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A국회의원은 최근 인권 문제와 관련해 대표발의한 한 법안을 스스로 철회했습니다. '인권법=동성애 조장'으로 몰아붙이는 특정 보수 종교세력의 거센 반발을 견디기 힘들어서였습니다. 법안 작성의 실무를 맡았던 B보좌관은 "막무가내식 집단 민원 때문에 의원실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법안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비교적 자세히 알려주면서도 기사화는 안했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법 제정을 포기한 상황에서 다시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이죠. 하지만 딱히 감출 이유가 없는 내용이고 덮어두기에도 좀 아까운 '기사꺼리'란 생각이 들어 [여의도통신]에 '살짝' 담기로 했습니다. 물론 법안의 구체적인 제목과 내용, 대표발의한 의원의 이름, 집단 민원을 제기한 단체 등을 공개하지 않는 수준에서 말입니다.  

먼저 문제의 '인권 관련 법안'을 규탄하는 단체의 주장 가운데 다소 황당한 내용을 보겠습니다. 지난 11월 24일 이들 단체가 발표한 성명의 일부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군대 내 항문성교 보장과 병역거부 인정을 요구하는 곳이어서, 헌법의 내용을 위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썩 유쾌하지 않은 '항문성교'란 단어를 언급하기 싫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마치 이를 조장하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부분은 짚어줘야 하겠습니다.  성명서에 이런 내용도 있네요  "....소대장이 군기 확립을 위해 얼차례를 준 행위는 신병에 의해 '인권침해'라고 신고가 된다 (중략) 그러면 군인권보호센터는 헌병을 시켜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이 평소 부대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쥐잡듯이 조사를 한다. 이로인해 장교들뿐 아니라 부사관, 선임병들도 모두 '군기강 확립을 위한 조치'들을 꺼려하게 되고 대한민국 군대는 멸망전 베트남 군대와 같이 지리멸렬한 상태가 되어 북한의 가벼운 위협에도 항복하는 군대로 추락하고 만다" 군대에서 인권을 강조하면 기강이 해이해져 전투력이 약해진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입니다. 최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장병들의 인권존중을 더 강화하는 것이 선진 강군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밝혔는데요. 병사들의 인권이 강화되면 멸망 전 베트남 군처럼 된다는 것, 상상력이 지나친 것인지, 비약이 심한 것인지 모르겠군요.

이들 단체가 법안 내용을 반대하는 방식도 보겠습니다. 이는 지난 11월 6일 "좌파 인권정치에 놀아나는 한심한 새누리당 의원들!"이란 제목의 성명서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성명 내용이 끝나는 부분에 뜬금없이 <항의전화>라고 표시된 별도의 제목 아래 법안을 공동발의한 국회의원들의 이름, 의원실 전화번호가 빠짐없이 적시돼있는 것이 놀랍기까지 합니다. 성명 발표 이후 이들 의원실에 조직적인 항의전화가 쇄도한 것은 물론입니다.  마치 누군가 시켜서 한것 처럼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입장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전화였다고 하고요. 대표발의한 A의원실의 업무가 마비 지경에 이르렀던 것도 물론입니다.

국회에서 인권 문제와 관련해 입법을 시도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처럼 돼버렸습니다. 분명 당위성은 있지만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는 것이죠.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접속해 의안명에 '인권'이란 단어를 넣어 각종 법안들의 진행상황을 검색해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불교계가 지속적으로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인권 관련법인 '차별금지법안'의 경우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지난 18대 국회 이후 권영길, 김재연, 김한길, 최원식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4건의 차별금지법안이 제출됐지만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채 폐기 또는 철회된 상태로 나옵니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할 수 있고, 타 종교를 차별하는 행위가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 때문에 특정 종교세력이 조직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섰기 때문이고요. 또 이같은 반발이 예상보다 집요하고 거세자 대표 발의한 의원들이 '앗 뜨거'하면서 백기를 들거나 없던 일로 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 초 '차별금지법 표류..정치권 뒷짐'이란 제목의 TV 리포트를 방송했던 당시가 생각나는군요. 차별금지법안을 대표발의했거나 공동발의한 의원들이 하나같이 인터뷰에 응하기를 꺼려해 뉴스 제작에 애를 태웠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이해는 가더군요. 지난주에는 국회가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해 여야 1개씩의 관련 법안을 10년만에 외교통일위원회에 상정해 논의를 시작했다는 뉴스가 크게 보도됐습니다. '인권'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온 특정 종교세력이 북한 주민들의 동성애가 염려된다며 해당 의원실에 항의전화를 했다는 말은 아직 들리지 않는군요. /정치외교부 이현구 차장

이현구 기자 / tkbb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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