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준비위원회, 말을 마차 뒤에 놓은 형국" "9.19 살리고 美中사이 균형자 역할해야 해"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양창욱 : 2015년 을미년 1월 1일, 새해 첫 날 아침, '양창욱의 아침저널' 2부와 3부는 신년 특집대담,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에게 듣는다' 시간으로 꾸밉니다. 한완상 전 부총리 스튜디오에 나와 계십니다.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한완상 : 네, 안녕하세요.
 
양창욱 :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완상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양창욱 :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는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게 저는 편한데, 어떠신지요?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완상 : 좋습니다.
 
양창욱 : 네. 박사님 우선 전국 청취자들에게 2015년 을미년 새해 덕담부터 한 마디 해주세요.

한완상 : 네. 을미년은 말이죠, 을이 정말 주인이 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 갑을이 있는데 지난해에는 갑들이 너무 갑질을 많이 해서 을들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을미년에는 을들이 이제 제 목소리내고 희망을 가지고 용기 있게 살기를 바라고요. 또 미는 요즘 미생들이 굉장히 괴롭잖아요. 미생들도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사는 해가 되기를 제가 바랍니다.
 
양창욱 : 네. 또 이렇게 해석을 해주시는군요. 이 을미년이 양의 해라고 하더라고요. 양의 해는 또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한완상 : 양은 말이죠. 자기 온 존재를 남을 위해 다 바치는 동물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온순하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한문에 보면 아름다울 미가 양 밑에 클 대 자거든요? 아름다운 동물이죠. 그리고 또 양 밑에 나 아를 쓰면 의로울 의가 됩니다. 그래서 을미년에 양 띠는 아름답고 의로운 정의로운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런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인이 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양창욱 : 네. 참 그러고 보면 지난해 2014년은 정말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고, 대부분 안 좋은 일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해는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요?
 
한완상 : 참 다사다난한 해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든데요. 역시 저는 2014년은 세월호의 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월호 해 이외에 하나를 더 지정한다면 지난 87년 시민혁명으로 새로 생긴 헌법 기구가 헌법 정신에 맞지 않게 국민이 직선한 국회의원의 자격을 박탈한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 일을 했기 때문에 이것도 하나의 큰 사건이 되겠습니다만 그러나 작년은 저는 세월호의 해라고 보는데 그 의미가 깊습니다. 첫 번째가 그 배가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죠. 그러니까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그 배를 탄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단 말이죠. 그런데 이게 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는가, 이것은 시장의 탐욕과 그 탐욕을 국가가 공정하게 엄격하게 공익적으로 관리를 못한 탓으로 기울어졌거든요? 그래서 참사가 생겼죠. 이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시장의 갑들과 국가의 갑들이 아주 못된 갑질을 결탁해서 공모해서 함께 함으로써 그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요. 이것을 저는 이렇게 봅니다. 2014년은 한국 시장과 국가의 공공성의 위기의 해였다, 라고요. 거기다 더 중요한 의미가 이런 게 있습니다. 그러면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할 때 처음 빠져나간 사람 말고요. 본격적으로 그게 기울어져서 시커먼 바다 밑으로 침몰할 때 국가는 단 한 사람도 구해내지 못했어요. 우리 헌법 34조 6항을 보면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가가 단 한 생명도 구하지 못하고 몰살시키는 일에 너무 무능했다는 것을 온 국민이 두 눈으로 가슴으로 창자로 보고 느꼈어요. 그래서 이게 공공성 위기에 더하여 국가의 무능을 국민들이 느꼈는데요. 이 때 그 참상을 봤던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국가는 지금 어디 있는가, 국민은 죽어나가는데... 그리고 국가가 있다면 국가는 무슨 국가냐, 민주 국가냐, 또 더 나아가서 이 정부가 도무지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안전, 국민의 안전은 국민의 인권, 국민의 주권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건데 이것을 소홀히 한 것을 보고 저 같은 사람은 이게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1912년 타이탄 호의 침몰을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타이탄 호는 그 때는 영국의 산업혁명의 저력을 상징하는 배 아닙니까? 세상에서 제일 큰 배, 제일 화려한 배, 제일 빨리 달리는 배, 이 3가지 이게 소위 영국 대영 제국의 막강한 제국주의적인 힘이 타이탄 호의 침몰로 이게 해가 기울듯이 저물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양창욱 : 공교롭게도 그렇게 딱 맞아떨어졌죠.
 
한완상 : 네. 그래서 타이탄 호가 큰 교통사고가 아니듯이 역사적인 사건이듯이 2014년 세월호도 지난 우리나라 근대화, 산업화를 편법주의적으로 지독하게 빨리 성장시킨 이 세력의 몰락이라고 할까, 이런 것을 시사하는 것 같이 느꼈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그렇게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양창욱 :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한완상 : 아니죠. 역사적인 사건이죠. 앞으로 보세요. 세월호 이전, 세월호 이후라는 말이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양창욱 : 네. 그 정도로 비견되는 그런 사건이었군요. 박사님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좀 여쭤보겠습니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다, 이런 별칭이 있습니다. 동의하시는지요?
 
한완상 : 뭐 동의한다고 할 수 있죠.
 
양창욱 : 왜 이런 별칭이 생겼다고 생각하세요?
 
한완상 : 네. 이건 좀 이론적이기도 하고 내 개인적인 일이기도 한데요. 일반적으로 보면 자유와 평등은 모순관계입니다. 서로 하나가 신장하면 하나는 줄어드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류 역사를 보면요. 그런데 저는 이 두 개가 함께 나는 상생하고, 또 신장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를 가진 사람들은 그 자유를 나를 위해 쓰면 평등이 죽지만 그 자유를 남의 자유를 위해서 쓰면 평등의 길이 열립니다. 또 평등한 상황 속에서 자유를 신장시키는 정책을 보다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 없는 평등, 이것은 무시무시한 극좌전체주의죠. 스탈린과 같은... 또 평등 없는 자유는 이건 또 나치나 파시스트 정권이 됩니다. 그러니까 저는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신장시켜야 한다고 보고요. 이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극좌전체주의, 극우전체주의는 우리가 반드시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하는 체제고요. 그러니까 자유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을 우리가 이제 분단국가잖아요. 독특한 우리 역사적 경험이잖아요? 분단 상황에서 보면 이것을 이렇게도 풀어낼 수 있습니다. 민주화와 통일을 모순관계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민주 후통일, 순서를 정하고 뭘 먼저 해야 한다고 하죠. 그런데 이것도 저는 선후 문제가 아니고, 모순 문제가 아니고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70년 가까운 분단 역사 속에서 남북관계가 악화되어서 한반도 평화가 위태로울 때마다 우리 국가 사회 내의 민주주의는 후퇴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양창욱 : 아, 정말 그러네요.
 
한완상 : 네. 인권도 후퇴가 되고요.
 
양창욱 : 민주주의와 인권이 다 후퇴가 되는군요.
 
한완상 : 네. 다 후퇴가 되죠. 그리고 노동삼권도 훼손되고, 언론의 자유도 훼손되고 하기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평화 실현과 우리 민주적 경제민주화와 정치민주화의 동시적인 신장은 항상 같이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를 선으로 보지 않습니다. 대충 선으로 볼 때 저 사람은 자유주의자다, 저 사람은 진보주의자다, 이렇게 나누는데 나는 그거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는 진보와 자유 두 가지 다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지금 이걸 생각해보세요. 요즘처럼 우리 사회 경제 불평등이 이렇게 심각한 때가 별로 없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더 그렇죠. 그런데 동시에 자유가 상당히 후퇴하고 있잖아요. 지난 7년 동안 굉장히 후퇴하고 있잖아요. 이번 헌법 재판의 판결로 더 후퇴되고 있다는 말이죠. 광풍이 불어 닥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잖아요. 마치 이것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망하고 와해되면서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는 그 전과 같은 조짐이 보인단 말이죠, 지금 현재.
 
양창욱 : 그 정도인가요?
 
한완상 : 아, 지금 그런 게 보이죠.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 신장과 남북관계 개선은 반드시 같이 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의미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자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영어로 자유주의라고 하면 뭡니까? liberal이죠? 난 liberal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하지 않아요.
 
양창욱 : 왜 그런가요?
 
한완상 : liberal은 평등보다는 자유를 더 강조하는 말이거든요. 꼭 영어로 쓰자면 liberative, 해방적이라는 말이 더 가깝다고 봅니다. 그래서 liberative progressive 이런 게 더 좋죠. progressive liberative 라는 말이 좋은데 그러니까 자유와 해방, 광복을 구조적으로 문화적으로 제약하는 체제가 전체주의라고 본다면 극좌, 극우 전체주의를 다 넘어서려면 자유주의적인 진보주의가 필요합니다.
 
양창욱 : 네. 새해 첫 날부터 공부가 많이 되는 그런 느낌입니다.
 
한완상 : 아, 내가 너무 어렵게 이야기 했나요?
 
양창욱 : 아닙니다. 잘 모르는 제가 이해하니까요.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는 통일부총리와 대통령특사를 지내셨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에서는 교육부총리를 지내셨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 참여정부 시절에는 적십자 총재를 역임하셨고... 그러니까 학계에도 참 오래계셨지만 이렇게 보면 공직에도 참 오래 계셨어요.
 
한완상 : 학계도 공직입니다.
 
양창욱 : 그렇군요. 그런데 저희 기자들은 또 이렇게 나누기를 좋아하니까요.
 
한완상 : 그래서 학계, 특히 국립대학 교수는 공무원이고, 공직이죠.
 
양창욱 : 아, 그런 구분을 잘 못해서요.
 
한완상 : 네.
 
양창욱 : 공직 생활은 그럼 얼마나 하신 거죠? 총 따져보면?
 
한완상 : 교수도 따지면 어떻게 되나요. 내가 미국에서 대학교수할 때부터 따지면 1967년부터니까요.

양창욱 : 그렇게 오래되셨나요?
 
한완상 : 네. 저는 이런 공직을 맡을 때 공직은 성직이다, 거룩한 성직, 우리가 성직이라고 하면 스님이나 신부님이나 목사님만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공직은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지 않는 직분을 다 공직이라고 하죠. 공무원이라고 하는 게 공무원이라는 것은 반드시 공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월급쟁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정말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 공직 중에도 가장 중요한 가치구현을 위해서 일한 공직을 맡아서 평화문제, 통일문제, 교육문제 전부 다 이게 전부 다 가장 가치 있는 공무원 가치 아닙니까? 여기에 헌신할 수 있도록 부름 받은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합니다.

양창욱 : 참 지금 공무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들인 것 같군요. 그런데 방금도 말씀하셨지만 그런 교육이라든지 대북정책, 남북관계 이런 데서 많이 일을 하셨는데 각 정부마다 대북정책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게 참 궁금합니다.

한완상 : 그렇습니다. 특징이 있습니다. 이게 좀 제가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면 정리해주시면 좋은데요. 우선 문민정부는 이제 노태우의 6공화국을 인계받았기 때문에 앞 정부에 대해 간단히 말할 수는 없죠. 왜냐하면 노태우 정부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낮아요. 남북관계 관한한 노태우 정부 때 이룩한 것은 그 이후 어느 정부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를 조금 하면 노태우 정부 때는 두 가지 중요한 놀라운 남북관계의 파격적인 조치를 했습니다. 하나가 교차승인입니다. 아마 기억나실 거예요. 우리 서울 정부는 우리의 이념적 적이었던 러시아와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하고 또 평양정부는 일본과 미국 정부와 관계 정상화해서 서로 교차승인 하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양창욱 : 아, 기억이 납니다.
 
한완상 : 기억나시죠? 교차승인은 놀라운 발상인데 이것은 노태우 정부의 소위 북방정책의 한 근간이죠. 이게 그런데 반만 이루어졌죠,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중국하고 러시아하고 우방이 되었지만 지금은 평양은 워싱턴과 갈등이 있죠. 그래서 반만 이루어졌지만 이런 교차승인의 발상, 이것은 놀라운 발상이고요. 이것은 그 당시 미소 간의 냉전 체제가 끝나고 89년에 소련이 붕괴되고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국제적으로 화해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굉장히 빠르게 노태우 정부가 가져온 것이죠. 그 이후에 다른 대통령들은 그렇게 빠르게 못했습니다. 지금 이제 교차승인이 반밖에 안 되고 최근에 한반도에 냉전 삼각 동맹이 또 다시 등장하려 하잖아요. 그 찰나죠.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노태우 정권의 교차승인을 우리가 다시 봐야 한다는 거고요. 두 번째는 이게 더 놀라운 겁니다. 1991년도에 노태우 정부는 부시, 아버지 부시와 합의해서 그 다음에 92년도 한미 군사 훈련, 여러분 다 아시는 팀 스피릿 훈련을 그만두기로 했어요. 이거는 그 이후에 어느 한국 대통령도 미국과 이런 거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만두기로 했기 때문에 1992년도에는 남북 기본 합의서가 나오게 됐죠.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거 기가 막힌 문건입니다. 이런 굵직굵직한 일들이 생겼죠.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런 결단을 우리 대통령들이 못한 걸 생각하면 노태우 정부에 대한 평가가 우리가 너무 좀 박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요. 하면서 다만 노태우 정부가 잘못한 것은, 그게 이제 제가 문민정부 때 통일부총리를 하면 느꼈던 아픔과 연결되는 점이에요. 뭐냐 하면 YS정부가 들어서서 획기적인 평화정책을 피려고 했죠. 했는데 그게 장애가 있었어요. 그 장애가 뭐냐 하면 92년도는 그만두기로 했던 팀 스피릿 훈련을 92년 가을에, 대통령 선거 한참 할 때 미국 정부가 갑자기 93년도에 다시 재개하는 걸로 결정했어요.
 
양창욱 : 미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압력을 넣었군요?
 
한완상 : 네. 그렇게 결정하니까... 저도 그 때는 깜짝 놀랐죠. 왜 이렇게 1년 만에 입장을 바꾸느냐, 이게 무슨 사단이 있었느냐, 했는데 이것 때문에 북한의 군부가 굉장히 분노해서 그 다음에 우리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 소위 NPT탈퇴를 준비하기 시작한 거 같아요.
 
양창욱 : 그 즈음이군요.
 
한완상 : 네. 그 즈음 같아요. 그래서 YS정부가 93년 2월 25일에 출범하고 나서 지금 이제 시간이 없어서 길게 얘기 못하지만 3월 11일 날 북한이 그렇게 요구하던 이 모 노인을 조건 없이 파격적으로 가족 품으로 보내기로 결단을 했는데 그걸 발표한지 24시간도 안 돼서 북한이 NPT탈퇴라는 엄청난 악재를 터뜨렸단 말이죠. 그런데 제가 그 때에 깜짝 놀란 것이 김일성 북한 주석이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를 보고, 불과 보름 전에 굉장히 감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입장이 돌변했느냐, 취임사에 입각해서 이 모 노인을 조건 없이 보내면서 서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서로 응징적 대응을 하지 말고 평화적으로 하자는 그런 새로운 문법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려고 했는데 NPT탈퇴를 했어요.
 
양창욱 : 큰 악재였네요.
 
한완상 : 그 때 그 악재가 팀 스피릿을 1년만 중단하고 다시 번복하게 된 것과 연관이 있었던 거죠.그때 당시에는 내가 이 실상을 몰랐어요. 그런데 작년에인가 그 때 우리 주한미대사로 있었던 분을 만나서 세미나 때 서로 이야기하면서 내가 슬쩍 물어봤어요. 당신이 그 때 대사였는데 왜 그랬느냐, 하니까 그 때 저한테 귓속말로 그 때 아버지 부시 밑에 국방장관하고 아들 부시 밑에 체니 부통령이 뒤집었다, 하더라고요.
 
양창욱 : 체니 전 부통령이 뒤집었군요. 대북강경론자 아닙니까?
 
한완상 : 체니는 대북강경론자일 뿐만 아니라 소위 미국에서 말하는 니오콘, 극보수냉전근본주의자의 대표 아닙니까. 그래서 그 때야 내가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것은 노태우 정부 의지와는 관계없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일방적으로 개시했다는 걸 내가 알았죠.
 
양창욱 : 네. 그러면 이제 문민정부로 넘어와서, 문민정부에서도 여러 가지 악재와 남북관계가 냉각되는 그런 일들이 많않죠?
 
한완상 : 많았죠. 그런데 제일 제가 가슴 아픈 건 이 모 노인을 보내고 나서, 파격적인 인도주의적인 임팩트가 생겨서 남북관계가 풀리도록 했고, 또 북한 최고위가 여기에 굉장히 감동받아서 남북관계를 풀려고 했다고 해서 소위 햇볕논쟁인 정책, 다시 말하면 북한을 강풍으로 군사적인 강경책으로 북한 관계를 푸는 게 아니고, 그건 악화만 되니까 햇볕처럼 따뜻하게 풀려고 했는데...
 
양창욱 : 대북온건 정책을 펴시고 싶었군요?
 
한완상 : 이건 온건정책은 또 아니에요. 다른 개념이죠. 그러니까 우리 속에 있는 냉전적 곰팡이도 제거해내고, 북한의 강경냉전적인 여러 가지 제도나 이런 것들도 드러내게 하는 방식으로 햇볕정책을 펴려고 했는데 이게 찬바람을 맞은 거죠. 여기서 제가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요,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것. 이게 뭐냐 하면 남북 간의 극단적인 세력들 있잖아요? 북한의 강경군부, 남한의 강경보수냉전세력, 이 두 세력은 공식적으로는 서로 주적으로 미워하면서도 이상하게 그 사람들은 서로 도와요. 그러니까 북한에서 강경군부가 강하게 나오면 남쪽에서는 강경보수가 그걸 받아서 강하게 우리 대내 민주화를 훼손시키고 지연시키는 일을 자유롭게 한다고요.

양창욱 : 극과 극이 참 통하네요.

한완상 : 극좌와 극우는 서로 공식적으로는 원수같이 이야기하는데 적대 관계인데, 희한하게도 각 체제 안에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데 그게 굉장히 좋은 계기죠. 그러니까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덕을 보는 세력이 있어요. 그게 바로 극단적인 세력입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저는 통일부총리로 일하면서 바꿔보겠다, 왜냐하면 양 체제 속에 남북 속에 실용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이고 온건하고 평화지향적인 세력들이 힘을 얻어야지, 남북관계도 좋아지고 민주주의도 돼요. 그러니까 남북관계를 악화시켜서 정치적으로 전체주의 세력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세력이 양 쪽에 다 있으면 남북관계도 망가지고 민주주의도 안 되는 거예요. 그걸 바꾸기 위해 제가 굉장히 노력했는데 그걸 노력 못하도록 좌절시켰던 것이 북한의 NPT탈퇴고 이건 앞서 말씀드린 팀 스피릿 재개와 연결돼 있는 거죠. 그런 게 가슴이 아픈 거죠.
 
양창욱 : 네. 그렇군요.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한완상 : 그리고 DJ는 어떻게 했느냐. DJ는 말이죠, 집권 과정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없는 본질적으로 개선하는데 앞장 설 수 없는 보수적인 세력과 결탁해서 집권했잖아요. 그게 DJP죠. 그리고 DJP연정해서 하면서 총리,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 외무부 장관 다 그 쪽 사람들이 하니까 남북관계가 좋아지겠어요? 경색되죠. 그래서 통일을 제일 잘 할 것이다, 평화 정책을 제일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2년은 남북관계가 참 나빴죠. 첫 해, 98년에 베이징에서 회담 실패했잖아요. 실패한 이후에 북한 당국은 공식적으로 국민의 정부를 웃으면서 자기들을 삼키려고 하는 아주 교묘한 정부다 하면서 비판했죠. 그 때는 정식으로 햇볕 정책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었으니까 햇볕 정책을 비판했죠.
 
양창욱 : 네. 국민의 정부, 처음 2년 동안은 참 힘들었군요?
 
한완상 : 힘들었죠. 그래서 겨우 2000년 6월 15일에 남북 정상회담이 됐죠.
 
양창욱 : 그 전까지는 굉장히 힘드셨다는 말씀이시고...

한완상 : 그러니까 앞의 2년이 잘됐더라면 지금 남북관계가 이렇지는 않죠. 국민의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2000년 6월 달에 했지 않습니까? 그게 앞의 2년은 어떤 의미에서 허송세월하고 시작했는데 이게 늦은 것이요. 클린턴 행정부하고 김대중 정부하고는 코드가 맞았습니다. 그래서 클린턴 행정부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굉장히 힘차게 하려고 2000년 10월 중순에는 북한에 실세인 조명록 차수가 미국 방문을 하잖아요? 그 때에 북미 공동커뮤니케이터가 나오고 해서 이야, 북미관계도 개선되는 거구나, 그러면 남북관계는 정상회담을 통해 좋아질 테니까 북미 관계하고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둘이 서로 상호작용을 해서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참 좋을 것이다 이런 전망들이 많았죠. 유리한 여건이죠. 그런데 불행하게도 클린턴 행정부의 임기가 끝났어요. 그래서 그 다음에 아들 부시, 정말 아버지에 비하면 염려스럽게 보수적인 사람이 들어서면서 그 꿈이 완전히 좌절되었죠. 그걸 우리가 늘 거울삼아서 아쉬워하는 것이죠. 그 다음에 이제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는 정상회담을 그저 임기 다 끝나서 3개월 앞두고 했기 때문에 정말 참...
 
양창욱 : 안한 것만 못하게 됐나요?

한완상 : 네. 참 가슴 아픈 일이죠. 그리고 MB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게 된 겁니다.

양창욱 : 네. 지금까지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까지 대북정책들을 쭉 들어봤는데, 이제 자연스럽게 박근혜 정부까지 넘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의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한완상 : 아직 2년밖에 안 돼서 이르긴 하지만 신뢰프로세스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죠? 그런데 신뢰를 조성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게 신뢰를 조성하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뭐냐 하면 그간 남북 정상 간의 합의한 것은 서로 꼭 지키겠다, 라고 하는 대단한 각오를 서로 해야 합니다. 북쪽에서는 했죠. 북쪽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북쪽의 체제상 정상은 신적인 존재와 같은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쪽이 컬트 국가니까 그렇단 말이죠. 그래서 최고위가 직접 선언한 문건은 정치적 문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것을 종교적으로 신성한 문건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정상 간의 합의는 굉장히 중요한 무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북쪽에서는 정상 간의 합의문을 지켰다는 것을 말할 수 없이 자기들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인데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을 지키겠다는 그런 의지를 MB정부에서도 제대로 못하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상 간의 합의 가운데서도 6.15 공동선언하고 10.4공동선언 두 개가 있잖아요? 이것은 총론적인 건데 이제 그 총론을 남북의 실무자들이 각론적으로 프로그램화 하는 일을 위해서 착수했으면 이게 신뢰가 쌓이죠. 그런데 그 일을 전혀 못했죠. 마치 그것을 죽은 문서처럼 취급했다는 거죠.
 
양창욱 : 사실상 사문화되었군요.
 
한완상 : 무시했죠. 특히 10.4 공동선언에 보면 거기에 난 두 가지 중요한 박근혜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있어요.
 
양창욱 : 참여정부 때 만들어진 10.4 공동선언에서요?
 
한완상 : 네. 10.4 공동선언에 보면 첫째는 남북 간의 경제협력을 아주 상당히 구체적으로 거시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항목이 있습니다. 경제협력을 길을 터놓는 항목이 있고요. 둘째는 북한이 최초로 최고 정상이 한반도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꿀 때 남한을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항목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종래에 평양 당국은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만들 때 우리는 휴전협정에 사인을 안 했잖아요. 안 했기 때문에 너희들은 빠져라, 한다면 미국과 중국과 북한 이 3자가 한다고 남쪽은 늘 배제했습니다. 그랬는데 여기 10.4공동선언 4항인가를 보면 평화체제를 구축할 때 남북이 두 기둥이 되고 거기에 미국과 중국이 합세하는 모양의 항목이 있어요. 처음으로 북한의 최고위가 남쪽을 평화체제 구축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로 인정한 것이죠. 그전까지는 소위 봉남통미였잖아요. 이게 통미통남으로 가는 길을 열어 놨어요. 이게 귀한 자원이죠.

양창욱 : 아, 그런게 10.4 공동선언에 나오는 군요.
 
한완상 : 거기 나오죠. 그러니까 이 두 가지를 각론적으로 남북관계를 전담하는 남북 간의 관료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 했더라면 남북 관계가 진전할 수 있는 실익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죠.
 
양창욱 : 구체적으로 계승을 못했군요.
 
한완상 : 못했죠. 무시했죠. 그런데다가 이 신뢰가 손상되는 구체적인 일들을 박근혜 정부가 들어와서 국내외적으로 했어요. 몇 가지만 지적하고 싶습니다. 북한은 지금 핵과 경제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병진노선인데 이 병진노선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어요. 오바마 정부도 지금 그렇게 취하죠. 또 북핵 해결 없이 남북관계 개선 안 된다. 이 문제를 못 박아서 핵문제가 해결 안 되면 남북관계 발전할 수 없다는 말에 참 문제가 있는 것이 북한은 핵문제는 미국과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안 된다면 남북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종속적인 입장으로 빠지도록 했거든요? 그리고 북한 인권문제를 국제적으로 우리가 굉장히 부각시키고 또 국제공조를 촉구했어요. 그러니까 국제적으로 힘을 합쳐서 북한을 옥죄는 일을 했거든요? 게다가 반공 반 김정은 세력들의 풍선 띄우기를 통해서, 삐라를 통해 노골적으로 저 쪽에서 불신정도가 아니고 아주 분노할 정도의 내용들을 담아서 자극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보면 북한이 신뢰하겠어요? 그러니까 신뢰프로세스가 불신프로세스로 악화된 것이죠. 그러면서 여기 또 하나의 패착이 소위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했잖아요. 통일을 우리끼리 하자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통일은 상대가 있는데 상대가 준비위원회에 들어와야 통일준비가 되는 것이지, 상대는 화나게 하면서 불신을 조장하면서 우리끼리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면 그게 통일준비위원회인지 불통일준비위원회인지 우리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통일준비위원회는 이게 비유컨대 마차는 말이 앞에 서서 끌어야 되잖아요? 말을 마차 뒤에 놓은 것과 같은 형국인 거죠. 그러니까 통일 대박은 말로는 참 좋은데 실제로는 쪽박으로 간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어떻게 말이 앞에 있어야지 마차를 끌지, 뒤에 있으면 못 끌잖아요.

양창욱 : 올해가 분단 70년, 광복 70년 이렇다보니 정부도 많이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고, 남북관계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개선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조언을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한완상 : 이게 조언을 한다면 지금 오바마 대통령이 이제 작년 말에 쿠바와 53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정상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볼 때 미국을 가장 괴롭힌 나라가 6개가 있었습니다. 하나가 중국, 월남, 쿠바, 북한, 이란, 미얀마였는데 이 중에 중국과 월남하고는 벌써 국교정상화를 했습니다. 이제 쿠바하고 했으니까 여섯 가운데 셋은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섯 가운데 실제로 제일 자기들을 불편하게 하는 게 북한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세계 2차대전을 그렇게 압승하고 5년 후에 처음으로 전쟁에서 못 이긴 것이 한국전쟁이에요. 그러니까 미국 국민들의 마음에는 한국전쟁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거예요. 이기지 못한 전쟁, 이기지 못한 전쟁 이후에 월남전이 처음으로 패배한 전쟁이고요. 그러니까 아시아를 생각하면 막 자기들을 패배시켰든지 모멸을 시킨 그런 경험이 있잖아요?
 
양창욱 : 이기지 못한 전쟁을 한 나라들이다...

한완상 : 그런데 이제 쿠바는 핵이 없잖아요. 그렇게 위협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핵이 있는 중국하고는 국교정상화를 해서 지금 신대국 관계를 만들어야 할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이 핵을 갖고 있는 북한하고 관계는 악화되고 있어요. 쿠바하고는 그렇게 관계 정상화하면서도 북한하고는 이게 최근에는 <인터뷰>라는 영화 때문에 더 악화가 되었다는 말이죠. 이럴 때 사실은 절망의 캄캄한 밑바닥에서 희망이 더 빛나듯이 캄캄할 때 조그마한 성냥 하나가 밝듯이 이렇게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아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이때에, 박근혜 정부가 조그마한 불빛을 하나 붙이면 환하게 밝아진다고 생각해요. 난 오히려 이게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양창욱 : 어떤 불빛을 붙히면 환하게 밝아지나요?

한완상 : 나는 우리 정부가 외교력을 총동원해서 오바마 정부로 하여금 북미관계 개선, 다시 말하면 클린턴이 마지막 하려고 하던 것을 못하고 끝났잖아요. 그리고나서 오바마가 지금 대통령 후보로 상당한 힘이 있는 현재 국무장관을 임명했을 때 이 캐리 외무부장관이 중국 가서 한 말은 이겁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를 살리면 되겠구나, 이런 말을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정부가 9.19 공동성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서 6자회담 관련 당국과, 특히 북한과 미국과 우리가 힘을 쓰면 나는 이게 오바마가 임기 끝나기 전에 쿠바처럼 북한을 관계정상화의 상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9.19가 어떻게 해서 망가지게 되었는가, 복기를 해보는 거예요. 아, 이 점에서 그 때는 행동 대 행도, 말 대 말, 그래서 하나하나 하게 되었는데 어디서 어긋났는가, 이것을 워싱턴, 평양, 우리, 중국 뭐 일본하고 러시아까지 들어와도 좋아요. 여하튼 이런 관계 당국자들이 어디서 고장 났는가, 하는 것을 복기해서 그걸 복원하는 조치를 하도록 박근혜 정부가 오바마 정부에게 을미년 초반부터 외교총공세를 하는 거죠. 그래야지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중국하고 긴장관계를 맺으면서 우리 민족이 나갈 길을 우리가 제대로 찾을 수 없어요. 중국 시장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미국하고 엇나가서도 안 되죠. 이건 뭐 전통적인 우리 동맹국가니까 안 되죠. 그러니까 중국과 미국 간의 잠재적인 긴장을 올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올라가게 하는 일에 우리 외교력을 균형자역할 할 수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 때는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전략적 입장이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우리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서 우리의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위해서 우리는 중국과 미국 간의 화해를 도모해야만 우리의 민족이 나갈 길이 있습니다.
 
양창욱 : 노무현정부 때 동북아균형자론 얘기를 하셔서 여쭤보는데, 그 때는 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없었고 지금은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한완상 : 그 때는 중국하고 미국하고 싸우지는 않았어요.
 
양창욱 : 싸우지 않았다고요?

한완상 : 지금처럼 중국이 이렇게 막강한 G2로 부상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죠. 그 때는 서울과 베이징의 거리와 서울과 워싱턴의 거리가 같다고 하면, 야단맞을 때입니다. 지금은 같은 정도가 아니라 중국 시장의 무게는 일본 미국 시장 합친 것보다 크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현실적으로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선진평화대국, 그리고 민주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G1, G2 간의 갈등을 조화관계로 만드는 일을 우리가 운명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되었고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운명적이에요. 이걸 못하면 우린 그 사이에서 눈치 보다가 그야말로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어려움에 빠질 수 있어요.
 
양창욱 :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한완상 : 그러니까 그게 참 좋은 질문입니다.
 
양창욱 :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역량이 돼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한완상 : 역량은 있는 것 같은데, 지금 그런 의지가 부족한 거 아니겠어요?
 
양창욱 : 아, 지금 최고통수권자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말씀이시군요.
 
한완상 : 의지가 너무 냉전적이 너무 구식이면 안 되는 것이죠.
 
양창욱 : 그런 부분에서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한완상 : 더군다나 특히 미국이 쿠바하고 관계정상화해서 풀렸으니까 목에 가시가 제거되었으니까 이란하고 관계도 빨리 좋아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란하고의 관계가 경제적으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과 이란, 둘 다 핵과 관계됩니다. 이란과 북한도 그 나라 사이에도 핵관계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평양과 이 쪽 이란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한꺼번에 골치 아픈 중동의 문제를 푸는 길도 되고 그게 되면 세계평화에도 이바지하니까 나는 우리 대통령께서 을미년에 접어들자마자 외교역량을 총동원해서 미국이 북한과 이란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도록, 월남하고도 하는데 왜 못합니까? 중국하고도 했는데 왜 못합니까? 그리고 이제 여기서 제가 가슴 아픈 것은 우리가 일제 36년 동안 그렇게 억울한 고통을 당했는데 일제가 물러가면서 일제는 전범국아닙니까? 전범국 같으면 히틀러 정부가 당했던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양창욱 : 그 정도 벌을 받아야죠.
 
한완상 : 받아야 되는데 벌은 누가 받았습니까?
 
양창욱 : 엉뚱한 사람들이 받더라고요. 한반도가 받았죠.
 
한완상 : 누가 분단되었나요? 한반도가 분단되었습니다. 식민지 36년 억울한 고통에 더해서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에는 반드시 분단문제가 해결되면서 처음으로 우리 국민이 해방과 광복을 맞보아야합니다. 양 선생님은 해방을 경험했습니까?
 
양창욱 : 아닙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들이 경험하셨죠.
 
한완상 : 부모님 세대가 내가 그 세대에 속하는데 나는 1945년 8월 15일에 말만 해방이지 식민지 시대가 분단시대로 바로 갔어요. 분단시대는 식민지시대보다 고통이 더 컸어요. 식민지 시대에는 우리끼리 안 싸웠잖아요.
 
양창욱 : 그렇죠. 그런 일은 없었죠.
 
한완상 : 냉전 62년 우리는 서로 3백만 이상을 죽이고 엄청난 냉전 비용을 지불하면서 큰 고통을 겪고 있으니까 우리 박근혜정부는 정말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분단 70년이 되는 해에 진짜 우리가 기다리는 진정한 해방과 광복을 체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기막힌 역사적인 환희가 올 수 있도록 해야한다...
 
양창욱 : 그런 주춧돌을 좀 놓아야겠네요.
 
한완상 : 그렇죠.
 
양창욱 : 네. 알겠습니다.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과 신년 특집대담 진행하고 있는데요. 통일이야기, 남북관계 이야기하다보니 시간이 다 돼가고 있습니다. 박사님, 남은 여생에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한완상 : 제가 일제 시대에 태어나서 일제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니고 일본 식민지의 아주 고약한 통치의 아픔을 겪었고요. 분단시대도 제가 겪으면서 소망이 있다면 진짜 해방을 맛보고 싶어요. 제가 제일 감동하는 건요, 1989년 베른슈타인이 베를린장벽 무너졌을 때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를, 동서독 오케스트라가 '환희' 합창 할 때, 오늘도 아침에 보고 왔습니다. 듣고 왔는데 눈물이 나요. 우리도 곧 내가 죽기 전에 휴전선에서 남북 간의 오케스트라가 같이 베토벤의 '환희'뿐만 아니라 '아리랑', '아리랑'을 주제로 세계적인 우리 음악가들을 불러서 해방과 광복의 잔치를 하고 싶어요. 그거 보고 죽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평화공원을 만들고 싶다면 그 평화공원 사이트에서 통일을 통해서 우리가 느끼는 최초의 광복과 해방의 기쁨을 온 민족이 만끽하는 그런 자리에 참석하고 싶고 그 광경을 보고 죽고 싶습니다.
 
양창욱 : 네, 박사님 말씀하시면서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십니다. 뭉클합니다. 박사님, 새해 첫 날인데 애창곡 있으면 한 곡 알려주세요. 저희들이 엔딩곡으로 깔면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완상 : 제가 결혼 주례할 때 제자들과 함께 부르는 게 '사랑으로'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양창욱 : 네. 해바라기의 '사랑으로'으로 말씀하시는 거죠? 알겠습니다.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완상 :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양창욱 : 지금까지 신년 특집대담,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와 함께 했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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