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블라디보스토크-백담사...젊은 날 방황하던 만해의 여정

▲ 스님이자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양창욱 : 27일 '양창욱의 아침저널' 3부, 금요일 3부는 '금요한마당, 주말이 좋다'로 꾸밉니다. 오늘 '주말이 좋다'에서는 만해 한용운, 만해 스님, 만해 한용운 스님의 평전을 새롭게 펴내신 동명대 불교콘텐츠학과 박재현 교수님 모셨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박재현 : 네, 안녕하십니까.

양창욱 : 예예. 아침 일찍 감사합니다.

박재현 : 예.

양창욱 : 예. 평전이라고 하면, 이번에 펴내신 책이 ‘만해 그날들’이라는 책인데, ‘만해 그날들’, 평전이라고 하면 좀 일반 전기하고 다른 거죠?

박재현 : 예. 보통 뭐 자기 스스로 이제 쓰게 되는 거를, 자기가 자기 일생을 쓰는 것을 전기 혹은 이제 또 누가 대신 써주기도 하고 그러는데, 평전은 이제..

양창욱 : 스스로 쓰면 이제 자서전이고요...

박재현 : 네, 평전은 이제 어떤 자료가 있고, 그 자료를 해석하는 형식으로 평가를 하고 그런 형식이 평전이 되는 거죠.

양창욱 : 그러니까 작가의 어떤 여러가지 해설이라든지 분석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많이 덧붙여지는 거잖아요, 평전은?

박재현 : 네네.

양창욱 : 예, 그렇군요. 그런데 이번에 또 특별하게 소설 형식을 빌리셨더라고요, 이번에.

박재현 : 네네. 평전이 이제 작가의 해설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까 일단 가독성이나 재미가 좀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양창욱 : 아, 그렇죠.

박재현 : 뭔가 조금, 독자 입장에서는 뭔가 교육받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거든요.

양창욱 : 예예.

박재현 : 예. 그리고 또 작가가 어떤 사실을 취사선택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평가거든요. 그 사람의 생애에서 어떤 부분을 이렇게 부각시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평가인데 거기에서 이거는 좋은 거다, 나쁜 거다 하면은 이제 이중적인 평가가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좀 가독성도 높이고 좀 재미있게 좀 읽어나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라고 고민을 하다가 이제 조금 소설 형식에 가까운 평전을 집필하게 됐습니다.

양창욱 : 그런데 보통 소설 형식이라고 하면 이게 좀 약간 허구가 가미돼갖고 좀 재밌게 만들기 위해서, 원래 전기라는 건 진짜 그야말로 사실에 근거한, 팩트에 근거해서 써야되는 거잖아요?

박재현 : 네네.

양창욱 : 그런 요소가 좀 떨어지지 않을까, 그런 우려도 있습니다.

박재현 : 그렇게 되죠. 그래서 가급적이면 이 책에서는 제 목소리, 저의 사상이나 제 목소리는 가급적...

양창욱 : 배제를 하셨고. 예.

박재현 : 예. 그리고 또 어떤 역사 기록에 남아있는 내용들, 예를 들면, 뭐 3.1 독립운동과 관련한 3.1절 독립 운동과 관련한 판결문이라든가 또 독립기념관에 보관돼 있는 판결문 기록 내용이라든가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내용들, 그 다음에 실록에 남아있는 내용들, 그런 것들을 토대로 해서 작성을 했죠.

양창욱 : 예. 정말 만해 스님, 이러면은 참 우리나라의 문학계라든지 불교계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그 이름 석 자만으로도 정말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시는 그런 분인데...

박재현 : 예.

양창욱 : 교수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만해 스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셨고 또 평전까지 쓰게 되셨습니까?

박재현 : 뭐 간단히,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먹고 살려고 쓴 거죠.

양창욱 : 제가 수 많은 인터뷰를 해봤지만, 이렇게 솔직하신 답변은 처음 듣습니다. 아, 먹고 사시려고.

박재현 : 한국에서 이제 인문학을 하면서 밥벌이를 한다는 게 쉽지가 않거든요.

양창욱 : 아, 예... 괜찮습니다. 계속 말씀해 주십시오.

박재현 : 제가 농담 삼아 그렇게 말씀을 드린 거고, 이제 이게 한국연구재단이라고 하는 곳에서 국고가 투입되어가지고 만들어낸 연구 결과물이에요.

양창욱 : 아, 그렇군요.

박재현 : 예예.

양창욱 : 원래 그러면 개인적인 관심은 없으셨어요? 만해 스님에 대해서?

박재현 :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 근대 우리나라 불교계를 대표할 만한 분들이 여러 분들 계시는데, 그러면 그 중에 왜 만해 스님이냐라고 생각하실 수가 있는데요.

양창욱 : 우선 그런 분들은 어떤 분들이 좀 계세요?

박재현 : 뭐 경허 스님이라든지 그 다음에 뭐 박한영도 있고, 뭐 가깝게는 성철 스님도 계시고 여러 분들이 계시거든요.

양창욱 : 그렇죠. 그 중에서도 왜 하필 만해 스님이신가요?

박재현 : 이제 평전이나 전기를 쓸 때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분이 직접 쓰신 문헌이 얼마나 남아있느냐가 중요하거든요. 그래야지 이제 그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글을 쓸 수가 있으니까. 근현대의 불교계를 대표하는 분들 중에, 그 인물들 중에 당신이 직접 쓴 저작이 아마 가장 많이 남아있는 분이 만해 스님이셨어요.

양창욱 : 아, 만해 스님께서 그렇게 다작이셨군요. 저술 활동이 그렇게 왕성하셨군요.

박재현 : 이 분이 직접 쓰신 게, 한용운 전집이라고 해가지고 전체 6권짜리로 지금 전집이 나와있는 상탭니다.

양창욱 : 아, 제가 그걸 못 봐갖고. 6권 전집이 있군요.

박재현 : 예예. 그래서 사실 평전이라고 하는 형식을 제가 취하려고 하는데도 고민을 했던 부분이 사실 만해 스님을 알고 싶으면, 그 전집이 나와 있기 때문에 그걸 그냥 읽으면 되는 거거든요. 누군가 사실 또 다른 해설이 어쩌면 필요 없을 수도 있어요.

양창욱 : 예, 그렇군요.

박재현 : 그래서 오히려 그것보다는 한용운 선생님의 시각으로, 그 때의 그 시절로 돌아가서 이 시대 그 분의 눈과 귀로 한 번 같이 살아보는 게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집필했습니다.

양창욱 : 만해 스님에 대한 여러가지 전기가 이미 나와 있고 저술 활동도 있을 것이고 연구 논문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하게 이번에 교수님이 펴내신 ‘만해 그날들’이 기존의 저작물들과 다른, 뭐 특별하게 주안점을 뒀던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박재현 : 평전은 시중에 이제 여러 분들에게 잘 알려진 것이 한 3종류 정도 있습니다. 일일이 거론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양창욱 : 아니에요, 그냥. 넘어가주세요.

박재현 : 예예. 한 3종류 정도가 있는데 그게 다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릅니다.

양창욱 : 아, 그렇군요.

박재현 : 중점을 둔 부분이 다 다르고 그리고 다 평전의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자료를 제시하고 설명해주고, 자료를 제시해주고 설명해주고 이런 방식을 취하는데 여기서는 이미 그렇게 다 나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자료를 제시해서 이 자료에 가치가 있다, 없다라는 걸로 나가는 거보다는 만해와 한 번 같이 살아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양창욱 : 아, 그 시절을?

박재현 : 예. 함께 공감하고.

양창욱 : 만해의 시각으로. 예...

박재현 : 함께 생각해보고 함께 느낄 수 있는 게 중요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만해 스님은 스님이자 시인이자 독립운동갑니다.

박재현 : 예.

양창욱 : 솔직하게 저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지기는 뭐 대시인이시죠. 문학적 성취가 워낙 뛰어나시기 때문에. 그런데 그래서 스님으로서의 어떤 그 역량이나 위상이 좀 많이 안 알려진 것이 아니냐, 이런 시각들도 있더라고요. 맞습니까?

박재현 : 예.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양창욱 : 예. 그럼 이번 평전은 어디에 초점을 맞춘 겁니까? 스님으로서의 만해 한용운을 비춘 겁니까? 시인, 독립운동가, 어느 거죠? 스님입니까?

박재현 : 기존에 나와 있던 평전의 한 종류는 독립운동가에 초점을 맞췄고요.

양창욱 : 아, 예예.

박재현 : 그리고 또 다른 만해 스님에 대한 많은 연구 성과들은 이제 문인으로, 시인으로 이제 많이 알려진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도 있고요.

양창욱 : 예.

박재현 : 여기서는 어떤, 한 수행자로서의 깊은 고민, 예를 들면 18살에, 20살도 안 된 나이에 뭔가 삶의 답답함을 느껴가지고 집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한 젊은 사람.

양창욱 : 예.

박재현 : 그리고 또 세계 여행을, 26살에 세계 여행을 단행하려고 또 창문 밖으로 뛰쳐나갔던 사람.

양창욱 : 아, 세계 여행을 하셨어요, 그래서? 만해 스님이?

박재현 : 저기, 북대륙까지 갔죠. 간도까지.

양창욱 : 간도.

박재현 : 예.

양창욱 : 간도까지 간 거는 세계여행으로 볼 수는 없네요. 그쵸?

박재현 : 갔다가 초입에 막혀서 되돌아 오셨습니다.

양창욱 : 아, 되돌아 오셨군요. 그리고요, 또?

박재현 : 예. 그런 고민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삶을 좀 진지하게 살려고 했던 수행자의 모습,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춰서 이 집필을 하려고 했습니다.

양창욱 : 그러면 만해 스님이 보니까 따님도 있으신 것 같던데.

박재현 : 예.

양창욱 : 이게 그러면 만해 스님께서는 흔히 말하는 대처승, 이쪽을 주장하셨던 분이신가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박재현 : 이제 그것 때문에 약간 일본과 가까운, 일본 불교에 가까운 분이 아니냐고 해가지고.

양창욱 : 예. 그래서 친일 논란도 좀 있었죠.

박재현 : 예. 불교계에서 좀 저평가되거나 그런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이거든요.

양창욱 : 예. 말씀 좀 해 주세요. 궁금합니다.

박재현 : 그거는 그 당시의 어떤 시대 상황을 이제 우리가 지금의 시각으로 자꾸 보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오는 거거든요. 다시 말씀 드리면 해방 이후에 우리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반일, 반공 이게 같이 가는 거거든요. 이게 강해지다 보니까 약간 일본 불교적인 발언을 했던 흔적이 있으면 이 사람은 그냥 친일에 가까운 사람으로 이렇게 가치평가가 되는 그런 상황이 불거졌던 거죠. 그래서 이 분이 이제 젊은 시절에 스님들의 결혼을 허용해야 된다라는 일종의, 뭐라고 해야 됩니까, 검백서라 그러는데 민원을 올린 적이 있어요. 총독부에.

양창욱 : 아, 조선 총독부에요?

박재현 : 두 번이나

양창욱 : 두 번이나. 아.

박재현 : 예예. 그것 땜에 좀 그런 평가를 받는 거죠.

양창욱 : 예. 어쨌든 시인, 독립운동가보다는 수행자로서, 스님으로서의 만해 한용운을 비춘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만해 그날들’이란 책과 함께 주목해야 될 만해의 불교 사상,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만해 스님의 어떤 것들을 저희가 주목하고 알아야 되나요?

박재현 : 저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기존에 문인으로, 시인으로의 만해만 봤기 때문에 또 독립운동가의 만해만 봤기 때문에 못 본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혹은 잘못 본 부분이 있거나. 예를 들어,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요. 만해 스님 하면은 이제 시 하면 쉽게 떠오르는 게 ‘님의 침묵’이라는 시인데.

양창욱 : 그렇죠, ‘님의 침묵’.

박재현 : 예. “님은 갔습니다. 아아 나의 사랑하는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뭐 이렇게 시작하는 시 아닙니까?

양창욱 : 그렇죠. 예.

박재현 : 예. 그런데 보통 이제 우리가 고등학생들한테 이 시를 가르칠 때 거기서 단풍나무 숲, 이거는 어떤 절망이나 조락이나 허무나 이런 걸 나타낸다고 가르치고 있거든요.

양창욱 : 예예. 님은 국가고 뭐, 빼앗긴 나라고, 민족이고 그렇게 배웠죠.

박재현 : 예예.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만해 스님의 저작을 불교 사상을 통해서 보면 그렇게 해석하는 거는 좀 문제가 있어요.

양창욱 : 아, 그렇습니까? 어떻게요?

박재현 : 다른 저작에 그게 그렇게 해석되면 안 된다는 근거가 보이거든요.

양창욱 : 그럼 어떻게 해석을 해야 돼요?

박재현 : 그래서 거기서 뭐 단풍나무 숲은 절망이다, 뭐 해질녘이니까 그거는 어떤 허무적이다, 이런 게 아니고 만해가 생각하는 거기서 단풍나무 숲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죽음」이라고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분의.

양창욱 : 예.

박재현 : 이 「죽음」이라고 하는 소설에 보면 봄꽃하고 단풍나무하고 이렇게 비교해놓은 게 있어요. 거기서 단풍나무는 결코 절망이나 그런 거를 의미하는 게 아니거든요.

양창욱 : 그럼 무엇을 의미하나요?

박재현 : 그거는 이 사람이, 만해 선생님이 직접 써놓은 데에 의하면, 그건 뭘 의미하는가 하면은 단풍은 스스로 사랑할 수 없는, 봄 꽃은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잖아요.

양창욱 : 예.

박재현 : 아, 너무 예쁘다, 이렇게 사랑도 받고. 스스로도 막 뽐내고 그러잖아요.

양창욱 : 예, 봄에 피는 꽃들은.

박재현 : 예. 그런데 단풍은 누가 뭐 아이고 예쁘다 하고 쳐다보지도 않고 또 스스로 사랑하지도 않는 그런 존재로 처리가 돼있거든요. 그래서 나는 사랑에서 단풍에, 나는 차라리 저기에 관심을 두겠다, 이런 내용이 보입니다.

양창욱 : 아.

박재현 : 그래서 훨씬 더 이렇게 사해동포적이고 훨씬 더 불교의 자비에 가까운 그런 면모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죠.

양창욱 : 아, 그렇군요.

박재현 : 예.

양창욱 : 아, 아주 심오합니다. 아침부터 공부가 굉장히 많이 되고 있습니다, 진짜.

박재현 : 아휴,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양창욱 :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진정 원했던 게 이런 것들이에요.

박재현 : 물론 이제 이렇게 고등학생 뭐 수험생들이 이렇게 답을 쓰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은 교과 과정에서 이렇게 안 가르치기 때문에.

양창욱 : 그렇죠. 저도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보니까. 근데 아, 그렇군요. 근데 만해 스님 하면은 또 늘 연결되는 사찰이 백담사예요.

박재현 : 네.

양창욱 : 물론 뭐 전두환 대통령하고도 연결이 되는 것 같지만은 이 백담사와 만해 스님은 어떤 관계였습니까?

박재현 : 백담사는 처음에 이제 만해 스님이 18살 때에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죠.

양창욱 : 예.

박재현 : 예. 홍성에서 집을 무작정 뛰쳐나와가지고, 사실 스님이 되려고, 그 때는 사실 출가가 아니고 가출입니다.

양창욱 : 아하.

박재현 : 스님이 되려고 집을 나가신 건 아니에요.

양창욱 : 아.

박재현 : 그냥 젊은 시절에 뭐 워낙 연세 드신 분들은 잘 기억을 못하시겠지만은, 18살이나 20살 이때 하늘이 답답하고 사는 것 자체가 답답하고 뭔가 막막하고 그런 느낌의 기억이 있으실 수도 있어요.

양창욱 : 예.

박재현 : 예. 그 시절에 그냥 무작정 집을 뛰쳐나간 거예요.

양창욱 : 예, 그러셨군요. 그래서요?

박재현 : 그렇게 해서 여기저기를 다니시다가 도착한 곳입니다. 그 곳이.

양창욱 : 아, 그런 젊은 날의 방황의 첫 기착지가 백담사였군요, 만해 스님에게.

박재현 : 예.

양창욱 : 거기 오래 머무셨나요?

박재현 : 그 분이 계속 거기서, 거기 백담사와, 그 다음에 경성·서울·한양 이쪽을 왔다갔다하시면서 이제 정치사회적인 활동을 많이 하실 때는 경성에 와 계시고 일종의 재충전이 필요한 시기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또 백담사로 들어가시고.

양창욱 : 아. 그렇게 얼마나 방황을 하셨습니까, 만해 스님은? 한 10년 가까이 그렇게 사셨어요?

박재현 : 젊은 시절에, 20살에 그렇게 해서 아까 말씀드렸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막혀서 다시 백담사로 되돌아왔거든요. 그게 26살 때, 그 쯤 돼요. 그리고 그 이후로는 이제 방황 시기는 사실 끝났어요.

양창욱 : 아, 그렇군요.

박재현 : 끝나고 그 이후로는 하나의 재충전하는 장소로서만 백담사와 경성을 왔다갔다하면서 이제 수행승으로서의 모습, 그 다음에 독립운동가, 혹은 문인으로서의 모습, 양쪽으로 이렇게 겸비하셨던 거죠.

양창욱 : 그렇군요. 교수님, 문자 소개 좀 해 드리겠습니다. 만해 스님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데, 박재현 교수님과 관련 문자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박재현 : 네네.

양창욱 : 1104님, 고등학교 때 천편일률적으로 주입식교육 받았던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이미지가 새로워보입니다. 감사합니다. 7089님, 시인이기 이전에 스님이신데 그동안 너무 문인으로만 알려져 있었군요. 이번 평전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의견을 주셨습니다. 1139님, 님의 침묵에 대한 깊은 얘기를 들으니 너무 좋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아침부터 지식의 샘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교수님, 의견을 주셨네요, 청취자 분들께서.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박재현 : 아휴, 너무 어려운 얘기를 한 것 같기도 한데.

양창욱 : 아닙니다, 아닙니다. 모든 청취자 분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유익하고 반가운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박재현 : 예, 고맙습니다.

양창욱 : 예예. 동명대 불교콘텐츠학과 박재현 교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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