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연쇄살인범이 붙잡히고, 그 흉악한 죄상이 낱낱이 드러나 국민들을 소름끼치게 하더니 용산 철거민들의 참사까지 겹쳐 나라 안팎이 뒤숭숭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는 불자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연쇄살인사건과 용산 참사는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사건의 본질은 같습니다.


바로 ‘생명경시풍조’란 점입니다.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이 이같이 하찮은 대접을 받는 오늘의 현실이 마냥 서글플 따름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은 ‘생명의 존중’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비의 실천도 생명의 존중을 전제로 하고, 보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서양인들 사이에 불교가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까닭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간을 중심에 두고, 그 생명의 보편성을 설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얼마나 생명의 존엄함을 중요시 여겼는지는 탄생게에 잘 나타납니다.




부처님께서는 탄생 직후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라고 외치셨습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를 존귀하게 여긴다. 삼계가 모두 괴로우니, 내가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라는 뜻의 이 사구게는 깨달아 부처가 되고자하는 인간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탄생게에 담긴 이러한 인간 존엄의 가치를 되새기며, 항상 서로의 존엄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현생에서 누리는 부와 명예와 권력은 결코 존엄함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부처의 성품을 지닌 생명 있는 모든 중생은 평등한 존재입니다. 현생에서 누리는 부와 명예와 권력은 새벽녘 풀잎에 매달린 이슬방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전을 보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없는지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부처님은 인간의 삶을 이슬방울에 비유하거나 작대기로 물 위에 그은 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또 부서지기 쉬운 육신을 물거품에 비유하거나 진흙으로 빚은 물 항아리에 비유한 경우도 많습니다.




현생의 삶은 깨달음을 얻어 윤회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 위한 과정일 뿐이며, 그러므로 부처님은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수행 정진해야 한다는 가르치고 계십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우리 모두를 움츠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마음이 움츠려 들다보니 삶의 여유와 넉넉함은 사라지고, 조바심만 차오르게 됩니다.




세상 구석진 곳에는 추위와 배고픔으로 웅크려 있는 어려운 이웃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줄어든 마음의 여유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멀어지게 만듭니다.




우리 불자들이라도 어려울 때 행하는 보시와 자비의 손길이 더욱 값지다는 점을 상기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작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월도스님(천태종 사회국장, 불교방송 객원논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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