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의 어느날로 기억됩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과 그의 의원실에서 마주했습니다. 굳은 표정의 그는 대화를 꺼리며 담배를 연신 피웠습니다. 국회에서 한 기자와 나눈 대화가 의도치않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 다음날이었죠. 기자를 만나는 것이 정말 내키지 않았을 시점에 불청객을 맞아준 것만도 고맙다는 생각에 저는 잠시 본분을 잊었습니다. 좋은 타이밍인데도 ‘기사꺼리’를 챙기지 못한채 딴 이야기만 한참 하다가 주섬주섬 나와버리고 말았죠. 하지만 한 가지는 가슴 속에 담았습니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위원장이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그 핵심을 유승민 의원이 정확히 짚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 유승민 의원 (사진출처:경북일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쓴소리도 박 위원장을 만나야 한다. 만나기는 커녕 전화 통화조차 어렵다” 당시 유승민 의원 발언으로 보도된 멘트입니다. 이 ‘폭탄성' 발언은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 당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원조 친박에다 그때까지도 최측근으로 분류된 인물이 던진 말이었기 때문이고요, 불과 몇 달 전 디도스 사태로 인한 당의 위기상황에서 몸소 앞장서 최고위원직을 내놓으며 ‘박근혜 비대위’ 출범에 문을 연 사람도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의 기사로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위원장과 ‘공식적’으로 멀어졌습니다. 친박계 어느 누구도 ‘직언 같은 직언’을 하지 못하는 여당 분위기에서 유 의원이 본격적으로 ‘야당같은 친박’의 길을 자처한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열린 첫 당정청 회의에서도 유 의원은 “대통령이 쓴 단어들을 모아서 국정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여당 의원들에게도 이렇게 전도하듯 하는데 어떻게 국민과의 소통이 잘 될 수 있겠느냐"고 청와대를 정면으로 겨냥해 쓴소리를 했습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장에서 유 의원은 청와대가 주도하는 외교정책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청와대 얼라들(어린이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이 하는 겁니까?“라고 돌직구를 날려 큰 논란을 낳기도 했습니다. 능력과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이 국정을 좌지우지한다는 뜻으로 해석된 것이죠. 물론 청와대와 박 대통령 주변 그룹은 이런 발언들에 꿈쩍도 하지 않는 듯 해보였습니다.

지난주 여권의 원내대표까지 역임했던 모 원로 정치인과 저녁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청와대 문건 파문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사태의 본질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각 부처 장관은 물론 청와대 비서진과들과도 대면 보고를 잘 받지 않고 주로 문서나 전화로 소통하는 부분에 강한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전하며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청와대 경제수석조차도 지난 1년간 대면보고 한번 한 적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늘 내실에서 문고리 3인방 이야기만 듣고 보고서를 보며 전화로 지시한다. 어느 누구도 전화상으로 이견을 말하기는 어렵다” 2년 8개월 전 유승민 의원의 염려와도 정확히 일맥상통했습니다.
 
▲ "대통령은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참모들은 ‘직언’을 제대로 해야만..." [여의도 통신] 본문 中

박근혜 대통령과 한때 가까웠던 정윤회씨가 비선실세로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두고 온 나라가 어지러운 때입니다. 검찰의 수사 진행상황을 보면 청와대 문건에 언급된 이른바 '십상시 모임'은 사실상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려지는 듯 합니다. 박 대통령이 초기에 규정한대로 문건은 '찌라시'(정보지)에 나오는 이야기란 것이죠. 또 문건의 유출 경위를 둘러싼 수사는 핵심 인물로 지목돼 구속영장이 청구된 최모 경위가 죽음에 이르면서 미궁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하는 부분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죠. 대통령은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참모들은 ‘직언’을 제대로 해야만 국정을 바로세울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가 주는 값진 교훈이 아닐까요? “박근혜 위원장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만나기는 커녕 전화 통화조차 어렵다”는 2년 8개월 전 발언이 박근혜 대통령의 남은 임기 속에서도 여전히 애정어린 쓴소리로 남을 것이란 것은  이번에 따끔하게 드러났으니까요/ 정치외교부 이현구 차장

이현구 기자 / tkbbs@nate.com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