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머니(대전료) 떼먹는 사람들 없어져야 복싱 발전"

▲ 복싱 전 세계챔피언 문성길 선수

 양창욱 : 8일 '양창욱의 아침저널' 3부입니다. 목요일 3부는요, 그립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목요스페셜 <그 사람, 지금> 시간입니다. 오늘 <그 사람, 지금>에서는 1980년대 링 위를 점령했던 최고의 복싱 챔피언이자 영원한 돌주먹, 문성길 선수와 함께 하겠습니다. 문성길 선수, 안녕하십니까?
 
문성길 : 네, 안녕하세요. 문성길입니다.
 
양창욱 : 네. 제가 문성길 선수라고 불러도 될까요?
 
문성길 : 그러세요. 지금 이제 선수 생활 마친지는 오래됐지만 대부분 시내에서나 일반인 분들 만나면 문 선수라고 불러주시니까 더 편합니다.
 
양창욱 : 네. 93년에 선수 생활을 은퇴하셨으니까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문성길 : 네. 벌써 시간이 너무 빨리갑니다.
 
양창욱 :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문성길 : 그동안 운동 바로 마치고 나서는 제가 여기저기서 무슨 사업적인 제안이 많았는데 그 때 당시 운동 챔피언 하고 있을 때 소속 후원해주던 회사, 제약회사를 제가 한 3년 다녔어요. 거기 한 3년 다니고 나서 직장생활 한 번 해본다는 차원에서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3년하고 사표내고 개인적으로 좀 여러 가지 일들을 구상하다가 체육관도 좀 하다가 체육관도 제 체질이 아닌 것 같아서 그것도 그냥 접었고요.
 
양창욱 : 체육관이 왜 체질이 아니세요?
 
문성길 : 제 이름 걸고 여러 군데서 체육관 합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직접 하는 것은 선수 길러내는 것도 제가 그렇게, 대부분 그래요. 대부분 세계를 재패하고 했던 분들은 선수들을 잘 못 길러내는 것 같아요. 그냥 자기가 운동하다가 성공 못하고 그냥 응어리진 마음을 가졌던 분들이 체육관을 하면 좋은 선수 많이 길러냅니다. 자기가 다 했던 일들이기 때문에 뭐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경향이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저는 체육관 한 3년하다가 후배한테 하라고 밀어줬고, 또 다른 데 후배들이 제 이름 걸고 체육관 하는 데가 여러 군데 있습니다.
 
양창욱 : 네. 그게 '문성길 복싱클럽'이라는 거죠?
 
문성길 : 네.
 
양창욱 : 그러니까 이 '문성길 복싱클럽'이 지금 전국에 여러 군데 있나요?
 
문성길 : 전국에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몇 군데 있습니다. 뭐 서울에도 세 군데인가 있고, 또 수원에도 있었는데 거기는 좀 잘못되어서 접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부산에도 있고, 대구에도 있고, 광주에도 있고, 몇 군데 있습니다.
 
양창욱 : 네. 그렇군요. 많네요. 그러니까 '문성길 복싱클럽'은 그렇게 설립하셨고, 운영은 후배님들이 하는 거군요. 뛰어난 선수가 뛰어난 지도자가 되기는 어렵다는 말씀을 주셨고요. 철판볶음밥 사업도 하셨다고요?
 
문성길 : 아, 푸드코트라고 백화점에 외식 식당가에서 철판볶음밥 집을 몇 군데 하다가 지금은 임대 준 곳도 있고, 다른 데는 다른 사람 하게끔 해준 곳도 있고, 지금은 원주에서 개인적으로 차려서 철판볶음밥하고 돈까스 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볶음밥도 잘 안되셨나요?
 
문성길 : 아닙니다. 꾸준하게 잘 되고 합니다.
 
양창욱 : 네. 푸드코트 집에서 철판볶음밥 집 잘 되잖아요. 보통.
 
문성길 : 네. 대부분 거기 뭐 장사해서 한 20년 해서 애들 다 대학까지 가르치고 생활하고 했습니다.
 
양창욱 : 결례가 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선수생활 하실 때 돈을 많이 벌지 않으셨어요?
 
문성길 : 아, 그 전에 옛날에 70년대 세계챔피언하면 크게 성공한 것 같이, 그 때 당시에는 좀 큰 돈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양창욱 : 세계챔피언을 두 번이나 지내셨는데요.
 
문성길 : 네. 큰 돈이 생긴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는데, 사실 요즘은 세계챔피언 해봐야 큰 돈이 아닙니다. 그래서 권투가 쇄락의 길로 가고 있지 않나, 옛날 제가 운동 시작할 때도 78년도, 18살에 권투를 시작했는데 그 때 당시만 해도 세계챔피언 하면 목돈, 꽤 많은 돈을 거머쥘 수 있었는데...
 
양창욱 : 80년대 파이트머니가 상당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문성길 : 아뇨. 꼭 80년대 파이트머니가 제가 최고 많이 받았을 때가 1억씩 네 번인가 받았는데 1억 네 번인가 받아도 그게 다 선수에게 오는 게 아니고 절반 정도는 매니저나 프로모터가 가지고 갑니다.

양창욱 : 아, 절반이나 가져갑니까?
 
문성길 : 네. 선수한테 그렇게 들어오는 돈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목돈이 들어오면 그런 돈들을 재투자를 잘 해서 그런대로 권투해서 자리를 잘 잡았다고 생각하고요. 다른 동료 챔피언 했던 동료들도 그렇게 알뜰하게 모으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챔피언 했을 때 목돈 들어오고 하는 것을 펑펑 써버리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친구들은 지금은 좀 어려운 그런 상황도 있고, 안 그러고 또 알뜰하게 잘 모은 그런 동료들도 있습니다. 본인의 생활방식에 따라서 틀려지는 것 같습니다.
 
양창욱 : 네. 저희가 학창시절에 문성길 선수 경기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많이 봤는데 정말 돌주먹이셨어요. 요즘도 운동을 하시나요?
 
문성길 : 요즘에는 그렇게 과격한 운동은 안 하고요. 산에는 자주 갑니다. 산에 친구들이나 일반인들하고 가면 대부분 저를 따라오지 못합니다.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빠르게 올라가버리니까요.
 
양창욱 : 아, 정말 날라다니시는군요.
 
문성길 : 네. 그러니까 일반인들하고 하면 저는 운동이 안 돼요. 천천히 가니까. 옛날에 국가대표 시절에도 태릉선수촌 뒤에 불암산을 뛰면 제가 항상 1등을 하고 아직까지도 그 기록을 못 깨고 있답니다.
 
양창욱 : 아, 그 태릉선수촌 뒤의 불암산 달리기를 했는데 그 최고기록을 아직까지 가지고 계시는 군요.
 
문성길 : 그럼요. 5년 동안 했는데 5년 내내 토요일 마다 전 선수가 불암산을 뜁니다, 그 당시에. 지금도 뛴다고 해요. 그런데 그 기록을 아직도 못 깨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양창욱 : 아직 30년이 다돼도 후배들이 못 깨고 있군요.
 
문성길 : 네. 제가 운동을 시작한 게 목포에서 했는데요. 목포하면 유달산이 있습니다. 제가 아침마다 일등바위까지 뛰어올라갔습니다. 뛰어올라가다 보면 한 2/3정도 가다보면 굉장히 가파른 계단이 있어요. 그럼 아무리 잘 뛰는 사람도 중간이상 가면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데 저는 끝까지 뛰어서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항상 그렇게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폐활량이 좀 좋았습니다.
 
양창욱 : 아, 이미 어린 시절부터 폐활량이 탁월하셨군요.
 
문성길 : 육상을 했으니까요.
 
양창욱 : 그러셨군요. 그러면 원래 육상선수셨는데 왜 권투를 하게 되신 건가요?
 
문성길 : 제가 육상을 시골 대회나, 군 대회, 목포에서 권투할 때도 육상을 했었습니다만 저는 그 때 당시에 팔 이런 게 육상선수는 좀 팔이 가늘어야 하는데 저는 좀 두꺼워서 장거리를 뛰면 피로가 옵니다. 그래서 저는 군 대회나 이런 데 나가면 좀 해도, 도 대회나 전국대회 나가면 게임이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단점이 있었다는 것, 육상 장거리를 뛸 때... 그래서 그런 것 때문에 피로가 빨리 오고해서 기록을 내는데 힘들었고 제가 이제 저는 좀 어렸을 때부터 격투기를 좋아했어요. 씨름 같은 거요. 그리고 70년대 보면 TV에서 권투선수 시합하는 거 자주 보면서 나도 권투 한 번 해보고 싶다,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골에서 육상을 시키는 바람에 육상을 하게 된 거죠.
 
양창욱 : 그렇군요. 문성길 선수 나와 계시다고 하니까 지금 많은 분들이 문자 주고 계십니다. 5261님, '문성길 선수 반갑습니다. 건강하시죠.', 7999님, '반갑습니다. 팬이었습니다. 아직도 멋있으시죠?' 이렇게 문자 주셨네요. 어떻습니까?
 
문성길 : 고맙습니다. 아직도 팬들이 저를 기억해주신다는 게 너무 고맙고, 그럴수록 제가 정말 모범된 생활을 하면서 절도 있게, 정확하게 세상 살아가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가집니다.
 
양창욱 : 네. 문 선수님 지금 전적에서 보면 딱 2번밖에 안 졌어요. 프로선수생활 동안에.
 
문성길 : 사실 아마추어 국가대표 시절에는 신인 시절에 시합을 많이 졌습니다. 신인 때 3년 동안 전국대회를 7번데나 출전했는데 한 번도 우승 못하고 3위만 몇 번 했습니다. 그래서 졌던 그런 기억들이 많습니다.
 
양창욱 : 그러니까 프로에 입문하고 나서는 이제 2번 밖에 안 지신 거고요?
 
문성길 : 네. 그래 가지고 정상의 자리에 섰을 때, 운동을 대부분 정상의 자리에 서면 선수들이 느긋해져서 게을러지는데 저는 정상의 자리에 섰어도 신인 때 졌던 생각을 잊지 않고 더 열심히 운동을 해서 오래도록 정상의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대표도 5년 했지, 세계챔피언도 두 체급 석권했고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권투 선수 중에 아마추어 2번 세계 재패하고 프로를 두 체급 석권했으니까 저는 제 스스로 아마와 프로를 두 번씩 재패한 최초의 선수다, 그렇게 자부하고 삽니다.
 
양창욱 :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은퇴는 왜 좀 빨리하셨어요?
 
문성길 : 저는 은퇴를 빨리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나이 33살, 제가 61년 소띠인데 93년도에 제가 은퇴했습니다. 본 나이가 61년 소띠인데 호적으로 2년 늦게 되어 있습니다. 시골은 늦게 올리니까요. 그래서 제가 33살까지 한국나이로 운동했는데요. 뭐 권투 선수가 30살 넘게 운동하는 경우는 장수했다고 저는 자부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마추어를 안 하고 프로만 했었다면 두 체급 석권이나 세 체급 석권 등 여러 가지 기록을 남겼을 건데 저는 아마추어를 무명으로 3년, 국가대표 5년 해서 8년간 아마추어를 했습니다. 그리고 프로를 7년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추어를 더 오래한 거죠.

양창욱 : 결코 적은 세월이 아니군요. 그런데 문성길 선수 생각하면 희대의 라이벌이었던 허영모 선수가 생각납니다. 참 두 분의 라이벌전 유명했었는데 결국 누가 이겼습니까?
 
문성길 : 제가 3번 다 이겼는데요. 뭐 첫 번째 시합도 비슷했고, 두 번째 시합도 제가 다운 한 번 더 당할 정도의 경기였습니다. 제가 아마추어니까 아마추어 심판들이 판결을 냈고, 세 번째 시험에서는 제가 완전히 이겼습니다. 세 번째는 다운까지 시키면서 일방적으로 이겼는데 세 번째 경기는 중계가 안 됐고, 첫 번째랑 두 번째가 전국에 중계되었을 때 대부분의 팬들이 진짜 라이벌다운 시합을 봤다, 그런 평가를 많이 했죠.
 
양창욱 : 허영모 선수는 지금 뭐하고 계세요?
 
문성길 : 허영모 선수는 순천 고향 쪽에서 체육교사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아, 지금도 만나고 계세요? 연락하고 계십니까?
 
문성길 : 지금은 연락은 잘 안 하더라도 그 쪽에 있는 친구가 한 번 몇 년 전에 좀 허영모 선수 집사람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한 번 내려가서 조문하고 온 적이 있습니다.
 
양창욱 :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문성길 : 네. 그리고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싶은 그런 생각은 있어도 만나면 서먹서먹합니다.
 
양창욱 : 만나면 좀 서먹서먹하세요?
 
문성길 : 네. 가깝게 지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양창욱 : 아무래도 희대의 라이벌 관계셨으니까 그러실 수 있죠. 6218님이 문자주셨습니다. '문 선수님,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9550님, '문성길 선수, 반갑습니다. 한 동네에 살아서 멀리서 가끔 봬었습니다. 복싱이 잘 발전하길 기대해봅니다. 잘 지내세요.' 이렇게 반갑게 문자를 주셨습니다. 한 동네 사셨던 분인가 봐요. 프로와 아마추어에서 모두 정상에 섰지만 선수생활하시면서 좀 아쉬움이 있다, 이런 대목은 어디가 있을까요?

문성길 : 아쉬움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의 무슨 운동이든 간에 지도자 계통이라든가 그런 관리자들 있잖아요? 그 분들이 정확하게 대하고 올바르게 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뭐 저 같은 경우에는 프로 때 프로모터와의 관계가 너무 안 좋게,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를 어디다 한 적은 없지만 그랬었기 때문에, 파이트머니도 제대로 나중에 두 번인가 받지 못한 그런 경우도 있었고, 그래서 제가 어디다 얘기도 안 하고 있었지만 방송에서 처음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 권투가 발전하려면 절대 파이트머니를 안 주고 떼어먹는다거나 그런 일이 없고 정말 열심히 한 선수는 열심히 한 대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창욱 :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었나요? 그 때 당시에?
 
문성길 : 그런 일이 비일비재라기보다는 초창기 저 같은 경우는 정확했었는데 나중에 좀 체육관 선수들이 많이 시합에 지고 하니까 나중에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유종의 미를 못 거뒀기 때문에 권투를 프로 전향한 것을 그 때는 좀 후회했죠.

양창욱 :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지금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나요?
 
문성길 : 아마 지금 제가 뭐 있다, 없다, 그것을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정말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사실 80년대 한국 복싱 너무 재미있었죠. 멋있는 선수들도 문성길 선수뿐만 아니라 많았고요.
 
문성길 : 최고의 인기였죠.
 
양창욱 : 네. 최고 인기 스포츠였는데 지금은 많이 쇄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다고 보세요?

문성길 : 제 생각에는 우리나라가 70년대보다는 많이 부강해졌고, 또 권투하면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겪어봤는데 초창기에 막 그렇게 얻어맞고 멍들고 고통이 심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고통들을 지금 젊은 세대들은 이겨내지 못하고 아, 권투 한 번 해봐야 되겠다, 라는 마음만 가지고 하다가는 절대 시합 한 번 졌다던가, 한 몇 번 지고 나면 관두고 그런 게 있었는데 저 같은 경우는 몇 년 간 시합을 못 이기고 맨날 지고 그래도 큰 포부를 가지고 더 열심히 해서 성공했거든요? 그런 마음속에 큰 뜻과 포부를 가지고 지더라도 더 열심히 노력을 해줘야 하는데 제가 체육관도 좀 해봤지만 요즘은 스파링에서 몇 번 맞아버리고 나면 다음 날 안 나오는 경우도 있고 이렇기 때문에 정신상태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양창욱 : 요즘 젊은 선수들이 이른바 헝그리 정신이 옛날에 비해 부족하군요. 독기 같은 것 말이죠.
 
문성길 : 절대로 부족합니다. 어려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란 세대기 때문에 그렇게 힘든 일들을 이겨내지 못하다 보니 좋은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양창욱 : 진짜 이런 운동들은 독기 있게, 파이팅 넘치게 붙어줘야 하는데요. 3606님, '문성길 선수 한 때 광팬이었습니다. 문 선수 경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네요. 건강하세요.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이렇게 문자 주셨습니다. 인기가 아직 많으세요.
 
문성길 : 감사합니다.
 
양창욱 : 네. 그런데 이제 선수들의 어떤 자질론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우리 지금 한국 복싱을 뒷받침하고 있는 환경들도 예전보다는 많이 안 좋아진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문성길 : 그렇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프로복싱이나 아마복싱이나 지도자, 또 아니면 관리자, 뒤에서 후원도 해주고 선수들이 잘 훈련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분들의 과감한 투자라든가 지도하는 지도자들이라든가 이런 게 제가 옛날에 운동할 때처럼 삼위일체가 잘 안 되는 것 같고 앞으로 한국 복싱이 발전하고 더 훌륭한 선수 많이 배출하려면 지도자 계통에 계신 분들이 올바르게, 정말 노력을 많이 하고 선수들을 잘 관리하고 훈련 잘 시켜서 좀 과학적으로 잘 훈련시켜서 한다면 앞으로도 좋은 선수 많이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양창욱 : 그렇군요.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고요. 문성길 선수 삶에서 복싱이란 뭐죠?
 
문성길 : 제가 선수 생활 하고 있을 때는 복싱은 문성길의 전부였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복싱은 문성길의 지금은 전부는 아니지만 그 때 당시 복싱이 있었기에 지금의 문성길이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양창욱 : 그렇군요. 문성길 선수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꿈, 남은 인생에서 어떤 게 있을까요?
 
문성길 : 뭐 지금은 큰 포부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고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열심히, 성실히 잘 하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모범된 시민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양창욱 : 그런데 요즘 댁은 어디세요?
 
문성길 : 저는 송파구 가락동에 살고 있습니다.
 
양창욱 : 아, 그런데 아까 원주에서 장사하신다고 하셨잖아요?
 
문성길 : 원주에서 가게를 연지는 한 5,6개월 됐는데요. 왔다갔다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출근할 정도로 자주 왔다갔다합니다. 1시간 20분이면 오고가고 하니까요.
 
양창욱 : 네. 송파에서 원주까지 왔다갔다하시는군요. 9550님이 문자를 주셨습니다. '문선수님 코를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다치는 것을 많이 보셨다는 것 같은데요. 이제 더 이상 문성길 선수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문자 주셨습니다.
 
문성길 : 제가 사실 권투를 하면서 코뼈가 나가가지고 코 속에서 피가 차고 해가지고 주사기로 막 피를 빼내고 그래서 제가 수술을 했어요. 그래서 그 때 당시 코뼈의 절반을 잘라내서 나았는데 그래서 그게 더 약해져서 다치는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 의사 분이 하시는 말씀이 코의 뼈 절반을 잘라내면 시합을 하더라도 펀치를 허용하더라도 충격이 덜하고 유리한 점이 많다,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 당시 수술하고 나서는 코가 그렇게 많이 다치지 않았습니다.
 
양창욱 : 네,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성길 : 네, 고맙습니다.
 
양창욱 : 지금까지 전 복싱 세계챔피언 문성길 선수와 함께 했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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