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의 중국 국청사 천태지자대사 탄신 1465주년 기념행사 방문을 수행해
중국 상해, 천태현 국청사, 장가계, 소주 등을 다녀왔습니다*
최대한 짐을 줄여라...
지난 2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정치부에 있으면서
수 없이 지방 유세를 따라다니며 장돌뱅이 생활을 한 나만의 진리였습니다.
무거운 짐이 얼마나 기자의 기동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그 출장자체를 지난한 추억거리로 만드는 지 익히 아는터라,
이번 중국 출장에서도 나는 속옷과 양말을 제외한
모든 옷의 수를 하나로 통일했습니다
10월 10일 금요일 출발당일...
새벽 6시 반까지 인천국제공항에 모이라고 한다
교계의 아무생각없이 정하는 졸속일정이 출발부터 드러나누나...
인천국제공항까지 6시 반까지 모이라는 것은
내가 사는 분당에서는 4시에 일어나 4시 반쯤에는 차를 타야한다는 것인데
그 시간에는 차도 없을 뿐더러 도대체 8시 50분 비행기에
6시 반까지 모이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어
6시에 일어나 느긋하게 8시까지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8시가 다 돼, 난짱하게 나타나는 나를 바라보는
천태종측과 다른 교계기자들의 눈길은 당연히 곱지가 않더군여.
나름대로 중국간답시고, 꽃단장에 때때옷 차려입고
미는 가방, 드는 가방, 매는 가방 하나씩을 주렁주렁 준비해
정말 6시 반에 모인 기자들이 왜 이제야왔느냐며 원망의 목소리가 높아서리,
일단 특유의 너스레로 빨아주면서 한참을 쓰담아놓고...
그러나... 역시 그 때와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천태종 총무원장 운덕 스님 등장하시고 입국수속이 시작됐으니깐요...
뭐 쓰고 기재하는 것도 다 여행사에서 알아서 해
우리는 그냥 받아 넘기고 쓱쓱 지나가기만 하면
비행기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채 20분이 걸리지 않는 것을...
그제서야 다른 교계기자들도 잠이나 더 자다 올 걸하며 한숨을 쉬더군여...
그래도 대국, 중국이라 꽤나 걸릴줄 알았는데
비행기안 스튜어디스들에게 눈도장 몇 번 찍고 밥 몇 숟갈 뜨고나니
벌써 상해라고 하더이다 (1시간 반 소요)
상해... 아... 상해...
원조 뿔테안경에 빛나시던 우리 김구 할아버지께서
한때 국통으로 계셨던 임시정부가 있던 곳...
일제의 만행에 목숨걸고 저항하시던 선열들의 유혈이 낭자해
가는 곳마다 선명한 핏자국이 가슴을 메울 것 같던 곳...
비록 박정희의 푸른 능금을 따먹고 자란 세대의 창우기라고 하지만
이 같은 역사의 무게와 한을 지닌 상해에서 첫 발을 내딛으니
형언할 수 없는 경건함과 엄숙함에 머리가 절로 숙여지더이다
(물론 카투사시절부터 저의 애국심은 절정의 기량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상해는 국제도시로서 그 면모와 수준이 세계적이다
아닙니다. 아니올시다...
그저 우리나라의 중소도시 같은 곳에 커다랗고 투박한 건물만
잔뜩 위로 올려놓았을 뿐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습니다.
백번을 양보해 19세기 한 때, 프랑스 조계지로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
프랑스식 서구형태의 건물들이 많고 건물의 모양이 독특해야만 건축허가를 내주는 등국가차원에서 도시의 조경을 대대적으로 계획하고 가꾼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결코 우리의 세련되면서도 단아하고 정교한 경지에는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많은 리포트와 <법고와 죽비>에서도 밝혔듯이 상해에는 산이 없습니다
원래 양자강 하류의 충적평야에서 비롯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우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평선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상해는 물류 저장량이 세계 4위라고 합니다. 3위는 우리의 부산이지요.
왜 부산한테 밀리는가하면 수심이 낮아 큰 배들이 못들어와 그렇다는군여.
그래서 이를 만회할세라 이미 부산과 자매결연을 맺고 친한척을 한다고하고,
지난번 우리 물류대란때에는 좋아 죽을라 그랬다고 하더군여 (응큼한 중국뗏놈들!)
제주도보다도 위도가 낮은 중국 상해는
아직도 섭씨 25도를 오르내리고 있었고, 옛부터 습한기후를 이기고자
2층으로 집을 많이 지어 주로 1층에는 가축을 기르고 2층에서 사람이 살았다고 하데요
이런 상해를 출발해 180킬로미터쯤 고속도로로 달려야
비로소 산을 볼수 있고 우리네 농촌과 비슷한 풍경이 이어집니다
사실 쉬지 않고 일하는 촌부와 아낙들외에는 정말 볼 것이 없어여.
꼭 우리 70년대 후반 농촌모습과 비슷하데여. 꾸질꾸질하고 빈티나고(-_-)
이렇게 5시간을 달려야 절강성 천태현 천태산 국청사에 도착할 수 있는데
이 지루한 시간동안 가이드 아줌마에게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 몇 가지...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게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세가지는
반도체, 축구, 바둑이라고 하고요...
중국에는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