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부처님의 대자유' 추구...세계관의 기본 토대는 늘 '불교'

▲ 미당(未堂) 서정주
 
 양창욱 : 9일 '양창욱의 아침저널' 3부, 금요일 3부는 '금요한마당, 주말이 좋다' 시간으로 꾸밉니다. 오늘 '주말이 좋다'에서는 미당 서정주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미당 전집을 펴내실 애제자, 동국대 윤재웅 교수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윤재웅 : 네, 안녕하세요.

양창욱 : 네. 서정주 선생님이라고 하면 정말 우리 시문학계의 큰 산이시죠. 그런데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호, 미당은 어떤 의미인가요?

윤재웅 : 그건 아닐 미 자에 집 당 자 그래서 집이 덜 되었다, 사람이 조금 모자라다, 그러니까 아직 좀 완성되지 않았다, 이런 겸손한 뜻입니다. 또 서정주 선생님은 본인이 지으신 자호는 아니지만 지인이 지어주셨는데 미당이라고 하는 뜻을 시적으로 풀이하시기도 하시는데요. 영원한 소년이고자 하는 마음, 이렇게 풀이하시기도 합니다. 아주 근사하죠. 미당이라고 하는 소리도 좋아하셔가지고 프랑스 조각가 로댕 있지 않습니까?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한 로댕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런 조각하신 분 이름이 로댕인데 로댕이나 미당이나 발음하기가 비슷하다, 그러시면서 세계적으로도 이름 알리기에 좋을 거다, 그렇게 하셔서 좋아하시기도 하셨어요.

양창욱 : 네. 그런데 살아생전에 미당 선생님이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셨잖아요? 중앙불교전문학교는 그 때 일제시대 때 어떤 거였나요?

윤재웅 : 우리 근대 조선 불교계에서 일제에 의해 나라가 빼앗기고, 또 이렇게 식민지 정책에 의해서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는 게 너무 고달프고 힘드니까 사람을 길러야겠다, 그래서 불교계에서 세운 근대식 학교죠. 그래서 거기가 3년제 학교였는데 미당 선생님이 거기 입학을 하셔서 공부를 좀 하셨죠. 1935년도에요.
 
양창욱 : 네. 그러셨구나. 그래서 미당 선생님의 시에 보면 불교적 색채가 많이 묻어나는 게 이런 영향도 있겠네요.

윤재웅 : 네, 그럼요.

양창욱 : 아, 네. 그런데 가장 주옥같은 시들이 많지만 미당 선생님 시 중에 가장 많이 젊은이들이 애송하는 게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 자화상의 시 구절이잖아요.

윤재웅 : 그렇습니다. 그건 뭐 젊은 사람들만 좋아하는 건 아니고, 누구나 다 잘 기억하고 있는 건데...

양창욱 : 이렇게 바람처럼 사셨나요? 선생님께서는?

윤재웅 : 그렇습니다. 바람이라고 하는 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죠. 그 우선 그 시를 쓰실 때가 23살이셨어요. 그래서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다, 이렇게 이야기하셨는데 그 때 바람이라고 하는 게 우여곡절이 많다, 파란만장하다, 온갖 어려움이 많음에도 나는 그걸 돌파해왔다, 이런 뜻이죠. 그런데 이제 그게 실제로 23살 청년이 쓰기에는 너무 깊은 인생의 예지랄까, 그런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고요. 또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대로 23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평생 동안 서정주를 키운 것은 바람이었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바람이라고 하는 게 여러 가지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의 우여곡절 같은 것을 다 암시하고, 또 서정주 시인이 그런 어떤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마다 고비마다 굉장히 이상하게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어가지고 여러 가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 분이고요. 또 예술적으로 보면 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뭔가 예술적인 창작의 충동을 불어넣어주는 그런 창작의 원동력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죠. 그래서 이 생명력을 끊임없이 북돋아주는 힘, 바람이 없는 무풍지대면 죽은 거죠. 공기가 움직이지 않는 그것을 미당 선생님은 죽음이라고 보신 거고, 삶이라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건데, 그 살아 움직이는 것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에 하나는 바로 바람이 아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끊임없이 뭔가를 향해 전진하고, 살아서 움직이고 하는 이런 어떤 예술적 창작 동력이 없으면 새로운 예술을 하기가 힘든 거죠.

양창욱 : 참 깊은 뜻이 담겨 있군요. 서정주 선생님의 애제자로 알려져 계십니다. 얼마나 생전에 모실 수 있었던 겁니까?

윤재웅 : 제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는 미당 선생님이 정년퇴임을 하셨어요. 그래서 수업을 들을 수 없었는데 그 때 저희가 대학교 2학년이 됐는데 수업을 해주시는 교수님께서 병이 나셨어요. 병이 나셔서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는데 학기 중에 다른 대리 강사를 구하기 어려우니까 학교에서도 곤란해 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당 선생님이 오셨더라고요? 강의실에? 우리는 소설론 시간이었는데 미당 선생님이 오셔서 소설론을 하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리 미당 선생님에게 강의를 한 번도 안 들어봤지만 우리나라의 대시인이 이렇게 소설론 강의 시간에 들어오는 건 너무 이상해서 선생님, 강의실 잘못 들어오셨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아니다, 그 김동리는 처음에 시를 쓰고자 했고, 나는 처음에 소설을 쓰고자 했네, 그래서 옛날에는 시나 소설이나 다 같이 배우고 그랬어, 그러시면서 한 학기 동안 소설을 배우고, 그 다음 학기에는 시론도 배우고 해서 서너 강좌 듣게 되었는데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한 행운이죠. 요즘 말로 말하면 대박인데, 그래서 큰, 우리는 그 때 미당 선생님 별명을  걸어다니는 문학사라고 했는데요. 수업시간에 만해 한용운 만난 이야기, 이상 만나서 술 먹은 얘기, 이런 이야기를 막 해주시니까...

양창욱 : 교과서에서나 나오시는 그런 분들이군요, 다.

윤재웅 : 그렇죠. 그런 말씀을 수업시간에 듣는 거죠.

양창욱 : 소설론도 강의를 잘 하셨던가요?

윤재웅 : 그럼요. 주로 서양 소설 이야기 많이 하시고, 도스토예프스키 뭐 이렇게 많이 읽으셨어요. 그리고나서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박사논문을 쓰는데 서정주 선생님으로 박사 논문을 써야 되겠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좀 쑥스러워하시고... 왜냐하면 우리 동료 선배들 중에서는 아무도 미당 선생님에 관해 박사 논문을 쓰신 분이 없어서 제가 처음이었거든요? 보통은 살아있는 문인을 박사 논문으로 잘 안 쓰거든요. 그런데 그 당시에 벌써 다른 대학교에서 쓰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동국대학교에서 못 할리 없다, 그래서 저도 박사 논문을 쓰게 되었고 또 선생님 돌아가실 무렵에는 사모님이 먼저 작고하셔가지고 선생님 혼자 쓸쓸하게 계셨어요, 자택에. 딱 두 분만 사셨는데 아드님들은 다 미국에 계시기 때문에 혼자 계시고 그래서 좀 쓸쓸하실까봐 제가 말벗도 좀 해드리고 돌아가시고 나서는 유품이 한 1만 5천장 정도 되거든요? 모든 걸 거의 다 안 버리시니까요. 심지어 제 학교 다닐 때 성적표 같은 것도 다 보관하고 계셔요. 그런 거 발견하면 되게 놀랍죠.

양창욱 : 후손들 입장에서는 정말 행운입니다.

윤재웅 : 네. 그래서 그 유품정리를 제가 책임을 맡아서 하고 그랬습니다.

양창욱 : 그러셨군요. 그 때 당시 한 6-70년대쯤 되는 겁니까?

윤재웅 : 선생님이 그 집에서 사신지는 1970년부터 사셨고요. 선생님은 79년도에 정년퇴임을 하셨고, 제가 강의를 들을 때는 82년도, 83년도 그 때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까마득히 오래되었네요.

양창욱 : 정말 행운이십니다. 올해 그래서 선생님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미당 전집을 다시 발간하신다고요?

윤재웅 : 네. 전집을 발간해야죠.

양창욱 : 제가 듣기에는 이게 30년가량 전집을 내왔던 출판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계약이 끝나고 나서 미당 전집을 서점에서 좀 구하기 어려웠어요. 이번에 그럼 내시는 출판사는 그 출판사가 아닙니까?

윤재웅 : 그렇습니다. 서정주 전집이 사실은 1972년도에 한 번 나왔었어요. 72년도에 한 번 나왔는데 그 때까지 미당 선생님이 쓰신 글이 거의 다 모아져 있었어요. 그리고 난 뒤에도 계속 활발하게 약 30년 간 활동하셨기 때문에 그 기간까지 다 합산해서 새로운 전집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미당 선생님 전집을 만들려고 하니까 권수도 20권정도 안팎이나 되고 하다 보니 경제적 부담도 되고, 제작비용이라든지 예상판매부수를 생각하면 좀 쉽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뭐 시 전집만 내자, 산문도 많고 이런 저런 여러 가지 동화도 있고, 민화도 있고, 시론도 있고 많이 있는데 좀 소위 말해서 독자들에게 잘 팔릴만한 걸 중심으로 내자, 이런 출판사가 몇 군데 있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미당 같은 분을 제대로 알려면 미당의 전모를 다 아는 게 일단 전문 학자들이라도 그런 것들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완전한 전집을 내주겠다고 하는 출판사를 찾던 중이었는데 마침 그 출판사가 나타나서 하게 된 거죠.

양창욱 : 이번에 새롭게 발간되는 미당 전집에는 특징이 있습니까? 기존 것과 다른?

윤재웅 : 우선 기존에는 미당 선생이 발표하신 대부분 그대로, 이를 테면 구투의 한자어 같은 것들이 그대로 다 수록되어 있고 세로 조판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번 전집은 완전 가로조판으로 하고요. 한글세대에 맞게 꼭 필요하지 않은 한자는 전부 한글로 바꾸고 그렇게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미당 선생님께서 발표를 했지만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 시들도 있고요. 그걸 미수록 시라고 하는데 미수록 시도 수록하려고 하고요.

양창욱 : 미수록 시가 몇 편이나 되죠?

윤재웅 : 미수록 시, 미발표 시 합해서 한 200편 가까이 됩니다.

양창욱 : 그러니까 미당 선생님의 시 중에 지금 저희들이 모르고 있는 게 200편정도 된다는 말씀이시네요?

윤재웅 : 그렇습니다. 기존에 나와 있는 것도 시집에 수록된 것도 한 1000편 가까이 되는데요. 그것도 다 아시는 분들도 거의 없고 전문가들이나 알고 문학 애호가 분들만 알고, 보통 일반 독자들은 알기 어렵죠. 그런데 그 이외에 200편 정도가 더 작품들이 더 있다는 거죠. 그런 것까지 다 넣어서 전집을 만들려고 합니다.

양창욱 : 미당 선생님은 정말 다작, 열정이 엄청나셨던 분이군요. 정말 작품 수가 많네요?

윤재웅 : 네. 작품 수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워낙 70년 가까이 활동하셨던 분이니까요. 이렇게 한 예술가가 오랜 기간 동안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정확하게 햇수로 말하면 68년 동안 창작을 하신 건데요. 그 기간 내내 계속 꾸준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셨다는 점이 굉장히 놀랍죠.

양창욱 : 네. 미당 선생님은 천재셨습니까?

윤재웅 : 제 생각에는 천재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1941년도에 첫 시집 화사집을 냈는데 그 화사집을 내고 나서, 일제 강점기 아니었습니까? 일제 강점기였는데 우리나라 조선 문단이 발칵 뒤집어졌어요. 어떻게 이런 천재적인 시인이 나왔나, 그 시는 24편밖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동안 어떤 시인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좀 처럼 나오지 않았던 굉장히 독특한 개성이 거기 나왔던 거죠.

양창욱 :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윤재웅 : 예를 들자면 인간의 원초적 욕망, 고뇌, 몸부림과 관능과 이런 것을 굉장히 토속적인 언어로 거기 표현을 했는데 거기에는 다만 이 조선 청년의 모습만 있는 게 아니고 서양의 보들레르적인 영향,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어떤 세계관, 그 다음에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라고 초인사상, 그 다음에 그리스 헬레니즘의 영향, 이런 세계적인 요소들이 두루두루 다 고루 박혀서 동서양이 포함된 그런 어떤 독특한 개성이 나오게 된 거죠. 그리고 그 개성에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바로 예술적 자아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예술적 자아,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은 독특한 개성, 그게 바로 자화상이라고 하는 시에 이미 천명이 잘 되어서 나와 있는 건데요. 거기에 보면 이런 거 있지 않습니까?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 이런 게 바로 천재적인 예술적 개성이 아니면 도저히 표현하기 힘든 거죠. 이슬 속에 피가 섞여있다는 표현이 이거는 뭐 상상하기도 힘든 굉장히 독특한 표현인거죠.

양창욱 : 저도 20살이 넘으니까 정말 빼어난 시들이고, 정말 잘 쓰신 시였다는 걸 느낄 수가 있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 ‘국화 옆에서’는 좀 무슨 말인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확실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윤재웅 : 네. 그래서 이 생애의 파노라마가 다 있으니까 10대가 읽어서 좋은 시, 80대가 읽어서 좋은 시, 다 있어요.

양창욱 : 네. 그러면 그 많은 시, 1000편에 가까운 시를 통해 선생님이 말씀하시고자 했던 건 뭘까요?

윤재웅 : 제 생각에는 자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자유, 이런 것을 추구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인으로써는 도저히 도달하기 힘든 그런 세계를 늘 꿈꾸셨죠. 그리고 다루는 글감이 굉장히 풍부하셨습니다. 단군 할아버지서부터 미래 후손들까지를 전부 시적 대상으로 삼은 거죠. 한국 역사 전체를. 그리고 공간적으로 보면 자기 고향 마을인 전라도 고창 이야기서부터 세계 120여개국 여행을 하셨으니까 그 세계 전역의 민속, 언어, 풍물 이런 것 까지 전부 노래를 했고요.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너무너무 깊고 광활하고 풍요한 세계를 보여준 거죠. 거기다가 우리 언어가 가지고 있는 섬세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굉장히 많이 보여주신 분이다, 그러니까 자유와 풍요와 섬세한 아름다움, 이 3가지를 추구하되 세계관의 기본 토대는 늘 불교에 기반 했다, 윤회, 전생으로부터의 해탈을 늘 꿈꾸셨던 그런 분이셨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양창욱 : 다시 나오기 참 힘든 그런 분이시군요.

윤재웅 : 다시 나오기 힘든 분입니다.

양창욱 : 네. 지금 미당 서정주 선생 탄생 100주년, 올해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올해 100주년을 맞아서 미당 전집을 펴내실 동국대 윤재웅 교수, 미당 선생님의 애제자십니다.  지금 미당 선생님 말씀을 나누니까 문자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8889님, 미당 선생님의 작품과 삶과 세계를 들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문자 주셨습니다. 9287님, 시인에 관한 교수님의 설명에 마음이 뭉클합니다. 잘 듣고 있습니다. 이런 문자를 주셨네요. 근데 이게 참 좋은 이야기하다가 이런 이야기는 좀 그런데 평생을 미당 선생님을 따라다녔던 하나의 주홍글씨 같은 약점이 친일논란이었어요. 친일 색채, 이것을 살아생전에도 사과를 하신 것을 제가 본 적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정리하면 될까요?

윤재웅 : 네. 좀 안타깝습니다. 서정주 같은 대시인이 정말 윤리적으로 흠결이 없었다면 더 좋았을 테죠. 그런 점에서 보면 윤리적으로 완벽하게 존경하기는 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시대정신과 관련해서는 그렇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훌륭한 시인이라고 하는 직분만으로도 저는 미당 서정주 시인이 우리 민족 문학사에 굉장히 크게 기여하신 분이다, 세상살이에는 공과가 있지 않습니까? 공도 있고 과도 있는 거죠. 잘한 점도 있고, 못한 점도 있는 거죠. 그런데 과를 너무 크게 보고, 공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만약에 계속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건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해지고 어떤 관용과 배려의 문화가 정착되어가면서 서서히 나아질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당이라고 하는 분의 공과 과를 좀 균형감 있게 바라보려는 분위기가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도 미당의 전모를 제대로 아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미당 전집을 빨리 내려고 하는 이유가 국민들이 미당에 대한 풍문이나 소문이나 굉장히 사람 마음을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친일 시 4편을 보고 미당을 막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할 게 아니고 미당이 이룩한 모든 문학의 전모를 다 볼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갖는 것이 일단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네. 교수님 이쯤에서 서정주 선생님의 시 중에서 교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시 한 편 낭송 부탁드립니다.

윤재웅 : 네. ‘풀리는 한강가에서’, 라는 시가 굉장히 좋은데요. 강물이 꽝꽝 얼었다가 햇볕에 그 강물이 녹는, 그러니까 죽음이 세계에서 삶의 세계로 돌아나오는 이런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는 건데요.

양창욱 : 들려주세요.

윤재웅 : 네.

풀리는 한강가에서 - 서정주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짱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민들레나 쑥잎풀 같은 것들

또 한번 고개숙여보라 함인가

황토언덕

꽃상여

떼과부의 부리들

여기 서서 또 한번 더 바라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양창욱 : 네. 아이고 참 이 아침에 들으니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 펴내시는, 미당 선생님 탄생 100주년 맞아서 펴내시는 미당 전집이 우리 문학사에 어떤 역할을 하길 기대하십니까?

윤재웅 : 네. 서정주라고 하는 큰 시인은 정말로 한국 문학사 전체에, 한국 역사 전체에 굉장히 귀중한 공헌을 하신 분인데 그 분에 대한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전모를 우리 국민들 모두가 한 번 자세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시 몇 편 보고, 산문 몇 개 읽고 이래서 이 분을 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분의 전체적인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이런 어떤 문화적인 상품이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져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양창욱 : 네. 이번 전집이 꼭 그런 교수님의 생각에 부응할 거라 생각합니다. 6126님, 아침저널에서 듣는 서정주 시인의 시가 참 새롭습니다.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교수님, 이런 문자가 들어와 있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재웅 : 네, 고맙습니다.

양창욱 : 지금까지 '금요한마당, 주말이 좋다' 미당 서정주 선생님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미당 전집을 펴내시는 미당 선생님의 애제자, 동국대 윤재웅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