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한 조각"이라는
불교적 생사관을 담은 말을 남겼습니다.

불교와 깊은 인연을 간직한
노 전대통령의 삶의 자취를
배재수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 전
자신의 컴퓨터에 남긴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고 밝혔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서 내용은
불교적 생사관으로
불교경전인 <열반경>과 <유마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생사일여는 달관, 초월을 의미합니다.

‘나’라는 개인적 주체는
거대한 우주생명체의 미세한 일부로
나의 죽음은 개체적 현상이고,
전체 우주의 생명 줄기에서 보면
하찮은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나와 같은 생명체는
또다시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의 종교는 무교였습니다.

1986년에 천주교 영세를 받았지만
자신은 특정한 종교가 없으며
기자들과 천주교인들의 질문에는
늘 “모색 중” “방황”이라고
웃어넘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불심 깊은 어머님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불교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시절 노 전 대통령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집에 부처님을 모셔놓고
아침마다 독송했는데 그 소리에
잠을 깨곤했다”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

당시 노 후보는 어머니를 ‘왕보살’로 불릴 만큼
신심이 돈독했었다고 기억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불교적”이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16대 대선 후보 시절
그는 20대에 철학적 관심이 높아
불교개론을 비롯해 많은 불교 서적을 탐독했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노 후보는 “과학문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과학세계를 모순 없이 설명하는 힘이야말로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이며
진리의 종교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하며
“전통불교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화쟁과 원융회통의 사상은 투쟁으로 점철되어온
이 땅의 민주주의를 화해와 관용의 문화로
성숙시켜 나가는 정신적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불교용어인
‘초발심’이라는 말을 선호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승가에서 ‘초발심자경문’을 곁에 두고
평생 동안 마음가짐이 흔들릴 때마다
새롭게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는다고 들었다”며
“어렵고 힘없는 이들을 돕고자
인권변호사의 길로 뛰어 들 때의 초발심,
정치를 시작할 때의 초발심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스님과 사찰에서의 예절을
철저히 지켰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언제나 스님을 만나면 합장했고
독실한 불자였던 권양숙 여사와 함께
늘 90도로 고개를 숙였던 것으로
불교계 스님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시공부를 사찰에서 했던 노 전 대통령이지만
그렇다고 스님들과 특별한 인연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지난 2001년 대선 기간에
법전 종정예하와 원로회의 의장 도원스님을 비롯해
각 교구본사 사찰을 방문하며
원로대덕스님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불교활동은 사실 활발했습니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 불자의원 모임인
연등회 부회장을 지낸 바 있습니다.

스무살 때는 <반야심경 해의(解義)>를 읽었으며,
철학적 관심이 높아 <불교학개론> 등
불교개론서들을 독파했습니다.

또 <유마경><법화경><화엄경의 세계>등의 경전을
집에 소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시절 한 불교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가슴에 남는 불서내용을 묻는 질문에
부처님이 가섭존자에게 “이제는 네가 설법을 해라.
나는 허리가 아프니 좀 쉬어야겠다”는 구절이라고
밝힌 바도 있습니다.

평소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초연한 자세를
유지해오고 있었다는 방증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영부인
권양숙 여사는 독실한 불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인사 대비로전 낙성법회 때
대통령 내외가 이례적으로 참석했던 것도
권 여사의 내조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부인 권양숙 여사는
해인사에서 법전 종정예하로부터
보살계와 법명인 ‘대덕화(大德華)’를 받기도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불교계는 다소 침통한 분위기입니다.

현 정권이 편향적 종교정책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불교계의 주요 소통 창구로서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역할에
일부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BBS뉴스 배재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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