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가에 돌아다니는 개(犬)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나친 과장의 농(弄)이겠지만 그만큼 정치판에 돈이 튀는 세월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정분리는커녕 대통령이 제왕적 총재로 군림하던 시절이었으니만큼 정권의 흥망을 가르는 대형선거라도 벌어질 때면 내려가는 돈도, 뿌리는 돈도 많았고 당의 살림을 맡고 있는 당 사무총장의 문 앞은 이른바 총알(선거자금)을 지원받으려는 인사들로 늘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다.

물론 돈은, 정권을 잡은 여당 의원들이 많았다. 뭐든지 주먹구구로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세월이었기에 형님, 동생하며 여기저기서 찔러 넣어 주는 돈도 제법 넉넉했지만 이른바 ‘보스’를 뵈러 가면 잊지 않고 이쪽저쪽 호주머니에서 꺼내주는 ‘용돈’도 수월찮게 짭짤했다. 그러면 여당 의원들은 그 돈들을 혼자 쓰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 종일 악다구니 세우며 진흙탕 싸움을 벌였던 야당 의원들과 저녁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요즘 돈 없지?”하며 나눠 썼다. 자존심을 세우며 끝내 받지 않으려는 후배 야당 의원이 있으면 화장실에서 볼 일 볼 때 뒷주머니에 슬그머니 넣어주고 어깨를 두드리고 나온 적도 있었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다시 싸울지언정 그게 ‘정치’이고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믿던 시절의 얘기이다. 

그 시절에는 기자들의 이른바 갑(甲)질도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정치부 기자 수 자체가 얼마 되지 않으니 언제나 몇 갑절은 많은 을(乙)들의 접대와 향응을 골라서 갈 수 있었고 뭐든지 배불리 먹으며 두둑이 챙길 수 있었다. 기자들마다 선호하고 지지하는 정치인이 대부분 분명했고 기자들의 정치성향은 자신들이 출입하는 정당의 색깔과 거의 일치했다. 연배가 비슷한 국회의원과 보좌관, 당국자들은 다 ‘형’이고 ‘선배’였으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허물없이, 흉금 없이 지내도 그다지 흠이 되지 않던 세월이었다.

이런 세월의 폐단(弊端)이 이후 우리 정치를 얼마나 후진적으로 후퇴시키고 힘들게 했는지는 이 지면에서 얘기하지 않겠다. 다만 정치를 20년, 30년 한 여야의 중진의원들은 요즘 “그래도 이때가 좋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시절의 구태와 작태들이 좋았다기보다는 그래도 이 시절에는 훈훈한 정(情)이 넘치고 인간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 일부 젊은 정치인들처럼 위아래도 없이 자기 잘난 맛에 무조건 쏘아대며 날뛰지 않았고, 말로만 국민을 위한답시고 떠들면서 실상은 자기 PR(Public Relations)에만 몰두하는 위선적인 쇼도 드물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물어뜯고 싸워도 화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언제든지 열려있었다. 한마디로 중진의원들이 시도 때도 없이 강조하는 “정치는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외침을 완성할 수 있는 풍류(風流)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풍류(風流)는 ‘풍치와 운치 속에서 멋스럽게 노는 일’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 ‘아취(雅趣: 아담한 정취 또는 취미)가 있는 것’ 혹은 ‘속(俗)된 것을 버리고 고상한 유희를 즐기는 것’으로 풀이하는 학자가 있을 정도로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 멋이 있는 것, 음악을 아는 것, 예술에 대한 조예, 여유, 자유분방함, 즐거운 것 등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신산스럽고 부침(浮沈)이 심한 정치판에 들어와 그저 놀고 마시는 세속적인 의미로 퇴색한 것이 욕스러울 지경이다.

취임 1주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풍류(風流)는 필요하다. 국정전반에서 빨리 빨리 성과를 내고 인정받고픈 조급한 마음에 매사가 만기친람(萬機親覽)이 됐다. 대통령의 눈조차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장관들과 청와대 수석들은 매주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혼나는 말썽꾸러기 학생들이 돼 깨알같이 받아 적는 데만 급급하다. 지난 1년 동안 기자가 꼽는 박 대통령의 가장 행복한 모습은 지난해 가을 청와대 안뜰에서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며 흥겹게 노래 부르면서 놀던 모습이다. 집권 2년차인 올해, 지난해 미흡했던 소통을 재개하고 실종됐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문이 봇물을 이루지만 대통령이 잠시라도 풍류(風流)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작은 여유라도 갖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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