고 가버려요. 밤늦게, 거기 전기도 없거든요? 그럼 혼자서 촛불 같은 거 켜놓고 혼자서 진료하거나 그럴 때 참 마음이 아파서 울고요. 돌아올 때는 그 사람들이 불쌍해서 울어요.

양창욱 : 아이고, 예. 참 말씀만 들어도 울고 싶어집니다. 마음이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해외로 눈길을 돌리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국내에서도 의료봉사나 이런 기회는 많았을 거 아닙니까?

권현옥 : 제가 국내봉사도 하고 있거든요.

양창욱 : 아, 같이 하고 계시는군요.

권현옥 : 원래는 국내봉사를 했었어요. 고아원도 하고 장애우 아동들도 하고. 근데 사실은 국내봉사는 저도 국내봉사부터 시작을 했지만 저 아니더라도 많이 하죠. 하는데,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저는 많이 어디에나 파는 깨끗한 생수에요, 제가. 근데 이 생수가 의사가 없는 데에 가면 생명수로 바뀌죠.

양창욱 : 예, 그렇겠네요. 정말 마음에 와닿은 주옥같은 말씀들만 하고 계십니다.

권현옥 : 그러면 저 같은 경우에는 많은 경험이 있고 어떤 용기도 있고 그러면 사실은 하나의 생수가 되는 것보다 생명수가 될 수 있는 곳에 가서 봉사하는 게 저도 부처님 은혜를 갚는 길인 것 같고. 사실 저는 의료봉사보다는 처음에 인도, 네팔은요. 부처님이 너무 좋아서 부처님 은혜를 갚고 싶어서 갔어요. 부처님 어머니, 부처님을 낳아준 마야대비가 너무 고맙잖아요, 저도 엄마다보니까. 그래서 마야대비 후손들한테 뭘 갖다 줄까 생각하다가 의료봉사를 가보자 해서 갔는데 정말로 그분들은 아직까지 여성인권이 없는,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여성인권이에요. 그래서 정말로 아프면 자연적으로, 맹장이 걸려도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거예요.

양창욱 : 예, 아휴 대표님, 오늘 말씀을 더 듣고 싶은데 시간이 다 되어서요. 여기까지만 좀 듣겠습니다. 내일 계속 이어서 듣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의료봉사 후원단체 '108자비손'의 권현옥 대표님과 얘기 나눠봤습니다.

양창욱 : 20일 '양창욱의 아침저널' [FM 101.9 FMz (서울) ] 1부 '불교를 말하다' 시간입니다. 어제에 이어서 해외의료봉사 후원단체죠, '108자비손 대표' 권현옥 대표님과 계속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대표님 나와 계시죠?

권현옥 : 네.

양창욱 : 예. 인터뷰를 이렇게 어제, 오늘 연달아 하신 적이 있습니까?

권현옥 : 아, 한 번 정도 한 적은 있는데 연달아 한 적은 없는 거 같습니다.

양창욱 : 예. 이게 아침저널이라 가능한 겁니다. 근데 대표님 어제 좀 결례인 것 같아서 여쭤보질 못했는데 산부인과 전문의 활동을 하신지 25년이 되셨다고 하셨잖아요. 그쵸?

권현옥 : 네.

양창욱 : 그럼 올해 연세가 40대십니까, 50대십니까?

권현옥 : 50대입니다.

양창욱 : 아, 50대로 알고 있겠습니다. 어제 이제 그 네팔의 열악한 여성인권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시간이 다 돼서 중단했거든요. 계속해서 얘기를 좀 이어 주시죠.

권현옥 : 사실 이제 어제 그 방송을 저도 들었는데 제가 의료봉사를 간 이유는 정말 제가 행복해서 가는 거거든요. 근데 자꾸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만 하니까 아, 정말 너무 고행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고행 절대로 아닙니다.

양창욱 : 아, 예.

권현옥 : 예예. 이 열악한 여성인권을 봤지만요, 거기서 저는 그 사람들 눈에서 부처님을 봅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왜 의료봉사를 이렇게 힘들게 가는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거든요. 저도 한 번 생각을 해 봤어요. 왜 내가 이렇게 힘들게 갈까. 근데 제가 의료봉사를 가면요, 예전에 제가 나를 위해서 살 때보다 더 행복해요.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내 자신이 불자로서 행복해요.

양창욱 : 아, 그렇군요.

권현옥 : 그렇고 현재는 애국하는 국민이 되어서 참 행복하거든요.

양창욱 : 예, 뭐라고요?

권현옥 : 애국.

양창욱 : 아, 애국하는. 예예.

권현옥 : 예. 애국하는 국민으로서 참 행복하게 가는 거거든요. 사실 그 열악한 여성인권은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저희들보다 좀 고통스럽지만은 그 분들의 눈빛 속에는 정말 행복하고 그리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참 많아요.

양창욱 : 예.

권현옥 : 고산병이나 결핵이나 고혈압 이런 질병들이 사망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은 행복도라든지 그런 거는 저희들보다 더 많은 거 같더라고요.

양창욱 : 아, 사시는 환경이나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은 열악하지만은 행복지수 같은 건 훨씬 더 높아 보이더라? 예.

권현옥 : 예예. 그분들은 보통 저희들이 약을 많이 주면은 안 받아가요. 충분하다고. 저번에 준 약이 너무 고마웠다고 인사하러 오는 그런 분도 있고요.

양창욱 : 아이고, 예.

권현옥 : 그리고 또 기생충약 하나를 주면 울고 가는 아저씨가 있어요. 자기가 아파서 왔는데 자기 아픈 약을 주고 애가 몇 명입니까 물어보고 기생충약을 줬더니 울더라고요.

양창욱 : 왜요?

권현옥 : 너무, 그렇니까 자기만 챙겨주는 것도 고마운데 애들까지 챙겨준다는 그런 거죠.

양창욱 : 예, 참 선하신 분들이시군요, 정말.

권현옥 : 예예. 사실 이 '108자비손'이 아주 중요한 일을 네 가지를 하고 있거든요. 네팔 룸비니에 있는 무료병원, IBS라는, 마이트리야 스님이 이끌고 있는 그런 무료병원이 있어요. 거기는 약은 현재 유료에요. 의료는 무료로 하는데 그러니까 환자들한테 그렇게 인기가 없죠.

양창욱 : 그렇죠. 그렇겠네요.

권현옥 : 근데 우리가 가면은 우리는 무료 약을 드리니까, 저희들이 가면은 한 3,000명 정도가 모여요. 이틀 정도에. 그래서 그걸 하니까 거기서 이제 IBS병원 후원하고요. 또 카필라성, 부처님 태어나신 궁전 있잖아요? 자라신 곳. 그 카필라성 안에서 의료봉사를 해요.

양창욱 : 예.

권현옥 : 최초입니다, 그거는.

양창욱 : 예. 어떻게 그런 기회를 잡으셨어요, 또?

권현옥 : 마이트리야 스님이 거기 봉사단체의 장이거든요.

양창욱 : 아, 그래서 가능했군요.

권현옥 : 예. 이 스님이 후원을 많이 받아요. 그러니까 저희들 경호라든지 그 단체 내에 그 룸비니에 있는 주민들이나 그 군인들도 호위를 해줘요. 카필라성에서 봉사할 때는 군인들이 질서를 지켜주고요. 그리고 데바다하는 마야데비 고향인데 거기는 야소다라 학교를 하나 빌려줘요.

양창욱 : 예.

권현옥 : 거기서 이제 도와주는 친구들과 이런 사람들이 많이 생겼죠.

양창욱 : 예. 또요?

권현옥 : 그리고 이제 인도에 그 사위성, 금강경 설화 사위성 아시죠?

양창욱 : 아, 예. 들어봤습니다.

권현옥 : 예. 거기에 한국 천축선원이 있거든요. 거기에 보건소가 한 10년 동안 운영이 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5년 전부터 의약품을 못 구해서 조금 고생했는데 제가 거기에 의료봉사를 같이 가면서 5년 전부터 의약품을 후원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이제 쌍카시아에 의료봉사를 갔고요. 그리고 이제 세 번째는 카트만두에 비구니 승단이 하나 있어요. 우리가 생각할 때 그 최초의 마하파자파티 비구니스님이나 또 야소다라 큰스님이 있는데 지금 네팔에는 비구니승단이 제대로 결성이 안 돼있거든요.

양창욱 : 그렇죠, 예예.

권현옥 : 여성인권도 열악하지만 비구니스님들의 인권도 굉장히 열악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비구니승단, 순다람 비하르의 어떤 큰스님들하고 인연이 되어서 그 종단을 기점으로 해서 네팔에 꼭 비구니승단을 크게 조성할 수 있는 그런 기초를 같이 한 번 마련하고 싶다는 그런 서원이 있습니다.

양창욱 : 아, 그런 또 서원이 있으시고요.

권현옥 : 예, 그런 서원이 있고요, 한국에서는 연꽃마을, 함양에 있습니다. 그리고 거제도에 있는 반야원, 언양에 있는 관자재 병원, 고성에 있는 보리수동산 이런 데를 한국에서는 지원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예. 정말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지금 '108자비손'에 대해 궁금한 게 좀 많아요. 일단 대표님, 산부의과 전문의신데 진료활동은 지금 하고 계시는지? 병원 운영 같은 거요. 이게 또 궁금하고. 이렇게 밖에 자주 나가시고 하시면 가족들 반대는 또 없는지 이런 것들이 참 궁금합니다.

권현옥 : 예. 제가 사실 능력이 저는 10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의료봉사를 10년을 하면서 느낀 게 지도하고 열심히 수행하니까 100이 되더라고요.

양창욱 : 아, 예.

권현옥 : 그래서 사실 저는 6개월, 일 년에 한 두세 번 나가면서 병원에서 수익을 정말로 제 용돈하고 약간의 가족 생활비 외에는 다 이 봉사로 쓰거든요. 근데 제가 10일씩 비우니까 어떤 환자가 걱정이 돼서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선생님, 이렇게 병원을 많이 비우면은 병원 운영이 어려울 건데요?” 하더라고요. 저도 사실 그게 걱정이 돼서, 사실은 걱정이 되는데 제가 의료봉사를 안 가면 저는 병원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양창욱 : 아, 의료봉사를 위해서 병원을 하시는군요. 가족들도 흔쾌히 동의하시는 편이십니까?

권현옥 : 아뇨,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죠.

양창욱 : 자녀분들도 다 있으실 거 아니에요?

권현옥 : 예예. 어렸을 때는 애들도 그렇고 힘들었어요. 남편도 사실은 처음에는 불자가 아니었어요. 그랬는데 제가 정말 열심히 수행하고 또 우리 가족들을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화도 안 내고 이런 모습을 보면서 가족들이 이제는, 아들들도 저녁마다 108배를 해요.

양창욱 : 아이고, 아드님들도?

권현옥 : 그리고 남편도 아침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세 번씩 외워요.

양창욱 : 아, 그렇군요. 참... 진정한 불자 가족이 됐네요,

권현옥 : 저희 가족은 어떻게 보면 불교를 통해서 굉장히 화목도 이루었고요. 제가 이제 애들한테 그런 말을 해요. 엄마는 너희들에게 남겨줄 유산은 없다, 그 대신 엄마가 살아온 이 길이 너희들 유산이 꼭 될 것이라고 난 확신한다, 그런 말을 했거든요.

양창욱 : 아, 참 어제부터 주옥같은 말씀만 해주십니다. 그렇군요. 후원이 많이 들어오는 편입니까? 주로 후원 들어오면 의약품 같은 거 사시는 데 쓰시는 거죠?

권현옥 : 네. 의약품, 한 번 갈 때마다 2,000만 원 정도 들어요.

양창욱 : 아, 2,000만원이요. 이거는 혼자 뭐 개인적으로 감당을 못하시잖아요?

권현옥 : 사실은 여러 군데서 많이 도와줘요. 친구들도 약사가 있고 언니도 약사고 또 한국여의사회에서도 후원을 해주고 제가 작년, 재작년에 7차까지 하고 이제 제 개인 돈이 다 바닥이 난 거예요. 적금이 있었는데 적금 3개를 다 깨고 나서도 이제 모자라는 거예요.

양창욱 : 아, 예. 참 쉬운 일이 아닌데, 그게.

권현옥 : 부처님한테 7차 봉사를 다녀오면서 제가 비행기에서 그랬죠. 부처님, 이제 8차는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돈을 조금 마련해야 되니까. 근데 한국에 내리니까, 제 핸드폰이 폴더폰이거든요, 아직까지. 근데 한국에 딱 내리니까 어떤 소식이 들렸냐면, 비행기에 내리니까 제가 보령봉사상을 받게 됐대요. 그래서 상금 3000만원이 생긴 거예요.

양창욱 : 아. 때마침 그런 일이 있군요. 부처님이 자비를 베푸셨군요. 정말.

권현옥 : 부처님이 필요하실 때 주시는 것 같더라고요.

양창욱 : 예, 그렇군요. 지금 가장 가까운 시일에는 언제 나가세요?

권현옥 : 저희들은 보통 추석하고 설날에 그럴 때 나갑니다. 추석하고 설날에 휴일일 때 가는데 이번에는 아마 추석 때 또 나갈 건데요.

양창욱 : 아, 올 가을에. 추석 때요? 예, 알겠습니다. 그때 다녀오시면 또 당연히 저희 아침저널 찾아주시고요, 대표님.

권현옥 : 예.

양창욱 : 예, 말씀하세요.

권현옥 : 제가 이 방송을 통해서 꼭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있는데요. 해외봉사의 제일 근간은 성철스님의 어떤 큰 보살핌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네팔 대성석가사의 모든 식구들에게 감사한다고 꼭 전하고 싶습니다.

양창욱 : 예, 알겠습니다. 네팔에 여성병원도 짓고 싶다는 서원도 내고 그러셨잖아요?

권현옥 : 예예.

양창욱 : 어쨌든 저희들이 또 기회가 될 때마다 연결하고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이제 추석 때 나가신다니까 그때 다녀오셔서 반드시 아침저널에서 또 모시겠습니다, 대표님. 계속 좋은 활동 부탁드립니다.

권현옥 : 네, 감사합니다.

양창욱 : 예,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108자비손' 권현옥 대표님과 얘기 나눠봤습니다. 후원 등을 위해 권 대표님의 연락처를 물어보시는데, 포털사이트 등에 '네팔 대성석가사' 검색어를 치시고 '여련화' 보살의 글을 보시면 됩니다. 여련화 보살이 바로 권현옥 대표님이십니다. 그 곳에서 하고 싶으신 말씀 나누시면 될 것 같습니다. 권 대표님이 진주에 거주하고 계신데 매일 아침 진주 호국사에서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저널 전화인터뷰도 호국사에서 하셨다고 하네요. 정말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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