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도서관에서 시인 구 상의 회고록을 읽었습니다. 그는 일제시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기관지 성격의 신문사 기자로 일했습니다. 처음 맡은 사건이 함경도 지역에 있는  탄광간부 부인피살사건이었습니다. 경찰의 노력으로 범인을 잡고보니 조선인이었습니다. 기사를 써서 편집국장에게 제출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기사에는 “평소에 품행이 방정맞고 사회부적응의 원망기질이 있으며...”등으로 부정적인 범죄배경생활을 썼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읽어 본 편집국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 기자! 기자는 범인이 잡히기 전에는 경찰 편에 서서 범인을 빨리 잡을 수 있도록 기사를 쓰고,일단 범인이 잡히고 난 뒤에는 그 범인이 하루라도 빨리 풀려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사를 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시 써 보세요.” 일본인 편집장의 말을 들은 구 상시인은 아주 감동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려울수록 단결과 좋은 마음 씀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던 경험이 아주 많은 저력 있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남과 우리의 일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부정적으로 보아서 비판을 넘어서 비난까지 하는 일을 민주적이라고 착각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유권자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의 정치와 행정행위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떻습니까? 여러 명의 힘없는 여인들을 무참히 죽여버린 범죄자를 바라보는 눈은 어떻습니까? 우리 불교계의 수장들을 뽑는 방법과 절차를 다루는 일들은 또 어떻습니까? 혹시 나의 처지와 이해가 다르다 하여 무조건 비판만 하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칭찬에는 고래도 춤을 추고 식물도 잘 자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것을 조금 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살펴본다면 어떤 이유에 의해서건 조금 못한다 싶으면 비판보다는 잘하도록 격려를 하는 것은 어떨까요? 또 제법 잘 나간다 싶을 때는 혹여라도 잘못되지 않도록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여 조심하도록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나와 관계있는 또 다른 나이므로 바로 나처럼 생각해서 “못할 때는 잘하도록 도와주고 북돋아주며,잘할 때는 조심하도록 주의를 주는 습관을 들여서” 이 어려운 시기를 우리 모두의 힘으로 벗어나서





지난날을 이야기 하며 살아보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법현스님(태고종 교류협력실장,열린선원장, 불교방송 객원논평위원)





*이상은 2/24 논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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