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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
지난 주 인터넷 포털과 각종 언론에
원효스님의 대승기시론소 最古本이
발견됐다고 떠들썩했습니다.
 
(여)
동국대학교가 기존 최고본인 돈황본 보다
200년 앞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투르판 본이 존재한다고 엠바고를
요청하며, 보도자료를 배포했기 때문인데요.
 
(남)
하지만 기자회견 당일 동국대는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 최고본이
기존 돈황본과 비슷한 시기라고 밝히며,
추후 정정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여)
오늘 취재수첩은
BBS 교계 문화부 홍진호 기자와 함께
원효스님 대승기신론소 최고본 소동의 배경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남)
홍진호 기자 동국대 측에서 이미
원효스님 대승기신론소 최고본은 없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
 
그럼에도 취재수첩 주제를 원효스님 대승기신론소 최고본 소동으로
잡은 이유를 먼저 밝혀 주시죠?
 
[기자]
저도 이번 사태를 취재수첩 주제로
잡을지 말지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동국대 측에서 이미 최고본이 없다고 밝혔고,
추후 보도자료도 정정한만큼 어찌 보면
그저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소동으로 아직도 인터넷에는
원효스님 대승기신론 최고본 발견이라는 기사와 포스팅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부터도 원효스님에 대한 사전지식이 워낙 없어서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 동국대 측의 보도자료 만 믿고
기사를 작성 했을 겁니다.
 
한국불교의 고승하면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원효스님을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스님의 사상과 저서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은 편입니다.
 
이번 소동이 원효스님의 저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취재수첩을 준비했습니다.
 
(남)
예, 그렇군요.
 
먼저 이번 소동의 배경이 된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시죠?
 
[기자]
‘대승기신론소’는 대승불교 사상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논서 죠.
‘대승기신론’의 주석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승기신론소를 이야기 하려면,
먼저 대승기신론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요.
 
대승기신론은 말 그대로 한자 그대로 번역하면
‘대승불교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는 논서’로
1~2세기경 인도 마명스님이 저술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도스님이 쓴
대승기신론의 산스크리트본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곧 저자의 생물연대가 불명확 하다는 뜻입니다.
 
2세기 경 인도에서 살았던 저자의 논서가
5세기경에 중국에서 한문 번역본으로 읽히기 시작한 겁니다.
 
이를 두고 현재까지 학계에서는 대승기신론이 인도가 아닌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이다.”, “아니다.”를 두고
100년 이상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남)
예, 그렇군요.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는
곧 원저인 대승기신론에 원효스님이 주석을 달은 것인 데요.
 
일부 인터넷 포스팅에는 ‘대승기신론소 최고본’이
발견 되었다고 나와 있던데요.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 주석서가 가장 오래된 주석서 인가요?
 
[기자]
아닙니다. 대승기신론 자체가 동아시아 대승불교권에서는
워낙 중요한 논서라 수많은 이들이 주석서를 내놓았고,
현재 1000여개의 주석서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원저인 대승기신론의 한문본이 551년에 만들어 졌는데요.
현재 발견된 가장 오래된 주석서는
570~80년에 집필 된 것으로 추정 됩니다.
 
최고본 대승기신론소는 현재 일본에 보관 돼 있고요.
작자는 미상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 드리면,
원저에 주석을 달면 끝에 ‘소’자를 붙여 표시를 하는데요.
곧 ‘대승기신론소’는 대승기신론 주석서에 대한 통칭입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 주석서를
줄여서 ‘원효소’라고 부릅니다.
 
(남)
예, 그렇군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간추리면
원저인 대승기신론 저자의 생물연대는 불명확하고,
최고본 대승기신론소의 작자도 미상입니다.
 
그렇다면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 곧 ‘원효소’가
‘원저’와 ‘최고본 주석서’와 비교했을 때의
가치와 의의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기자]
먼저 주석서에 대한 의미부터 이야기해야 해야 되는데요.

주석을 다는 것은 원저에 대한 단순한 뜻풀이가 아닙니다.
동북아시아 문화권에서 하나의 담론을
확장시켜 나가는 학문적 방법입니다.
 
곧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 주석서에는
대승불교에 대한 스님의 사상이 녹아 있는 겁니다.
 
원효스님의 주석서는 1000여권의 대승기신론 주석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주석서로, 당대에 이미 그 권위를 인정받았고,
후대에는 한중일 삼국 즉 동북아시아 불교사상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
예, 그렇군요. 곧 원저인 ‘대승기신론’, 그리고 주석서의 통칭인 ‘대승기신론소’,
그리고 원효스님의 주석서인 ‘원효소’까지 각각의 의미가 다 다른데요.
 
듣고 보니 이번에 최고본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 참 중요한 저서인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원효소 최고본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같은 소동의 근본 원인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요?
 
[기자]
사실 그 점이 참 아쉽습니다. 원저와 주석서, 그리고 원효소의 상관관계를
조금 만 이해하고 있어도 최고본 소동은 없었을 겁니다.
 
먼저 원효스님은 617년에 태어나 686년에 입적했습니다.
 
목판인쇄는 7세기 초에 시작돼 고려시대에 본격화 되었기에,
원효스님 생존당시에 모든 저서는
사람이 일일이 붓으로 한글 자씩 옮긴 필사본으로 유통됐습니다.
 
당연히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 즉 ‘원효소’의 필사본은
스님의 입적 후인 680~690년대에 중국으로 넘어갑니다.
 
이후 700년부터 중국 본토에서 필사되고 읽히기 시작해,
중국의 서쪽 끝 돈황까지 전파된 것이 8세기 이후로 추정됩니다.
 
즉 돈황문서에 나오는 원효소의 추정연대가 8~10세기인 이유,
또 소동이 일어났던 투르판 본의 추정연대도 8~10세기 인 것은
사실상 너무나 상식적인 결론입니다.
 
(여)
예 그렇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효스님의 생물연대와 당시 저서의 유통 등을 유추해 보면,
최고본의 시기까지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네요.
 
그럼 이번에 발견 된 원효소 투르판본의 가치와 의의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기자]
원효소 투르판 본의 역사적 또는 학술적 가치를 논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이번 최고본 소동의 발단인데요.
 
이번 소동은 원인은 “기존 돈황본 보다 200년 앞선
원효소의 투르판본 단간 발견”으로 요약됩니다.
 
먼저 단간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요.
 
단간은 떨어지거나 빠진 완전하지 못한 글을 말합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원효소 필사본 조각입니다.
 
곧 투르판본 단간은 원래 시간적인 가치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고,
원효소 필사본이 돈황을 거쳐 투르판까지 이동했다는 지역적 의미가 더 큽니다.
 
원효스님의 저서와 사상이 크나큰 중국 대륙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증거자료인 셈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보도 되었던 영상을 보시고
이야기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BBS NEWS/ 1/13 보도]
 
원효스님의 대표저술 <대승기신론소>의
중국 투르판 필사본 단간이 독일에서 발견됐습니다.

이를 발견한 중국 상해 사범대 딩위안 교수는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단의 초청으로
오늘 오후 동국대 서울캠퍼스에서 발표회를 열었습니다.

딩위안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트루판 필사본은
원효스님의 사상이 중앙아시아 돈황과 투르판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신라왕조 출신 원측스님의 제자로
당시 둔황불교를 대표하는 담광스님을 통해
원효스님의 저서가 투르판 지역에까지 전래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인서트] 딩위안 교수/ 중국 상해 사범대

담광스님은 그 당시 둔황불교를 대표하는
특히 토번 점령기에 이 지역을 대표하는 고승입니다.

담광스님을 통해서 원효소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고,
또 담광의 영향력 때문에 사실은 원효소가 투르판까지
전파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2세기 경 인도 마명스님이 저술한
‘대승기신론’을 한자 그대로 번역하면
‘대승불교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는 논서’ 입니다.
 
이러한 대승기신론에 원효스님이 주석을 단 것이
바로 ‘대승기신론소’입니다.

이를테면 주석서인데, 그 영향력은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컸습니다.

대승기신론소는 특히 중국 화엄종 교학을 집대성한
법장의 <대승기신론 의기>의 전형이 되었으며,
이를통해 원효스님은 당대에 이미
동아시아 최고의 불교사상가로 평가 받았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저서와 사상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철저히 잊혀 졌다가,
일제강점기 때부터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국내보다는 일본에 대부분의 저서가 보존되고
연구돼 왔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근대이후 본격화 된 원효사상 연구는
오는 2017년 원효스님 탄신 1400주년을 맞아
저서 정본화와 역주로 연구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인서트] 김종욱 단장/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단

이것에 대해서 저희는 기념사업을 여러 가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 관련해서 한 가지 미리 말씀 드릴 것은
정본연구에 입각해 원효전집을 펴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작부터 준비를 해 왔고, 오늘도 그 과정의 일부입니다.
정본화를 하고 여기에 입각해 역주를 다시 할 것입니다.
 
(여) 예, 이번에 최고본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앞으로 원효스님의 사상과 저서에 대한
연구는 갈 길이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
 
[기자]
예 앞서 보도 내용에도 잠깐 언급 되었지만,
현재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의 내용이 온전히 전해지는 이유는
사실상 일본 덕택입니다.
 
일본의 1696년 본을 저본으로 한 '대정신수대장경본'에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가 수록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대정신수대장경본과 돈황 및 투르판 사본과는
무려 800년의 시간차이가 존재합니다.
 
시기상 필사본이 사실상 원형에 조금 더 가까운 것은 당연합니다.
 
물론 사람이 필사를 했기 때문에 오탈자 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정본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원효스님의 사상을
조금 더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은 학계의 큰 과제입니다.
 
(남) 예, 그렇군요. 홍진호 기자 끝으로 이번 소동을 지켜보면서 느낀
취재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기자]
이번 소동의 일차 책임은 동국대학교와 불교학술원 HK연구단에 있지만,
그동안 최고와 최대만을 대서특필 했던 언론사들도
이번 소동의 3차 책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론사들이 그동안 최고와 최대 보도에 열을 올렸던 것은
독자와 시청자, 즉 우리사회가 그만큼 최고 찾기에 몰두해 왔다는 반증일 겁니다.
 
이번 소동이 학계와 언론, 그리고 국민 모두가 원효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을 정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홍진호 기자 / jino41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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