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이 오는 29일 첫 시행되는 '문화가 있는 날'을 통해 구체화될 전망이다. '문화가 있는 날'은 정부가 문화융성의 '원년'이라 일컫는 지난해, 10월 25일 문화융성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핵심 사업이다. 정부는 지난 21일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문화를 즐기며 문화융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2014년 새해부터 매월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날'로 정했다고 밝혔다. 국민 모두가 쉽게 문화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관람료 무료나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야간개방과 문화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하는 것이 골자다.

 문체부는 특히 첫 시행을 맞아 국민과 함께 문화융성 시대를 열어 나가기 위해 공공영역뿐 아니라 민간 분야에서도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 뮤지컬 공연 사업을 벌이는 국내 한 기업과 백화점을 운영하는 한 기업도 동참하기로 했다. 영화와 농구 경기 관람료도 할인된다. 문화도 빈익빈부익부인 것이 현실인 요즘, 정부가 문화시설 이용 문턱을 조금이나마 낮춘 것은 우선 반길 일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1984년부터 '문화유산의 날'을 지정해 역사적 가치를 지난 프랑스 유적지를 기리기 위해 매년 9월 셋째 주 주말에 실시하고 있다. 엘리제궁, 상원의사당, 파리시청, 총리공간 등 평소 일반인들에게는 닫혀 있던 시설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날에는 전국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도 무료로 개방된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관람료 12유로)이 10월부터 3월까지 매월 첫째 주 일요일에 무료로 개방된다. 이탈리아는 '문화주간' (CULTURE WEEK)를 지정해 매년 4월 중 일주일에 전국의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 등의 무료관람을 실시한다고 한다. 영국은 매년 9월 런던 내 800여개의 다양한 건축물을 무료로 공개해 대중들이 내부공간과 구조를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건축물 축제 '오픈 하우스 런던' (OPEN HOUSE LONDON)을 시행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난 1991년 '유럽문화유산의 날'을 유럽 전역으로 확대해 각 회원국 국민들이 언어와 문화 차이를 이해하는 한편, 유럽 문화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틀 간의 행사기간 동안에는 EU 회원국상호 간에 무료입장이 실시된다.  

 우리나라의 '문화가 있는 날'은 영화, 공연, 스포츠 등 민간 분야의 참여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문화 시설의 참여가 저조한 것은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을 비롯해 전국의 국공립 문화재 시설을 하루 만이라도 무료 개방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뮤지컬과 클래식 음악회, 미술관 등 현대 서양 예술에 비해서는 혜택이 적고 가지 수도 적다. 순수 국악 분야에서는 국립국악원의 '청마의 울림'이 유일하고, 춘향전을 재해석한 정동극장의 '미소'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지적이다.


  '문화가 있는 날'을 전통문화 대중화의 기회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한류문화의 지속·발전을 위해서는 그 안에 정신문화를 담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문화계 안팎에서 나온다. 유진룡 장관이 29일 오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방문한다는데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장관의 발걸음은 다른 곳을 향했을 것이다. 유럽 선진 국가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자국의 전통 문화 육성에 힘써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문화융성과 한류의 지속을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물놀이와 탈춤 등 우리 국악, 한국무용과 씨름 등 고유의 운동경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점점 식어가고 있다. 정부가 전통문화, 정신문화를 담은 한류의 확산을 위해서는 자국민들부터 사로잡아야 할 것이다. 민간시설이라면 참여를 촉진시키기 위한 당근책도 필요하다. 물론 정부가 우리 것의 세계화에 손을 놓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정부의 '문화융성'이 자칫 현대 예술에 치우칠까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없지 않아서 하는 얘기다. 오랜 시간 정성들여 피운 화초도 물을 주지 않으면 금새 시들어 버린다. 수 천 년에 걸쳐 꽃 피운 우리의 전통문화가 목이 말라 보인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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