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배심 백인 경관 불기소…흑인 대규모 시위

● BBS 불교방송 ‘박경수의 아침저널’ (FM 101.9Mh / 07:30~09:00)
● 코너명 : ‘세계는 지금’
● 진행 : 박경수 앵커
● 출연 : 정치외교부 최재원 기자

[세계는 지금] 한주간의 지구촌 소식 가운데 하나를 골라 자세히 살펴보는 ‘세계는 지금’ 시간입니다. 몇 달 전 미국의 한 소도시에서 비무장 상태였던 흑인 청년이 백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어제 이 백인 경관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결정이 나와 미국의 흑인 사회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자세히 짚어보죠. 불교방송 보도국 최재원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앵커] 최 기자, 이 시간을 통해서 한 차례 다뤘던 사건이긴 한데요. 다시 한 번 기억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기자] 네, 간단하게 정리해 드리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죠. ‘손을 들고 항복 의사를 밝힌, 무장도 하지 않은 흑인 18살 청년에게 백인 경관이 다짜고짜 총격을 가한 사건이다’라고요. 적어도 지금 미국의 흑인들은 이 사건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건 자체를 찬찬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쟁점 사항이 분명히 있거든요.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경찰의 과잉 진압인지, 아니면 정당방위였는지를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백인 경관의 편을 들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백인 경관이 흑인 청년에게 무턱대고 총을 쏜 것인지 의심해 볼 증거들도 있다는 겁니다.
 
실제 사건 초기에는 정황이 잘못 알려지기도 했어요. ‘흑인 청년은 단지 무단횡단을 했을 뿐인데 백인 경찰이 단속하다 시비가 붙여 총격이 발생한 것이다’라고요. 이건 잘못된 내용입니다.

▲ 지난 8월 마이클 브라운의 장례식 (사진 : AP)

[앵커]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보는 식으로 사건을 되짚어볼까요?
 
[기자] 네, 지난 8월 9일, 미국 미주리 주의 작은 도시, 퍼거슨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피해자는 ‘마이클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18살 흑인 청년입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었고요, 이 청년은 키가 193센티미터에, 몸무게가 132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거구입니다. 아마추어 래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별명이 ‘빅 마이크(Big Mike)’였다고 해요.
 
브라운은 이날 정오쯤 ‘도리언 존슨’이라는 친구와 함께 차도 한 가운데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차도에는 차들이 거의 지나지 않고 한산했다고 하는데요. 두 사람은 막 도둑질을 하고 도망쳐 나온 직후였습니다. 인근 편의점에서 50달러 상당, 우리 돈으로 5만 5천원어치의 담배, 시가를 훔쳤어요. 퍼거슨시 경찰이 편의점 CCTV 영상을 공개했죠.

때마침 28살 백인 경관 ‘대런 윌슨’이 인근에서 혼자 경찰차를 타고 순찰 중이었는데요. 무전을 받게 됩니다.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흰 색 티셔츠와 카키색 반바지를 입고 빨간색 모자를 쓴 흑인 남성이다”라는 내용이었죠. 마이클 브라운과 인상착의가 일치했습니다. ‘세인트 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라는 지역 언론사가 이 무전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윌슨 경관은 도로를 걷고 있던 마이클 브라운과 친구 도리언 존슨을 발견합니다. 이들에게 도로 바깥으로 나오라고 명령하고 무전으로 지원을 요청하게 되죠. 여기서부터 총격이 발생하기까지 과정이 쟁점입니다. 양쪽 주장은 물론이고, 목격자들의 증언이 서로 엇갈리기 때문입니다.
 
일단 곁에 있던 친구, 도리언 존슨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윌슨 경관이 브라운의 목덜미를 붙잡아 경찰차 안에 집어넣으려 했다. 이후 경관이 도망치는 브라운을 쫓아가 뒤에서 수차례 총을 쐈다, 브라운이 항복한다는 의미에서 양손을 들었음에도 경관은 계속 총을 발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경찰의 ‘과잉 진압’이라는 겁니다.
 
반면, 윌슨 경관의 설명은 다릅니다. “브라운이 자신을 차 속으로 밀어 넣고 손을 차 안으로 밀어 넣어 자신의 총을 빼앗으려 해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자신은 브라운으로부터 얼굴과 머리를 여러 차례 맞았다. 저지하기 위해 총을 두 발 발사하자 브라운이 잠시 도망치는가 싶더니 다시 몸을 돌려 자신에게 다가 왔다. 그래서 위협을 느끼고 총을 쐈다”라고 설명합니다. ‘정당방위’였다는 겁니다.
 
부검 보고서를 보면 브라운은 모두 여섯 발의 총알을 몸으로 받아 냈습니다. 네 발은 가슴과 팔에 맞았고, 두 발은 머리를 관통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즉사했죠.

▲ 사건 당시 총격을 받고 쓰러진 마이클 브라운.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대런 윌슨 경관이다. (사진 : CNN)

[앵커] 그동안 과잉 진압이냐, 정당방위냐를 놓고 논란이 일어 왔는데, 어제 미국 대배심이 결론을 내놨군요. 경찰 쪽의 손을 들어줬네요. 정당방위였다는 거군요?
 

[기자] 네, 사건이 발생한지 108일 만에 나온 결론입니다. 미국 대배심이 윌슨 경관에 대해 불기소 결정, 그러니까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대배심은 법원의 판결이 아니고요. 일반 시민들이 배심원이 돼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지 말지를 결정하는 겁니다. 검찰처럼 말이죠. 이들은 윌슨을 재판에 넘길 만한 ‘상당한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결론이긴 합니다. 대개 이런 경우에는 정당방위 논리를 내세우는 경찰 측이 승리한 경우가 많거든요.
 
게다가 대배심 결정에 앞서 나왔던 윌슨의 부검 결과도 경찰 쪽에 유리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브라운은 불법 마리화나를 피운 것으로 확인됐고요. 부검 보고서에 브라운이 몸싸움 과정에서 윌슨의 총을 빼앗으려 했다는 점이 적시됐습니다.
 
무엇보다 대배심은 브라운의 친구인 존슨보다는 윌슨 경관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부검 결과 브라운의 시신에 박힌 총알들이 모두 몸 앞쪽에서 발사된 것으로 확인됐어요. 등 뒤에서 총을 난사했다는 존슨의 증언이 거짓으로 판명되는 부분이죠. 대배심은 또 윌슨 경관이 브라운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것으로 증명하기 위해 윌슨이 타박상을 입은 사진을 공개했죠.

▲ 마이클 브라운의 부검 결과서

다만, 대배심이 처음부터 공정한 수사를 하기 어려웠다는 논란도 있습니다. 배심원은 모두 12명인데 백인 9명, 흑인 3명으로 구성됐습니다. 퍼거슨 시는 흑인들의 비중이 많지만요. 퍼거슨 시가 속한 세인트 루이스 카운티는 백인들의 비중이 많아서 여기서 무작위로 배심원들을 뽑았는데 결과적으로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게 구성된 거죠. 흑인 시위대 측은 백인 위주의 대배심이 공정할 수 있겠냐고 처음부터 의혹을 품어왔습니다. 검찰 측은 “목격자 60명으로부터 70시간 분량의 증언을 청취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타박상을 입은 대런 윌슨 (사진:로이터)

[앵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흑인 사회의 분노가 대단했잖아요. 그런데 백인 경관에게 죄가 없다는 식으로 발표를 했으니 흑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요? 유족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고요.
 
[기자] 네, 그렇죠. 대배심이 결과를 발표한 것이 현지시간으로 밤 8시였습니다. 퍼거슨시에서는 이미 많은 흑인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TV로 중계되고 있던 결과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죠.
 
그러나 발표 내용은 흑인들에게 실망만 안겨줬습니다. 유족들에게도 말도 안 되는 소리죠. “크게 실망했다”며 참담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실망과 분노는 우려했던 대규모 시위와 폭력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미국 방송사가 보도한 현지 상황을 보면 어젯밤 퍼거슨 시는 그야말로 전쟁터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일부 시위대가 경찰차 창문을 부수고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하게 항의 시위를 벌였고요. 곳곳에서 방화로 보이는 불길이 치솟기도 하고, 일부 군중들은 상점을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군중을 해산하기 위해 최루탄을 발사하기도 했고요.
 
시위는 퍼거슨시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오클랜드, 뉴욕, LA, 시애틀 등에서도 수십에서 수백명의 흑인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 방화로 불타는 퍼거슨시를 순찰하는 경찰등 (사진:AP)

우리 교민들의 피해가 우려되는데요. 아직까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시위 때는 우리 교민들이 운영하는 일부 상점들이 피해를 입었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하고 ‘실망과 분노는 이해하지만 미국은 법치국가다, 창문을 부수고 돌을 던지고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시위로 표출되는 흑인들의 분노를 보면, 단순히 이 사건의 부당함에 대한 분노뿐만 아니라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총기로 인한 사건 사고는 다반사고요. 흑인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도 상당히 많습니다. 브라운 사망 사건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몇 건 더 있었고요. 그런데 유독 이 사건에 대해 흑인들의 분노가 집중되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는데요.
 
첫 번째는 경찰의 초기 대응입니다. 미숙했고 투명하지 않았습니다. 사건 발생 직후 이미 목격자 증언 등으로 총격을 가한 경관이 백인이라는 점이 드러났는데도 경찰은 입을 다물고 확인을 안 했어요. 총을 몇 발 쐈는지도 밝히지 않았고요.
 
그리고 며칠 뒤 경찰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총격을 가한 사람이 백인 경관이라고 뒤늦게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브라운이 절도 용의자였다는 점을 알리려고 편의점 CCTV 영상을 슬며시 공개하죠.
 
유족과 흑인사회는 경찰이 총격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 브라운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반발합니다. 게다가 경찰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는 공개하면서 총격을 가한 횟수 등 중요한 정황들은 숨기고 있다고 비난하죠. 나중에 부검 결과를 통해 브라운이 총에 6발 맞은 것으로 드러나자 흑인들은 더욱 격분했고요.
 
그래서 시위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시위에 대한 과격한 진압도 문제가 됐죠. 미주리 주 정부가 군대까지 동원했으니까요. 도시 한복판에 무장한 군인들과 장갑차 등이 시민들의 시위를 진압하겠다고 나오는 겁니다. 전쟁터도 아닌데 말이죠. 과격한 시위 진압이나 경찰의 과잉 대응 같은 것들은 모두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경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흑백 간 불평등입니다. 퍼거슨이라는 도시 자체가 백인 중심으로 굴러가는 미국 사회의 현주소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에요.
 
퍼거슨은 인구가 2만 정도인 작은 도시입니다. 과거엔 백인들이 흑인보다 훨씬 많았다고 하는데요. 시 외곽으로 신도시들이 생겨나면서 백인들이 대거 교외로 이동하게 됩니다. 백인들이 사는 곳, 흑인들이 사는 곳이 금이 그어진 거죠.
 
퍼거슨엔 상대적으로 가난한 흑인들만 남았습니다. 지금은 인구의 67%, 3분의 2정도가 흑인인데요. 대부분 저소득층입니다. 주민의 24%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퍼거슨의 시장은 흑인일까요? 아닙니다. 백인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퍼거슨 경찰도 거의 다 백인입니다. 전체 경찰 53명 가운데 흑인은 고작 3명입니다. 흑인들이 대부분인 도시인데도 도시 운영은 백인들이 주도하는 거죠.
 
지난해 경찰에 체포된 흑인은 483명인 반면 백인은 36명에 그쳤습니다. 불심검문의 90%도 흑인이었지만 실제 총기류나 마약류를 소지한 사람은 백인이 훨씬 많았습니다. 흑인들을 마치 잠재적 범죄자처럼 취급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부분이죠.

안 그래도 퍼거슨 시 흑인들은 백인 경찰들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브라운의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이 사건은 하나의 상징이 됐죠. ‘백인 경찰의 부당한 과잉 진압에 무고하게 희생된 흑인 청년’으로 퍼거슨 흑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됐죠.
 
제가 앞서 이 사건이 과잉 진압인지, 정당 방위인지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아마도 현지 흑인들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이 사건은 흑인들에게 어쩌면 내게도 일어날지 모르는 감정적으로 ‘뜨거운’ 사안이 됐거든요.
 
[앵커] 실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회의 오래된 흑백 갈등이 다시 표출되는 모양새군요?
 

[기자] 네, 대배심의 결정이 나오기 전에 미국 CNN 방송이 ‘ORC International survey’라는 회사와 함께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11월 21일~23일 / 1,045명 대상 / 오차범위는 ±3%p)
 
윌슨을 기소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래야 한다는 답변이 57%입니다. 그러나 이같이 답한 사람들의 답변도 자세히 봐야 하는데요, 이 가운데서도 윌슨이 살인을 했다는 쪽은 32%입니다. 그리고 살인까진 아니지만 과실이 있다고 보는 중도적인 주장은 25%입니다. 이에 반해 윌슨이 무죄라는 주장은 31%입니다. 양 극단과 중도, 어느 한쪽이 압도적이진 않지요.
 
그러나 인종을 기준으로 투표 현황을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윌슨이 살인죄로 기소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백인들의 23%만이 “그렇다”라고 답했습니다. 반면에 백인이 아닌 사람들은 54%가 같은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죠.

▲ 인종별로 갈린 CNN의 설문조사 결과 (사진 : CNN 캡쳐)

인종으로 갈리는 것은 여론뿐만이 아닙니다. 흑인들의 시위 반대편에는 백인들이 주도하는 시위도 있습니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윌슨 경관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활동해왔고요. 온라인상에서는 윌슨 경관을 돕자는 취지의 모금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법 질서를 분명히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는데요. 기저에는 백인들의 주도권을 지켜야 한다는 방어 의식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흑백 인종 갈등이 또 드러나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흑인사회의 누적된 좌절감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이 많습니다. 흑인 대통령이 나왔지만 여전히 흑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2등 시민으로 대접받는다는 거겠죠. 시위 사태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최재원 기자 / yungrk@bbs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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