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장관 직선제 요구…홍콩의 ‘중국화’ 불안감도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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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너명 : ‘세계는 지금’
● 진행 : 박경수 앵커
● 출연 : 정치외교부 최재원 기자

[세계는 지금] 한주간 지구촌 소식을 알아보는 세계는 지금 시간입니다. 홍콩 도심 한복판에서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중국의 입김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손으로 홍콩 행정수반을 뽑겠다는 것이 시위대 측의 요구입니다. 오늘은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보도국 최재원 기자 나와있습니다.

[질문 1] 시위 상황부터 먼저 짚어볼까요? 지금까지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거죠?

[답변 1] 네, 그렇습니다. 지난 주말부터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월요일에 시위대 규모가 가장 컸어요.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시위대측은 10만명이 나왔다고 주장하기도 했구요.

시위 장소는 홍콩의 도심 한복판이에요. 정부 청사와 은행들이 몰린 곳입니다. 홍콩이 자랑하는 것이 ‘금융’이죠. 은행들이 몰린 홍콩 중심가를 ‘센트럴(Central)’ 이라고 하는데요. 

시위대들이 외치는 구호가 ‘Occupy Central’, “센트럴을 점령하라”입니다. 어디서 본 것 같죠. 미국발 금융위기 때 비슷한 구호가 있었습니다. ‘Occupy Wall Street’입니다.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유명 투자은행들은 오히려 성과급 잔치를 벌였죠. 분노한 미국 시민들이 월가로 몰려 시위를 벌이면서 나왔던 구호인데, 홍콩에서도 비슷한 구호가 쓰이고 있습니다. 홍콩의 시위는 금융가에 대한 반발은 아니고요. 금융가를 마비시켜서 중국 당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기 위한 겁니다. 

시위 광경은 2008년 우리나라의 대규모 촛불시위를 기억하시면 비슷할 겁니다. 시위대 규모가 워낙 커지니까 홍콩 당국도 대규모 진압 작전을 벌이고 있는데요.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해서 진압을 벌이고 있습니다. 충돌 과정에서 부상자들이 매일 수십명씩 발생하고 있구요.

재밌는 점은 홍콩 시위대들은 촛불 대신 우산을 들고 시위를 벌인다는 건데요. 우산을 펼쳐서 최루탄을 막아내는 거죠. 수만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산을 펼치고 시위를 벌이는 광경이 펼쳐지는데요. 그래서 이번 시위를 ‘우산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번 시위를 학생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건데요. 시위 규모가 이렇게 커질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학생들이 동참한 덕분입니다. ‘Occupy Central’ 운동이 힘이 빠질 때쯤 학생들이 가세하면서 시위에 동력이 생겼어요.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들도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온 겁니다.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때도 그렇지만 젊은 층이 아무래도 독립, 자치권, 민주 투표 권리 같은 가치들을 강하게 요구하는 성향을 보이죠.

혈기왕성한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다 보니 우발적인 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고 경찰의 과잉진압도 나올 수가 있어요. 홍콩 경찰은 총기를 동원해 수적 열세를 극복하려 하고 있습니다. 라이플과 자동소총까지 나왔는데요. 지금은 고무탄이긴 합니다만 걱정스러운 대처입니다. 홍콩 당국이 실제 시위대에 실탄을 발포할 계획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어요.

시위 여파로 버스 200여 대가 운행을 중단했고요. 인근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들도 휴업했습니다. 오늘이 중국 국경일이라 대규모 불꽃놀이 등 각종 행사를 하려 했는데요. 다 취소됐습니다.

[질문 2] 시위 상황부터 짚어 봤구요. 왜 홍콩 시민들이 시위에 나선 것인지가 가장 궁금합니다.

[답변 2] 네, 표면적으로는 홍콩 행정수반, 행정장관이라고 하는데요. 이 행정장관을 어떻게 선출하느냐의 문제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중국으로 편입된 홍콩의 불만이 깔려 있습니다.

일단 시위가 촉발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홍콩이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돌려받고 중국으로 편입된 것이 1997년 7월 1일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홍콩의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가 됐죠.

주권 반환 당시 중국 정부가 약속한 것은 ‘일국양제(一國兩制)’, 그러니까 하나의 국가 아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두 가지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 홍콩의 자본주의를 품겠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또 약속한 것이 2017년에는 홍콩의 행정수반을 홍콩 사람들이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하겠다. 직선제를 시행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중국 정부가 말을 바꿨습니다. 8월말에 중국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라는게 열렸는데요. ‘전인대’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하는데 중국의 주요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형식상 최고 권력기관입니다. 

전인대에서 2017년 홍콩의 행정수반, 행정장관을 뽑는 방식을 발표했는데요. 후보자를 사실상 친중국 인사로만 제한해서 논란이 벌어진 겁니다.

선거 방식은 이렇습니다. 행정장관 후보 2명에서 3명을 대상으로 홍콩 시민들이 투표를 벌입니다. 형식상은 직선제죠. 그런데 문제는 이 후보자를 어떻게 뽑느냐입니다.

후보자는 1,200명으로 구성된 선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요. 그런데 이 선출위원회의 위원들은 투표로 선출되지 않습니다. 중국 당국의 입맛에 맞는 선출위원회가 구성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럼 반중국 성향의 후보자가 후보로 오를 수 있을까요? 안 될 겁니다.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친중국 성향을 보일텐데 투표를 해도 의미가 없는거죠. 직선제 약속은 껍데기만 남은 겁니다.

그렇다고 홍콩이 그동안 행정장관을 직접 뽑아왔느냐, 그건 아니에요. 그동안 간접선거가 이뤄져 왔고 중국의 입김으로 결과적으로 친중국 인사가 행정장관을 해왔습니다. 현임 행정장관은 ‘렁춘잉’이라는 사람인데요. 역시 친중 인사입니다. 시위대가 퇴진을 요구하고 있죠.

홍콩 시민들은 이 점이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사실 시위가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니구요. 홍콩 시민들은 매년 7월 1일 반환 기념일 때마다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민주 선거 도입을 요구했어요. 특히 올해 7월 1일 기념일 때는 79만명의 홍콩 시민들이 대규모 평화 시위를 벌였구요. 그런데 중국 전인대의 결정으로 2017년 직접선거 약속이 깨지자 본격적인 시위로 번진 겁니다.

[질문 3] 일단 표면적 이유는 행정장관 선거 문제인데요. 근본적인 배경에는 중국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불안감과 반발도 있는 것 같은데요.

[답변 3] 그렇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올해 4월에 홍콩인들의 분노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장의 사진 때문인데요. 홍콩 시내 한복판에서 중국 대륙인 부부가 보는 가운데 아들이 대변을 보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홍콩 시민들이 열이 받은 거죠. 중국 관광객들, 왜 이렇게 몰상식하냐는 겁니다. 반중국 관광객 시위까지 벌어졌습니다. 어찌 보면 ‘과민반응’이라고 할 만큼 격노하는 모습인데요.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중국 대륙 사람에 대한 홍콩 사람들의 뿌리 깊은 불신과 거부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홍콩이 자꾸만 ‘중국화’되고 있다는 불안이 깔려있습니다.
 
▲ 홍콩에 관광온 중국 대륙인 부부가 아이에게 대변을 보게하는 모습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의 주권을 반환받을 당시 50년동안 홍콩의 기존 체제 유지와 자치권 보장을 약속했죠. 그러면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됐는데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사회 각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는 겁니다.

중국은 2003년에는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하다 수십만 명이 거리 시위에 나서자 포기한 일이 있었고요. 2012년에는 국민교육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려다 ‘정치적 세뇌’라는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두 사안 모두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불안하겠죠. 중국 당국이 자꾸 홍콩 체제에 개입하려 하니까요.

언어 문제만 봐도 중국의 영향력은 실제 커지고 있습니다. 홍콩에서는 광동어를 쓰죠. 대륙 사람들의 중국어와는 완전히 다르죠. 억센 억양이라 시끄럽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에요. 홍콩에서 광동어의 지위도 급속히 낮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홍콩 택시기사의 상당부분은 영어나 광동어가 잘 안통하는 대륙인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그리고 앞서 이번 시위는 젊은 세대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들 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또 중국 경제의 부상으로 인한 혜택을 거의 보지 못했구요. 오히려 홍콩으로 몰려드는 중국인들 때문에 치솟는 집세로 ‘내 집 마련’에 대한 고민이 많죠. 이런 상황에서 중국 당국이 직선제 약속을 깨버리니, 불만이 폭발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짚어볼 점은요. 홍콩 내에는 민주세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됐건 홍콩경제는 중국경제에 깊숙이 편입됐죠. 자연스레 혜택을 본 친중국세력도 있습니다. 대륙에서 넘어온 이주민들도 있구요. 친중 성향의 홍콩 시민 수천여명도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질문 4] 이번 민주화 시위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답변 4] 네, 홍콩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물론 제대로 된 직선제겠지요. 더불어서 현임 렁춘잉 행정장관이 퇴진해야 한다는 요구겠고요.

중국의 선택이 관건일텐데요. 일단 전인대의 결정을 번복할 의사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이번 홍콩 사태에서 물러선다는 것은 앞으로 대만과의 통일 과정에서도 문제가 될테니까요. 홍콩 시위대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시진핑 체제의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권력질서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시진핑은 덩샤오핑이 수립해 놓은 집단지도체제를 허물고 자신을 중심으로 권력 구도를 짜고 있죠. 1인 독재로 회귀하는 모양새입니다.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주변 권력을 정리하고 있죠. 그런 시진핑이 홍콩 시위대에 굴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시위 과정에서 유혈 사태가 발생한다면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받을 겁니다. 중국 입장에서 천안문 사태가 재연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일테니까요.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할 것이고, 중국이 내세우는 신형 대국 지위 역시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중국 인민군이 무력 진압에 동원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제가 보기엔 그렇게까지는 하진 않을 듯합니다. 중국 정부는 사태를 지켜보며 시위 동력이 사그라지기를 기다릴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이 중국 국경일(10월 1일)인데요. 오늘 저녁 대규모 시위가 있을 예정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유혈사태는 없어야 할 텐데요. 앞으로의 전개를 지켜봐야겠습니다.
 
최재원 기자 / yungrk@bbs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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